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비판적 사고

논증의 구성과 사용: 연역

착한왕 이상하 2012. 3. 27. 02:00

* 다음 자료를 저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변형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논증의 구성과 사용

 

2. 연역

 

 

[2.1]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이란 어떤 것인가?

 

전제부와 결론의 논거관계([1.3])가 다음을 만족할 때 해당 논증은 연역적으로 타당한 것이다.

 

• 전제부가 참으로 가정될 때 결론도 반드시 참이어야 한다.

• 전제부가 참일 때 결론은 절대 거짓이 될 수 없다.

• 결론이 거짓이면서 전제부가 참으로 여겨질 가능성은 없다.

 

위 논거관계들은 결론이 전제부에 함축된 경우에 해당한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실제 논증에서 결론이 전제부에 함축된 경우는 도대체 어떤 경우일까? 이 물음은 다음 단락에서 대답된다.

 

 

[2.2] 연역적으로 타당한 실제 논증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는가?

 

실제 논증은 무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대상들의 성격을 명시해주는 진술들은 논증을 위해 주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진술들을 ‘데이터’라고 하자. 주어진 데이터에만 근거해 합당한 결론을 주장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데이터와 결론의 내용적 틈새를 이어줄 장치가 필요하다. 그러한 장치의 역할을 하는 것을 ‘보증진술’이라고 하자. 보증진술은 ‘가정’이나 ‘대전제’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데이터를 사건 기록에, 그리고 결론을 판결에 유비할 때 보증진술은 판사가 사용하는 법률이나 판례의 준칙과 같은 것이다. 실제 논증에서 연역과 귀납의 차이는 보증진술의 성격과 역할의 차이로 나타나는데, 귀납은 다음 장의 주제다.

 

보증진술이 필요한 경우, [2.1]에서 살펴본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의 논거관계는 다음 조건들을 만족한다.

 

• 데이터만으로는 결론이 확실하다고 주장하기 힘들다.

• 그렇게 주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보증진술이 있어야 한다.

• 그러한 보증진술은 데이터에 근거해 결론의 확실성을 보증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 그러한 보증진술이 받아들여지는 한에서, 데이터의 진술이 거짓이면서 결론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성은 배제된다. 다시 말해, 데이터와 보증진술을 인정한 상태에서 결론도 반드시 받아들어야 한다.

• 보증진술이 필요 없는 경우, 결론이 데이터 자체에 함축되어 있어야 한다.

 

연역 논증에서 이러한 조건들을 굳이 암기할 필요는 없다. 연역 논증에 대한 사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실제 연역 논증의 ‘순서적 구성 방식’을 음미해보는 것은 살펴볼 사례들을 분석하는 데 도움을 준다.

 

 

[도식 1]에서 보증진술 W는 데이터 D에 근거해 결론 C가 확실하다고 보증해주는 역할을 갖는 것이지, 결코 D에서 C를 무조건적으로 끄집어내주는 형식적 장치가 아니다. 연역 논증에서 결론이 전제부에 내용적으로 함축되는 이유는 보증진술도 데이터와 함께 논증 구조의 전제부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결론이 항상 데이터에 직접 함축된 것은 아니다. 전제부와 결론의 구성 방식으로 표현되는 논증 구조라는 것은 논증의 실제 구성되는 방식이 아닌 논증 결과에 해당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2.3] 연역 논증에서 보증진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연역 논증에서 보증진술의 역할은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 데이터에 결여된 정보를 결론의 대상에 부가해주거나, 데이터에 함축되지 않은 새로운 결론을 예측해주는 역할

• 의미 변화 없이 데이터를 변형시켜주는 역할

 

연역 논증의 전제부에 등장하는 보증진술은 그 역할에 따라 ‘일반 전제’ 혹은 ‘일반 지식’, ‘과학적 가설’, ‘일반 협약’ 혹은 ‘일반 정의’ 등으로 표현된다. 이제 보증진술의 각 역할에 대한 사례들을 살펴보자. 데이터와 마찬가지로 논증에서 보증진술의 수도 여러 개일 수 있지만, 하나만 사용되는 사례들만 살펴보자.

 

 

[2.4] 연역 논증의 구성에서 보증진술이 데이터에 결여된 정보를 결론의 대상에 부가해주는 역할을 갖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

 

사례 1. 보증진술로서 일반지식을 사용한 연역 논증

 

W: 개과 동물은 잡식성이다.

