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서문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4. 6. 13:45

세속화와 민주주의

 

 

 

‘세속화된 상태’는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법 등의 분야가 특정 종교의 지배에서 벗어나 ‘그 자체의 고유성을 확보한 사회 상태’를 뜻한다. 이때 ‘종교’도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기능 단위’를 뜻한다. 사회의 각 분야가 종교의 지배적 이념에서 해방되어 그 고유성을 확보한 과정은 ‘사회의 기능적 분화’라는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까닭에, 사회의 각 분야는 ‘기능적 단위’로 불리는 것이다. 사회는 그러한 기능 단위들의 연결망에 근거하는 유기체에 비유 가능하며, 각 기능 단위는 사회라는 유기체 천체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사회의 기능적 분화는 계층 분화에 따른 가치 체계의 다원화를 수반한다.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는 사회의 기능적 분화 및 계층 분화에 따른 가치 체계의 다원화가 뚜렷하게 발견되는 사회이다. 따라서 ‘세속화된 상태’는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 상태’를 뜻한다.

 

세속화된 상태의 사회에서 ‘종교에 귀의함’이라는 의미는 ‘전문직(profession)’이라는 용어에 배어 있지 않다. 교회가 사회에 군림하던 시절, 사회의 각 기능 단위인 정치, 경제, 과학, 교육, 법을 다루는 전문가는 기독교에 귀의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때문에, ‘전문적’이라는 용어는 한때 ‘종교에 귀의함’을 뜻하기도 했다.

 

용어 ‘전문직’의 의미가 변한 사실만으로도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일반 대학 교육 학제에서 의무적인 종교 교육을 학생들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해진다. 그러한 강요는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재단의 이념이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있더라도, 기독교 신자만이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은 세속화된 사회를 부정하는 것이다. 기독교 재단의 여러 대학은 교원을 임용할 때 교회 목사의 신도 증명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당위성뿐만 아니라, 진화론의 허구성을 가르쳐야만 하는 당위성을 강조한다. ‘사립학교 교수 임용에 결격 사유가 없는 분으로서 본교의 기독교적 창립 정신을 존중하고 그 실현에 동참하실 분’이라는 문구가 기독교 재단 대학의 교원 임용 안내문에 따라다닌다. 이러한 세태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제는 불교 재단 대학도 기독교 재단 대학의 관행을 따르고 있는 실정이다. 종교 재단 대학의 그러한 관행은 종교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기능 단위라는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부정하는 것이다. 즉, 그러한 관행에는 특정 종교의 교리가 대학 학제를 구성하는 모든 분야의 이념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독단이 깔려 있다.

 

의무적인 종교 교육에 대한 비판이 추상적인 ‘개인의 자유’에 근거할 필요는 없다. 의무적인 종교 교육은 구조적으로 분화된 현 사회의 순기능을 가로막는 행위이다. 이러한 점에서 의무적인 종교 교육은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된다.

 

종교 교리의 진위 여부에 무관심한 무종교인이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이 땅은 구조적으로 분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속화된 사회’이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반하는 종교 세력의 행위는 무종교인들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이다. 이때 다음과 같은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발견할 수 있다.

 

• 이 땅은 다수가 무종교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라는 점에서 분명히 세속화된 사회이다. 하지만 무종교인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가로막힌 사회이다.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발생시킨 원인은 지금까지의 논의만으로도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일제라는, 그리고 독재자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여러 이념 집단은 공조할 수밖에 없었다. 이념 집단 사이의 그러한 공조가 독립과 민주화에는 기여한 측면은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의 세력 확장 과정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때문에, 이 땅을 ‘백색 도덕 제국주의’가 토착화된 곳으로 규정할 수 있게 된다. ‘기독교 우월주의’, ‘기독교 중심사관’, ‘문화적 간섭주의’로 대표되는 백색 도덕 제국주의의 토착화에 대한 증거는 사방에서 발견된다.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에 대한 적응 기간을 갖지 못한 이 땅의 교회 세력은 극단적 복음주의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도 그러한 세력 확장이 ‘근본주의’로 규정된다는 사실은 사회에서 공론화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결국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발생시킨 원인은 ‘서양 맥락의 세속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이 땅이 세속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 맥락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볼 만한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발생시킨 원인을 진단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해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논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형식적인 민주화를 이룩한 경우에도 민주주주의 진화가 필요한 이유를, 또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해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극복해야 하는 이유를 밝히려면,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발생시킨 원인도 좀 더 포괄적으로 규명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현대적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에게 ‘현대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의 관계는 어떤 식으로 이해되고 있는가?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현대적인 것을 상징하게 된 과정, 즉 세속화 과정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을 먼저 다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