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서문

착한왕 이상하 2010. 3. 1. 02:41

비판적 사고란 무엇인가?

   

 

누구나 비판적 사고란 용어는 한 번쯤 들어 봤을 것이다. 하지만 비판적 사고의 정의를 찾아보는 순간 혼란에 빠지게 된다. 비판적 사고 종사자마다 개인이 수업을 통해 체득한 노하우(know how)를 바탕으로 서로 다른 정의를 내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판적 사고 훈련 과정이 충족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얻기 위해서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합의 할 수 없는 ‘비판적 사고’라는 용어의 사용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 다수의 사람이 비판적 사고의 소유자라면, 별도의 비판적 사고 훈련은 필요 없어 보인다. 이 세상 다수의 사람이 잠재적으로 비판적 사고의 소유자가 될 수 없다면, 비판적 사고 훈련 과정은 불필요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 훈련의 무용지물론 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은 모든 사람이 잠재적으로 비판적 사고의 소유자이지만, 훈련 없이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발휘하기 힘들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이때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항상 비판적 사고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추측이 옳다면, 다수가 일상생활에서 ‘비판적 사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법과 비판적 사고 종사자가 그 용어를 사용하는 법 사이에는 어떤 간극이 있어야 한다.

 

•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사람들은 ‘비판적 사고’라는 용어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가?

 

사람들은 종종 어떤 세계 이해나 이념을 전제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것을 비판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다음 두 사례를 교차 비교해 보자.

 

[사례 1] 바람 기계를 작동시키고 그 위에 공을 올려놓는다면, 공이 떠 있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떠 있는 공은 신기해 보이지만 과학적으로는 공에 미치는 압력의 상대적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답니다. 압력이 그렇게 작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배후에는 창조주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고 결론지어야 합니다.

 

[사례 2] 압력의 작용 방식이 우연에 기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가지고 창조주의 섭리가 세상에 깃들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신앙심이 깊은 축구 선수가 골을 넣고 신 때문에 골을 넣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건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학은 초자연적인 것을 가정하지 않는 까닭에 오로지 무신론과 양립 가능합니다. 따라서 압력의 상대적 차이로 인해 공이 떠 있는 것은 신이 날조된 개념에 불과함을 보여 주고, 신앙은 증거를 결여한 맹목적인 믿음일 뿐이며, 신앙을 가진 과학자는 진정한 과학자가 될 수 없습니다.

 

두 사례에 공통된 것은 무엇인가? [사례 1]의 경우, 과학적 설명이 신의 섭리를 반드시 전제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러한 것처럼 과장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정 종교의 교리에 반하는 것은 무조건 부정하겠다는 동기가 깔려 있다. [사례 2]에서 그러한 동기를 신앙심이 깊은 축구 선수에 유추한 것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과학이 종교적 세계 이해에 중립적이거나 열려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본래 무신론적이라는 주장은 증거를 결여하고 있다. 과학이 특정 종교적 이념에 종속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해 무신론의 근거가 되어야만 하는 필연적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어떤 세계 이해의 허락 여부는 공동체 유지에 얼마나 유용한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특정 세계 이해에 대한 평가의 증거는 공동체가 속한 상황과 맞물리게 된다. 따라서 신에 대한 과학적 증거가 결여되었다고 하여, 신앙을 맹목적인 믿음으로 취급하거나 과학자 공동체에서 종교인을 제거시킬 수는 없다. [사례 1]과 마찬가지로 [사례 2]에서도 특정 세계 이해나 이념에 반하는 것은 부정하겠다는 동기가 깔려 있다. 이제 두 사례를 관통하는 특징은 [도식 1]처럼 표상될 수 있다.

 

 

 

[도식 1]에서 원은 특정 세계 이해 혹은 이념을 나타낸다. 증거 및 근거를 갖춘 주장이나 설명이 그러한 세계 이해 혹은 이념의 반경 속에 갇혀 있다. 증거나 근거를 갖춘 주장이나 설명만이 비판 논거의 자격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더라도, 비판 능력은 특정 세계 이해 혹은 이념에 반하는 것에만 작용하게 된다. 즉, [도식 1]에 암시된 비판적 능력은 자신의 것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찰을 수반하지 않는다.

 

증거나 근거를 갖춘 주장이 비판적 능력을 반영하여도 자기 성찰이 결여된 것은 비판적 사고 종사들에게는 ‘진정한 비판적 사고’의 결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특정 세계 이해나 이념을 전제하고 그것에 맞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잘라내기 위해 비판적 사고 능력을 사용하는 한, 그들은 비판적 사고 훈련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용어 ‘비판적 사고’에 대한 정의를 놓고 서로 합의하기 힘들더라도, 비판적 사고 훈련이 만족해야 하는 최소한의 두 조건은 마련된 셈이다. 그 두 조건은 다음과 같다.

 

• 비판적 사고 능력의 소유자는 증거나 근거를 갖춘 주장이나 설명을 선호한다.

 

• 비판적 사고 능력의 소유자는 타인의 주장이나 설명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이나 설명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 이해 혹은 이념뿐만 아니라 다른 이가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도 ‘열린 태도(open-mindedness)’가 요청된다.

 

이러한 두 조건은 제대로 된 비판적 사고 훈련 과정이라면 충족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상보적 관계를 맺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각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실제 훈련 과정을 설계하기 위한 교수법을 둘러싸고 두 진영으로 나뉜다. 두 진영의 갈등 양상과 그 원인을 진단하는 가운데, 현재 비판적 사고 훈련 과정의 약점과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한 약점과 한계를 분석해 볼 것이다. 이에 의해 각기 고유한 영역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통합 가능한 학습 과정들로 구성된 비판적 사고 프로그램을 그려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