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세속화와 근대화 7. 근대화 과정의 재평가

착한왕 이상하 2015. 1. 24. 23:38

이제 근대화 과정을 재평가하기 위해, 그 과정의 산업화’,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인종주의의 쇠퇴라는 세 성향이 이 땅에 나타난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땅의 산업화의 특징>

(A1) 식민지 팽창을 주도한 서양 국가들과 달리, 이 땅의 산업화는 자생적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이 땅의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일제 강점기와 경제 성장기의 관계는 필연적이거나 상부 주도적 의미가 아니라 잠정적이고 민중적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A2) 서양의 경우와 달리, 이 땅의 산업화는 기술 진보와 평등 사이의 근대적 긴장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킨 해방 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 그러한 긴장감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부와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다.

(A3) 경제 성장을 수반한 이 땅의 산업화 과정에는 독재가 개입되어 있다. 정계와 재계, 교육계, 언론계의 유착과 더불어 경제 성장에 의한 평균적 부의 증가는 이 땅의 산업화 과정에서 분출된 불평등에 대한 집단적 인식이 사회적 실천 운동으로 표출되는 것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이 땅의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의 특징>

(B1) 근대화를 산업화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근대화는 어느 정도 종결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근대화를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의 관점에서 접근할 때, 근대화는 아직 종결된 것으로 보기 힘든 측면이 있다.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과 계층들의 수평적 관계 사이의 간격은 나라별로 차이를 보인다. 이 땅에서 그러한 간격은 일제 강점기와 독재 시절을 거치면서 산업화에 먼저 성공한 나라들보다 여전히 더 크다.

(B2)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세속화된 이 땅의 경우, 과거 신분제 사회의 전통이 산업화에 어느 정도 성공한 현실에 여전히 남아 있다. 직업군의 수적 증가로 인해 계층 분화는 가속화되었지만, 계층들 간 수평적 관계의 실현 정도는 약하다. 개인에게 계층은 여전히 자족할 장소로서의 적소 찾기의 표적이 될 수 없다. 다수 계층을 보호하려는 구체적 정책마저도 부재한 사회 상태이다.

 

<이 땅의 인종주의의 쇠퇴의 특징>

(C1) 인종주의의 쇠퇴라는 근대화의 성향은 식민지 지역 다수 민중의 저항 과정 및 강대국들의 식민지 경쟁에 따른 제 2차 세계 대전과 함께 한다. 인권을 당연시하는 현재 세태는 인종주의의 어두운 면에 대한 인식의 결과이며, 그러한 인식이 자리잡는 데에는 식민지 지역 다수 민중의 기여가 있었다.

(C2) 이 땅은 백색으로 상징된 문명권의 직접적 식민지가 아니었어도, 이 땅의 다수 민중들은 인종주의 쇠퇴에 기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땅을 식민지화한 집단의 이념과 정책에는 인종주의의 핵심 사고방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위 특징들을 종합하여 고려하면, ‘저기앞선 곳’, ‘여기를 뒤쳐진 곳으로 규정하고 여기가 일방적으로 저기를 모방 수용하는 방식으로 뒤쫓아 갔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그러한 모방 수용론은 중심주변을 엄격히 구분한다. 주변이 중심의 전략을 모방하여, 그 전략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된다는 것이다. 이때 중심주변의 관계는 공간적으로 중심이 높고 주변이 낮은 등고선 모형속에서 쉽게 파악된다. 등고선 모형에서 중심의 높음경제적으로 더욱 발달한 곳’, ‘먼저 산업화에 성공한 곳’, ‘먼저 민주화가 된 곳등을 뜻한다. 이러한 등고선 모형의 의미에서 중심의 높음을 지나치게 강조한 것이 근대화 과정의 단순 모방 수용론이다.

 

