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민주주의의 진화 가능성 1. 논의 윤곽, 절차적 민주주의

착한왕 이상하 2015. 5. 14. 22:41

* 이 글은 과거에 올렸던 <민주주의>를 좀 더 구체화한 것이다. 때문에, 해당 글은 삭제시켰다.

 

특정 지역에서 민주주의에 부합하는 것으로 파악된 정치 체제가 다른 지역에서는 아닐 수 있는 까닭에, 모두가 합의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를 규정하기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 가능하다. 그 하나는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 즉 정치적 평등(political equality)과 자치(self-rule)를 시민에게 보장하는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공평하고 자유로운 선거권, 표현의 자유와 같은 시민권, 다수결에 의한 의사 결정의 원칙 등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정치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관점이다. 전자를 정치적 평등 보장 민주주의, 후자를 절차적 민주주의로 부르자.

 

공평하고 자유로운 선거권, 시민권, 다수에 의한 의사 결정의 원칙 등에 대한 법적 보장은 정치적 평등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필수적인 수단으로 여겨질 수 있다. , 그러한 것들이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고서는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에 다가갈 수 없다. 이를 받아들일 때, ‘정치적 평등 민주주의절차적 민주주의를 함축하지만, 이에 대한 역은 곧바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 점은 절차적 민주주의 역시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이상을 지향한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 여기서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다음 규정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이상에 다가가기 위해서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치 체제는 반드시 정치적 평등 보장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직접 민주제로 변환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궁극적 이상에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위 규정 방식은 당연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위 규정 방식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입장도 있다. 특히 직접 민주제가 집단 유지에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고 여기는 사람들, 곧 정당 민주제의 열렬한 옹호자들이 그러한 입장을 펼칠 것이다.

 

직접 민주제는 정치적 평등 보장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치 체제이다. 직접 민주제에서 정치적 평등 상태란 정치적 권력을 시민들이 직접 행사하는 상태를 뜻한다. 시민은 그러한 권력을 소유한 사람들을 뜻하기 때문에, 직접 민주제는 논리적으로 시민에 의한 자치를 함축한다. 따라서 직접 민주제에서 시민은 정치적 통치권을 갖는 동시에 피지배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직접 민주제에 따르면, 정당 민주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의 개인은 정치적 불평등을 허용하는 정치 체제 속에 살고 있는 셈이다. 시민의 손으로 뽑은 정치적 수장이 선거 공약을 어겨도 그를 처벌할 수 없다. 입법 또한 선거로 선출된 정치가들의 몫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법도 그들의 입맛에 좌우되기 때문에, 그들은 합법적 갱(lawful gang)’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이러한 평가에 맞서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당 민주제 옹호자들은 다음과 같은 반론을 펼친다.

 

직접 민주제는 소규모 공동체를 운용하거나 상대적 소수 시민 계층이 다수 노예 계층을 지배했던 과거 시대의 경우에나 효과적이다. 현재 국민 국가 기반의 사회는 지역적으로도, 구성원의 수적인 면에서도 과거에 비해 대규모 사회이다. 이러한 대규모 사회를 유지하는 데 직접 민주제는 효과적일 수 없다.

 

직접 민주제는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추구한다. 그러한 이상에 따른 의사 결정 과정은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변 정세에 대처하는 집단의 능력을 저해시킨다. 직접 민주제는 특히 전쟁과 같은 긴박한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에 외세의 압력으로부터 사회를 지켜 내기 힘든 정치 체제이다.

 

정당 민주제가 직접 민주제와 양립 가능할뿐더러, 정당 민주제의 궁극적 목적 또한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인 까닭에, 직접 민주제에 대한 정당 민주제 옹호자의 비판은 직접 민주제의 실효성에 국한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실효성에 근거한 위 비판에는 맹점이 있다. 사회 유지라는 명목 아래 국가 권력이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라는 이상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맹점을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위 비판을 받아 들여도,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실험적 규정 방식은 적어도 이 땅의 현실에서는 유효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실험적 규정 방식을 구성해 보려면, 먼저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당 민주제의 성격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정당 민주제는 정치적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권력을 시민들에게 부여하지 않는다. 그 권력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관심사를 대표할 수 있는 직업 정치가들에게 양도되며, 투표 행위에 대한 선거라는 제도는 그러한 양도의 수단이다. 정당은 직업 정치가들로 구성된 권력 집단이다. 시민들의 관심사가 하나로 동질화될 수 없기 때문에, 정당도 다수가 될 수밖에 없다. 시민 개개인의 관심사는 유동적인 반면, 시민의 권력을 양도받은 정당은 상당 기간 지속 가능한 정치적 이념을 지향한다. 정부의 통치 방식은 다수의 지지를 받은 정당의 이념에 영향을 받지만, 그 어떤 정당도 특정 정치가 집단의 관심사에만 따라 일방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할 수는 없다. 모든 시민의 지지를 받는 정당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수의 지지를 얻은 정당도 반대편과의 협상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협상 결과로 제정된 법은 모든 시민의 암묵적 동의를 거친 것으로 간주된다. 시민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은 모두에게 평등한 것으로 간주되며, 일정 나이가 지난 시민은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정당 민주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표한다.

