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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산분리: 쥐, 닭, 문어

착한왕 이상하 2018. 8. 8. 14:38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손아귀에 들어가 산업자본의 모니터링을 받게 되면 경제적 측면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다. 그래서 산업자본이 함부로 금융자본에 손댈 수 없게 만든 것이 금산분리 제도의 핵심이다. 은산분리는 금융을 은행 자본에 국한시킨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면 된다. 최근 들어 문어는 은산분리를 환화해 핀테크 시장을 활성화시키고, 4차혁명에 필요한 블록체인 기술을 발달시켜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발표를 했다. 한 나라 대통령이 그 실체가 불분명한 4차 혁명을 사방에 갖다부치는 꼴은 해괴망칙하다. 문어의 의도는 인터넷은행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것인데, 과연 인터넷은행 활성화가 핀테크 시장 활성화에 필수적인가?


복잡한 다단계 유통구조 개혁, 방만한 운영의 공기업 개혁, 70년 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양형제도, 그리고 아프리카 우간다보다 떨어지는 후진적 금융시스템의 개혁 없이는 우리나라 사회는 진일보할 수 없다. 삼성증권 위조주식 발생 사건, 골드만삭스의 무차입 공매 사건, 몇 년 전 보다 7배 가량 늘어난 외인 공매도, 삼성바이로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 등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식을 보면, 금융에서 이 나라에는 진보 대 보수 이런 것 없다. 오로지 기득권 대 개 돼지밖에 없다. 각종 규제를 만들어 개인 투자는 억제시키면서 필요한 규제는 완화시키려하는 것을 볼 때, 문어의 규제 완화 정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르겠다. 문어가 최근 삼성 이재용을 만난 후 복제약값 자율화와 함께 은산분리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보면, 역시 그는 '삼성의 은밀한 장학생'이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복제약값과 오리지널 약값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 그 만큼 복제약값이 비싸다. 대부분 복제약은 제조과정이 불투명한 중국산 원료를 사용한다. 약을 사도 그 원료 원산지를 알 수 없다. 이런 것들을 놔둔 채 약값을 자율화하겠단다. 약값을 자율화하면 누가 덕을 보는가? 이재용이다. 은산분리 완화를 통해 인테넷은행 활성화시키면 누가 덕을 보는가? 문어는 시민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기업, 아니 재벌들이 덕을 볼 가능성이 크다.


조현아 사건이 터졌어도 조현아를 내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실제 주식 지분은 얼마 되지 않아도 주식당 의결권을 너무 많이 재벌들이 가져가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주식당 의결권과 같은 것을 손대지 않고 재벌 게혁을 외치는 꼴을 볼 때 '장난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도 간단하다. 지금까지 은산분리 제도를 고수한 이유는 재벌의 지배력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서이다. 재벌이 사라진다고 대기업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족벌 재벌 체제에서 벗어나도록 해 주는 첫 걸음은 주식당 의결권을 좀 더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하지 않은 채 지금 은산분리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결국 실물 경제도 모르는 자들이 문어와 쑥덕거려 졸속으로 펼친 아마추어 시장 및 조세 정책이 실효성을 보이지 않자, 그들은 이제 재벌에게 도와달라고 기대는 것이다.


은산분리는 쥐 정권 때 한 번 완화되었다. 그런데 닭 정권 때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닭 정권은 왜 다시 은산분리를 강화시켰을까? 2011년 상호저축 대규모 파산사태, 2013년 동양증권 사태가 한 몫을 했다. 이들 사태로 인한 금전적 피해는 모두 개인들에게 돌아갔다. 이들 사태의 원인은 은산분리 완화를 틈타 지분을 늘린 대주주들이 금융권 자본을 사금고화했기 때문이다. 현 금융시스템이 발생시키는 문제의 원인들을 철저히 밝혀 현 금융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깟 대주주 요건을 강화시킨다고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을까?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쪽은 금융마피아들이며, 금융마피아들의 말에 솔깃한 문어벙이다.