D: 늑대는 개과 동물에 속한다.

C: 늑대는 잡식성이다.

 

위 논증 구조는 [도식 1]에 반영된 논증의 순서적 구성 방식을 무시한 것이다. 그 구성 방식을 고려할 때 D는 데이터로 여겨질 수 있다. 늑대에 관한 구체적 언급은 전제부의 진술 D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D만 가지고는 C를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다. 보증진술로서 일반 지식 W를 도입한다면, D에 근거해 C가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W를 받아들이는 한, D에 근거해 C가 거짓인 경우는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W에 의해 늑대에 대한 새로운 정보, 곧 D에 결여된 정보가 결론에 나타났다.

 

사례 2. 보증진술로서 과학 지식을 사용한 연역 논증

 

W: 탄소 결정체는 가연성 화합물이다.

D: 다이아몬드는 탄소로 구성된 결정체다.

C: 다이아몬드가 제아무리 강해도 불에 타게 마련이다.

 

보증진술 W에 의해 D에 결여된 정보가 결론 C에 나타난 경우다. [사례 2]는 형태상 [사례 1]과 유사하다. 하지만 두 사례가 동일한 논증은 아니다. 실제 연역 논증에서 주장을 확실하다고 주장할 때 ‘확실하다는 것’은 맥락에 의존적이다. 누군가 다이아몬드가 불에 타게 마련이라고 주장할 때, 다이아몬드는 산소가 없는 밀폐된 유리병에 들어있지 않다고 가정하고 있다. 가연성에 대한 지식을 공유한 사람은 그에게 아무런 이의를 걸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논증에 사용되는 보증지식의 종류는 결론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는 범위, 곧 ‘논증의 주장 범위’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다. [사례 1]과 [사례 2]의 주장 범위는 다르다. [사례 1]보다는 [사례 2]의 주장 범위가 더 크다. [사례 2]의 결론이 확실하기 위해 요구되는 지식이나 가정의 범위가 [사례 1]보다 크기 때문이다.

 

판사의 판결에 대해 누가 이의를 걸었다고 하자. 판사는 그가 사용한 보증진술, 곧 법률에 의거해 그 이의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반박한다. 판사의 반박이 유효한 경우는 그 이의가 판결문의 주장 범위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된다.

 

사례 3. 산수에 근거한 연역 논증

 

D: 거북이는 흰 선이 그어진 장소에서 시간당 2미터씩 진행한다.

흰 선에서 빨간 선까지의 거리는 10미터이다.

C: 거북이가 빨간 선에 도착하려면 최소 5시간이 걸릴 것이다.

 

이 사례는 보증진술이 숨겨져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그 숨겨진 보증 진술은 ‘2의 5배수는 10이다’와 같은 진술이다. 이러한 보증진술의 의해 D에 결여된 정보가 결론 C에 나타났다. 산수의 진술들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 필수적인 만큼 논증에서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또 다른 이유는 위 논증의 주장 범위가 보증진술보다는 데이터 D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C를 확실하다고 주장하려면, 갑작스럽게 태풍이 불지 말아야 한다. 태풍이 분다면 거북이는 바람에 날아가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보증진술이 논증의 주장 범위 규정과 무관하며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이 논증에 굳이 명시될 필요는 없다.

 

사례 4. 보증진술로서 조건문 형태의 가설을 사용한 연역 논증

 

W: 기구를 헬륨 가스로 채운다면, 기구는 뜬다.

D: 기구를 헬륨 가스로 채웠다.

C: 기구는 뜰 것이다.

 

D만 가지고 C를 주장할 수 없다. W에 의해 D로부터 C가 예측 가능하다. C를 확실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기구에 충분한 양의 헬륨 가스가 채워졌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깔려있다.

 

사례 5. 보증진술뿐만 아니라 데이터도 조건문 형태의 가설을 사용한 연역 논증

 

W: 기구가 뜬다고 해도 무한정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D: 기구를 헬륨 가스로 채운다면, 기구는 뜬다.

C: 기구를 헬륨 가스로 채운다고 해도 무한정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실제 논증에서 데이터, 보증진술, 결론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데이터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출발점과 같다. 데이터가 반드시 단순진술로 주어질 이유는 없다. 기구가 무한정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최종 결론을 받아들이려면, 헬륨 가스로 채워진 기구가 뜬다는 것을 데이터로 잡아야 합당하다. 이 경우, D만 가지고 C가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W가 있어야 D에 근거해 C를 주장할 수 있다.

