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세속화와 근대화 4.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 비판

착한왕 이상하 2014. 12. 6. 23:20

이제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이라는 근대화의 성향을 살펴볼 차례다. 그 전에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이 갖는 문제점들을 먼저 지적하자. 이것이 이후의 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군주가 지배했던 과거 사회와 현대 사회의 차이점을 묻는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다수는 라인하르트 벤딕스(R. Bendix)의 책 제목이 암시하듯 다음에 동의할 것이다.

 

친족, 혈연, 신분 중심의 소수 지배층이 지배했던 과거 사회가 민중의 정치적 참여를 허락하는 방식의 시민 사회로 변화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위에 동의할 때, 그들 다수는 근대화를 마치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필연적 과정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여기는 경우,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을 나오게 만든 필연적 원인들이 있고, 그러한 원인들이 전개되는 구조적 발달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그러한 착각은 또 다른 착각으로 이어지는데, 그 착각이란 극단적 대립 관계의 맥락 속에서 과거와 현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러한 착각은 근대성(modernity)’이라는 개념을 등장시켜 과거에는 적용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역사에서 과거 전통을 단절시키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한다. 사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정치가 사회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신념이 지배한 시절’, 19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까지의 고전적 사회학전통에 물든 것이다. 그러한 신념 아래 정치적 실험을 모색한 인물들 대부분은 과거와는 다른 양상에 민감하게 반응했고, 이를 바탕으로 당시 현실을 진단하고 인류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했던 인물들이다. 그들 모두가 각자 서로 다른 정치론을 추구했지만, ‘역사 읽기에서 유사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

각자 자신이 위치했거나 주목했던 곳의 특수성을 세계의 특정 그림이나 정치론을 보편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채택했다. 이를 위해 당시 사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특징들을 이전 상태에서는 완전히 결여된 것으로 단순화시키는, 즉 근대적인 것과 전근대적인 것을 완전히 이분하는 논리를 채택했다. 그리고 각자가 추구하는 세계의 그림이나 정치론을 보편적인 것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과학적 혹은 실증적 방법론이라는 미명 아래 사회 상태의 구조적 발달론을 펼쳤다. 그러한 발달론에 따른 근대화는 다름 아닌 각자 자신이 추구하는 세계의 그림이나 정치론이 실현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이란 현재 정치 체제를 보편적인 것으로 과장하여 사람들을 세뇌시키는 기능을 갖고 있는 공교육이나, 특정 인물의 입장을 지나치게 미화시킨 대중서에 근거하고 있다. 실례로 자의반 타의반 자유 민주주의를 채택한 이 땅의 경우, 자유 민주주의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것은 무조건 죄악시 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이 길들여져 있다. 또한 지나친 상업 논리에 종속된 출판계와 언론계의 결탁을 바탕으로 한 대중서는 이 땅의 현실 문제들을 뜬구름 잡는 화두(話頭)’와 같은 것 속에 묻어 버리고, 특정 인물들을 선지자로 둔갑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에서 탈피하려 했던 시도는 그러한 경향 속에 묻혀 버이고 만다. 벤딕스는 그러한 시도를 했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비판적 시각에서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에 대해 접근할 때,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난다. 위 역사 읽기 방식에 따르면, 근대화 과정은 출발 시점부터 그 목적이 정해져 있어야 한다. 문제는 그 목적이 동일하지 않다는 데 있다. 그러한 목적에 따라 여러 입장이 나타난다. 그러한 여러 입장 중 우리에게 친숙한 두 가지를 들어 본다면, 국민 국가 형성기를 통해 민주주의 체제가 지역적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근대화로 규정하는 입장이 있다. 반면에 계급 갈등을 극복하고 계급이 없는 사회가 도래하거나, 그러한 사회 도래를 위한 토대가 마련되는 과정을 근대화로 규정하는 입장이 있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에 암암리에 세뇌된 사람들은 그러한 입장들 사이에서 방황한다. 하지만 그들이 비판적 시각에서 그 역사 읽기 방식을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은 맹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근대화 과정의 이념적 목적이 정해져 있다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국가 정책의 실질적 목적은 가급적 그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방법으로서의 근대화 자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근대화 자체를 국가 정책의 실질적 목적으로 삼고 근대화된 나라는 적어도 국민 국가 형성기를 주도한 서양 지역에는 없었다. 근대화 자체가 국가 정책의 실질적 목적처럼 기능한 곳은 이 땅처럼 후발 산업화 국가들에 국한된다.