경제적 통계치 등을 바탕으로 중심주변의 높낮이를 보여주는 사실들을 가지고, ‘주변중심을 모방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당위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주변의 지역들이 보편화 불가능한 상황적 특수성에 맞추어 근대화 과정의 생성에 동참한 점을 보여 주는 사실들은 모방 수용론의 시각 속에 소실되어 버린다. 근대화 과정의 모방 수용론은 1950년대와 1960년대 대세였다. 실례로 그 수용론은 월러스타인(I. Wallerstein)의 경제 발달론에 따른 자본주의 옹호론자들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분석에 동참한 자본주의 비판자들 모두에게서 엿볼 수 있다. 심지어 과학적 지식의 전파를 다루는 인물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다른 지역으로 확장되어 갈 때, 다른 지역의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이 점만 고려해도, ‘중심의 확장주변의 단순한 모방 수용을 함축한다고 보기 힘들다. 1950년대와 1960년대는 주변으로 분류되는 지역들의 근대화 과정의 특수성이 아직 많이 연구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근대화 과정의 모방 수용론이 당시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주변에 속하는 지역들이 각 지역의 상황적 특수성에 맞추어 근대화 과정의 생성에 동참한 점을 보여 주는 사실들은 지나치게 근대화 과정의 산업화 성향만을 강조할 때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산업화 성향을 그저 생산 방식의 구조적 변화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됨을 논했다. ‘저기의 경우, 산업화는 진보와 평등 사이의 갈등 요소, 근대의 긴장으로 종종 묘사되는 것을 극복하거나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과정이며, 그 과정 속에서 국민 국가개념이 정착했다. ‘식민지 팽창을 주도한 저기의 이러한 산업화의 특징은 여기에 직접적으로 해당하지 않음을 논했다. ‘여기의 산업화는 저기에 나타난 근대의 긴장감과 같은 것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여기의 산업화는 특정 정치 체제의 국민 국가 형태를 고착시키는 수단으로 작동했으며, 그 고착 과정에서 부와 정치적 권력의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심화되었음을 논했다. 그러한 논의에 바탕을 둔 (A1)~(A3)는 산업화 성향을 강조하더라도 근대화 과정의 단순 모방 수용론이 그대로 성립하지 않음을 보여 준다.

 

근대화 과정의 단순 모방 수용론이 성립하지 않음은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및 인종주의의 쇠퇴라는 근대화의 또 다른 성향들을 살펴볼 때 더욱 분명해 진다.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의 일반적 특징은 계층들의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상적 관계는 어디까지나 지향해야 할 목적일 뿐 실제 실현된 것은 아니다. 그 이상적 관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계속 좁혀지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로 시기별로 요동친다. 심지어 그 간극은 정치계, 경제계, 교육계, 언론계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오히려 더 벌어지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더욱이 과거 신분제의 절대적 기득권층이 붕괴되거나 약화되는 과정의 지역별 차이는 더욱 컸다. 이 때문에,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을 저기를 기준으로 일반화할 수 없다. 특히 오랜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된 세속화 과정 속에서 근대화를 논할 수 있는 저기와 달리, ‘여기의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는 (B1)~(B2)에 반영되어 있다.

 

근대화 과정의 단순 모방 수용론이 성립하지 않음은 인종주의의 쇠퇴라는 성향의 (C1)~(C2)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물론 식민지 지역 민중들 다수가 인종주의의 불식을 목적으로 강대국에 저항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역을 식민지화한 집단들의 착취에 맞서서 저항했을 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C1)~(C2)가 성립하는 이유는 그러한 집단들의 식민지 팽창 정책에 인종주의 관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근대화 과정에 대해 재평가해보면, 다음과 같다.

 

근대화 과정의 단순 모방 수용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근대화 과정에서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 혹은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는 것이 그 과정을 분석할 때 필요하더라도, 각 지역이 그러한 구분에 따라 정확히 양분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 혹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어느 정도 통용되는 산업화의 성향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 지역의 상황적 특수성에 맞추어 생성된 측면을 나타낸다. 그러한 생성적 측면은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이라는 성향에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인종주의의 쇠퇴라는 성향애서는 선발 주자와 후발 주자 혹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아예 모호해 진다. 따라서 근대화 과정은 산업화 성향에서 선후가 어느 정도 갈리더라도 각 지역의 동시다발적 동참에 의해 생성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근대화 과정에 대한 위 평가에 따르면, 특정 국가의 경제 발달 과정 및 정치 체제 구축 방식만을 기준으로 하여 이 땅의 근대화 과정을 서술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그러한 경제 발달 과정 및 정치 체제 구축 방식은 이 땅의 특수한 상황적 요인들의 제한 속에서 재구성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재구성의 성격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이 땅의 근대화 과정이 자생적이라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특히 이 땅의 근대화 과정에서 엿볼 수 있는 생성적 측면을 민족적 자긍심 등과 연관시켜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살펴본 근대화 과정의 재평가 방식은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산업화를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경우에도, 그 성공 방식의 과거 전략이 현재에도 유효하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그 전략의 지속이 장기적 발전을 가로 막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더욱이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겪지 않고 세속화된 이 땅의 경우,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직업군의 수적 증가로 인한 계층 분화의 가속화에 비해, 계층들 간 수평적 관계의 실현 정도는 미약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 무종교인의 딜레마와 연관된 계층들 간 관계 문제이 땅의 민주주의의 진화를 위해 선결되어야 할 문제임이 드러날 것이다.

 

* 여기까지만 ... 여기에 올리지 않을 '이어질 내용':

  계층들 간 역동적 관계를 무시한 현재 민주주의 이론의 한계

  확산 계층으로서의 무종교인 계층

  무종교인의 딜레마와 민주주의의 진화

  무종교인에게 필요한 역사 읽기 방법

   문제를 공유하는 사회, 새로운 방식의 유토피아에 대한 윤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