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그 과정은 이제 다음과 같은 성향을 갖는 것으로 여겨진다.
• 첫째, 그 과정은 동양적 자유 개념으로 규정된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이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 의미에서 해석되게 되는 과정이다.
• 둘째, 그 과정은 실질적 기득권층을 형식적 기득권층으로 보장해 주는 것이 불가능해 지는 과정이다.
• 셋째, 그 과정은 <대응 조건>을 반드시 만족할 필요가 없으면서 <위계질서 조건>능 절대 허용하지 않는 현실 공간이 이상적인 사회 상태로 간주되게 되는 과정이다.
첫 번째 성향에는 ‘누구나 관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 배어 있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그 관점에 따른 개인은 사회 구조 자체를 판단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잠재적으로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은 신분제의 폐지이며, 이 점은 두 번째 성향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관점이다. 민중을 자신의 뜻에 따라 강제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행위하도록 권력과 재화를 사용할 수 있는 ‘실질적 기득권층’을 계급으로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두 번째 성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을 사회의 특정 영역에 가두어 버리는 ‘신분 장벽’을 없앤다는 것은 현실 공간 속에서 개인의 이동을 원활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이 점은 세 번째 성향에서 읽어낼 수 있는 관점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 새로운 정치론을 방법론적 측면에서 접근할 때, 그러한 정치론의 실천적 목적은 특정 영역의 계층이 상위 계급으로 인식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때 그러한 정치론의 방법론의 핵심은 기득권층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와 ‘정치와 분리된 관료제’만 간략히 다룰 것이다. 보게 되듯이, 이 두 정치 체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 사회적 갈등을 중재하고 사회가 나가야 할 방향성을 결정하는 정치 영역을 별도의 정치가 계층이 주도하는 것을 억제한다.
위 핵심만 보고서도 향촌 기반의 조합 공동체제, 정치와 분리된 관료제는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를 이상적인 것으로 추구하는 정치 체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정치 체제가 주목을 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은 특정 이론에 기댄 것이 아니다. 그러한 추측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된 이후 이 땅에 팽배했을 모종의 두려움을 고려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다음과 같다.
•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를 인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정치가 계층의 권력 집중화를 수반할 수밖에 없다. 그 계층은 신분제가 붕괴되더라도 실질적 기득권층이 될 것이다. 그러한 기득권층이 계급으로 보장되지는 않아도 정치의 속성상 다른 계층의 위에 군림하는 ‘실질적 계급’처럼 기능할 것이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었다고 가정하는 경우, 정말 위와 같은 두려움이 ‘민중의 인식’이라 불릴 만큼 대중적으로 확산될 수 있을까? 또한 그러한 인식이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현실 문제와 과거 역사에 민감한 사람은 이러한 물음이 의미있는 것으로 성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현실에서도 너무나 급진적으로 보이는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이 과거 이 땅에서 나올 가능성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가능성을 이 땅의 역사에서 엿볼 수 있음을 먼저 논할 것이다.
• 첫째,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는 과거 여러 곳에서 실제 추구된 이상으로 결코 새로운 것은 아니다.
• 둘째, 기득권층의 정치적 지배 정도가 중앙 집권 방식일수록 기득권층에 대한 반감의 확산 범위는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적어도 중세 이후 유럽과 이 땅의 역사를 비교해 보면, 이 땅에서 그러한 가능성의 조짐이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 셋째,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가 모든 계층 위에 군림하는 ‘실질적 계급’을 산출시킬 것이라는 두려움을 보여 주는 문헌학적 증거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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