 

헬륨 가스로 채워진 기구가 뜬다는 것은 [사례 4]에서는 보증진술의 역할을 갖지만, 여기서는 데이터가 된다. 어느 진술이 보증진술의 역할을 갖는지, 아니면 그냥 데이터로 취급될 수 있을 것인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논증 맥락에 따라 달라진다.

 

 

[2.5] 연역 논증의 구성에서 보증진술이 데이터를 변형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경우는 어떤 것일까?

 

사례 6. 보증진술로서 일반 협약이나 정의를 사용한 연역 논증

 

W: 총각은 미혼 남성이다.

D: 나의 형은 총각이다.

C: 형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

 

추가 정보 없이 데이터 D만 가지고는 C를 주장할 수 없다. 총각에 대한 일반 정의를 함축한 보증진술 W가 부가됨으로써 D에 근거해 C가 확실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사례 1]과 달리, D에 결여된 새로운 정보가 C에 함축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결론이 데이터와 의미상 동일한 경우의 논증을 ‘분석적 논증’으로 규정하여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실제 논증과 구분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의 논증도 실제 논증의 한 방식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다. 일반 협약이나 정의마저도 필요 없는 경우의 분석 논증은 [2.6]에서 보듯이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것들이다.

 

 

[2.6] 연역 논증의 구성에서 보증진술이 필요 없는 경우는 어떤 것인가?

 

사례 7. 데이터 자체에 결론이 내용적으로 함축된 예외적인 경우, 곧 일상생활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경우, 보증진술은 연역 논증의 구성에서 필요 없다.

 

D: 늑대는 잡식성이다.

C: 늑대는 잡식성이다.

 

결론은 데이터의 진술을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D: 훌륭한 팀장 없이는 연구원들의 의사소통도 원활할 수 없다.

C: 연구원들의 의사소통이 원활하려면, 훌륭한 팀장이 있어야 한다.

 

위 경우도 결론은 데이터의 진술의 반복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론은 데이터의 진술들을 조건문의 형태로 대체시킨 것에 불과하다. 필요충분조건과 같은 것을 몰라도, DC가 내용적으로 동일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훌륭한 팀장이 있다면, 연구원들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진다’라는 진술을 고려해보자. 그 진술에 대응될 수 있는 것은 ‘훌륭한 팀장과 함께 연구원들의 의사소통도 원활해진다’와 같은 것이지 D가 될 수 없다.

 

D: 개과 동물은 잡식성이면서도 사냥능력을 갖고 있다.

C: 개과 동물은 잡식성이다.

 

결론은 데이터에 함축된 두 정보인 개의 식성과 사냥능력 중 하나만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D: 개과 동물은 잡식성이다

C: 개과 동물은 잡식성이거나 사냥능력을 갖고 있다.

 

데이터에서 결론에 전이된 정보에 새로운 정보가 부가될 가능성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7]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이란 무엇인가?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실제 논증은 배경 지식에 의존적이며, 보증진술, 데이터, 결론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그런데 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실제 논증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유사한 형태들이 발견된다. 논증 형식은 내용과 무관하게 그러한 형태들을 이상화시킨 것이다. [사례 1]과 [사례 2]에는 [종류 I]의 오른쪽에 해당하는 삼단논법의 형식이, [사례 6]에는 왼쪽에 해당하는 형식이 관통하고 있다.

 

[종류 I]

모든 ab다.

ca다.      

cb다.

ab다.

ca다.

cb다.

 

사례 4와 사례 5에서 각각 발견되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은 다음과 같다.

 

[종류 II]

P이면 Q

P        

Q

Q이면 R

P이면 Q

P이면 R

 

누군가 연역적으로 타당한 실제 논증이 어떤 형식에 개념이나 진술들을 대입한 것으로 여긴다면, 그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사례 1]과 [사례 2]의 주장 범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살펴봤다. 그 원인은 보증진술의 종류에게 기인한 것이다. 보증진술의 선택은 데이터와 결론의 내용적 연결성에 의존적이다. 반면에 [종류 I]의 형식만 가지고는 그런 의존성에서 기인한 두 사례의 주장 범위에서 나타나는 차이를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종류 II] 중 하나의 형식이 어떤 두 논증을 관통하고 있더라도, 그 두 논증은 결코 형식에 진술들을 대입시켜 얻어진 것이 아니다.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은 단지 실제 논증에서 내용을 무시한 채 이상화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W: 기구가 뜬다고 해도 무한정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D: 내 방의 형광등이 켜지면, 기구가 뜰 것이다.