 

산업화를 근대화의 기준으로 삼을 때, 18세기 말 산업 혁명 이후 영국의 발전상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군주제의 붕괴와 연관시켜 근대화를 논할 때, 18기 말 프랑스 혁명을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그 어떤 경우든, 근대화 자체가 국가 정책의 목적이 된 경우는 소위 근대화를 주도한 지역에는 없었다. 그러한 지역의 근대화 초기 과정에서는 오히려 민족주의나 지리정치학적 영토 확장과 같은 것이 국민 국가 개념보다 더 강하게 작용했었다. 이와 더불어 19세기 중엽 이후의 다양한 정치적 실험들을 고려한다면, 사회가 반드시 국민 국가 상태로 귀결되어야만 하는 필연적 원인은 없다. 무국가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정치적 실험도 있었다. 국가 존립의 명목 아래 소수 정치가 집단에 의한 정부 권력에 대한 다수 민중적 반감은 그러한 정치적 실험이 사회 운동 차원으로 이어지도록 만들기도 했다. 귀족 계층을 중심으로 한 권력 분포 방식은 산업 혁명이나 정치적 혁명에 의해 사장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남아 정부 구성에 영향을 미쳤다. 국민 국가 개념은 정부의 소수 권력 대 다수 민중 사이의 긴장 관계를 무마하기 위해 동원된 민족 국가나 영토적 국가 개념이 각 지역의 맥락에 따라 변형 확장되어 형성된 것이다. 그 형성 과정은 결코 어떤 결과에 대한 예측성을 함축한 목적이 부과된 경로를 따라 전개된 것이 아니다. 국민 국가도 내부 및 외부 압력에 대해 소수 대 다수의 긴장 관계가 작동하는 방식에 따라 지역별로, 시기별로 여러 형태를 띠게 된다.

 

후발 산업화 국가들이 근대화를 수용했다고고 할 때, 수용근대화를 국가 정책의 실질적 목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그 이상 그 이하도 뜻하지 않는다. 후발 산업화 국가들의 근대화 과정은 각국이 채택한 수단의 차이로 인해 획일적으로 서술될 수 없다. 이 때문에, 근대화 과정을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로 이분시켜 후발 주자들이 선발 주자들을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수용했다는 사고방식은 근대화 논쟁에서 낡은 것이자 통용될 수 없는 것이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은 그러한 사고방식을 정당화해 준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 역사 읽기 방식에 의한 근대화란 사회 상태의 어떤 구조적 발달론에 따라 세계의 특정 그림이나 정치론이 실현되는 과정에 불과한 것다. 이때 그러한 발달론에 따른 근대화 과정은 선행 집단과 후행 집단을 이분시키고, 후행 집단이 선행 집단을 모방한다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이러한 서술은 산업화와는 다른 근대화의 두 성향, 즉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과 인종주의의 쇠퇴를 논할 때 명백한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가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은 인간관계의 우연과 전통이 뒤섞인 사회 상태의 변화 과정을 정확히 예측해주는 그 어떤 과학적 방법론도 없다는 데 있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을 대표하는 마르크스의 경우, 그가 생각한 과학적 방법론이란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허용될 수 없는 가설을 걸러 내는 현대 자연 과학의 방법론을 뜻하지 않는다. 다른 곳에서 이미 다루었듯이, 그것은 적어도 가능적 결과를 예측해낼 수 있는 연역적 지식 체계를 뜻한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법적으로 시민이 되는 국민 국가 개념만 하더라도, 그것을 명확히 규정해 주는 과학적 방법론은 없다. 국민 국가의 사회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 내 국가 간의 요인들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이다. 국민 국가 상태에 대한 법적이고 제도적 의미에 대해서만 다수가 동의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한 동의 아래 사회 상태에 영향을 미치는 영향들을 변수로 취급하여 모형화하는 것은 현실 진단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그러한 모형화에 근거한 진단을 정확한 예측으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모형화는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의 내용을 일정 부분 제거하고 얻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적 사회학 전통에서 벗어나는 과정 및 현재 사회학의 논의 방식 등은 다루지 않는다. 오로지 이 작업의 맥락 속에서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이라는 근대화의 성향을 분석할 것이다. 그러한 분석은 세속화와 근대화의 관계를 좀 더 분명히 해줄 것이다. 특히 근대화가 세속화를 함축한다는 입장, 즉 일부 학자들이 수사적으로 입에 달고 다니는 입장은 여기저기의 맥락에서 허용될 수 없는 입장임이 분명해질 것이다. 더욱이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의 지향점을 계층이 계급으로 인식되지 않는 사회 상태의 도래로 잡을 때, 근대화는 완성되거나 종결된 것이 아니다. 분류 차원에서 역사의 특정 기간을 근대화등의 어떤 시대로 규정하는 것이 사건들을 선별하고 묶는 데 도움을 주더라도, 그 기간이 실제로 그렇게 규정하는 방식에 종속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실제 역사란 서로 단절된 막대기에 비유 가능한 시대들을 연결시킨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