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역사 12. 세속화 과정과 동양적 자유 개념 4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구조)

착한왕 이상하 2012. 9. 24. 01:15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단순한 방법 중 하나는 ‘현실 수긍 여부에 대한 상황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현실’은 일반적으로 ‘개인이 처한 상황 인식의 대상’을 뜻한다. 이러한 현실의 의미를 폭 넓게 해석하는 경우, ‘현실’은 ‘개인이 처한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와 다르지 않다.

 

현실에 대한 평가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근거한다. 그 첫 번째 요인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 그 자체이다. 그 두 번째 요인은 그러한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로서의 현실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를 명확히 규정하기 힘들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상황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가치관과 배경 지식에 근거한 현실에 대해 반응하는 것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규정 방식이 갖는 애매모호함은 종종 자신이 원하는 것에 의해 스스로에게 인식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자신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주변에 국한된 것에서부터 사회 전체 구조에 이르기까지 폭 넓게 해석된다. 따라서 현실에 대한 평가 방식으로서의 현실 수긍 여부는 향후 진로 여부에 대한 판단과 같은 구체적 상황에서부터 사회 구조 전체에 대한 판단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스펙트럼을 이루게 된다. 이 때문에, 실제 현실 수긍 여부는 현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로 엄격히 이분되지 않는다. 또 현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비교해 ‘어느 정도 긍정적 평가’를 뜻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러한 논조는 현실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도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 수긍 여부 방식을 현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 문제란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 개념이 어떻게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에 대한 씨앗 개념에 부과된 두 조건’을 만족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구조 및 그 분류 방식은 다음과 같다.

 

(i) 자신이 원하는 것을 현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에 비추어 현실에 대한 만족 수준을 고려한다. 이는 곧 자신이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 차이가 크면 클수록 현실에 대한 만족 수준은 낮아진다. 만약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원하는 것이 사회 전체 상태와 관련된 경우라면, 현실에 대한 만족 수준은 자신이 원하는 사회 상태의 그림과 현실 사이의 차이에 의해 평가된다.

(ii) 현실에 대한 만족 수준이 높으면 높을수록 현실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으로 판단된다. 반대로 그러한 만족 수준이 낮으면 낮을수록 현실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으로 판단된다.

(iii) 현실에 대한 이러한 평가 방식에서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이때 ‘현실’은 ‘나’와의 대화 대상이 되기 때문에,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결정’보다는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의사 결정’이라는 용어를 선호한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주제에 대한 담론을 거친 결정에 대해서는 ‘의사 결정’이라는 표현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iv) 현실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 여부에 근거해 어떤 구체적 사안을 결정한다고 해 보자. 그러한 결정이 타인의 강요나 억압에 종속되지 않은 경우, 그 결정은 자발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때 자발적이라는 것은 판단에서 타인의 영향을 받거나 심지어 타인의 의견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즉, 자발적이라는 것이 무비판적 판단에 대비되거나 반대되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v)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얼마나 현실 속에서 실현 가능한가라는 물음에 의존적이다. 반면에 현실 수긍 여부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차이 정도에 의해 판단된다. 이 때문에, 현실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평가 각각에 반드시 대응되는 결정 방식들이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vi)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류 가능하다. 현실에 대한 평가가 긍정적으로 판단된 경우, 그 판단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은 ‘높은 만족 수준을 지향하는 결정’과 ‘적정 만족 수준을 지향하는 결정’으로 나뉜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평가가 부정적으로 판단된 경우, 그 판단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은 크게 ‘타협적 결정’과 ‘비타협적 결정’으로 나뉜다. ‘타협적 결정’은 다시 ‘능동적 결정’과 ‘수동적 결정’으로 나뉘며, ‘비타협적 결정’은 ‘세상을 버리는 결정’과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결정’으로 나뉜다.

 

위에서 (vi)는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분류 방식과 관련을 맺는다. (i)~(v)는 그러한 의사 결정의 구조와 관련을 맺는다. (i)~(v)는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의사 결정이 사회와 분리된 개념과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음을 잘 보여 주며, (vi)는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이 땅에서 현대적인 것의 특징으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이 서양의 역사적 맥락과는 다를 수밖에 없음을 잘 보여 준다. 이 두 가지를 차례대로 살펴보자.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구조 (i)~(v)에서 (i)~(iii)은 주로 현실에 대한 긍정적 평가 혹은 부정적 평가에 관한 것이다. 그러한 평가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간극 정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반면에 (iv)~(v)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한지에 대한 판단에 따른 결정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의사 결정 구조는 ‘자신이 원하는 것에 대해 신중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는 일상적 영역’, 특히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를 배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의사 결정 구조로서의 자유를 논할 때,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는 핵심 주제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영역의 선택은 두 대안을 놓고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욱이 생존 혹은 사적 영역의 자유로운 선택을 철학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가정된 ‘서양 근대의 이상화된 합리적 개인’이나 ‘사회와 분리된 개인’과 같은 개념은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를 논할 때 전제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서양 근대사를 장식했던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천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을 둘러싼 논쟁과 같은 것도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을 논하는 경우에는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수 없다. 논쟁은 ‘이상화된 합리적 개인’이나 ‘사회와 분리된 개인’ 개념에 근거한 철학적 이론에 대한 지적 반응으로 나타난 측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구조에서 ‘자아’는 인간관계와 무관하게 미리 주어진 것 혹은 타고난 정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자아는 ‘현실과 원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는 존재’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단의 영향을 받지 않는 ‘순수한 개인’을 가정하고 그러한 개인들의 계약이나 속성으로 사회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은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구조’에서 통용되기 힘들다. 그러한 구조에서 필요한 개인 개념은 현실과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하며 자신의 삶의 방향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존재로 개인을 규정해 주는 것이어야 하며, 이때 개인에게 필요한 합리적 능력은 주어진 상황에 적응하거나 주어진 상황을 특정 목적에 부합하도록 변통시키는 능력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되는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 즉 현실은 의사 결정에서 고려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현실의 복잡한 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개인은 없으며, 또한 그 관계에 일방적으로 종속된 개인도 없다.

