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역사 4. 소중화 사상 1

착한왕 이상하 2011. 11. 1. 21:47

「허생전」에는 「양반전」과 마찬가지로 당시 양반 계급을 비판하려는 연암의 의도가 깔려 있다. 하지만 「허생전」은 양반전과 달리 당시 변화한 주변 정세에 맞추어 조선을 변통시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허생전」은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양반이 행해야 할 실천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연암은 인재가 있어도 등용되지 않는 당시 세태를 극복하기 힘든 난세로 간주했다. 이는 허생이 변통의 뜻을 실현할 수 없음을 알고 세상을 버리는 「허생전」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시 사대부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소중화(小中華) 사상’에 대한 연암의 비판적 시각이다. 그런데 연암의 글에서 소중화 사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은 소중화 사상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소중화 사상에 대한 상반된 두 입장이 있다는 것이다.

 

소중화 사상이란 명(明)이 청(淸)에 멸망한 이후 조선만이 한족(漢族)의 유학을 계승했다는 입장에 근거한 사상이다. 소중화 사상을 나처럼 사대주의(事大主義)의 뿌리로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면에 민족의 주체적 의식을 담은 사상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 민족의 주체적 의식이 소중화 사상에 담겨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 명이 멸망한 후 조선만이 유학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이다. 비록 유학이 이 땅에서 생성된 것은 아니지만, 유학의 정통성을 계승한 나라는 조선이다. 따라서 소중화 사상은 단순히 조선을 작은 중국으로 여기는 사상이 아니다. 그 사상은 조선이 세계의 중심임을 자각하는 것에서 출발한 사상이다.

 

위와 같은 생각을 받아들이면, 사대주의에서 탈피한다는 것은 그저 자민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확립하는 것에 불과해 진다. 조선을 세계의 중심으로 자각하는 것은 ‘중국적인 것의 정통성을 계승했다는 사실’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며,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은 그러한 정통성을 계승한 것에 근거한다. 그러한 자부심은 현재 ‘우리 것’이 과거에 ‘남의 것’에서 기인했다는 사실로 인해 훼손되지 않는다. 이때 현재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은 사대주의에서 벗어났다는 것에 대한 기준이 되어 버린다. 그 결과, 현실에 대한 생산적 비판은 ‘우리 것’에 대한 비판이 되지 말아야 한다.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민족 중심의 사고방식에 빠진 사람이다.

 

강한 나라의 규범이나 사상을 받들어 섬긴다는 사대주의의 일반적 의미를 감안할 때, 현재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과 같은 것이 ‘탈사대주의 정신’을 대표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러한 사대주의의 일반적 의미는 ‘중국적인 것’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소중화 사상의 일반적 의미와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사대주의의 일반적 의미와 소중화 사상의 일반적 의미 사이에 성립하는 일치성에 주목한다면, 소중화 사상은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사대적 발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명 멸망 이후 유학의 정통성을 이어 받았다는 사실에 근거해 조선을 세계의 중심으로 여기는 것은 중국적인 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이 소중화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한, 중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것과 조선을 세계의 중심으로 보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 민족의 주체적 의식이 소중화 사상에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때 ‘조선’은 어디까지나 ‘중국화된 조선’ 혹은 ‘중국적인 것이 구현된 새로운 곳’을 뜻할 뿐이다.

 

소중화 사상이 민족의 주체적 의식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누군가 주장한다면, 그에게는 ‘유학의 정통성을 계승한 것’이 결국 ‘우리 것’이며,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 자체가 ‘탈사대주의 정신’이 되어 버린다. 그는 ‘우리 것’에 대한 현실 비판을 수용하기 힘든 사람이다. 이때 ‘탈사대주의’라는 것은 결국 ‘우리 것이 최고’ 혹은 ‘우리 것이 세계 제일’이라는 제국주의적 발상으로 귀결된다.

 

‘탈사대주의 정신’이라는 것은 ‘자민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소중화 사상이 사대주의와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할 것이다.

 

•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기 것’ 혹은 ‘우리 것’이란 없다. 특정 집단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갑자기 형성되어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의 이해 방식과 연관성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우리 것’이 반드시 ‘자생적인 것’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유교의 정통성을 계승한 것’ 자체를 ‘유교의 자기화’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에, 유교의 정통성을 계승한 것을 사대주의와 연관시키는 것은 억지에 가깝다. 또한 소중화 사상이 내용적으로 사대주의의 일반적 의미와 일맥상통하더라도, 명 멸망 이후 조선의 정체성 확보 과정에서 탄생한 소중화 사상이 사대주의의 정신의 뿌리라고 주장할 역사적 근거는 없다.

 

전통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과거 전통에 반하는 새로운 관점도 변화한 상황에 맞추어 과거의 담론을 재구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특정 집단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계 이해 방식과 연관성을 맺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우리 것’이 반드시 ‘자생적인 것’일 이유는 없다. 위 반박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이 점을 수긍한다고 해서, 위 반박의 두 핵심 입장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그 첫 번째는 소중화 사상을 ‘유교의 자기화’ 혹은 ‘유교의 우리화’로 보는 입장이다. 그 두 번째는 소중화 사상을 사대주의와 연관시켜 볼 역사적 증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 두 입장을 비판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위 반박이 성립하기 힘듦을 논증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