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가상과 실재 5. 사항유비를 통해 본 유교의 변통 가능성

착한왕 이상하 2013. 7. 18. 18:04

중심과 주변의 맥락의 핵심인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을 탈색시키면, 그 관점은 더 이상 우열 구분의 관점과 결합할 수 없게 된다. 이때 그 두 관점을 결합시켜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을 옹호하는 방식은 설 자리를 잃어버린다. 이렇게 되는 과정을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으로 규정했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면, 신분제는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다. 신분제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면, 신분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체제를 찾는 것’이 시대적 과업으로 떠오른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을 ‘우리만의 순수한 역사’라고 할 수 없다.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의 문화는 다른 지역의 문화와 영향을 주고받기 마련이게 때문이다. 하지만 각 지역의 역사적 변화에는 그 뼈대 혹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 땅에도 서양의 세속화 과정에 대응시켜 볼 수 있는 과정이 있었다고 가정하고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 보는 경우,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그 가상의 역사의 뼈대 혹은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따라온 사람에게 이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느 지역의 역사적 과정 HP의 핵심이 K라고 하자. K와 내용적으로 어울리기 힘든 것일수록 아무런 저항 없이 해당 지역에 흡수되기 힘들다. 이를 기준으로 하여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을 생각해 보면,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은 그 변통 가능성을 핵심으로 하는 가상의 역사에 흡수되기 힘들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사회와 분리된 합리적 개인을 가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의 형성과 유지를 논하는 방식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에서 고려하기 힘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자유 개념은 ‘상황을 초월해 이상화시킨 합리적 선택의 자유’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 공간 속에서 자신의 적소(適所)를 찾아감, 심지어 만들어감’이라는 은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으로서의 자유’이다. 이러한 동양적 자유 개념과 서양 근대를 장식한 자유 개념이 서로 배타적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님을 논했다. 다만 각 지역이 처한 상황의 다름으로 인해 사람들이 주목하게 되는 개념들이 다를 뿐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정치 체제는 크게 심성론, 도덕론, 방법론으로 구성된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과정에서 뜻을 지킬 수 있는 태도 등을 다루는 심성론, 사회에서 통용 가능한 세상의 그림과 그 실천 가능성 등을 다루는 도덕론의 개요는 앞서 언급했다. 신분제를 대체할 정치 체제를 찾고 사회에 정착시키는 방법론을 논할 때 다음을 전제할 것이다.

 

• 사회에서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역사적 과정을 통해 걸러진 세상의 그림은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을 것이다.

 

위 전제에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천적 입장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 속에 수용되기 힘들다’는 사실을 덧붙여 방법론의 측면에서 신분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체제에 대해 생각해 보려면, 그 정치론의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또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기 이전의 상태와 이후의 상태를 비교하기 위해 사항 유비의 세 가지 사고방식을 비교하는 가운데 그 가능성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신분제를 대체할 정치 체제는 방법론의 측면에서 다음과 같은 목적을 갖는다.

 

• 그 목적은 현실 공간 속에서 구성원들 스스로 적소를 찾아 가거나 만들어 나가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을 제도적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이때 ‘적소’는 ‘개인이 원하는 세상의 그림이 실현되는 것’을 반드시 전제하지는 않는다. 현실 수긍 여부가 현실과 개인이 원하는 세상의 그림 사이의 간격에 대한 상황 판단에 근거하기 때문에,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결과가 반드시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방식으로만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현실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세상을 버리는 비타협적 결정으로 끝날 수도 있다.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되는 개인에게 적소는 자신이 원하는 세상의 그림이 실현된 상태가 될 수 없다.

 

현실 공간은 교육, 경제, 정치, 문화 등의 여러 영역들과 직업군 및 소득 차이에 따른 여러 계층들이 복잡하게 뒤얽힌 공간이다. 그러한 영역 및 계층들이 중첩된 곳이 사회인 까닭에, ‘현실 공간’을 ‘사회라는 공간’으로 바꾸어 불러도 무방하다.

 

