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의 속의 연역과 귀납
누구나 한 번쯤 ‘연역’과 ‘귀납’이라는 용어를 들어 보았을 것이다. 논증의 종류를 구분하고 논증 평가 방식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 문제가 아닌 경우라면, 연역과 귀납의 구분이 불분명한 글도 누구나 한 번쯤 접해봤을 것이다. 기존 교재의 연역과 귀납의 소개 방식은 논의 분석에 쉽게 적용되기 힘든 두 가지 약점을 갖고 있다.
• 첫째, 기존의 대부분 교재에서는 연역과 귀납을 논의 구조와 무관하게 소개하고, 그 소개에 따른 논증 평가를 논의 평가에 적용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한 방식은 논의 분석에 효과적일 수 없다.
• 둘째, 기존의 대부분 교재에 소개된 연역과 귀납의 구분 방식은 전제들의 기능을 무시하고 있다. 즉, 논증이 구성되는 과정을 무시한 채 논증 결과만을 가지고 연역과 귀납을 다루고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논증들이 마치 연역 아니면 귀납 중 하나라는 식의 편견이 사회에 널리 퍼졌다.
전제들의 기능에 따른 연역과 귀납을 구분해 보고, 논의 속의 논증을 구분하는 법을 알아보자.
(1) 전제들의 기능에 따른 연역과 귀납의 구분법
연역이든 귀납이든 전제들을 ‘주어진 것’으로 취급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단, 결론이 전제들에 근거하는 방식에서 그 둘은 차이를 보인다. 전제들 중에는 논증을 하기 위해 주어진 자료, 곧 데이터로 취급될 수 있는 것이 있고, 그러한 데이터와 결론을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갖는 전제도 있다. 후자의 전제들은 서로 합의 가능한 것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논증 속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그것들은 ‘숨은 가정’과 같이 작용하기도 한다. 결론과 데이터의 전제들을 연결시켜주는 것을 ‘보증 장치’라 하자. 이러한 약속을 따를 때 연역과 귀납에 공통된 구조는 다음과 같다.
연역과 달리 귀납에서는 보증 장치에 속하는 전제들이 데이터와 결론의 연결을 그럴듯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결론에 ‘... 확실하다’ 또는 ‘.... 그럴듯하다’와 같은 표현이 들어가 있다고 하여, 해당 논증이 자동적으로 연역 또는 귀납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보증 장치에 의한 데이터와 결론의 연결성에 의해 해당 논증은 연역 또는 귀납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귀납을 도식적으로 나타내 보면 다음과 같다.
연역이든 귀납이든 데이터에 보증 장치에 속하는 전제들을 적용시켜 새로운 예측에 해당하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능을 갖는다. 뉴턴이 ‘이러이러한 데이터에서 새로운 사실을 연역해냈다’고 주장했을 때 그는 ‘이러이러한 데이터에 특정 법칙을 적용시켰더니 새로운 사실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다음 물음을 따져 봐야 한다.
• 논증 구성의 방식이 아니라 논증 결과만 가지고 연역과 귀납을 구분하는 경우, 어떻게 되는가?
데이터와 보증 장치에 속한 모든 전제들이 ‘전제부’로 올라가고, 결론이 그 아래에 위치하게 된다. 이를 도식적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데이터와 보증 장치에 속한 것 모두를 전제부에 위치시킨 경우, 다음이 성립한다.
• 이상적인 연역에서는 결론이 내용적으로 전제부에 함축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전제들에 근거해 결론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
• 귀납에서는 전제부를 증거로 결론을 그럴듯하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결론이 전제부에 내용적으로 함축되어 있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귀납의 결론은 전제부에서 ‘확장된 것’으로 불리거나, ‘확장적 추론’(ampliative reasoning)으로 불리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논의 분석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논증의 분류와 추론 형태 등에 대해서는 더 이상 따지지 말자. 하지만 논의 속의 논증을 구분하는 법에 대해서는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2) 논의 속의 논증을 구분하는 법
논의는 논증을 포함한 여러 의미 단위들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논의 속에 함축된 논증의 결론과 전제들의 연결도 그 논증 자체에 의해서만 평가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연역과 귀납이란 용어 대신, 그 연결을 ‘확실한 것(S)’, ‘그럴듯한 것(P)’, ‘건너뛴 것(S)’으로 분류하는 것이 논의를 분석할 때 더 바람직한 것이다.
