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Places of Possibility: Property, Nature, and Community Land Ownership
“현재 스코틀랜드의 사유지 절반은 432명의 소유이다. 그 중에서 단지 16명이 스코틀랜드 국토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좀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스코틀랜드를 건설하려면, 이렇게 불공평한 토지 소유 방식에 대처해야만 한다. 스코틀랜드의 공동체 토지 소유자들을 대표하고 지원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스코틀랜드 국토의 좀 더 많은 부분이 스코틀랜드의 좀 더 많은 민중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보기위해 노력한다.” - Community Land Scotland -
Mackenzie, A.F.D.(2012), Places of Possibility: Property, Nature, and Community Land Ownership, Wiley-Blackwell.
공동체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토지는 인간관계의 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땅은 공동체적 삶의 터전이다. 삶은 땅을 기반으로 하며, 땅은 삶의 일부이다. 우리 대부분은 토지에 대해 이렇게 배우고 자랐다. 하지만 우리의 실제 삶은 배운 것과는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토지를 그저 자산(資産)으로 간주한다. 특히 오랜 기간 동안 부동산이 투자 수단으로 기능한 이 땅은 더욱 그렇다. 최근 부동산 거품이 서서히 빠지고 있는 상황에서 땅값만은 여전히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빈부 격차로 인해 사회의 불균형 상태가 극심해질수록 높은 땅값은 그 상태를 되돌리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사회의 그러한 불균형 상태가 1970년 대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에 의해 가속화된 것이라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경우, 그 불균형 상태를 약화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토지의 소유 방식을 바꾸어 보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실례로 지역 공동체 사람들이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CLO(Community Land Ownership)’를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CLO를 시행한 나라는 스코틀랜드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 칼톤 대학(Carleton University)의 지리학 및 환경 연구 학부(Geography and Environmental Studies) 명예 교수인 여성 학자 피오나 매킨지(A.D.F. Mackenzie)의 책 <가능성의 장소들(Places of Possibility: Property, Nature, and Community Land Ownership)>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서쪽 해안선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헤브리디스(Hebrides) 군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헤브리디스는 CLO가 시행되고 있는 핵심 지역이다.
강풍이 심하고 바위투성이의 황량한 헤브리디스는 CLO 시행 이후 번성기를 맞고 있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인구수와 관광객도 늘어났다. 2014년 현재 헤브리디스 땅의 1/3은 공동체 소유이며, 전체 인구의 2/3가 공동체 소유 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이러한 헤브리디스의 성공 사례에 고무된 스코틀랜드 의회는 국토의 상당 부분을 공동체 소유지가 될 수 있도록 재정적, 정책적 지원을 하고 있다. CLO 정책은 1999년 300년 만에 부활한 스코틀랜드 의회 초대 수상 도널드 듀어(Donald Dewar, 1937~2000)가 제안한 것이다. CLO 정책은 현재 ‘국부(father of nation)’로 불리는 도널드 듀어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후 본격화되었다. 듀어의 정신을 이어받은 현 스코틀랜드 의회는 우선 2020년까지 CLO 지역을 100만 에이커로 확대하는 결정을 이미 발표한 상태이다.
- 듀어 동상 -
‘가능성을 위치시키기(Placing Possibility)’, ‘작동하는 소유지(Working Property)’, ‘작동하는 자연(Working Nature)’, ‘작동하는 바람(Working the Wind)’, ‘작동하는 장소(Working Places)’, ‘작동하는 가능성들(Working Possibilities)’로 구성된 매킨지의 책이 보여주는 서술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CLO가 계획되고 실현되는 과정을 사례 분석을 통해 보이는 서술 방식이다. 7년 동안의 필드 연구에 바탕을 둔 그러한 사례 분석은 하향식(top-down method)이 아닌 상향식(bottom-up method) 협의 체제가 공동체에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둘째는 그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들의 젠더(gender), 사회, 자연에 대한 인식이 변해 가는 과정을 푸코(M. Foucault), 깁슨-그래엄(J.K. Gibson-Graham), 주디스 버틀러(J. Butler) 등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서술 방식이다.