기축통화인 달러 금리가 올라가면, 당장 우리나라 대출 금리가 어마어마하게 올라간다. 그럼에도 은행 이자는 쉽게 오르지 않는다. 이것을 이용해 배불리는 집단은 시중 은행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터넷은행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철저하게 개인들이 농락당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바꾸어야 하는 것인데, 현 금융시스템을 정치권은 건드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여기서 그 정치권은 여야 다 포함하며, 현 정치권은 국민을 개 돼지로 아는 기득권일 뿐이다. 현 정치권에 대한 대대적인 불신임 저항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카카오뱅크와 함께 현 인터넷은행을 대표하는 케이뱅크는 애시당초 자기자본률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금융 허가를 받았으며, 그 결과 케이뱅크는 위험에 처했다. 은산분리 완화 정책으로 케이뱅크 살리고, 카카오뱅크 주식 날아가고, 또 다른 인터넷 은행들이 생겨나면, 시민들이 좀 더 저금리를 대출받게 되고, 핀테크 시장이 활성화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대기업이 재벌에 종속된 현 경제 구조에서 은산분리 완화를 섣불리 채택하는 것은 심각한 부작용을 발생기킬 수 있다. 파이낸스와 IT를 결합한다는 핀테크 시장 활성화에 인터넷은행 활성화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인터넷은행 관계자들의 주장일 뿐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 페이, 인터넷 계좌 이체 이런 것 모두 핀테크에 속한다. 핀테크 시장 활성화에 필요한 것들은 이미 구축되어 있는 상태이며, 인터넷은행 활성화로 늘어날 일자리도 많지 않다.


금융마피아는 계속 은산분리 완화를 주장해 왔다. '금융위=금융마피아'라는 공식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2017년 12월 말 금융위는 인터넷은행 활성화와 핀테크 시장 활성화 사이의 연관성을 밝히려고 민간자문기구에게 연구 용역을 맡겼다. 금융위의 기대와 달리, 해당 민간자문기구는 인터넷은행 활성화와 핀테크 시장 활성화 사이에는 의미 있는 연관성이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 발표 덕에 금융위의 은산분리 완화 주장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다가 정책의 목적과 수단을 구분하지 못한 채, 즉 목적을 수단으로 착각한 채, 저녁있는 삶의 사회가 갖추어야 할 조건들 자체를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삼는 황당한 각종 경제 정책들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자, 문어는 갑자기 친재벌 정책으로 돌아서고 있다. 친재벌 정책, 특히 친이재용 정책을 하면 경제 성장이 가시화되는가? 황당하다.


분명히 풀어야 할 규제들은 있다. 과거와 달리 기업들도 많은 세금을 내고 있는 상황이니, 이에 걸맞게 상속세는 낮추어주어야 한다. 지나친 상속세 부담은 편법 운영만 발생시킨다. 또 사내유보금을 투자에 사용하도록 당근과 채찍 정책을 병행해야 하며, 연구개발투자비 등을 자본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런 것들과 더불어 현 대기업 중심 노조를 위축시키고 업종별 노조가 활성화되도록 노동법을 수정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는 더욱 크게 벌어질 것이고, 대기업은 고임금으로 더욱더 경쟁력을 읽게 될 것이며, 국가 전체가 성장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정말 쓸데 없는 규제는 나둔 채 필요한 규제는 없애려고 하니, 기가 차다. 대기업이 재벌 체제로 돌아가는 한, 은산분리는 함부로 완화해서는 안 된다. 제2의 동양증권, 상호저축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며, 그 부작용은 전적으로 개인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다.


* 바다의 문어는 영리하다고 하던데 한반도 육지의 문어는 참 어벙하다. 앞으로 한 두달 동안 이재용 얘기가 많이 뜰 것이다. 대규모 투자로 70만 개 일자리를 만든다는 등 말이다. 속지 말거라. 대기업 하나 나서 실업률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나라라면, 정말 문제가 많은 나라다. 재벌에 손 벌리지 않고서도 일자리는 늘릴 수 있다. 어떻게? 문어벙은 고민조차 해 보지 않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