 

정당 민주제의 본격적 실험 역사는 불과 한 세기를 넘어 섰다. 지역별로 민주주의가 정착한 방식의 차이를 고려하는 경우,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시작된 민주주의의 실험 역사의 복잡성을 간과할 수 없다. 특히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들에 정당 민주제가 정착한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민주화를 논할 때 정당 민주제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표할 만큼 안정적으로 정착되었는가를 민주화의 기준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 , 절차상으로 자유롭고 공평한 투표권, 표현 및 집회의 자유와 같은 시민권, 엄격한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는 지역은 민주화된 지역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절차적 민주주의에 국한된 민주화 과정을 진단하는 데 경제력’, ‘평균 교육 수준’, ‘대외 여건’, ‘정치가 집단의 수준 및 역량등의 요인들이 주로 거론된다.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난 지역들이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경제력과 평균 교육의 향상이 두드러진 곳을 들라면, 이 땅을 빼먹을 수 없다. 스탈린의 개발 경제 계획을 방불케 하는 독재 권력의 정책은 냉전 시대 미국을 등에 업고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또 높은 교육열이 사회 문제 해결에 필요한 사고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길러 낸다는 보장은 없지만, 이 땅의 지나칠 정도의 교육열은 민주주의에 필요한 평균 교육 수준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반면 정당 민주제의 기능에 필수적인 정치가 집단의 수준 및 역량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각종 시민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독재 정권에 대항한 정치 세력의 민주화에 대한 기여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그러한 기여뿐만 아니라 입법 등 정치적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가 집단의 수준 및 역량이다. 독재 정권의 붕괴 이후, 정치가들에 대한 평가가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독재 시절 경제 정책에 대한 실효성 자체가 종종 그러한 논쟁거리의 주제로 떠오르곤 한다. 이는 정치가들의 역량에 대한 실질적 평가가 정치가들이 속한 정당의 존재 명분론에 뒤덮여 버리게 된 세태를 반영한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당 민주제의 형태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경제적 발전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한 일반화된 답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 사이에 어떤 법칙성이나 필연적 인과 관계가 밝혀진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 관계는 각 지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하여 평가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재 시절의 경제 발전도 민주화 과정을 논할 때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정도의 수준에서만 분석 대상이 되어야 한다. 만약 그것이 민주화 이후의 정당에 대한 평가 방식의 기준이 된다면, 문제 해결에 필요한 정치가들의 역량 평가는 도외시되고 만다. 분명한 것은 그 누구도 선행 경제 발전 때문에 민주화가 가능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1]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민주화의 관계는 평균 교육 수준 등과 맞물려 평가되어야 하며, 또 평균 교육 수준과 정치적 관계를 논할 때에는 경제적 발전 정도라는 요인이 고려되어야 한다. 경제, 정치, 교육 중 무엇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든 간에, 민주화라는 것은 어떤 요인 하나만 잘라 내어 단순하게 평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특정 지역의 경제력, 교육 수준, 종족 분포, 대외 여건 등을 고려하여 민주화 과정을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요인들을 선별하여 평가할 수는 있으나, 경제적 발전과 정치적 발전 사이의 관계를 논할 때 무엇이 선행해야만 하는가를 전제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법칙성과 같은 것은 없다.