 

현실을 하나의 공간에 유비하는 경우, 개인은 현실 전체 공간의 부분이 된다. 개인은 현실의 관계망에 의존적이며, 사회 상태는 현실 속 부분들인 개인들의 움직임에 의해 변화한다. 이때 생존 영역의 선택 행위는 삶의 방향과 관련된 결정으로서의 자유를 논할 때 핵심이 될 수 없다. 그러나 생존 영역은 모두를 가급적 자유롭게 하겠다는 정책을 짤 때에는 더욱 중요한 요인으로 간주된다. 왜냐하면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를 모두에게 보장하려는 경우, 생존권의 보장 없이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 힘들다는 것은 모두에게 해당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받아들이면,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 개념은 벌린의 ‘적극적 자유 개념’과 유사한 측면을 띤다. 벌린의 적극적 자유 개념을 소박하게 해석하면. 그것은 ‘누구나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을 무시한 채 이 두 개념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 것은 적절하지 않으며, 사대주의적 발상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른 지역의 역사에서 발생한 맥락에 이 땅의 사건들을 묻어 버리는 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양의 세속화 과정과 자유 개념’을 논하는 곳에서 살펴보았듯이, 그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생존 영역을 벗어나 사회의 여러 영역을 가로지르는 선택 방식으로 확대되었다. 주로 생존 영역과 관련해 이해되었던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천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이 공존하는 가운데, 사회의 계층 분화와 함께 사회 설계의 참여를 보장해 주는 자유 개념의 필요성이 확대되었다. ‘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다양한 가치 체계를 함축한 사회의 여러 영역마저도 선택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뜻한다. 이렇게 생존 영역에 국한된 선택의 자유가 사회 영역 가로지르기 선택의 방식으로 확대된 과정을 벌린은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의 이행’이라는 상징적 표현을 빌려 묘사했다. 그런데 그러한 표현을 차용해 이 땅의 역사를 해석하는 경우에도, ‘소극적’, ‘적극적’이라는 수식어는 서양 역사의 맥락과는 다른 방식의 상징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을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에 대한 이 땅의 씨앗 개념으로 잡는 경우, 그러한 의사 결정은 애시 당초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신유학의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시대정신처럼 기능했던 과거로 돌아가 보자. 그러한 구분 맥락은 엄격한 신분제를 정당화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현실이라는 사회 상태를 하나의 공간에 유비할 때, 현실 공간 속의 부분인 개인의 생존 영역은 자신의 신분과 관련된 영역의 부분 집합처럼 취급될 수 있다. 자신의 신분과 관련된 영역 내에서 생존을 위한 선택은 보장되지만, 이것은 동양적 자유 개념의 논하는 데 핵심이 될 수 없다. 그 핵심은 자신이 원하는 것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통해 현실 공간 속에서 자신의 입지와 나아갈 길을 찾는 것이며,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 개념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그런데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시대정신처럼 기능했던 과거 시절, 현실 공간 내에서 개인의 이동은 신분제의 장벽으로 인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러한 시절의 자유에 대해 ‘소극적’이라는 상징어를 붙여 볼 수 있다. 따라서 ‘적극적’이라는 상징어를 붙여 볼 수 있는 자유 개념은 ‘신분제의 철폐로 개인의 공간 이동이 사회의 특정 영역을 벗어나 여러 영역을 가로지를 수 있는 경우’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 비록 가상의 역사이기는 하지만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의 첫 단계는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규정했었다. 이때 자유 개념과 관련해 그 과정은 다음과 같은 도식을 빌려 나타낼 수 있다. 

 

 

 

위 도식에서 개인을 포함한 작은 원은 개인의 생존 영역을 나타낸다. 개인의 생존 영역을 포함한 원은 ‘개인의 의사 결정에 따른 삶의 방향성을 제한하는 범위’를 뜻한다. ‘소극적 의미에서의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경우, 생존을 위한 수단을 강구하는 방법마저도 개인의 신분을 뜻하는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 원하는 것도 그러한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개인이 정할 수 있는 삶의 방향성도 그러한 영역에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은 ‘적극적 의미에서의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개인의 생존 영역을 포함한 원을 점 선으로 처리한 것이다. 위 도식의 의미는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분류 방식인 (vi)을 분석할 때 더욱 분명해 진다. 아울러 그러한 의사 결정 과정을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에 대한 이 땅의 씨앗 개념으로 간주할 수 있는 이유도 더욱 분명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