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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는 o.k, 결혼은 no!’, ‘결혼까지는 o.k, 섹스는 no!’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0. 5. 29. 20:39

대학을 둘러싼 두 문제

- ‘섹스는 o.k, 결혼은 no!’ & ‘결혼식까지는 o.k, 섹스는 no!’ -

   

 

입시철이 다가오면 수험생들은 ‘삶 자체’에 대해서는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이때 그들은 ‘무엇 때문에 대학을 가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다. 많은 수험생들은 ‘대학 교육이 자신의 삶에 득이 될 것이다’라는 ‘교육을 통한 보상 심리’를 갖고 있다. 즉, 대학 교육에 투자할 비용과 시간에 비해 교육을 통해 얻을 것이 많다고 기대한다. ‘교육을 통해 얻게 되는 것’ 혹은 ‘교육을 통한 보상’에 대한 평가는 ‘직업 선택’, ‘평균 소득’ 등과 같은 요인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러한 평가는 ‘지적 호기심의 충족’, ‘사고의 성숙’과 같은 요인들에도 의존적이다. 교육을 통한 보상에 대한 평가는 이렇듯 ‘삶의 질’을 결정하는 여러 요인들을 고려한 평가이다.

 

‘교육을 통한 보상’은 20세기에 들어와 경제학 및 사회학의 중요한 담론 주제가 되었다. ‘교육 경제학’이라는 학문 분과가 있다는 사실을 이에 대한 증거로 들 수 있다. 그런데 ‘교육을 통한 보상’에 관한 기존 담론을 이 땅의 현실에 직접적으로 적용하기는 힘들다. 기존의 담론은 ‘교육을 통한 보상 심리가 높아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 반면, 그 전제는 우리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 대학을 다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해 많은 대학생들은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반응은 유명 대학보다는 그렇지 못한 대학의 학생들에게서 강하게 나타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답으로 ‘학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들 수 있다. A를 유명 대학의 학생, 그리고 B를 그렇지 못한 대학의 학생이라고 해보자. ‘A와 B 사이의 섹스는 o.k, 결혼은 no!’라는 문구는 학벌 사회의 단면을 상징한다. 여기서 ‘결혼은 no’라는 표현은 계층 간 장벽을 뜻한다. 물론 어느 나라나 ‘명문 대학’이라는 것은 있다. 하지만 명문 대학의 졸업장이 개인의 인생 전체에 결정적 요인 중 하나로 작동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한국이 단연 으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느 대학을 나왔습니까? 이러한 물음은 이 사회에서 취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살면서 1,000 번 정도는 듣게 되는 그런 물음인 것이다.

 

대학의 수적 증가는 ‘학벌에 의한 계층 간 장벽’을 완화시키는 요인이 될 때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대학은 다수에게 새로운 출발 혹은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여겨져야 긍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회는 대학의 수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학벌에 의한 계층 간 장벽’이 더 심해졌다. 따라서 ‘교육을 통한 보상’ 담론을 우리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교육을 통한 보상’ 담론에는 일반적으로 다음의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 교육을 통한 보상 심리는 다수의 학생들에게 높게 나타난다.

 

이러한 전제는 학벌로 인한 계층 간 갈등이 심한 우리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교육을 통한 보상 심리는 B가 대학을 다니는 결정적 동기로 여겨질 수 없다. B는 마지못해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기 때문이다. A와 B 부류의 학생들이 뒤섞인 상태에서 ‘취업률’, ‘평균 소득’ 등을 근거로 ‘교육을 통한 보상’을 논하는 것은 학벌 사회의 현실에 대한 왜곡된 정보를 산출한다.

 

교육을 통한 보상 담론에서 대학 교육이 계층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 담론은 대졸자 수가 적정선을 넘어서지 않은 사회 상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대졸자 수의 증가로 인해 학력에 의한 계층 간 갈등이 발생했다. ‘교육을 통한 보상 담론’에서 그러한 ‘계층 간 갈등’은 주로 ‘대졸자들과 고졸자들의 계층 간 갈등’을 뜻한다. 그런데 학벌 사회의 경우, ‘대졸자들과 고졸자들의 계층 간 갈등’뿐만 아니라 ‘대졸자 사이의 계층 간 갈등’까지도 문제가 된다. 대학의 수적 증가는 직업군의 다양화 및 전문화 과정과 자연스럽게 맞물린 경우에 정상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렇게 정상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경우, 직업군의 다양화 및 전문화는 대졸자에게는 ‘선택의 다양성’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학벌은 다수 대학생들에게는 그러한 선택의 다양성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대졸자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는 실질적 정책 없이 ‘학벌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학교도, 정부도 그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려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우리 대학들은 직업군이 다양해지고 전문화되는 과정에 부합하는 ‘교육 질(educational quality)’을 향상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결정적 반박을 할 수 없다면, 대학이 사익을 목적으로, 혹은 세 확장을 목적으로 기능해왔다는 독설(毒舌)에 대해서도 반박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학이 교육 질을 향상시키는 데 게을렀다는 주장은 ‘A와 B 모두 교육 내용 및 학제 구성에 대해 불만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A와 B의 관계는 ‘교육을 통한 보상’에 근거할 때 대칭적으로 나타난다. 교육을 통한 보상의 측면에서 A보다는 B가 대학 교육에 드는 비용을 아까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교육의 질’의 측면에서 접근하는 경우, A와 B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공통된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지 모르겠어.”

