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역사 6. 인간 중심 사상

착한왕 이상하 2012. 1. 14. 01:24

인간 중심 사상의 핵심은 인간과는 다른 동물이나 사물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과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 모두에 공통된 것으로 여겨진다.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핵심인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일 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 존재를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을 해석하는 경우,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사물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신에게 부여받은 합리적 능력을 바탕으로 도덕 및 자연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간과는 다른 동물이나 사물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사고방식이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과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에 공통된 것이라고 해도, 그 둘은 내용적 차이를 보인다. 그러한 내용적 차이와 관련해 이 땅의 무종교인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이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하다는 인식과 함께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약화되는 조짐을 보였다. 반면에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고전적 이원론의 핵심 관점인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흔들리면서 지배적인 시대정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서양의 세속화 과정은 인간 중심 사상이 강화되면서 가속되었다. 서양의 세속화 과정을 한 나무에 비유할 때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세속화 과정이라는 나무의 뿌리와 같고, 인간 중심 사상은 고전적 이원론이 위협받으면서 형성된 사상이었기 때문이다.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하는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이 땅의 세속화 과정 모두 기능적 측면에서 근대적 혹은 현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특징들을 산출시켰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내용적 측면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왜냐하면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이라는 것이 있다면,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달리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가속화되었다고 말해야 하기 때문이다.

 

• 서양의 세속화 과정은 인간 중심 사상이 강화되면서 가속화되었다. 만약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종교를 둘러싼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진 무종교인은 위 차이를 반드시 알아야 한다. 위 차이를 모르는 무종교인은 세속화 과정에서 탄생한 개인의 자유와 개인 간 평등에 대한 인식의 확대가 인간 중심 사상, 더 나아가 인간 중심 사상 형성기와 맞물려 탄생한 계몽주의와 같은 입장에 근거해야 한다고 착각하기 쉽다. 그러한 착각은 다른 곳의 무종교인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몰라도 이 땅의 무종교인에게는 큰 문제가 된다.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에도 있었다는 가정 아래 하나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하는 작업을 이어가기 전에, 이를 명확히 하자.

 

근대적 혹은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은 ‘개인주의의 확대’, ‘이성의 강조’, ‘가치 체계의 다원화’, ‘세계화’ 등의 용어를 빌려 거론된다. 그러한 용어들을 자주 사용하다 보면, 근대적 혹은 현대적 특징들이 마치 특정 철학적 입장이나 그런 입장에 근거한 세계 이해 방식을 전제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다. 실례로 근대적 혹은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이 계몽주의가 확대된 결과라고 착각하기 쉽다.

 

고전적 이원론의 핵심인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흔들리면서 지구가 천문학적 탐구 대상이 되자, 이와 함께 인간의 가치도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높은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계몽주의는 이러한 인간 중심 사상이 확대되면서 한 시기의 지식인들을 매료시킨 사상이다. 사회의 관계에서 자유로운 이상화된 ‘개인’을 가정하여 사회를 개인 간 계약에 기인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방식 등이 선택의 자유를 확대하는 데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설명 방식을 정당화해 주는 계몽주의와 같은 입장으로 인해 선택의 자유가 확대되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세속화 과정을 기차에 비유할 때 계몽주의는 세속화 과정이라는 기차의 필수적인 엔진이라 해야 한다.

 

계몽주의를 세속화 과정이라는 기차의 엔진과 같은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 계몽주의에 반하는 입장, 실례로 낭만주의와 같은 입장은 무조건적으로 세속화 과정을 가로 막았다거나 세속화 과정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는 자유주의에 대한 버크의 입장을 논하는 곳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했다. 또 계몽주의를 구성하는 중요 개념들이 사실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거나 기독교적인 것을 변형한 것에 불과하다면서 종교 시장 논리에 기대어 세속화 과정 자체를 부정하려는 입장을 살펴보았다. 세속화 과정이 계몽주의와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입장은 그러한 종교 시장 논리 앞에서도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논리에 맞서 계몽주의의 확장인 것처럼 세속화 과정을 과장하여 세속화 과정을 ‘종교성의 사장 과정’으로 서술하는 방식은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다. 사실 다수의 계몽주의자들은 기독교라는 종교를 포기하지 않았고, 이들이 계몽주의가 궁극적으로는 기독교 교리를 부정하는 입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관점에 동조할리 만무하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산출한 과정은 결코 특정 철학적 입장이나 사상의 확장 과정이 아니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란 사회가 계층적으로 분화되면서 종교가 더 이상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상태이다. 그러한 사회 상태가 실현되는 과정에 대해 하나의 필연적 요인을 가정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렇게 가정하는 것은 서양과는 다른 맥락의 역사를 가진 곳에서는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결론을 함축할 수밖에 없다. 이 땅의 과거 역사와 현실은 그러한 결론에 대한 반례인 것이다.

