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여기의 실 꼬임: 고전적 이원론의 정합성

착한왕 이상하 2011. 6. 27. 04:34

(1) 고전적 이원론의 정합성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대한 필연적 원인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하지만 서양의 역사에 비추어 그 과정을 평가한다면, 그 과정은 세속화 과정의 핵심이다. 고전적 이원론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이분법’,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이라는 세 관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전적 이원론을 구성하는 세 관점은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이와 달리, 유교에 함축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세 관점, 즉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 ‘우열 구분의 관점’,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은 논리적으로 정합적 관계를 맺는다고 할 수 없다. 이를 먼저 논하지 않는다면,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볼 수 없다.

 

고전적 이원론의 핵심인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땅과 하늘의 공간적 차이에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은 그러한 공간적 차이를 신학적으로 해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해석에 따르면, 천상계는 신성(神聖)이 구현된 완벽한 곳이고, 지상계는 신성이 결여된 불완전한 곳이다. 선(善)은 기독교 전통에서 유일한 실체로 가정된 신의 속성이라고 여겨진 까닭에,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에 따른 ‘천상’은 ‘신성이 충만한 곳’으로, 그리고 ‘지상’은 ‘신성이 결여된 곳’으로 해석되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원죄설 및 사후 구원론은 이러한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을 받아들이면, 지상계는 ‘인간적인 것’, 천상계는 ‘신적인 것’을 상징한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 속에서 인간은 ‘천상에 깃든 신성을 찬양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에 함축되어 있는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차이를 사회에 투영하는 경우, 평신도와 성직자의 범주로 구분되는 신분상의 위계질서가 정당화된다. 따라서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 즉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이라는 관점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을 사회에 투영할 때 얻어지는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위 도식은 고전적 이원론을 구성하는 세 관점이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다. 원들은 고전적 이원론을 구성하는 세 가지 관점을 상징한다. 이때 각 원은 각 원에 해당하는 관점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닌 그 관점의 내용을 뜻한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은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에 함축되어 있다.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은 이러한 함축 관계를 사회에 투영하여 얻어진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된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그 붕괴 과정은 전체적으로는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붕괴되고, 뒤이어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사회의 구조적 분화가 가속되면서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도 위축되기 시작했다. 고전적 이원론을 구성하는 세 관점이 이렇게 순차적으로 붕괴된 이유를 따질 때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 세 관점이 논리적으로 정합적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고전적 이원론을 하나의 큰 나무에 비유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뿌리가 흔들리면,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뿌리가 썩으면, 나무가 죽는다. 고전적 이원론을 나무에 비유하는 경우, 그 뿌리는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다.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흔들리면, 고전적 이원론을 구성하는 다른 관점인 두 이분법도 계속 유지되기 힘들다.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이분법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에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후자의 이분법을 부정하는 것은 동시에 전자의 이분법을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까닭에, ‘지동설의 출현과 함께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이 붕괴되는 과정’과 ‘인간적인 것과 신적인 것의 이분법이 붕과 되는 과정’이 중첩되어 나타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에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은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에 대한 반발로 나타나 형성된 계몽주의가 정점에 도달할 시기에야 약해질 조짐을 보였다.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은 엄격한 신분 구분에 바탕을 둔 사회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관점이었다. 그러한 관점이 붕괴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정치 체제가 변화하는 조짐이 있어야 하며, 그러한 정치 체제의 변화는 결코 이론적 논쟁으로만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다. 고전적 이원론의 마지막 교두보라 할 수 있는 평신도와 성직자의 이분법은 19세기 세속화 운동이 민중에게 확대되면서 붕괴되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회의 계층 분화는 그러한 붕괴를 가능하도록 만든 원인을 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유교에 함축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관점들은 고전적 이원론과 달리 하나의 정합적 체계로 간주될 수 없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고서는 ‘이 땅의 역사에도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직접적으로 대응시킬 수 있는 것이 있었다’라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만들어볼 수 없다. 그러나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하나의 정합적인 체계로 간주될 수 없음을 논하기 전에, 고전적 이원론에 대해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 신 혹은 신적인 것은 ‘그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하고, 그 자체로 하나 혹은 하나됨’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규정 방식 속에서 신 혹은 신적인 것은 ‘전지전능한 창조주’로 파악되었다. 신 혹은 신적인 것을 ‘그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하고, 그 자체로 하나 혹은 하나됨’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가능하다. 신 개념이 과학의 발달 및 사회 상태의 변동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해 준다. 고전적 이원론은 기독교 전통에서의 신 혹은 신적인 것에 대한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다. 따라서 고전적 이원론에 대한 반발로 형성된 계몽주의와 같은 입장을 무조건 ‘반기독교적인 것’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고전적 이원론의 핵심인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흔들리면서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나타난 과정을 ‘인간의 천사화 계획’으로 묘사했었다. 왜냐하면 인간 중심 사상이 서양의 근대 초기에 형성된 과정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유럽의 정세 변화에 맞추어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사회의 관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계몽주의가 그러한 인간 중심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한, 계몽주의 자체가 기독교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계몽주의 자체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고전적 이원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형성된 입장이다. 그 시대적 요구란 ‘그 무엇보다 논리적으로 선행하고, 그 자체로 하나 혹은 하나됨’이라는 신 규정 방식을 고전적 이원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요구였다. 이 점은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면서 원죄설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사후 구원론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특히 기계론에 매료된 계몽주의자들이 그러한 방법을 모색했다.