논의 속의 논증을 구분하는 법은 논지 강화, 논지 반박 및 약화, 반드시 보충되어야 할 전제 및 빠진 내용 찾기와 관련해 여러 가지 방식이 가능하다. 여기서는 논지 강화와 관련된 그 구분법만 살펴볼 것이다.
논의에 함축된 특정 논증에 부가 전제를 보충시켜 결론을 강화시킬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해당 결론이 강화되면, 논의 전체에 걸친 논지도 강화된다. 이러한 경우, 보충되는 것이 해당 논증의 부가 전제처럼 취급되어 결론의 신빙성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전제들과 결론의 연결은 그럴듯한 것(P)이 된다. 반면에, 보충되는 것이 해당 논증의 부가 전제처럼 취급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즉, 보충되는 것은 해당 논증의 특정 전제를 더욱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주지만, 해당 논증 구조의 타당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전제들과 결론의 연결이 확실한 것(C)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전제들과 결론의 연결이 그럴듯한 논증은 ‘전제 보충’에 열려 있는 반면, 그 연결이 확실한 논증은 ‘전제 보충’에 닫혀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논의의 내용적 복잡성으로 인해, ‘그 열려 있는 정도’ 혹은 ‘닫혀 있는 정도’만이 평가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다.
• 근거, 증거 및 사례 보충에 의한 논지 강화가 논의 속에 담긴 어떤 논증 구조의 타당성 자체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수록, 해당 논증은 연역에 가깝다. 즉, ‘전제들을 받아들이면 결론에 대한 예외를 발견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러한 보충과 무관하게 성립할수록, 해당 논증은 연역에 가깝다.
• 근거, 증거 및 사례 보충에 의한 논지 강화가 논의 속에 담긴 어떤 논증의 결론을 더욱 믿을 만한 것으로 해줄수록, 해당 논증은 귀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논증이 귀납에 가까울수록, 그러한 보충은 결론을 강화시켜주는 ‘또 다른 전제 보충’으로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다음 물음에 답해보자.
• 논의 속의 논증이 연역에 가깝다는 것을 이상화시키면 연역에 속하게 되고, 귀납에 가깝다는 것을 이상화시키면 귀납에 속하게 되는 것인가?
이 물음의 답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연역 혹은 귀납에 가깝다는 것은 전제들과 결론의 연결성에 근거한 일반 분류 방식일 뿐이다. 특히 귀납에 가까운 것이 귀납이 아닌 ‘가설 추리 설명’에 해당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다음 <보기>를 살펴보자.
<보기>
철수는 어제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나사 하나를 발견했다. 도대체 그 나사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나사의 용도와 컴퓨터 진동음을 고려해 철수는 그것이 컴퓨터에서 빠져 나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
방바닥에 굴러러다니는 나사를 데이터로 잡자. 나사의 용도와 컴퓨터 진동음을 보증 장치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하자. 방바닥에 굴러다니는 나사는 단순히 ‘사실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설명을 요구한다. 이 점은 <보기>에서 철수의 질문에 함축되어 있다. 철수는 나사의 용도와 컴퓨터 진동음을 고려해 ‘그 나사가 컴퓨터에서 빠져 나온 것’이라는 가설을 설정한 것이다. 가설을 설정하면, 왜 나사가 방바닥에 굴러다니게 되었는지가 설명된다. 귀납과 연역은 데이터에서 결론으로의 추론 패턴이 일방향성인 반면에, 철수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순환성을 보여준다.
단일 가설 생성 추리 과정을 나타내는 위 도식은 귀납을 대표하는 도식과 다르다. 단일 가설 생성 추리 과정에서 발견되는 추론 패턴은 귀납과 달리 순환적이다. 그것은 데이터에서 가설로 향한 후 다시 가설에서 데이터로 귀환한다. 그러나 위 도식이 ‘순환적 오류’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에서 가설로 향하는 과정의 목적은 ‘가설 생성’인 반면에, 가설에서 데이터로 향하는 과정의 목적은 ‘설명’이기 때문이다. 가설 생성 추리 과정으로 얻어진 그 어떤 가설도 실험이나 조사와 같은 검증 단계를 거치기 전까지는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데이터와 보증 장치에 속하는 전제들에 근거해 가설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이러한 이유를 바탕으로 가설 생성 추리 과정을 편의상 귀납에 가까운 것으로 분류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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