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1.2.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착한왕 이상하 2010. 3. 1. 03:02

(2)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훈련의 우선적인 목적은 타인의 입장은 물론 자신의 입장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수 있는 열린 태도 혹은 마음가짐을 길러주는 데 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훈련 과정의 기준으로 열린 태도의 형성에 필요한 심리적 성향들이 거론된다.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옹호자들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신이 믿는 것을 과신하는 성향을 갖고 있으며 권위에 약하다고 본다. 그들은 누구나 오판을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열린 태도 형성에 필요하다고 본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이 확신한 것에 대해서도 의심해 볼 수 있게 해주는 훈련 과정이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에서 요청된다.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교수법의 기준과 훈련 과정을 도식적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기준들>

• 지적 겸손함

• 증거에 따른 합리적 태도

• 지적 호기심

• 지적 자율성

 

<훈련 과정>

• 정서적, 인지적 편향으로 인해 누구나 오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교육 프로그램

• 한 가지 사안에 대하여 여러 대안들이 가능하며, 그 결과와 근거들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대안을 선별해보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에서 우선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다른 이의 의견이나 입장도 자신의 것과 마찬가지로 공평하게 대하고 평가할 수 있는 열린 태도이다. 이러한 열린 태도는 중립적 입장에서 담론에 필요한 정보와 문제 해결의 단서를 제공해줄 수 있는 ‘사회적 촉진자(social facilitator)’에게 요구된다. 지금처럼 계층이 다원화된 사회에서 요구되는 인재는 어떤 이념 아래 다수를 하나로 규합하려는 리더가 아니라, 여러 집단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회적 촉진자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촉진자는 사안을 둘러싼 입장에 대하여 중립적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열린 태도를 갖춘 인물이어야 한다. 자신의 세계 이해나 이론에 갇혀 합당한 증거를 갖춘 다른 대안들을 부정하거나, 또 자신의 대안에 대한 합당한 증거가 없음에도 다른 대안들을 무조건 무시하는 태도, 즉 ‘닫힌 태도(closed-mindedness)’는 열린 태도에 반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회적 촉진자가 되고 싶은 이는 그러한 닫힌 태도에 갇히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그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그는 합당한 증거를 바탕으로 자신의 세계 이해 방식을 수정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Hare, W., 1983).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옹호자들은 약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교수법의 기준들이 필요는 하지만 열린 태도를 키워주는 데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고 여긴다. 즉, 어떤 주장에 대한 유의미한 표현을 골라내고 그 근거 및 증거의 충분성을 따지는 것만으로는 열린 태도의 형성에 필요한 성향들, 곧 증거 없는 의견을 무조건 받아들이지 않는 성향,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이의 의견을 공평하게 대하는 성향, 그리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잠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성향이 길러질 수 없다고 여긴다. 따라서 기꺼이 자신의 오류와 오판을 수용하고 증거에 반하는 믿음을 버릴 수 있는 ‘지적 겸손함’, 증거를 바탕으로 믿음을 평가하는 ‘증거에 따른 합리적 태도’, 새로운 지식을 얻는 데 적극적이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보려는 ‘지적 호기심’,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의 입장에 대해서도 공평하게 평가하려 하고 권위나 다수의 의견에 맹목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려는 ‘지적 자율성’이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교수법의 기준으로 거론된다.

 

지적으로 겸손한 성향을 키워줄 목적으로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옹호자들 일부는 70년대 유행한 ‘인지 편향론(theory of cognitive bias)’의 여러 실험들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훈련 과정에는 사람들이 지각 경험 및 기억에서 오판을 하게끔 인지적으로 편향되어 있다는 가설이 다른 경쟁 가설을 기각할 정도로 검증되었다고 여기는 관점이 깔려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제2차 세계 대전과 같은 사례를 바탕으로 집단적 차원에서의 오판 가능성을 강조한다.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옹호자들은 인지 편향론의 여러 실험들과 인류 역사의 불행한 사례 분석으로 구성된 훈련 과정을 통하여 누구나 오판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그래야지만 자신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 곧 열린 태도에 필요한 비판적 시각이 키워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입장과 다른 이의 입장을 공평하게 대하는 성향, 그리고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잠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성향을 키워 주어야 한다. 아울러 어떤 사안에 대한 여러 대안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선별해 내는 능력을 강화시켜 주어야 한다. 그러한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옹호자들 일부는 과학적인 증거를 갖춘 주장과 그렇지 않은 주장을 구분하고, 과학적 증거를 결여한 것은 우선적인 제거 대상으로 삼는다.

 

강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에서 중요한 기준들도 실제 주장과 글을 평가하는 기준 없이는 충족될 수 없다. 이는 목적의 측면에서 강한 의미와 약한 의미의 비판적 사고 두 진영이 서로 상보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두 진영의 갈등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교수법 설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원인은 교수법의 기준이 아니라 훈련 과정의 설계에 있는 것이다.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두 진영을 화해시킬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