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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 전철 일부 구간을 단선으로 구축?

착한왕 이상하 2018. 12. 8. 17:48




오늘 아찔한 고속 전철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강릉에서 서울로 향하던 고속 전철이 출발 5분만에 운산 지역에서 탈선해 14명이 다쳤습니다. 고속 전철 사고는 자칫하면 대참사로 이어집니다. 해당 사고 구간 고속 전철 속도는 103km/h였다고 합니다. 만약 200km/h 이상이었다면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것입니다. 게다가 터널을 지나가다 이런 사고가 발생했다면 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 겁니다. 


왜 103km/h로 저속 운행했을까?


뉴스를 보니 해당 구간은 복선이 아니라 단선입니다. 단선이라고 하지만 전환 지점에서는 4개의 선로가 사용됩니다. 두개의 선로들이 근접하고 있는 형태입니다. 선로 방향 전환 장치를 이용해 상행, 하행 기차의 방향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점은 다음 사고 발생 현장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선로 방향 전환 지점에서 기차는 당연히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위 사진을 보면, 이 번 사고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선로 방향 전환 장치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다음의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단선보다는 복선이 기차 운행에서 훨씬 더 안전하다. 고속 전철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면 복선을 깔아야 한다. 왜 사고 관련 구간을 복선이 아니라 단선으로 깔았을까?


한국철도 공사는 지금까지 구식의 선로용량 계산법에 따라 이동 수요가 적은 구간을 단선으로 깔았다가, 이동 수요가 늘어나면 복선으로 변환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단순히 생각하면, 단선 설치 비용은 복선 설치 비용의 절반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선로 방향 전환 장치 등 부대 장치 비용이 단선 설치 비용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좀 더 개선된 선로용량 계산법에 따르면, 복선 설치 비용은 단선 설치 비용의 1.3배 정도라고 합니다. 철도망은 초기 구축 못지 않게 사후 관리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이때 두 가지 전략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1) 단선 설치를 하고 이후 이동 수요가 늘어나면 복선으로 변환한다.

(2) 복선 설치를 하고 이동 수요를 고려해 적정 정거장 수를 정한다음, 이후 이동 수요가 늘어나면 정거장 수를 늘린다.


한국철도 공사는 주로 (1)의 전략을 택해 왔습니다. 과연 (1)이 효율 측면에서 (2)보다 나을까요? 그렇지 않다는 국내외 연구결과 보고서는 많은데, 그런 보고서 내용은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비단 한국철도 공사에 국한된 얘기가 아닙니다. 국방, 주거, 출산, 경제, 교육 정책 모두가 그렇습니다. 하기사 모 인기 논객 누나가 누구의 선거 운동을 도왔다는 이유로 EBS 이사를 차지하는 나라이니 당연합니다. 과거에는 순실 여사가 이런 사람들의 역할을 한 것이구요. 몰래 하느냐, 드러내고 하느냐 차이밖에 없을 뿐 개판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도대체 민정 수석이라는 자리가 있는 국가는 얼마나 될까요? 적어도 시스템 측면에서 어느 정도 민주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나라에는 없는 자리입니다. 과거 김대중 대통령은 민정 수석 자리를 독재 유산으로 간주하고 없앤 적이 있었죠.


아무튼 (1)보다 (2)가 효율성 측면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는 논문을 한국철도공사 연구원들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배영규, 김인철, 강종혁, 박은경, 유승열, 김현지, 최성균(2012), <선로용량 증대를 위한 철도 건설의 적정성에 관한 연구>, 2012년 학국철도학회 추계학술대회 논문집.

http://railway.or.kr/file/conference/2012_02/down/KSR2012A231.pdf


읽어볼 만한 좋은 논문입니다. 단선 설치, 복선 설치 효율성 비교와 무관하게 고속 전철은 사고 발생시 위험성 때문에 복선으로 까는 것이 원칙입니다. 주변 환경 여건으로 어쩔 수 없이 단선을 깔아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요. 따라서 사고의 직접적 혹은 물리적 원인 규명 외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를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합니다.


과연 사고 발생 관련 단선 지역은 복선 설치가 아예 불가능한 곳이었는가?

아니라면 단순히 경비를 아끼려고 단선을 설치한 것인가?

혹시 평창 올림픽에 맞추어 무리하게 개통을 추진하다보니, 강릉과 운산 지역만 단선으로 남겨진 것인가?


재난 분석은 유사한 사고 재발을 방지하는 것을 우선적 목표로 삼기 때문에, 그 윤리적 함의는 결코 공리주의나 의무론따위의 전통적 규범 윤리 담론 속에 포섭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자들이 공학윤리라는 분과를 건드리다보니, 공학윤리는 국내외에서 시들해져버린 것입니다. 재난 분석을 통해 유사한 사고 재발을 방지하려면, 재난의 직접적 원인 혹은 근접인뿐만 아니라 심층적 원인 혹은 궁극인 모두 아우르는 접근법을 취해야 합니다. 할 얘기는 많은데, 시간이 아까워 여기서 줄입니다. 재난의 꾸러미 분석 기법에 대한 다음 도식 하나를 잘 살펴보면, 재난 분석에서 왜 근접인과 궁극인 모두를 다루어야 하는지는 분명해집니다.


PC(i): 근접인들

PC: 근접인들의 목록

OUC(i): 조직적 궁극인들

PUC(i): 과정적 궁극인들

OUC: 조직적 궁극인들의 목록

PUC: 과정적 궁극인들의 목록

S: 선택 과정

HT: 가설 검증 과정

ALT(i): 대안들


출처. 이상하(2007), <상황윤리: 현실세계 속의 공학담론>, 철학과 현실사, 제 17장 '재난의 꾸러미 분석 기법: 고의적으로 버려진 사례'.


위 17장 압축본 보기 -> http://blog.daum.net/goodking/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