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현대적인 것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4. 13. 01:18

현대적인 것

 

‘현대적인 것’은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과거의 시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것 혹은 혁신적인 것을 뜻한다. 역사적 사건을 평가하는 방식은 어떤 관점을 취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현대적인 것에 대한 규정 방식도 고정된 것은 아니다. 현대적인 것을 전통의 약화와 연관시킬 때 일제 강점기 이후를 현대의 출발점으로 잡을 수 있다. 만약 현대적인 것을 민주주의의 정착 과정과 연관시킬 때 해방 이후를 현대의 출발점으로 잡을 수 있다.

 

이 땅의 역사를 세계 역사 속에서 파악하는 경우, 현대적인 것을 규정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진다. 당장 용어 ‘modern’을 ‘현대적’으로 번역해야 하는가, 아니면 ‘근대적’으로 번역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는 서구인들에게도 골칫거리이다. 현대적인 것을 대표한다고 여겨지는 ‘개인주의의 확대’, ‘가치 체계의 다원화’, ‘세계화’ 등의 뿌리가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근대는 현대의 출발점이 된다. 반면에 현대적인 것을 근대와의 단절로 규정하려는 이들은 ‘현대적인 것’에 대해 ‘post-modern’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현대적인 것을 종교와 관련하여 접근할 때 현대적인 것의 뿌리를 근대로 잡는 것이 적합하다. 이는 최소한 기독교사에는 잘 들어맞는다. 기독교도 오랜 전통을 지닌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여러 교파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의 교파가 특정 지역의 사회에 군림하던 시절은 지나갔다. 현대적인 것들을 대표하는 종교적 특징으로 많이 거론되는 것들이 있다. ‘극단적 복음주의의 출현’, ‘과학의 종교화를 시도하는 집단들의 출현’, ‘종교의 대중화’, ‘교파 간 교류 및 경쟁의 국제화’, ‘속세에서 구원이 가능하다는 믿음의 확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이 기독교 전체에 해당하는 현대적 특징은 아니며, 또한 모든 지역에 공통된 것도 아니다. 현대적인 것들을 대표하는 종교적 특징들 중에는 서로 양립 가능한 것이 있고, 양립 불가능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통계 조사에 따르면, 독일, 영국, 프랑스의 신자들은 예수의 구원과 기적을 믿는 경향이 매우 약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유럽 국가들 중에서도 아일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신자들은 구원과 기적을 믿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보다 강한 것으로 나타난다. 기독교 근본주의 운동의 근원지인 미국의 경우, 복음주의에 물든 신자들이 유럽에 비해 많다. 기독교 신자 수를 기준으로 복음주의 물든 사람들이 가장 많은 곳은 이 땅일 것이다. 이 점은 이 땅의 교회 다수가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에 속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현대적인 것으로 거론된 종교적 특징들이 나타나게 된 과정은 과거 기독교의 기반인 ‘고전적 이원론(classical dualism)’이 붕괴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타가와(J.M. Kitagawa), 벨라(R.N. Bellah)와 같은 종교학자들에 따르면, 그러한 고전적 이원론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분법으로 구성된다.

 

•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 인간적인 것과 신성(神聖)적인 것의 이분법

•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

 

고전적 이원론은 종종 근대의 출발점으로 거론되는 17세기에 이르러 위협을 받게 된다. 따라서 현대적인 것을 종교와 관련하여 접근할 때 현대적인 것의 뿌리를 근대로 잡는 것은 합당한 근거를 가진다.

 

그러나 왜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는 ‘종교의 종말’이 아니라 ‘종교 시장(religious market)’의 형성으로 끝을 맺게 되었을까? 종교 시장의 팽창은 세속화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답하기 위해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고전적 이원론의 붕과 과정을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