공동체 소유를 위한 토지를 정부가 복권 사업 등을 통한 재정으로 확보하면, 해당 토지를 공동 소유하고 관리할 ‘트러스트(trust)’들이 조직된다. 이 경우의 ‘트러스트’는 ‘시장 독점을 위해 동종 업종끼리 결합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법적으로는 ‘해당 토지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배타적으로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연합체’를 뜻한다. 사상적으로는 ‘땅을 법의 형식적 절차에 따라 경제적 측정을 위한 상품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인식하는 것’, 즉 역사 지질학자 찰스 위더스(C. Withers)가 스코틀랜드 갤릭어의 ‘dúthaich’로 명명한 것을 실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CLO의 트러스트들이 토지를 공동으로 소유하고 관리하는 방식은 주어진 환경 여건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 경향에도 의존적이다. 헤브라이드의 일부 트러스트들은 근대 스코틀랜드의 소규모 영농제인 ‘크로프팅(crofting)’을 현재 상황에 맞도록 혁신시켜 운영하고 있다. 또 일부 트러스트들은 지역 수입을 올리는 동시에 공동 소유 토지 확대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다국적 에너지 기업과 연대해 대규모 친환경적 풍력 발전 단지를 개발하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은 평탄한 과정이 아니라 도전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공동체 소유의 토지를 매입하고 개발하기 위해 정부와의 협조 관계를 유지하는 것, 지역 기반의 의사소통 체계 및 트러스트들의 관계망을 구축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도전의 항목들은 끊임없이 개선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구성원들의 유대 의식이 필요하다. 흥미로운 점은 그러한 구성원들의 유대 의식이 공동체의 집단적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각 장은 주로 트러스트 구성원들의 회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적 규칙을 포함한 규범들은 구성원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러한 규범들은 그들에 의해 ‘생성되는 것’이다. 그 생성 과정에서 토지에 대한 구성원들의 인식은 변화한다. 개인 대 공동체, 사회 대 자연의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그러한 인식에서 자리잡을 수 없게 된다. 토지의 공동체 소유 방식이 상품화로 좁혀진 개인들의 관심사를 지역 사회로 넓혔고, 풍부해진 인간관계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에 대한 상상력의 원천이 된 것이다. 푸코가 지적했듯이, 기득권화된 소수 정치 세력은 가시화된 각종 제도들 속에 권력을 숨기는 경향을 나타낸다. 특히 소수 정치가들로 구성된 세력과 자본주의가 결합된 방식의 제도들은 인간관계를 경제적 거래 관계의 맥락으로 좁혀버린다. 그렇게 좁혀지고 획일화된 인간관계는 문제 해결을 위한 정치적 상상력을 멈추게 하고 만다. 이를 통해 정치 세력의 기득권화는 장기적으로 유지된다.
매킨지가 CLO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푸코를 끌어 들을 때 놓친 것이 하나 있다. 소수 정치 세력과 자본주의의 결합 방식의 제도들이 갖는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기 위해, 푸코가 제안한 ‘개인의 기업화’와 같은 것은 CLO와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푸코의 철학이 1970년대 이후 세계 전역에서 가시화된 신자유주의 정책 노선에 대한 직접적 비판은 아니었음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 더욱이 CLO의 의사결정 방식은 스코틀랜드 전체가 아닌 지역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매킨지는 그러한 의사결정 방식이 보여주는 ‘규범들의 생성적 측면’ 및 ‘구성원들의 사회 및 자연에 대한 인식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작업들을 포섭했다.
Blomley, N.(2004), Unsettling the City: Urban Land and the Politics of Property, Routledge.
Braun, B.(2002), The Intemperate Rainforest: Nature, Culture, and Power on Canada’s West Coast, University of Minnesota.
Butler, J.(2004), Undoing Genders, Routledge.
Gibson-Graham, J.K.(2006), A Postcapitalist Politics, University of Minnesota.
개인적으로 책 내용에 반영되어 있지만 매킨지가 명시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CLO가 시행되고 있는 지역 사회가 ‘문제를 공유하는 사회’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CLO 구성원들이 토지를 상품이 아닌 ‘우리 것’으로 인식하면서, 그들의 관계는 경제적 거래 관계 맥락에서 해방되기 시작한다. 공동 소유 지역의 문제들은 더 이상 정부에 의해 주어진 제도적 규칙이나 절차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또한 그러한 문제들은 공동체의 문제들이자 동시에 개인의 문제들이기도 하다. 그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들은 서로의 능력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문제에 대한 완벽한 정답은 없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만족 수준에 따른 합의가 곧 해답이며, 진행형의 문제 해결 과정은 공동체의 진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작업은 여기나 저기나 과도할 정도로 넘쳐 난다. 그런 작업들 상당수는 신자유주의에 대비된 어떤 정치적 이념을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즉, 신자유주의 정책이 갖는 한계나 부정적 측면을 역이용해 특정 이념을 부각시키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정작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의 정치’를 사례 분석에 근거해 제시하려는 작업은 거의 없다. 그러한 작업에 속하는 매킨지의 책 <가능성의 장소들>은 이 땅의 현실에 진정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왜냐하면 이 땅의 사회는 그 어느 곳보다도 인간관계가 경제적 거래 관계에 종속된 상태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은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한 기능 단위가 아니라 경쟁 관계의 기능 단위가 되어버린 지 오래 되었다. 경제적 거래 관계에 종속된 성인들의 관심사는 유흥을 찾거나, 입시를 목적으로 한 자식 교육으로 발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들을 달래줄 상술들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인문학적 소양’, ‘융합 형 인간의 도래’ ‘감성의 시대‘ 등으로 포장되어 시장을 형성한다. 그러한 것을 통해 해결될 것은 없고, ’착각 속의 개인적 위안‘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경제적 거래 관계에 종속된 인간관계는 정치적 상상력을 질식시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찾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든다. 현실 문제는 그저 특정 정치 세력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된다면, ‘좀 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문구로만 남게 될 것이며, ‘만족스러운 삶’은 다수에게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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