 

계층들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각 계층 간 장벽을 약화시키거나 특정 계층의 고유성을 보호하는 것은 현재 민주화 과정을 논하는 방식에서 누락된 것 중 하나이다. 이 점은 이어질 논의에서 분명해질 것이다. 그렇게 누락된 것을 고려하지 않는 경우에도, 민주화 과정은 특정 집단이 처한 상황에 의존적인 만큼 복잡하다. 이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당 민주제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반영해 준다. 정부 조직의 구성방식에서 접근할 때, 중앙 집권적 형태나 분산적 형태가 있다.[2] 정부의 기능 방식에 따라 정당 민주제를 분류할 때, 자유 민주제와 사회 민주제를 거론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게 분류하는 경우에도, 어느 체제가 특정 지역에 정착하는 과정은 해당 지역이 처했던 상황에 의존적이다.

 

자유 민주제와 사회 민주제 모두 공평한 투표권과 시민권을 법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 절차적 민주제를 대표한다. 다만 그 둘은 이념적 측면에서 서로 다른 사회 경제적 원칙을 지향한다. 자유 민주제 옹호자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 확대가 복지를 수반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사회 민주제 옹호자는 사회적 분배라는 집단적 차원의 조율 없이는 복지가 실현 불가능하다고 본다. 자유 민주제는 가급적 자유로운 시장 경제 활성화를 통해 중산층 확대를 정책 목표로 삼지만, 개인의 능력 차이 및 경쟁의 초기 불평등 상태로 인해 사회적 안정화를 꾀하기 힘들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사회 민주제는 사회적 분배 등의 복지 정책을 우선시 하지만, 개인 및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인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자유 민주제를 표면에 내세우는 나라나 정당도 사회 민주제 방식의 정책을 일정 수용할 수밖에 없고, 역으로 자유 민주제를 표면에 내세우는 나라나 정당도 자유 민주제 방식의 정책을 일정 수용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만드는 이유는 특정 정치 체제에 종속될 수 없는 사회 상태의 현실 문제들이 보여 주는 복잡성에 있다. 그러한 복잡성에 주목하는 경우, 그 어떤 정치론도 그것과 상반되거나 심지어 모순되어 보이는 다른 정치론과 결합 가능하도록 변통될 여지를 갖고 있다.[3] 순수한 의미에서의 자유 민주제 혹은 사회 민주제가 실행되는 곳은 없으며, 자유 민주제를 표방한 정당과 사회 민주제를 표방한 정당이 뒤섞여 있는 지역이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많다.

 

앞서 살펴본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규정 방식, 곧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치 체제에서 직접 민주제로 진화해야 한다는 규정 방식에 대한 정당 민주제 옹호자들의 반론이 민주주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한 비판으로 성립하려면, 그들의 반론은 민주의의에 대한 정태적 접근법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정태적 접근법이란 무엇인가? 그 관점이 보여 주는 교훈과 문제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실험적 규정 방식을 이끌어 내고, 그러한 규정 방식에 따른 정치적 실험이 이 땅에서 필요한 이유를 논해 보자.

 

 

[1]  이는 우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정착된 국가들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 실례로 남아프리카에 위치한 보츠와나 공화국과 인도를 들 수 있다. 보츠와나와 인도 모두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 정당 민주제가 일찍 정착한 국가들이다. 이들 국가는 경제 개발과 민주화가 병행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특정 정당의 장기 집단 문제, 복잡한 종족 구성 방식으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 인권 문제 등을 고려하는 경우, 두 국가의 민주화에 대한 평가 방식도 달라질 수 있다. 보츠와나의 경우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Cooke, A. & Sarkin, J.(2010), “Is Botswana the Miracle of Africa?”, Transnational Law & Contemporary Problems Vol. 19:453.

 

[2] 정당의 출현 방식도 지역별로 차이를 보여 준다. 유럽에서 좌파와 우파의 대립이 극심했던 시절, 그 중간 입장을 취하겠다며 등장한 기독 민주당과 같은 정당도 있다. 그러한 정당은 기독교 교리를 통치 이념으로 삼겠다는 목적이 아니라 좌우 대립을 극복하겠다는 목적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설립 당시 교회 세력의 전폭적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3] 이 점은 일제 강점기 시절 다양한 세력이 각각 추구하는 정치적 입장을 수정하여 민족주의라는 이념 아래 공조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대립 관계를 맺는 것으로 파악된 정치론들을 결합시켜 보려는 시도도 최근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한 실례를 하나 들라면, 다음과 같은 연구서도 있다. Reiman, J.(2014), As Free and as Just as Possible: The Theory of Marxian Liberalism, Wiley-Black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