현실 공간은 ‘성장 중의 유기체’에 유비 가능하다. 유기체는 여러 기관들의 관계에 근거해 통일성(unity)을 보이는 체계이다. 유기체의 그러한 통일성을 설명하기 위한 필요조건은 각 기관의 속성을 아는 것이다. 그러한 속성만 안다고 기관과 기관 사이에 성립하는 관계성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각 기관의 속성을 아는 것은 유기체의 통일성을 규정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는 전체를 구성하는 기능 단위로서의 ‘부분의 내재성’과 ‘고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유기체 전체를 구성하는 기관은 전체 기능을 규정하는 하부 기능을 갖는 부분이다. 그런 부분들의 속성으로 환원 설명 불가능한 관계성에 근거한 전체에서 어느 기관이 떨어져 나가면, 그 전체는 온전히 유지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유기체 전체의 기관이라는 부분은 그 전체 속에 내재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전체에서 어느 기관을 분리한다는 것’은 전체의 통일성을 위해 필요한 그 부분의 ‘완전한 기능 상실’을 뜻한다. 손톱 일부를 잘라내는 것은 ‘전체에서 어느 기관을 분리한다는 것’의 사례가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손톱 일부를 잘라낸다고 손톱의 기능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분의 기능은 전체 속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체계 맥락에서 전체의 기능 단위로 규정되는 부분이 기관인 것이다. 이때 설명하기 어려운 점은 전체 대 부분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규정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관은 그것을 구성하는 하부 가능 단위들과 비교해 또 다른 하나의 전체로 파악될 수 있다. 이러한 전체 대 부분의 상대적 규정 방식에 의해 유기체는 계층화되어 있다. 실례로 특정 기관은 유기체 전체의 기능 단위이지만, 그 기관을 구성하는 부분이 유기체 전체의 직접적 기능 단위가 되지는 않는다. 전체 대 부분의 상대적 규정 방식 및 그 규정 방식에서 엿볼 수 있는 유기체의 계층화 등을 다루는 것은 논외로 한다. 그러한 계층화를 받아들이면, 각 기관은 유기체 전체에 의해 제한되어 있으면서도 전체의 형성에 필요한 고유한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한다. 실례로 심장의 기능은 혈액 순환 체계 속에서 의미를 갖지만, 심장은 그런 체계를 형성하기 위한 고유한 펌프 기능을 갖고 있다.

 

현실 공간을 유기체에 비유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 양쪽에서 발견되는 오래된 사고방식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특히 신분제를 바탕으로 한 군주제가 지배한 시절에 유행했다. 따라서 현실 공간을 유기체에 유비하는 것만 가지고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의 사회에 대해 논하기 힘들다. 이에 대한 이유를 명확히 해 보자.

 

교육, 경제, 정치, 문화 등 여러 영역들과 직업군 및 소득 차이에 따른 여러 계층들이 중첩된 현실 공간을 유기체에 비교하는 것은 다음의 사항 유비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 <첫 번째 사항 유비>

전체 유기체 : 기능 단위로서의 부분들 = 전체 현실 공간 : 영역과 계층들

 

위 유비를 반영하는 사고방식은 서양의 경우 하비(W. Harvey)의 혈액 순환설이 주목받을 무렵만 하더라도 정치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하비가 활동한 시기는 르네상스 말기와 근대 초기가 서로 겹치는 시기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 시기는 기계론이라는 자연 철학이 형성되는 시기였다. 모든 현상을 물질의 속성과 운동 변화만으로 설명하려는 동기를 가진 기계론은 유기체적 사고방식과 어울리기 힘든 측면을 갖고 있다. 기계론에는 전체를 부분의 속성으로 환원 가능한 대상으로 간주하는 관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하비는 정량적 실험 방법에 근거해 혈액 순환설을 주장했다. 당시 대부분의 기계론자들이 자연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정량적 실험을 강조했다는 사실을 들어 하비를 기계론 옹호자로 분류하는 것은 역사적 오류이다. 하비는 위 사항 유비를 반영하는 사고방식 중에서도 전체의 통합 원리가 특정 기관에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 관점은 위 사항 유비에 ‘우열 구분의 관점’을 더한 것이다. 이때 현실 공간을 유기체에 유비시키는 것에서 엄격한 위계질서를 가진 사회를 당연시 여기거나 정당화하려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인체를 주관하는 원리나 힘이 심장에 있다고 간주하고 인체에 사회를 유비시키는 사고방식은 그러한 태도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때 다음과 같은

 

• <두 번째 사항 유비>

유기체 : 심장 = 현실 공간 : 군주

 

위 두 번째 사항 유비에 따르면, 군주는 인체에 대응된 현실 공간을 통합하고 관리하는 존재로 규정된다. 유기체의 조화로운 상태는 심장에 깃든 통합의 원리에 따르는 방식으로 부분들의 관계가 실현된 상태이다. 나라는 군주의 뜻에 따라 신분 및 개인 간 관계가 실현된 경우 조화로운 것으로 여겨진다. 유기체와 현실 공간이라는 전체는 그것의 기능 단위인 부분들의 관계망에 근거한 현상이지만, 그것의 조화로운 상태와 조화롭지 못한 상태는 특정 부분의 원리나 힘을 기준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부분들의 속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전체 상태를 가정하면서도 조화와 부조화의 구분은 특정 부분을 기준으로 하는 사고방식이 위 두 번째 사항 유비에 깔려 있다.

