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K 비판적 사고/GCTC 청소년 교육

GCTC 청소년 토론: 두개골 천공술

착한왕 이상하 2013. 1. 9. 23:23

* 다음 토론 자료를 저자 이상하의 허락 없이 변형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

 

* 두개골 천공술

 

프랑스의 외과 의사 폴 브로카(Paul Broca, 1824~1880)는 실어증이 뇌의 특정 부분의 기능 이상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인물이다. 좌측 전두엽에 위치한 그 부분은 ‘브로카 영역’이라 불린다. 브로카 영역의 발견은 인간의 여러 인지 기능이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는 ‘뇌 기능 역할 분담설’로 발달하게 된다. 하지만 브로카의 관심은 뇌 기능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인류의 기원을 밝히고 인류 역사의 발달 과정을 탐구하는 인류학에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사실 인류학에 대한 그의 관심사는 뇌 기능 연구에 대한 관심보다 앞선 것이었다. 1858년 프랑스 인류학회가 설립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도 브로카였다. 인류학과 관련해 브로카가 발견한 것 중 하나는 정교한 도구를 사용해 두개골에 구멍을 내는 천공술(trepanation)이 신석기 시대부터 여러 문명권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된다는 사실이다.

 

남미를 탐사하던 미국의 고고학자 스퀴어(Ephraim George Squier, 1821~1888)는 페루 지역의 유물을 수집하던 젠티노(Seora Zentino) 여사로부터 흥미로운 두개골을 선물받았다. 두 개골에는 1/2인치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다. 스퀴어는 그 구멍이 사고가 아니라 정교한 외과술에 기인한 것으로 보고 학회에 발표했다. 그러나 두 가지 이유에서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첫째, 당시 만연한 인종 차별 관점으로 인해 마야 문명이 정교한 외과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분위기가 학계에 조성되어 있지 않았다. 둘째, 당시 개두술에서 살아남은 환자 비율이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그 비율이 낮은 이유는 당시 외과술 도구나 방법이 뒤떨어 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불결한 상태의 병원 환경이 그 이유 중 하나였다. 또 다른 이유는 개두술을 받은 환자들 대부분이 사고로 인해 치명적인 뇌 손상을 입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장이 학계에서 받아들여 지지 않자, 스퀴어는 정교하게 구멍이 난 두개골을 브로카에게 보냈다.

 

브로카는 스퀴어에게 받은 두개골을 조사한 결과, 스퀴어와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두개골의 구멍은 외과술에 의한 것이며, 두개골 천공술을 받은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브로카의 학적 권위에도 불구하고 그의 결론은 학계에 수용되지 않았다. 때는 1876년이었다. 브로카가 스퀴어의 두개골을 학계에 보고한지 7년이 지나, 프랑스 중부 지역 신석기 시대 무덤에서 구멍이 난 두개골들이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인종 차별 관점의 선입관을 버리고 그 두개골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후 남미, 이집트, 중국 등 세계 각지에서 천공술을 받은 흔적의 두개골들이 발견되었다. 심지어 케냐 등 일부 아프리카 지역의 부족들은 편두통을 없앨 목적으로 여전히 두개골 천공술을 사용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 인해 외과술의 역사는 훨씬 길어졌다.

 

1. 위 글에 근거한 적절한 판단에 대해서는 ‘O’를, 그리고 적절하지 않은 판단에 대해서는 ‘X’를 표기하시오.

(1) 두개골 천공술에 사용된 도구들 중에는 돌로 된 것도 있었을 것이야. ( )

(2) 고대 두개골 천공술이 가장 발달한 지역은 잉카 문명이 번성한 페루 지역이었다. ( )

(3) 고대에 두개골 천공술이 종종 행해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은 브로카였다. ( )

(4) 스퀴어가 살았던 당시의 병원 시설은 불결한 경우가 많았다. ( )

(5) 스퀴어가 살았던 당시 개두술은 주로 뇌손상을 입은 환자를 상대로 행해졌다.

(6) 고대에는 뇌 손상을 치료하기 위해 두개골 천공술을 시행했다. ( )

(7) 두개골 천공술을 외과술의 역사에 집어넣는다면, 그 역사는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

(8) 학적 권위를 갖는 사람의 의견이 과학 공동체에서 수용되지 않는 경우, 그 이유는 선입관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어. ( )

 

 

2. 다음 글을 읽고 화타가 외과술이 발달한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온 인도인이라는 가설을 옹호해 본다면?

 

• 한의학에서 인체의 기능과 정신 활동을 주관하는 기관은 심장으로 간주되었다. 인체를 나라에 유비할 때 심장은 군주에 유비되었다. 한의학과 관련된 고대 의서들을 살펴보면, 뇌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두개골 천공술 등 외과술을 행한 인물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 실례로 화타의 의술을 들 수 있다. 그가 두개골 천공술뿐만 아니라 마취산을 이용해 외과술을 행했다는 사실은 <삼국지연의>에도 나온다.

 

 

3. 다음 그림은 두개골에 난 천공의 모양이다. 스퀴어가 받은 두개골의 천공 모양은 외과술 도구가 비약적으로 발달하지 않은 시절의 것이다. 그렇다고 돌만 가지고 천공을 만든 신석기 시절의 것도 아니다. 다음 그림에서 스퀴어가 받은 두개골의 천공 모양을 추리해 본다면?

 

 

- Lisowski, F.P.(1967), “Prehistoric & Early Historic Trepanation” in Brothwell, D. & Sandison, A.T.(Eds.), Diseases in Antiquity, Charles C. Thomas, Springfield, IL. -

 

 

4. [물음 3]의 그림에서 3번 모양의 구멍을 만들기 위한 외과술 도구를 디자인해 본다면?

 

 

5. 위 글에서 개두술과 천공술을 정의해 보고, 그 둘의 관계를 추리해 본다면?

 

 

 

* 아래의 두 사진은 각각 스퀴어와 브로카의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