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창조 신화와 자연의 역사 2. 6일 (수정)

착한왕 이상하 2009. 11. 24. 03:45

(2) 6

자연 환경은 태고로부터 인간에게 생존을 위해 적응해 나가야 하는 공간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공간은 인간에게 생활의 터전인 동시에 생존을 위협하는 변덕스러운 위험한 장소이기도 하였다. 자연 환경을 생존에 적합한 인공 환경으로 변형시켜줄 과학기술이 없었던 시절, 자연의 변화는 역사 담론의 주제가 되지 못했다. 반면, 특정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된 물음은 모든 지역에서 나타난다. 기록과 고증에 근거한 역사학이 출현하기 전에도 집단의 유래와 고유성을 간직하려는 노력은 영웅들의 일대기를 담은 전설과 신화 속에 간직되어 있다. 그러한 전설과 신화의 내용은 해당 집단이 처한 상황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었다.

 

일찍이 정착지에서 쫓겨나 여러 곳을 배회했던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업보를 원죄로 돌리고 죄를 사해주는 메시아 개념을 탄생시켰다. 예수를 메시아로 봐야하는가라는 주제는 항상 논쟁거리였지만, 적어도 아브라함에서 예수까지의 역사는 기록을 통해 그 진위여부를 평가해볼 수 있다. 반면에 아담에서 아브라함까지는 그렇지 않다.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성서 기록을 신성시하기 위해서는 창세기도 신성한 것으로 여겨져야 한다. 그런데 창세기의 은유는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에 비해 훨씬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를 갖고 있다.

 

신이 6일에 걸쳐 방대한 우주와 인간을 창조했다면, 그 6일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만약 그 6일의 시간이 신과 무관하게, 혹은 신 이전에 주어진 것이라면, 이것은 신의 전능함을 무색하게 만든다. 시간도 신의 창조 행위 이전에 전제된 것이라면, 전능함이라는 신의 속성이 퇴색하기 때문이다. 신은 이 세계보다 시간을 먼저 창조했을까? 시간은 단지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의식의 속성에 불과한 것인가? 아니면 신에게도 시간은 그저 주기적 변화를 측정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인가? 모세나 유대 랍비들은 시간을 둘러싼 문제를 진지하게 논하지 않았다. 정착지를 잃어버리고 떠돌아 다녀야만 했던 집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은 과거의 기억을 후대에 대물림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해당 집단의 특정 시기를 신성시하는 전략에 근거하기도 한다. 아담에서 아브라함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신성시하는 것은 집단 정체성 유지라는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창세기를 신성시하는 것은 유대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한 의미만 가질 뿐이다.

 

창세기의 6일은 기독교가 유럽에 정착한 이후 중세까지 6,000년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자연의 역사를 인류의 역사에 비해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전통이 굳어진 까닭에, 창세기의 6일을 파격적으로 늘려 해석해 보려는 동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을 수 없었다. 생성과 소멸을 끝없이 반복하는 무한 우주의 개념과 같은 것은 아예 논쟁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창세기의 6일을 6,000년으로 볼 증거가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성서 자체만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신학자 필로(Philo Judaeus)는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유대인으로서 성서 번역에 해박했던 필로는 우선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모순을 명백히 밝혔다.

 

• 신이 6일 동안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기록된 부분을 보면, 신은 동식물보다 먼저 시공간과 물질을 창조했다. 이러한 창조의 신이 인격신(人格神)으로 여겨질 이유는 없다. 반면에 아담을 창조한 것으로 기록된 부분을 보면, 신은 아담 이후에 동식물과 물질을 창조했다. 아담에게 신의 능력 일부가 전가된 까닭에, 아담의 창조 기록과 관련된 신은 인격신으로 여겨질 수 있다.

 

창세기의 이러한 내용적 비정합성은 하나를 받아들이면 다른 하나를 반드시 부정해야만 하는 논리적 모순을 뜻하지는 않는다. 신이 전능하다면, 신은 일순간에 모든 것을 동시에 창조할 수 있는 존재이다. 따라서 우주의 창조 기록은 단지 논리적 순서와 관련된 것으로, 그리고 아담의 창조 기록은 존재하는 것들의 위계질서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창세기의 내용적 비정합성을 해결하는 방식은 다음 장에서 살펴볼 존재 사슬 속에 반영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를 거점으로 성서가 번역되어 확장될 무렵, 아담의 창조에 대한 기록은 신의 진정한 뜻을 담고 있지 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오로지 우주 창조의 기록만이 신의 진정한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필로는 이러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고대 신학자라 할 수 있다. 그는 창세기를 모세의 작품으로 봤다. 모세는 인간이다. 따라서 모세가 신의 계시를 받았더라도 그 뜻을 제대로 전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필로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성서에서 신의 뜻을 발견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서의 기록을 문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이를 알기 위해 다음 논증을 살펴보자.

