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창조 과학의 맹점

자연 신학 3. 페일리의 자연 신학과 창조 과학

착한왕 이상하 2010. 3. 16. 05:01

(3) 페일리의 자연 신학과 창조 과학

성서의 기록을 기준으로 과학적 발견을 평가하는 창조 과학의 핵심은 다음 네 가지 논제로 구성된다.

 

SC1. 지구의 나이는 진화론자나 지질학자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SC2. 인간은 신에 의해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다.

SC3. 진화론의 화석 연대기는 부정확한 것이다.

SC4. 창조 과학은 학교 과학 시간에서 가르쳐져야 한다.

 

창조 과학 진영은 자연 신학 전통을 자신들의 지적 뿌리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페일리의 동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첫째, 페일리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규칙적인 현상이나 질서가 신의 섭리를 반영한다고 믿었다. 그는 성서의 기록 자체를 신 존재에 대한 직접적 증거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성서에 인간의 관점이 뒤섞였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페일리의 <자연 신학>은 당시 정설로 알려진 과학적 발견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의 저술은 의대 해부학 교과 과정에서도 사용되었을 정도였다. 창조 과학의 논제 SC1을 부정하기 위해 굳이 진화론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다. 화석을 분류하고 연대순으로 나열만 해봐도, 창조 과학의 논제 SC1은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페일리는 지구의 나이가 성서의 기록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페일리와 달리, 창조 과학 진영에게 진리의 기준은 성서의 기록이다. 창조 과학 진영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조차 부정하려고 든다. 그 사실이 성서의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이유이다.

 

• 둘째, 페일리에게 ‘신’은 평등주의자이다. 신에 의해 설계된 세상이 살만하다는 것은 인간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페일리에게 신의 지적 설계는 ‘자연의 생성 과정’ 전체에 걸쳐 발견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의 섭리가 자연에 충만하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사마귀의 앞발에도 신의 섭리가 배어있다. 페일리는 기관이 보여주는 기능의 복잡성 정도의 차이를 가지고 고동 동물과 하등 동물을 구분했다. 하지만 그는 생존 환경에 적합한 기관의 모든 형태가 신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인간의 우월성은 모든 존재의 평등한 공존 속에서만 의미를 갖게 된다. 종이 변할 수 있기 때문에, 페일리의 ‘지적 설계’ 개념은 고정된 법칙성에 귀속되는 것이 아니다. 페일리에게 신의 설계 방식은 생물계 전체가 좀 더 조화로운 상태로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에게 기관의 복잡성 정도 차이에 따른 고등과 하등의 구분은 그러한 과정을 정당화해주는 수단과 같다.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의 획일적인 이분법은 페일리에게는 이질적인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다윈이 페일리에게 배운 교훈이다. 따라서 페일리가 인간만이 신에 의해 특별하게 창조된 존재라는 창조 과학의 논제 SC2를 일방적인 지지를 할 것이라는 근거는 약화된다. 다윈의 탐독서 중 하나가 페일리의 <자연 신학>이었다는 점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다윈은 당시 과학의 발전 속에서 페일리의 지적 설계 개념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려고 했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 셋째, 창조 과학 진영이 화석 연대기를 신뢰하지 않은 이유는 성서의 기록을 진리의 기준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에는 역사가 없다거나, 자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비해 사소하다는 관점은 창세기의 기록 자체에 의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은 자연의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던 시대의 산물일 뿐이다. 성서의 기록을 은유 체계로 간주하는 경우, 창세기의 기록만으로 자연의 역사가 얼마나 긴지를 평가를 할 수 없다. 자연의 역사가 과거 사람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길다는 사실은 페일리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에게 신의 섭리가 깃든 곳은 자연이다. 자연의 탐구를 통해 얻게 된 과학의 지식은 신의 섭리를 밝혀주는 통로와 같다. 따라서 화석 연대기가 부정확한 것이라는 창조 과학의 논제 SC1은 페일리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 넷째, 페일리는 자연 신학 자체가 과학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 그의 자연 신학은 지적 설계자로서의 신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는 논증 체계에 근거하고 있다. 과학을 둘러싼 담론을 다루는 수업에서 자연 신학이 소개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 신학이 과학의 교과 과정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것은 페일리에게도 어불성설에 불과한 주장이다. 따라서 창조 과학도 학교 과학 시간에서 가르쳐져야 한다는 창조 과학의 논제 SC4는 페일리의 자연 신학에 근거해 옹호될 수 없다. 창조 과학 진영은 페일리,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 뉴턴이 기독교 신자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을 자신들의 편으로 끌어들인다. 창조 과학 진영은 단순히 성서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다. 창조 과학 진영은 성서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만이 참다운 신앙에 전제되어 있다고 여기는 광신도의 무리일 뿐이다. 참다운 신앙에 대한 창조 과학 진영의 그러한 태도는 성서를 역사적으로 다루는 신학자들에게도 수용될 수 없는 매우 독단적인 것이다.

 

 

페일리는 살아생전 독단적인 성직자들의 적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는 자연이야말로 인간이 신의 존재를 엿볼 수 있는 진정한 텍스트라는 믿음을 가진 인물이었다. 페일리는 복음주의로 정신이 물든 당시 성직자들의 환영을 받을 수 없었다. 페일리는 성서의 기록만을 진리로 삼는 성직자들과 광신도들을 독단적인 세력으로 간주했다. 페일리는 정교 분리 원칙을 옹호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서의 기록으로 세상을 획일화하려는 세력이 국가와 학교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반대했다. 그 결과, 18세기 말 무신론 진영에 대항해 가장 논증적인 반론을 펼친 페일리는 주교가 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다. 창조 과학 진영이 기독교가 과학의 발전에 반응해온 역사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그들은 페일리의 자연 신학을 이단으로 규정했어야 논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