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역사 10. 세속화 과정과 동양의 자유 개념 2

착한왕 이상하 2012. 7. 6. 00:26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세 관점 중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다. 그 관점의 근간을 유지한 채 우열 구분의 관점과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을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수정할 수 있다. 이를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라 명명했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이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한 내용적 분리 가능성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약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과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으로 나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약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을 전제한다는 해석에 근거한 입장이다. 즉,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을 받아들여도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은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하다는 것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따르면,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인간과 동물 및 사물의 가치 차이’를 전제한다고 해석할 필요는 없다. 그러한 가치 차이를 전제한 인간 중심 사상은 단지 인간의 입장에서 도덕성을 정당화하려고 할 때 표면화되는 것일 뿐, 반드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논리적으로 전제된 것은 아니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대한 두 입장 중 어떤 것을 택하든,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인간의 이상이 나타나기는 힘들다.

 

•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약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따를 때, 인간과 동물 및 사물의 가치 차이를 전제하는 인간 중심 사상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위협받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차이에 근거한 자연의 고정된 위계질서가 반영된 사회만이 조화롭다고 전제하고, 이를 바탕으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을 내용적으로 결합하는 사고방식은 부정된다. 반면에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따를 때, 인간 중심 사상이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전제된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 어떤 경우든, 개인은 관습 및 사회ㆍ문화적 가치로 구성된 인간관계의 전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존재로 간주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따르는 경우에도, 인간과 동물의 가치 차이를 전제하는 사고방식만이 부정될 뿐, 개인은 여전히 관계에 의존적인 사회적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의 근간을 유지한 채 그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이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따라서 ‘관계에서 자유로운 개인 개념’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나오기는 힘들다. 오히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생성되는 과정일 것이다.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할 때, ‘누구’는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의 ‘인간’을 뜻하지 않는다.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은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인간 존재가 다른 모든 것에 의존한다는 것’을 뜻한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여기서 ‘인간’은 ‘개인’이 아니라 ‘이(理)가 구현된 인간 본성’에 가깝다. 이는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개인의 권리나 인권을 보장해주는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 땅의 실학자들 중에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을 인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이 땅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는 경우,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 즉 이상화된 개인 개념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와 같은 것이 지식인들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그 과정은 자유 개념을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와 연관시키는 것을 자연스럽게 보는 방식으로 발전하기 힘들다. 이는 다음 논증에서 분명해진다.

 

•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의 핵심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인간 중심 사상을 전제하지 않는다고 인식한 실학자들이 있었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은 그러한 인식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입장이다.

• 서양의 경우, ‘인간의 천사화 계획’으로 상징 가능한 인간 중심 사상이 강화되면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 개념이 정착하고 강화되었다. 그러한 이상화된 개인 개념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는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도 인간만의 특징을 갖는 것으로 여기도록 해주었다. 더 나아가 생존을 위한 능력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리’ 개념과 연관시키는 사고방식을 자극했다.

• 어떤 선택 행위가 문제의 상황에 합당하다고 여겨지는 판단에 근거하고, 다른 사람의 강요 없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일상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규정될 수 있다. 중심과 주변의 내용적 비정합성을 알아채고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인식한 이 땅의 실학자들도 ‘일상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이러한 규정 방식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다만, 자율적이고 합리적 개인의 이상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 개념은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에게 그러한 ‘선택의 자유’는 단지 ‘일상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선택’을 ‘자율적이고 합리적 개인에 근거해 이상화시킨 것’으로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관계의 의존적이지 않은 자율적 개인의 이상’은 ‘강요 없이 이루어진 자발적 선택 행위를 이상화시킨 것’으로, 그리고 ‘행위 결과의 정확한 예측과 관련된 합리성의 이상’은 ‘문제의 상황에 합당한 판단 능력’을 이상화시킨 것으로 파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 서양의 세속화 과정의 핵심은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다. 이 땅에도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있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과 비교해볼 만한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을 인식한 지식인들의 수적 증가가 그 과정을 발생시킨 요인으로 간주한다면, 그 과정의 첫 단계는 ‘인간과 동물 및 사물의 가치 차이를 전제하는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는 단계’일 것이다. 그러한 차이를 상대화하여 자연의 고정된 위계질서를 부정하는 사고방식은 이 땅의 실학자들 글 곳곳에 반영되어 있다.

• 이 땅에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의 첫 단계가 인간 중심 사상의 약화 과정이라면,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를 자유 개념과 연관시키는 사고방식이 나타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공통점을 강조함으로써 인간 중심 사상을 약화시키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과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그 형성 배경의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내용의 측면에서도 다르다. 하지만 그 둘은 인간과 동물의 가치 차이를 전제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한 가치 차이의 인정 유무는 생존과 관련된 일상 활동에 의해 결정될 성격을 갖지 않는다. 그러한 차이의 인정 유무는 일상 활동을 해석하는 관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경우, 근대에 접어들면서 인간과 동물의 가치 차이에 근거해 생존 영역을 해석하는 사고방식이 강화되었다. 인간 중심 사상은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러한 개인의 이상에 근거해 일상적 의미의 자유로운 선택 개념을 이상화시킬 수 있었다. 기능적 측면에서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에도 있었다면, 그것의 핵심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인간 중심 사상의 약화와 함께 시작된다면,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에서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을 이끌어내기는 힘들다. 따라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인식한 이 땅의 선각자들이 ‘일상적 의미에서의 자유로운 선택’ 개념을 받아들여도,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에 근거해 그 개념을 이상화시킨 서양의 선택의 자유 개념’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때 다음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은 강화된다.

 

• 서양의 경우,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 개념을 둘러싼 논쟁은 사회의 구조적 분화와 함께 확대되었다.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천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으로 대표되는 그러한 논쟁을 거쳐 개인의 선택의 자유는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를 허용하는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기능적 측면에서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하는 것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그것의 핵심은 선택의 자유 개념이 이러한 방식으로 확대되는 과정일 수는 없다. 다만 이 땅의 세속화 과정도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 어떤 정치적 이념이나 철학적 이론과 무관하게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를 당연하게 여길 수 있도록 발전했을 것이다.

 

이미 설명했듯이,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 개념 자체가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논리적 전제와 같은 것은 아니다.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는 그러한 선택의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주의를 둘러싼 논쟁을 거쳐 나타났고, 또 그러한 논쟁은 사회의 구조적 분화를 수반한 세속화 과정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위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이 땅의 세속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방식은 서양과는 달라야 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이려면, 먼저 다음의 문제를 다루어야 한다.

 

• 세속화 과정을 단순하게 ‘X’에서 ‘Y’가 나타나는 과정이라고 해보자. 자유 개념과 관련해 서양의 경우, ‘X’를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로, 그리고 ‘Y’를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로 규정할 수 있다. ‘Y’는 반드시 ‘X’를 논리적으로 전제하는 것이 아니며, ‘X’의 의미론적 확장도 아니다. 이는 서양의 세속화 과정을 분석할 때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기능적 측면에서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것이 이 땅에 있었다면, 그것의 ‘Y’는 서양과 마찬가지로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되어야 타당하지만, ‘X’는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의 이상에 근거한 선택의 자유’와 같은 것이 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가상의 역사로 구성해 볼 이 땅의 세속화 과정에서 그 ‘X’는 무엇인가? 또 그러한 ‘X’는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이제 위 문제에 대해 답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