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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된 중북관계를 고려한 희망적 시나리오 하나

착한왕 이상하 2018. 3. 14. 03:02



오늘 트럼프 정부의 온건파로 회자된 틸러슨이 잘려나가고 강경 노선을 대변하는 폼페이오가 미국 국무성을 지휘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말이 많다. 어떤 전문가는 이번 트럼프 결정이 사실상 북한에 대해 항복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미 회담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또 어떤 전문가는 트럼프의 정책이 일관성을 띠게 되어 오히려 북미 회담을 가속화시키 것이라고 진단한다. 어느 진단이 맞을 지는 함부로 속단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 20여년 동안 악화된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고려할 때, 적어도 희망적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은 그럴듯하다. 개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대부분 국내외 전문가들이 신문 및 방송 인터뷰에서 '악화된 중북 관계'를 빼먹고 향후 전망을 한다는 것이다.


마우쩌둥은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순망치한'으로 묘사했다. 중국이 이빨이라면 북한은 입술이라는 것이다. 마우쩌둥의 이러한 비유는 단순히 중국과 북한의 대등하고 상보적 관계를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북한은 국제 전략 구도에서 중국의 전략적 방패막이라는 것이다. 군사력에서 미국보다 열등했던 당시 중국의 처지를 고려하면 당연해 보인다. 중국과 북한의 대등한 관계는 이런저런 잡음 속에서도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물론 중국의 대북 경제적 지원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후진타오가 정권을 잡은 시절, 중국과 북한의 관계는 뒤틀리기 시작한다. 중국은 북한에 대해 대등한 관계가 아니라 종속적 관계를 노골적으로 강요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 성장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중국은 세계 질서에서 패권국이 되려는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김정일 주석이 북미수교를 단행하려 했던 동기 중 하나는 과거보다 원만하지 않게 된 중국과의 관계였다.


김정일은 후진타오에게 자신의 사후에 북한 체제 안정을 부탁했다고 한다. 후진타오는 그 약속을 어느 정도 지켰다. 그리고 요새 '시황제'로 불리는 시진핑이 중국의 권력을 잡게 된다. 현 김정은 주석은 자신의 체제 안정을 꾀하려고 2인자 장성택을 처형했다고 한다. 김정은 체제 수립에 일정 부분 기여한 인물인 장성택은 마치 유방이 한신을 제거했던 것처럼 '불안한 시기의 2인자라는 위치' 때문에 숙청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장성택은 친중 노선을 전면에 내세운 인물이었다. 장성택의 처형은 중국 정부에게는 못마땅한 것이었다. 이후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보면 과거에 비해 더욱 악화되었다. 더욱이 트럼프 집권 후, 중국은 대북 제제에 상당 부분 동참했으며, 아예 "동북아 평화를 위해 니네끼리 회담하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사실상 중국이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면서 위안화의 기축 통화화 정책을 내세우고 경제력과 국방력을 강화하여 패권국의 지위를 노리고 있다. 이 점은 시진핑 집권 이후 중국 영화들 속에 반영되어 있다. 시진핑 집권 후 중국 영화들을 보면, 대부분이 '중화사상'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어 유치하다.


시진핑은 "설마 미국과 북한이 협상해 서로 수교하는 단계까지 가겠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김정은의 '빅엿' 한 방을 고려하지 않았을 것이다. 체제를 안정화시키려면, 핵탄두를 장착한 ICBM 개발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김정은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경제적 자립이다. 문제는 경제적 자립을 중국에 의존해 이룰 수 없다는 데 있다. ICBM 개발을 통해 미국을 직접적 협상 상대로 끌어내려고 했다. 처음에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남한에 기대어 경제 발전을 꾀하는 전략을 수립했을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 정권에게 이 전략이 성공할 수 없음을 김정은 깨닫게 된다.