C: 내 방의 형광등이 켜진다고 해도, 기구가 무한정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위 논증은 [종류 II]의 오른쪽 형식에만 따른다면 연역적으로 타당하다. 그런데 단지 연역적로 타당한 내용이 아니라 형식만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그 누구도 ‘내 방의 형광등이 켜지면, 기구가 뜰 것이다’와 같은 데이터를 논증의 출발점으로 삼지 않는다. 농담이라면 모를까, 형광등을 켜는 것과 기구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관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형광등을 킬 때 기구가 헬륨 가스로 채워지도록 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별도의 설명을 요구한다. 논증을 시작하기 위한 데이터가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실제 논증은 시작될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데이터에 어떤 보증진술을 도입하여 결론을 확실하게 주장할 수 없다. 위 논증은 형식적으로는 타당한 연역일지라도 내용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한 것이 못된다.

 

[종류 III]

P

PQ

Q

P        

P 또는 Q

 

[종류 III]의 형식들은 [사례 7]의 연역 논증들을 형식화한 것이다. [사례 7]의 연역 논증들은 보증진술이 필요 없는 경우로서 형식논리가 아닌 실제 논증론에서의 ‘동어반복’인 것이다. 그런데 보증진술의 유무에 따른 이러한 차이는 논증 형식만을 따질 때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종류 II]와 [종류 III]의 형식들은 형식 연역 논리에서는 동류로 취급되어 모두 동어반복형의 추론형식들이 되어버린다. 이 점은 실제 논증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동어반복은 글자그대로 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동어반복의 일상적 의미는 논증론에 배어 있지만, 형식논리에는 아니다. 형식 연역 논리에서의 동어반복 개념은 다른 기회에 살펴볼 것이다.

 

 

[2.8] 그렇다면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은 어떤 경우에 필요한가?

 

논증이 형식적으로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지를 평가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의 실례를 살펴보자.

 

W: 모든 은행나무는 자웅이체다.

D: 어떤 자웅이체의 식물군은 평균 50년 이상을 산다.

C: 모든 은행나무는 평균 50년 이상을 산다.

 

위 논증이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일 수 있을까? 위 논증이 연역적으로 타당한지 의심스럽다면, 그것에 함축된 형식을 뽑아내 보는 것이 의심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모든 ab다.

어떤 bc다.

모든 ac다.

 

각 항 ‘a’, ‘b’, ‘c’가 특정 범주를 나타내는 경우, 위 논증 형식은 ‘범주 삼단논법’의 일종으로 여겨진다. 각 항에 ‘핀치’, ‘조류’, ‘육상 생활’을 대입한다면, 어떻게 되는가? 모든 핀치는 육상 생활을 한다는 결론이 얻어진다. 참인 두 진술에서 거짓 결론이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위 논증 형식은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위 논증 형식을 함축하고 있는 원래의 논증 또한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논증 형식이라는 것은 올바르다고 판단된 논증들에서 발견된 형태들을 이상화시킨 결과라는 점을 잊지 말자. 어떤 연역 논증의 타당성을 따질 때 특정 논증 형식은 도움을 줄 뿐이지, 그런 형식 자체가 연역 논증의 내용적 타당성을 규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논증 형식의 도움 없이도 원래의 논증이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음을 보일 수 있다. 보증진술에 의해 데이터와 결론이 확실하게 내용적으로 연결되려면, 50년 이상 사는 어떤 자웅이체의 식물군에 은행나무가 속한다는 단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한 단서가 전제부에 빠져 있기 때문에, 전제부의 진술들만 가지고 결론 C가 확실히 참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전제부만 가지고는 C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C 자체가 독립적으로 참일지라도, 전제부에 근거해 C가 확실하게 참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경우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것이 아니다. 진정으로 논증의 맛을 알고 실전에서 논증을 활용하고 싶은 사람은 가급적 형식의 도움 없이 내용만으로 논증을 평가해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논증의 평가 방식과 목적이 다양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논증 형태를 파악해 연역적으로 타당한 것인지를 평가해야 할 때가 있는가하면, 논증 구성의 체계성을 따지는 진단의 의미를 갖는 평가가 있고, 또 논증의 설득력이 평가 대상이 되기도 한다. 논증 평가에서 가장 잘못된 생각은 형식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기준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이 아무런 조건 없이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진술들이 참 또는 거짓 중 하나의 진리치만을 갖는다는 것, 언어 사용에 내재된 진술들의 연결 방식 등이 그러한 조건으로 작동한다. 또 [종류 I]과 [종류 II], [종류 III]를 자세히 살펴보면, 형식화의 기본 단위가 다르다. [종류 I]과 달리, [종류 II]와 [종류 III]에서 형식화의 기본 단위는 진술들이다. [종류 I]의 형식들은 일반적으로 범주 논리 혹은 항 논리에서, 그리고 [종류 II]와 [종류 III]의 형식들은 진술 혹은 명제 논리에서 다루어진다. 범주 논리와 진술 논리는 술어 논리에 의해 통합적으로 다루어질 수 있다. 범주 논리, 진술 논리, 술어 논리는 이 강의에서 다루지 않는다.