 

기계론의 핵심 개념인 ‘활성 없는 물질’ 개념은 ‘초자연적인 것’ 혹은 ‘신적인 것’을 물질의 내재적 속성으로 간주할 수 없도록 해준다. 왜냐하면 활성은 고대에서부터 영혼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고 인간의 영혼은 신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질 개념에서 활성 개념을 박탈하는 경우, 물질의 운동 변화는 오로지 충돌과 같은 접촉에 의해 설명 가능해야 한다는 기계론의 핵심 입장이 성립한다. 이때 인간 영혼이 초자연적인 것 혹은 신적인 것에 기인한 것으로 가정하는 경우, 영혼 불멸성을 기계론의 틀 속에서도 옹호할 수 있고, 또 영혼 불멸설에 근거해 사후 구원론을 논할 수 있게 된다. 상당수 계몽주의자들이 기계론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들은 원죄설을 전제하지 않고서도 사후 구원론을 옹호할 수 있다고 여긴 사람들이었다. 이는 고전적 이원론이의 붕괴 과정에서 형성된 계몽주의와 같은 입장이 서양 문화에서 ‘기독교적인 것’의 약화로 인해 생성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따라서 일부 계몽주의자가 무신론자였다는 사실을 가지고 계몽주의를 중심으로 세속화 과정을 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고전적 이원론이 득세한 시대와 계몽주의가 득세한 시대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신 존재는 고전적 이원론에 전제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천상과 지상을 이분하고 천상에만 신성이 깃들어 있다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존재 가정은 증명을 위한 첫 원리처럼 간주되었고, 정당한 설명은 신 존재 가정에 바탕을 두는 동시에 신 존재를 밝히는 것이어야 했다. 천체가 신을 숭배하는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탐구 영역에 속하게 된 이후, 이러한 사고방식은 지식인들 사이에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계몽주의는 그렇게 된 이후의 시대를 대표하는 입장 중 하나이다.

 

창조설과 관련하여 중세 시절 유행했던 ‘동시 창조설’이나 ‘연속 창조설’, 즉 ‘우인론’을 대표하는 창조설보다는 ‘자율적 우주 창조설’이 근대에 접어들면서 과학자와 철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창조설에만 국한해 생각한다면, 계몽주의자 다수는 ‘자율적 우주 창조설’을 지지한 사람들이다. 이는 개인의 합리적 능력을 바탕으로 자연의 탐구가 가능하다고 여긴 그들의 입장과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일부는 무신론을 옹호한 대가로 개인의 합리적 능력이나 도덕성의 원천을 신이 아닌 자연에서 찾으려고 했다. 또 인간은 신과 자연에 무관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입장도 나타났다. 계몽주의의 물결에 동참하지 않은 인물들은 ‘신과 창조 행위를 동일시하는 관점’ 즉 ‘신이 창조 행위 그 자체인 까닭에 우주의 발달 과정에 내재해 있다는 관점’을 옹호했다. 그러한 관점을 나는 ‘우주를 서식지로 삼은 창조설’이라 명명했었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창조설은 ‘신의 창조 행위를 전제한 우주론’, 즉 ‘태초를 가정한 우주론’에 속한다. 무신론자들이 우주의 질서를 논했을 때. 기껏해야 ‘그러한 질서는 우연에 기인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논의의 핵심이었다.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체계적으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과학 수준에 비추어 ‘태초를 가정한 우주론’과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 중 무엇이 올바른지는 판단할 수 없다. 우주론은 아직 가설과 측정량의 연결성 추구에 의해 제한된 ‘과학적 생활양식’의 영역 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는 힌두교의 우주론과 같은 것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우주 생성 과정을 논하는 ‘우주 생성론(cosmogeny)’은 서양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로 여겨져야 할 정도로,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은 서양 문화권에서는 체계적으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주 생성론은 태초를 가정할 때 논할 수 있는 담론이다.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여러 우주론과 창조설이 출현하고 이와 함께 다양한 신 개념이 나타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렇게 다양한 신 개념이 나타났다는 것은 ‘전통과의 완전한 단절’이라는 맥락 속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그것은 신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사회 사이의 관계에 대해 고전적 이원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수용 과정 속에서 과거 전통과는 구분되는 새로운 특징들이 형성되었으며, 계몽주의는 그러한 특징을 분석하고 다루기 위한 여러 설명 체계 중 하나였을 뿐이다.

 

고전적 이원론이 지배했던 시절, 무신론자나 무종교인은 반사회적 사람이거나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간주되었다.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되면서 이러한 상황은 약화된다. 무신론자나 무종교인도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고, 또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신론자나 무종교인의 의견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그 누구도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라는 것을 논할 수 없다.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라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 보려는 사람은 여기서 그러한 가상의 역사가 충족해야 할 기준을 얻는다. 그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유교에 반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의 의견이 반사회적이라거나 사회에 무관심한 것으로 평가되지 않는 분위기가 가상의 역사 속에 형성되어야 한다.

 

이 땅의 실제 역사가 위 기준을 만족하는 가상의 역사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면,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 없다. 이때 이 땅은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세속화된 곳’이라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를 알기 위해, ‘고전적 이원론’과 비교해볼 만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어떤 의미에서 논리적으로 정합한 체계가 아닌지를 명백히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