핵탄두 장착 ICBM을 개발한다고 완전한 체제 안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북한 주민들도 많이 변했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리 폐쇄된 곳일지라도 인테넷 등을 통해 세상의 변화가 주민들에게 도달한다. 더욱이 크게 성공적이지는 못했더라도 개방화 정책으로 주민들 상당수가 돈맛을 보았다. 경제 발전에 기초한 자립 없이는 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힘들다는 것은 현 북한 상황에 비추어 논리적인 결론이다. 더욱이 남한도 북한을 무조건 적대시하여 세력 몰이를 하던 정당이 권력을 잃었다. 북한은 북미와 협상을 하되 안전한 후방 대책 혹은 안전 보험으로 남한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크다. 핵 및 ICBM의 단계적 폐기를 체제 안정 보장과 바꾸고 경제 발전을 모색하는 데, 미국 한곳보다는 미국과 남한 모두를 걸고 넘어지는 것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위 시나리오가 맞다면, 틸러슨 경질로 크게 걱정할 일은 없으며 북미회담이 북미수교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트럼프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동북아 외교뿐만 아니라 화교 자본에 종속된 동남아 외교에서 중국을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패자는 도올이 현자처럼 칭송하는 시진핑 정권이다. 북미수교가 이루어지면, 트럼프는 타이완을 독립 국가로 인정할 것이다. 또 다른 패자는 일본이다. 동북아 및 동남아시아 외교에서 미국은 더 이상 일본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시나리오는 실현된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현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고려하는 경우 무시할 수도 없는 시나리오다. 물론 정부는 북미회담이 실패한 경우에 대비한 B플랜을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실패할 경우, 한반도 위기는 더 심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지금까지의 시나리오가 맞다면, 한반도 정세 안정화 명분 때문에 미국 무기를 사는 등 경제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설령 지금까지의 시나리오가 허구로 밝혀질지라도, 경제에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 트럼프는 철저히 국방과 외교를 경제와 뒤썪지 않기 때문이다. 국방은 국방, 외교는 외교, 경제는 경제라는 것이다. 우리가 북미회담에 도움을 주었다고, 그 대가로 경제적 이득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센더스는 유독 경제 정책에서만은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둘다 반세계화 경제 정책에 찬성했었기 때문이다. 또한 둘다 제조업 등 미국에서 약화된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겠다는 공약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표로 샌더스가 클린턴 여사를 제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라도, 그가 자신의 공약을 일관되게 추진하는 경우 지금의 트럼프와 비슷한 경제 정책을 펼쳤을 것이다.


한반도 안정화 구실로 미국이 요구하는 무기 수입을 굳이 들어줄 필요가 없다. 위 시나리오가 맞든 틀리든 말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11월 방한 후 미국 무기 수입은 급속히 늘고 있다. 이렇게 할 필요가 없다. FTA도 너무 불리하다 판단되면 폐기 선언을 선방으로 날리는 것도 효과적 전략이다. 트럭 몇 대분의 서류로 이루어진 FTA 협정은 한쪽에서 폐기 선언하더라도 실현되는 데에만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 이 점을 감안하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더욱이 북미회담의 성공과 실패는 위 시나리오가 맞든 틀리든 우리의 미국 무기 수입 여부 등 고개 숙이기와는 무관하다고 판단한다. 힘을 가지고 막말로 적들을 휘져어 그 반응들을 보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취합하는 트럼프 전략에 말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위에서 서술한 희망적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일 뿐이다. 하지만 지난 20여년 간 지속적으로 악화된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고려할 때 결코 터무니없는 시나리오는 아니다. 물론 북미회담 실패에 대비한 플랜 B는 갖고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북미회담이 결렬될 경우,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한반도 위기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국제 관계에서 영원한 우방은 없는데, 현 시진핑 주석의 중국에 기댈 구석은 크지 않다고 김정은이 판단했을 가능성은 있다.


* 만약 북미회담이 실패한다고 해도 곧바로 한반도에 국지전이 벌어질 것으로는 판단하지 않는다. 미국이 대북 공습 조짐을 보인다면, 시진핑은 눈감을 지 몰라도 국내에서 유독 안티가 많은 푸틴은 가만 있지 않을 걸? 북미회담 실패해도 북한의 위협력은 그대로 유지된다. 아니 회담 진행 과정에서 ICBM의 개발 완료가 확실히 확인되면, 북한의 위협력은 오히려 더 커진다. 김정은은 회담 성공하면 좋고, 실패해도 이걸 확인해 주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 물론 북미회담 실패하면, 훨씬 더 시끄러워질 것은 분명하다. 북미회담이 실패하는 경우에도 한반도 안정화를 꾀할 수 있는 처방은 여러 개 있다고 본다. 그런 것을 내가 언급할 필요는 없다. 다만 트럼프 공세에 쫄 필요가 없다. 가만히 보면 트럼프는 친절한 사람이라 패를 너무나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