 

 

[2.9]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증은 잘못된 논증인가?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논증은 글자 그대로 ‘잘못된 연역 논증’인 것이다. 그런데 ‘잘못된 연역 논증’을 ‘잘못된 논증’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논증의 평가 방식과 목적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연역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가 ‘보편적 오류’라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역사상 아무도 없다. 세간에 알려진 형식 오류라는 것은 단지 타당한 연역 논증 형식을 어겼다는 것일 뿐, 무조건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거나 비합리적인 것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오류를 범하는 것이 무서워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에 글을 만들어 끼워 넣기 식으로 논증을 구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결코 훌륭한 논쟁가가 될 수 없다. 논증을 잘 하고 싶은 사람이 되려면, 오류를 두려워하지 말라.

 

 

[2.10]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이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역 논증이 형식적으로 타당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례를 [2.7]에서 살펴봤다. 그러한 사례는 실제 논증에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는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내용의 차원에서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에만 관심의 초점을 맞추자. 논증의 보편적 구조가 아니라 순서적 구성 방식을 고려할 때 그러한 논증은 [2.2]의 조건들을 만족한다. 이러한 경우에도, 논쟁이 발생할 수 있다. 하나의 사례를 살펴보자.

 

TV 전도사: (1) 헌금을 보내주시면, 신의 가호가 있을 것입니다. (2) 1,000원, 10,000원, 100,000원이든, 액수는 상관없습니다. (3) 지역 공동체를 위한 새로운 교회가 필요합니다. (4) 신의 은총이 함께 하길 빌겠습니다.

 

TV 시청자: 그 교회는 당신과 당신의 신도들을 위한 것이다. 또 신이 있다고 해도 신의 은총과 헌금 사이에 무슨 상관관계가 있단 말인가?

 

TV 전도사의 논증에서 (2)와 (3)은 데이터, (1)은 보증진술의 역할을 갖는 신념, 그리고 (4)는 결론에 해당한다. 적어도 그 전도사가 속한 교회의 신도들에게 (2)와 (3)은 받아들일만한 것이다. 신념 (1)은 (2)와 (3)에 근거해 (4)를 주장하기 위한 보증진술에 해당한다. TV 시청자는 (1)과 (3)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1)과 (3)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론 (4)도 받아들일 수 없다. TV 시청자가 단순히 (4)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그는 (4)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1)과 (3)에 동의하지 않음으로써 TV 전도사의 전체 논증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TV 전도사의 논증이 확실하게 허용되는 주장 범위는 헌금과 주님의 은총 사이의 상관 관계에 의해 유지되고 있지만, 그러한 상관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TV 시청자에게 그 주장의 범위는 자의적으로 설정된 것이다.

 

 

[2.11] 건전한 연역 논증이란 무엇인가?