 

이러한 반응 속에서 두 가지 문제를 엿볼 수 있다. 그 하나는 교육을 위해한 개인의 투자비가 교육의 질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배운 전공 지식만 가지고 전문가로 행세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문제 해결에 필요한 변수들만 고려하는 경우에도, 졸업 후 학생들이 만나게 될 문제들은 복잡하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재구성하고 필요한 지식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현 대학의 학제 및 수업이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걸맞게 구성되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모든 대학에 ‘교수학습센터’라는 기관은 있으나,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 조직적 사고 및 비판적 사고 능력을 활성화시켜줄 실질적 콘텐츠를 개발하는 기관은 없다. 또 다른 문제는 공부에 대한 학생들의 기대가 대학에 들어와 약화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의 실질적인 주인인 학생들이 학제 구성에 참여할 기회는 완전히 막혀 있다. ‘학교와의 결혼식까지는 o.k, 섹스는 no!'라는 문구는 이러한 세태를 상징한다.

 

학교의 규칙에 따르고 학교로부터 사회 활동에 필요한 졸업장을 받아가라는 것은 ‘대학과 학생의 결혼’에 비유된다. 대학과 학생의 결혼은 비정상적인 부부 관계의 시작이다. 부부 중 한 명이 지적으로 더 뛰어나거나 경제권에서 우위를 갖는 경우라도, 정상적인 부부 관계는 수평적 대화를 원칙으로 한다. 그런데 학생들의 배우자인 대학은 학교 정책에 학생들이 개입할 수 있는 통로를 가로막기에 급급하다. 따라서 ‘학교와의 결혼식까지는 o.k’이라는 표현은 이러한 대학과 학생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상징한다. 학생들은 졸업장을 따기 위해 대학과 결혼하지만, 정작 학생들의 배우자인 대학은 학생들과의 정상적인 관계, 즉 수평적 대화에 근거한 관계를 거부한다. ‘섹스는 no'라는 표현은 학생들이 학제 및 수업 구성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세태를 반영한다. 대학은 교수 대 학생 수, 취업률 등에 근거한 평가만 강조할 뿐,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한 실질적 콘텐츠 개발비는 아낀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교에 무관심한 학생들의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누구도 이들을 함부로 탓할 수 없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무관심하다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한, 학생들이 학교에 무관심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각 나라의 대학의 수가 늘면서 대학이 계층 간 갈등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문제, 그리고 교육의 질적 향상 없이는 대학의 긍정적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한 인식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따라서 그러한 두 문제는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의 고민거리라 할 수 있다. 다만 우리의 경우, 대학이 계층 간 갈등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문제는 학벌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중첩되어 있다. 또한 교육의 질적 향상 없이는 대학의 긍정적 기능을 기대할 수 없다는 문제에 대한 ‘대학 당국의 인식의 결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문제는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한 사고 훈련 과정’,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잠정적 태도를 길러주는 비판적 사고 훈련 과정’, ‘복잡한 과업을 배경 지식을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해결해내는 조직적 사고 능력 강화 과정’ 등에 대한 ‘실질적인 학습 프로그램’ 개발 없이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 대학들이 ‘교육 질’을 향상시키려고 할 때 그 우선적인 목적은 그러한 학습 프로그램 개발에 있다. 과연 우리 대학들이 그러한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투자를 하고 노력을 하는가? 우리 대학들에서 그러한 노력이 정말 있었다면, 이런 글이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면 이 글을 쓴 사람은 단지 ‘사회에 대해 비합리적인 불만’, 즉 ‘근거를 결여한 불만’을 품은 미친 자일 것이다. 이 글을 쓴 사람이 그러한 미친 자에 불과하다면, 이 글은 읽어볼 가치도 없는 ‘미친 자의 현실 부정론’에 불과하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다음의 풍자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 유명 대학 학생과 그렇지 못한 대학 학생 사이의 섹스는 o.k, 결혼은 no! 학교와의 결혼까지는 o.k, 섹스는 no! 이러한 세태가 지속되는 한, 학교를 도중에 그만두던가, 아니면 ‘대학 내 대학에 대한 방관자’가 되는 학생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더 읽어 볼 것

 

Donovan, M. Susan, John D. Bransford, and James W. Pellegrino. eds. 1999. How People Learn: Bridging Research and Practice. Washington, DC: National Academy Press.

 

Wolf, Alison. 2002. Does Education Matter? Myths about Education and Economic Growth. London: Pengu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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