 

군주의 뜻을 하늘과 연관짓는 것은 동서(東西)를 관통하는 오래된 사고방식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에서 ‘하늘의 뜻’은 우주를 창조한 것으로 가정된 초월적 존재 혹은 우주의 본성으로 규정되곤 했다. 이러한 규정 방식은 신분제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지닌 과거 정치론의 핵심이기도 하다. 군주의 뜻을 하늘과 연관시키는 것은 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띠고 있다. 이 때문에, 근대 이후의 정치론은 ‘세속적 정치론’이러고 불리기도 한다. 근대 이후의 정치론은 특정 정치 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종교적 교리에 기대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세속적 정치론이 탄생하는 과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고방식 중 하나는 기계론에 함축된 환원적 사고방식이었다. 모든 물리적 현상을 물질의 속성과 운동 변화만으로 설명하려는 사고방식을 사회라는 현실 공간에 확대시키는 경우, 현실 공간의 모든 현상은 개인의 속성에 근거해 설명 가능한 것으로 가정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 유비가 반영되어 있다.

 

• <세 번째 사항 유비>

부분의 속성으로 환원 설명 가능한 전체 : 부분 = 개인의 속성으로 환원 설명 가능한 현실 공간 : 개인

 

위 세 번째 사항 유비에서는 유기체론의 두 핵심인 ‘전체 속 부분의 내재성’과 ‘고유성’ 중에서도 ‘내재성’이 부정된다. 기능 단위로서의 부분의 관계성에 근거한 전체의 현상과 같은 것은 위 세 번째 사항 유비에서는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사항 유비와 달리, 세 번째 사항 유비에서는 첫째 항과 셋째 항은 각각 둘째 항과 넷째 항의 속성에 의해 수반되는 현상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세 번째 사항 유비를 반영한 사고방식에 의하면, 이상적인 개인은 사회에서 분리 가능한 존재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관계는 그런 개인의 속성으로 환원 설명 가능한 계약 등에 기인한 것으로 가정된다. 서양 근대 이후 유행한 세속적 정치론의 큰 줄기는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것이 첫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을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사항 유비의 부정이 첫 번째 사항 유비의 부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려면, 두 번째 사항 유비에 근거한 사고방식이 첫 번째 사항 유비에 근거한 사고방식을 전제하다고 가정해야 한다. 그러한 가정은 논리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다. 이 점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의 갈등이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의 교차 과정’ 속으로 흡수되기 전까지는 서양 지식인들에게 명백히 인식되지 않았다. 계몽주의가 형성된 시기는 고전적 이원론이 붕괴 직전에 다다른 시기였다. 고전적 이원론에 담긴 세 가지 이분법의 관점, 즉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을 이분하는 관점, 그리고 평신도와 성직자를 이분하는 관점은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에 따라 무리 없이 해석 가능하다. 그 세 가지 이분법의 관점에서 우주에서 사회에 걸친 우열 구분의 엄격한 위계질서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은 그러한 위계질서를 전제로 하여 신분제를 정당화하려는 경우에 자연스럽게 사용될 수 있다. 고전적 이원론의 이론적 정합성으로 인해 그것을 대체할 세계 이해 방식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기계론의 환원적 사고방식의 형성과 함께 유기체론 전반을 부정하려는 동기가 생겨났다. 그리고 기계론의 설명력이 갖는 한계가 점차 드러나면서 유기체론도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살펴본 역사적 전개 과정을 이 땅에 적용할 수 없다. 서양의 고전적 이원론과 달리, 동양의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은 하나의 정합적 체계를 이루지 않는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의 핵심인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을 탈색시키면, 그 구분 맥락의 또 다른 관점인 ‘우열 구분의 관점’과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현실 공간 속 개인의 이동 범위 및 방식과 관련된 동양적 자유 개념인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은 소극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적극적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이 때문에,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그러한 자유 개념이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로 해석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를 앞서 살펴본 첫 번째 사항 유비와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과 연관시켜 고민해 보면, 다음과 같은 그럴듯한 결론을 얻어낼 수 있다.

 

•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따르면, 그 어떤 인간도 ‘사회에서 분리 가능한 합리적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다. 현실 공간 속 실제 개인은 사회의 영역 및 계층들에 의존적인 존재이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이 세계 이해 방식으로 득세한 시절, 현실 공간 속 개인에게 특정 영역 및 계층은 감옥과 같은 것이었다. 영역 및 계층들이 엄격한 상하의 위계질서를 갖는 사회 상태는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정당화 가능하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경우,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의 핵심마저 완전히 부정하고 그것의 대체물을 찾는 과정이 ‘유교의 변통 가능성의 실현 과정’은 아니다. 관계에 의존적인 존재로 인간을 파악한다고 하여, 인간을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우주의 중심으로 여길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조화의 기준이 되는 중심 부분을 가정하는 두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에 첫 번째 사항 유비의 사고방식이 전제되어야 할 논리적 이유는 없다. 여기서 그 해석 방식이란 다름 아닌 사회 유지를 위해 신분제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을 정당화해 주는 방식이다.

 

이제 위 결론을 염두에 두고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기 이전의 상항과 실현된 상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해 볼 것이다. 그 비교 과정에서 사회의 영역들과 계층들 사이의 관계를 설정하는 방식들이 다루어질 것이다. 그 방식들이 가시화되면, 방법론적 측면에서 신분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론에 대한 윤곽을 잡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