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의 역사 14. 유교의 변통 가능성에 근거한 이 땅의 세속화 과정 1 (윤곽)

착한왕 이상하 2012. 10. 18. 05:45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신유학에 함축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갖는 내용적 비정합성’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 인식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세 가지 관점들이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함을 알아채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적 분리 가능성은 약한 의미와 강한 의미로 나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약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따르면, 그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은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하다.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자연의 위계질서가 반영된 사회만이 조화롭다고 전제하지 않는 경우,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은 ‘우열 구분의 관점’이 반드시 내용적으로 연결될 필요가 없다. 이때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도 그 정당성을 잃어버린다. 그 관점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을 결합한 것을 사회에 투영시켜 정당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에 따르면,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반드시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 즉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존재로 인간을 규정하는 사상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상은 단지 인간의 관점에서 도덕성을 설명한 것을 확대 해석한 것일 뿐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을 구성하는 핵심 전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의 위계질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인간, 동식물, 사물 중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상대화된다. 이 때문에, 인간을 중심으로 한 자연의 위계질서를 가정하고 그 위계질서가 반영된 사회만이 조화롭다는 주장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따라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우열 구분의 관점과 내용적으로 연결될 필요성은 없어진다. 자연의 위계질서가 반영된 사회만이 조화롭다는 전제 아래, 두 관점은 내용적으로 연결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그 두 관점을 결합한 것을 사회에 투영시켜 얻어진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도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을 인식한 사람들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유교의 변통 가능성에 근거한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을 자유 개념에 국한해 구성해 본다고 하자. 이 경우,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전 절에서 살펴보았듯이 다음과 같다.

 

•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에 대한 씨앗 개념인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이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로 확대되는 과정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세속화된 사회의 특징을 대표하게 되는 것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과정의 단순한 확장이거나 직접적인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 땅의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될 조짐은 있었지만 그 가능성은 자유 개념이 적극적 의미에서 해석될 정도로 실현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땅의 현실은 특정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사회 상태, 즉 세속화된 사회 상태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과정은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대한 필연적 조건이 아니다.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서는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유교와 같은 특정 이념에 의해서만 정당화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자유는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실제적 특징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때 ‘유교의 변통 가능성에 근거한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다음의 단계들로 구성된 과정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 [단계 1. 유교의 변통 가능성에 근거한 인간 중심 사상의 약화 조짐]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을 규정한 방식을 떠 올려 보자. 그것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갖는 내용적 비정합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의 근간을 유지한 채 신분제를 정당화하지 않는 방식의 변통 과정’이다. 이 땅의 과거 역사에는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내용적 분리 가능성, 그것도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을 인식한 사람들이 있었다. 따라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어렴풋이 인식한 사람들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존재로 인간을 규정하는 방식이 인의예지(仁義禮智)로 대표되는 인간 도덕성을 설명할 때 필요할 뿐, 공자가 생각한 원래 유교 사상의 핵심은 아니라는 그들의 입장에 의해 뒷받침된다. 따라서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은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 때문에, 인간 중심 사상이 강화되면서 시작된 서양의 세속화 과정을 기준으로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을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형성된 근대 선택의 자유 개념이 확대된 서양의 방식의 세속화 과정을 기준으로 이 땅의 역사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그런 방식의 세속화 과정을 기준으로만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보장되는 과정을 논해서는 안 된다.

 

• [단계 2. 유교의 변통 가능성 인식에 근거한 인간 중심 사상의 약화 조짐]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우주뿐만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 그리고 사회 내부에 걸쳐 우열 구분이 있다는 관점도 흔들리게 된다. 우주 전체에 걸쳐 우열 구분의 관점이 약화되는 과정의 흔적은 이 땅의 역사에 남아 있다.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간주하는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전제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갖는 내용적 비정합성과 이에 근거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인식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입장에 의하면, 인간, 동식물, 사물 중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가에 따라 우주의 중심은 상대화된다. 그들은 그러한 상대화가 신유학에서는 허용되기 힘들지 모르지만 공자가 생각한 원래의 유교 교리에는 반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가나 민족들 사이의 관계와 연관시켜 우열 구분의 관점이 약화되는 조짐도 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 소중화 사상에 맞선 조선 후기 실학자들은 중국 중심 사상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이다. 중국적인 것을 모든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인 중국 중심 사관이나, 명이 망한 후 중국적인 것을 이어 받은 나라로 조선을 간주한 소중화 사상에는 국가와 민족들 사이에도 우열 구분이 있다는 관점이 깔려 있다. 우열 구분의 관점이 사회 내부에서 약해지는 조짐도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 18세기 홍대용, 19세기 최한기처럼 기존의 신분제를 직분제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인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관계의 중심일 수 있다’는 혹은 ‘누구나 사회 설계 참여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고 실천한 인물은 없었다.

 

[단계 3. 신분제가 폐지되는 단계]

[단계 1]과 [단계 2]는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 그 두 단계는 역사적 사실이다. 반면에 [단계 1]과 [단계 2]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신분제가 폐지되는 [단계 3]으로 이어졌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신분제가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된 것은 그러한 실현 과정의 연장선에 서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계 3]에 도달하게 되면,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은 우열 구분의 관점과 함께 더 이상 유교에 기대어 정당화될 수 없게 된다. 또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 개념이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 의미에서 해석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단계 1]에서 [단계 3]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땅의 실제 역사는 이 조건을 만족하지 않음을 보게 될 것이다.

 

[단계 4.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도달하는 단계]

유교의 변통 가능성에 근거해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을 ‘자유’ 개념에 국한해 논하는 경우,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잠재적으로 보장되는 현실’은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내재적 속성과 같은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이때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반드시 유교의 가치 체계와 같은 것에 근거해 정당화될 필요는 없다. [단계 1]과 [단계 2]가 내용적 연관성을 갖고 [단계 3]으로 이어진 오랜 과정이 이 땅의 역사에 있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면, [단계 1]에서 [단계 4]로 이어지는 과정은 실제 이 땅의 역사가 아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가상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알아 볼 것이다.

 

서양 역사에는 ‘세속화 과정’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진행된 과정이 있었다. 그 과정 때문에, 서양의 근대와 현대는 고대 및 중세와 연결성을 가지면서도 구분되는 독자성을 갖는 것이다. 또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는 방식은 적어도 서양에 국한해서는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 땅에도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만한 과정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하나의 역사를 구성해 보는 경우, 그 역사는 ‘가상의 역사’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단계 1]에서 [단계 4]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역사적 사실들만 바탕으로 하여 구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무종교인이 이를 알 때, 다음 장에서 다룰 ‘무종교인의 딜레마’라는 문제가 왜 문제인지 명확해 지고, 그 문제를 다루는 것이 민주주의의 진화를 논할 때 중요한 이유가 드러나며, 또한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이념보다 더 넓은 ‘세속화의 맥락’ 속에서 ‘민주주의의 진화’를 파악해야 하는 정당성도 확보된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에 근거해 이 땅의 세속화 과정을 구성할 때 그 구성은 부분적으로 가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 속에는 무종교인에게 중요한 또 다른 점이 숨어 있다. 그것은 ‘문화 비교의 관점에서 역사 읽기의 올바른 방법론에 대한 고민’이다. 그 고민은 ‘무종교인의 삶과 태도’를 논하는 부분에서 다루어질 것이다. 그 부분은 이 작업에서 우리가 마지막에 도달할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