 

계몽주의를 산출시킨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중세 말기 새로운 변화에 적합하도록 기독교 교리를 재해석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계몽주의에 뿌리를 둔 인권 개념이나 철학적 자유주의에 기대어 의무화된 종교 교육을 비판하는 무종교인이 있다고 해 보자. 그러한 비판은 누구나 전통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면서 의무화된 종교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사람 앞에 무기력할 수밖에 없다. 의무화된 종교 교육을 옹호하는 사람은 인권 개념이나 자유주의 입장 등이 기독교 전통과 양립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종교 교육을 통해 선택의 자유를 행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에 맞서 무종교인이 계속 인권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를 강조한다면, 그 주장 속에 숨겨진 야욕, 즉 특정 종교의 교리로 세상을 획일화하려는 야욕은 공론화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지적인 무종교인이 의무화된 종교 교육을 비판 할 때, 그 비판의 핵심은 의무화된 종교 교육으로 인해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순기능이 저해될 수 있는 이유를 논해야 한다. 의무화된 종교 교육이 그러한 순기능을 가로막기 때문에, 그것을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에 대한 폭력’의 일종으로 규정했었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는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속화 과정에서 탄생한 근대적 혹은 현대적 것의 특징들은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 상태, 즉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특징들이기도 하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형성되는 과정에 반드시 인간 중심 사상이나 인간 중심 사상에 바탕을 둔 어떤 철학적 입장과 같은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적 혹은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로 거론되는 ‘개인주의의 확대’, ‘이성의 강조’ ‘가치 체계의 다원화’, ‘세계화’ 등의 용어에서 학(學)적 색채를 탈색시킨 경우, 각각에 다음 특징들이 대응된다.

 

•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혹은 누구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확대

• 감정과는 구분되는 추론 및 추상화 능력이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기여했다는 것

•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

• 국가 간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

 

앞서 살펴보았듯이, 위 특징들이야말로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규정할 때 필요한 것이다. 즉, 위 특징들은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규정해 주는 실제적 특징들이다. 위 특징들에 근거해 세속화된 사회 상태와 그렇지 않은 사회 상태를 구분할 때, 어떤 철학적 입장을 전제할 이유는 없다 또한 종교성의 사장론과 같은 것을 함축한 어떤 철학적 입장에 근거해 세속화 과정을 규정할 필요도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 특징들을 산출시킨 과정을 세속화 과정으로 규정하는 ‘소박한 관점’이다. 이를 받아들이면, 어느 지역의 역사가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도달하는 과정을 획일적으로 서술하고 규정해 주는 거대 이론이라는 것은 없다고 해야 한다. 만약 누군가 그러한 이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가 과대망상증에 빠진 사람이거나, 그 이론 자체가 논리적ㆍ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에 불과하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규정해 주는 실제적 특징들을 산출한 과정은 역사적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나 인간 중심 사상의 형성 등은 던지 서양의 세속화 과정을 설명할 때 필요할 뿐이다. 이를 인식한 이 땅의 사람이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가상의 역사를 구성하는 경우, 다음에 주목해야 한다.

 

• 서양의 세속화 과정은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와 함께 인간 중심 사상이 강화되면서 가속화되었다. 인간 중심 사상이 시대정신으로 정착하면서 계몽주의가 형성되었고, 이에 반하는 입장이 나타났다. ‘우리 유럽’이라는 이념이 지배하는 가운데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토대로 나라별로 계층 분화가 가속화되었다. 이와 함께 근대적 혹은 현대적인 것의 특징들은 더 이상 인간 중심 사상이나 특정 철학적 입장을 전제하지 않고 성립하는 사회 상태의 특징들로 인식되게 되었다. 즉,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형성된 것이다. 만약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가속화되었을 것이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 고전적 이원론을 대체할 세계 이해 방식을 형성하는 것이 서양의 세속화 과정의 출발점이었다면, 유교 전통 안에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내재한 내용적 비정합성을 인식하고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실현하려고 한 것은 이 땅에서의 세속화 과정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의 내용적 비정합성에 대한 인식은 그 구분 맥락의 핵심인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을 글자 그대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즉,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동물이나 사물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식으로 해석될 필요가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가속화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위 결론을 받아들일 때 다음의 물음들에 답해야 한다.

 

• 인간 중심 사상을 약화시킨 동기가 신유학에 함축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내용적 비정합성을 인식한 것에 기인했다면,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의 근간을 수용하면서 그 관점이 우열 구분의 관점으로, 그리고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으로 이어질 논리적 이유가 없다는 인식은 어떤 식으로 확대 가능했을까? 즉, 그러한 인식에 바탕을 둔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면, 그 실현 방식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을까?

 

•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고 사회의 계층 분화에 따른 신분제가 외부의 영향 없이 붕괴되는 식으로 이 땅의 역사가 진행되었더라면, 세속화된 사회 상태를 규정해 주는 특징들은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을까?

 

위와 같은 물음에 대해 답해 보는 것은 ‘이 땅에도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하는 것이 있었다는 가정 아래 하나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 보는 것’이기도 하다. 보게 되겠지만, 이 땅은 위 물음에 대해 답하는 방식으로 세속화되지 않았다. 이를 모르고서는 이 땅이 세속화된 실제 과정을 안다고 할 수 없다. 또 이 땅이 서양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속화된 실제 과정을 모르고서는 현실 문제를 제대로 진단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