 

• 전능한 유일한 존재는 신인 까닭에, 모세는 전능하지 않다.

• 모세가 비록 신의 계시를 받았더라도 신의 뜻을 있는 그대로 글자로 옮길 수는 없었다.

• 성서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믿어야 진정한 신앙을 가진 것이며, 죽어서 천당에 갈 수 있다고 신앙을 강요하는 광신도가 있다. 그는 그러한 믿음의 유무가 사후 심판의 기준이라고 주장한다.

• 광신도는 신의 계시를 받은 모세가 아니므로 성서에 기록된 신의 뜻을 제대로 알 리가 없다. 또한 한낱 인간인 광신도는 사후 심판의 기준을 정확히 알 리가 없다.

• 따라서 광신도가 강조하는 신앙이 진정한 신앙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위 논증은 신의 계시를 받은 모세조차 신의 뜻을 완벽히 글자로 전할 수 없었던, 까닭에 성서의 기록을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신앙에 전제된 것은 아님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필로는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현재 대다수 성서 해석자들은 창세기의 6일이 유대 민족의 안식일(安息日) 전통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해석은 성서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근거한 것이다. 필로가 창세기의 기록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을 신앙의 전제 조건으로 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는 현대의 문화 인류학적 관점에서 성서를 이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고대 신학을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로는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했을까?

 

창세기의 수자 6에 주목해 보자. 6은 셈수의 처음 세 수를 합한 것(1+2+3=6)이자, 동시에 곱한 것(1×2×3=6)이기도 하다. 또 6은 자신의 인수들로 합한 것과 곱한 것이 일치하는 수이다. 필로는 6의 이러한 특별함이 신성(神聖)을, 특히 신의 ‘충만성(plenitude)’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는 짝수가 여성성을, 홀수가 남성성을 나타낸다고 여겼다. 그에게 2와 3의 곱은 서로 상반된 것의 결합에 의한 자연의 생산성을 상징한다. 필로에게 그러한 생산성의 원천은 자연 자체가 아니라 신이다.

 

필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면, 창세기는 신성을 상징하는 은유의 체계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렇게 창세기를 은유의 체계로 간주하는 것은 고대를 거쳐 중세에 이르기까지 성서 해석의 전통에서 지배적 관점이 되었다. 창세기를 은유 체계로 여길 때 창세기의 6일은 6초도, 6만년도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6일은 기독교인에게는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신성을 상징하는 것이어야 했다. 즉, 6일은 전지전능함이라는 신의 속성에 근거하여 자연의 조화와 충만성을 상징해야 한다. 필로는 신이 우주의 삼라만상을 동시에 창조했다고 주장했다. 신이 우주를 창조하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입장도 있었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정착한 이후, 창세기의 6일은 6,000년 정도로 해석되었다.

 

 

 - 필로 -

 

그러나 신의 계시를 직접 받았다는 모세조차 신의 뜻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수 없었다면, 6일에 대한 여러 해석 중 어떤 것이 신성을 상징하는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따라서 창세기를 신성을 상징하는 은유 체계로 보는 경우에도, 누구의 해석이 올바른 것인지는 인간으로서는 판단할 수 없다는 결론이 성립한다. 이 때문에, 창세기를 은유 체계로 보는 것은 성서 해석을 둘러싼 여러 입장이 공존할 수 있게 해준 토대이기도 했다.

 

• 우주를 창조한 신의 뜻을 창세기의 기록에서 직접 찾을 수 없다면,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

 

서양 사상사에서 이에 대한 답 중 하나는 자연에서 신의 뜻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로가 살았던 시대에도 비교해부학적 방법에 근거한 고생물학의 지식이 축적되어 있었다면, 필로도 창세기를 다르게 해석했을지 모른다. 자연의 과거 모습을 추적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이 부재한 상태에서 고대 사상가들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자연을 합리적 분석의 대상이 아니라 동경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즉, 자연이 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일지라도, 신의 자식인 인간만은 천상을 바라보며 신성을 느끼고 신을 찬양할 수 있는 존재이다. 자연은 또한 천상을 바라보며 신을 찬양하는 인간 존재를 위해 마련된 것이기도 하다. 창세기를 신성을 상징하는 은유 체계로 본 대다수는 이를 부정하면 신에 의해 특별히 창조된 인간의 존재 가치도 사장된다고 여겼다. 그들은 인간을 위해 미리 마련된 자연이라는 개념을 가졌고, 그 결과 자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비해 사소한 것이라는 관점이 득세하게 되었다.

 

• 자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에 비해 사소하다. 질적 상태 변화의 비순환적 과정에 근거한 자연의 역사가 있다면, 그 역사는 인간 존재를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인류의 역사보다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