 

[2.10]의 사례에서 TV 전도사의 논증은 형식적으로 타당하며, 적어도 그 자신에게는 내용적으로도 타당한 것이다. 그러나 TV 전도사의 논증은 시청자와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시청자는 TV 전도사의 전제들, 특히 그의 신념이 반영된 (1)과 (3)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건전한 연역 논증은 서로 합의 가능하거나, 논쟁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없거나, 혹은 제 3자에 의해 논쟁의 한 편이 옳다고 판명될 수 있는 종류에 속한다. 이러한 의미의 ‘건전성’은 ‘형식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에 의해 논증의 건전성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 속에 반영되어 있다.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는 논증 형식은 내용과 무관하게 전제부가 참이면서 결론이 거짓인 경우에 해당한다. 참 또는 거짓 중 하나만의 진리치를 갖는 진술들에 국한해 생각하면,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해당 논증 형식은 타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전제부   결론

타당함          건전함

   참        참

   참      거짓

  거짓      참

  거짓    거짓

   O                 O

   X                 X

   O                 X

   O                 X

 

형식적으로 타당한 논증이 건전한 경우는 오로지 전제부와 결론 모두 정말 참인 경우이며, 건전한 연역 논증은 형식적으로도 타당한 것이다. 그런데 논증 형식만을 따진다면, 그런 형식은 진술의 내용과 무관한 것이기에 건전하지 않은 경우들, 곧 (X, X) 아래 부분들도 타당한 것으로 허용된다. 문제는 그 어떤 진지한 논증자도 자신의 전제들이 거짓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데 있다. 논증의 중심을 논증자에게만 맞추면, 사실 전제부와 결론이 동시에 참인 경우 이외의 것들은 배제되는 것이다. 진지한 논증자에게 타당한 연역은 동시에 내용적으로 건전하다고 가정되어 있는 것이다. 논쟁은 다른 이가 그의 가정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처럼 건전한 논증 형식이라는 것도 있는가? 없다.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증 형식으로 거론된 [2.7]의 [종류 I]과 [종류 II], [종류 III]을 보라. 실제 논증이 되기 위해서는 [종류 I]의 경우 특정 표현들이 ab에, 그리고 [종류 II], [종류 III]의 경우 P, Q, R에 들어가야 한다. 그 누구도 사전에 전제부를 형성할 진술들이 정말 참인지 결정할 수 없다. 실제 논증에서 건전하다는 것은 서로 합의 가능하거나, 논쟁을 불러일으킬 여지가 없거나, 혹은 이의 신청이 기각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실제 논증이 연역적으로 건전하다는 것은 다음을 뜻한다.

 

• 제3자의 관점에서 연역 구조의 전제부를 구성하게 될 보증진술과 데이터가 합의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 전제부에 들어가는 진술들이 논쟁의 여지없이 참으로 여겨질 수 있어야 한다.

• 보증진술에 의해 데이터와 결론이 내용적으로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 논증의 주장 범위 내에서 그 결론은 이의 제기를 차단할 정도로 확실해야 한다.

 

건전한 연역 논증이라는 것은 결국 제 3자의 관점에서 누가 이의를 걸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논증이어야 한다. 데이터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보증진술로 나타나는 것들 중 일반 지식, 과학 지식, 일반 협약, 산수의 연산법칙, 조건문 형태의 검증된 가설 등도 합의 가능한 것으로 취급된다. 따라서 살펴본 [사례 1]~[사례 6]은 건전한 논증들로 분류된다.

 

 

[2.12] 건전한 연역 논증은 자동적으로 훌륭한 논증인가?

 

그렇지 않다. 건전한 논증은 이의 신청이 제 3자, 실례로 법원이나 과학 공동체에 의해 기각당할 수 없는 경우이다. 건전한 논증은 그 기각 여부가 합당한 근거를 가진 안정된 논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논증이 훌륭한 것이다. 또한 훌륭한 논증은 설득력을 갖추어야 하는 만큼 설득 대상자를 고려한 것이어야 한다. 실례로 [사례 5]는 건전하고 타당한 논증에 속하지만, 설득 대상자가 어린 아이인 경우 설득력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왜 기구가 무한정 올라갈 수 없는지에 대한 부가 설명이나 논증이 뒤따라야 [사례 5]는 어린 아이에게 설득력을 갖출 수 있다.

 

논증이 설득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도식이나 그림도 사용된다. 어떤 연역 논증이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 타당한지, 건전한지를 따지는 평가에서 도식이나 그림은 부수적 장치가 된다. 하지만 설득력을 갖춘 훌륭한 논증인지를 따지는 평가에서 도식이나 그림은 이해를 돕기 위한 부수적 장치가 아니라 이해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