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민주주의의 진화 가능성 3. 계층 분류 및 확산 계층의 문제

착한왕 이상하 2015. 5. 14. 22:43

모든 집단이 계층으로 분류되는 것은 아니다. 계층으로 분류 가능한 집단은 조화로운 사회 유지를 위해 그 구성원 다수의 의견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는 집단이다. 물론 의견 표출이 반드시 의견 수용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집단의 의견 수용 여부는 다른 집단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식으로 계층을 폭넓게 규정하는 것은 현실을 진단하기에는 너무나 불충분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들을 살펴보면, 계층들의 역동적 관계망을 심층적으로 다룬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한 논쟁들 대부분은 개인 대 공동체의 대비 및 시장 경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 정도를 다루는 데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계층들의 역동적 관계를 다루는 맥락 속에 민주주의 논쟁을 포섭시키는 것은 이 작업의 범위를 벗어난다. 무종교인의 딜레마를 확산 계층의 문제로 규정하는 데 필요한 정도로만 계층들을 분류할 것이다. 그러한 분류는 다음을 전제한다.

 

계층들을 사회의 기능 단위로서의 영역들, 실례로 경제, 교육, 정치, 종교 등의 영역들과 관련시켜 분류한다. 이때 그러한 영역들 A, B, C, D 등으로 구성된 사회 상태의 현실 공간을 T라고 하자. 이때 T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곳으로 간주된다.

 

위에서 살펴본 전제 아래 고려할 세 가지 계층 범주는 다음과 같다.

 

고유 계층

특정 영역의 기능을 위한 직업군들은 그 영역을 대표하는 고유 계층들로 간주된다. 그 계층들의 요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고서는 해당 영역의 정상적 기능도 기대할 수 없다. 이는 모든 영역의 고유 계층들에 해당하기 때문에, 각 고유 계층의 제도적 보호 정도는 다른 계층들과의 상호 제한적 관계 속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 TA에 고유 계층 a가 있는 경우, a의 기능을 존속시키기 위한 정책적 보호 정도는 다른 계층들 b, c, d 등과의 상호 제한적 관계를 고려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고유 계층을 갖지 않는 사회 영역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례로 정치가들이 없는 정치의 이상을 목적으로 삼는 정치론에서 정치 영역은 시민의 의사 교환 및 결정의 공론장으로만 기능하기 때문에 별도의 고유 계층으로서의 직업 정치가 집단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에 정치가 계층에 의한 정치의 이상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정치론에서 정치 영역은 별도의 고유 계층으로서의 직업 정치가 집단을 허용한다. 국민 국가를 사회와 거의 동일시하는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에 따를 때, 직업 정치가 집단이 정치 영역의 고유 계층으로 자리잡는 것은 사회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실험적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의 진화적 관점에 따를 때, 정치 영역에 별도의 직업 정치가 집단을 고유 계층으로 허용하는가는 열린 문제이다.

 

상대 계층

어느 사회 상태에서든 개인의 생활양식(life style)현실 공간 속에서의 계층 간 이동에 비유될 수 있다. 이상적 사회 상태란 가급적 다수가 그러한 이동 과정에서 만족 상태의 적소를 찾아 나갈 수 있는 현실 공간이다. 그러한 적소란 개인이 원하는 세상의 그림에 비추어 안주할 수 있는 계층들의 다발이다. 계층들을 넘나드는 과정에서 가급적 다수가 만족 상태의 적소를 찾아 갈 수 있는 사회 상태는 그 어떤 정치론의 이상 상태보다 우선하는 것이다. 개인이 속한 고유 계층만을 기준으로 사회에 대한 개인의 만족도와 연관시켜 개인의 삶의 질을 충분히 평가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개인들의 삶의 질을 상대적으로 평가해 주는 기준과 대상이 필요하다. 그러한 기준으로 현재 경제 및 교육 수준이 주로 사용되며, 그러한 대상으로는 고소득층, 중산층, 저소득층 및 교육 수준에 따른 계층들을 들 수 있다. 경제, 교육 행정 분야 연구들 중 상당수는 그러한 계층들의 상대적 차이를 양화하는 방법론을 다루고 있다. 이를 일반화하여 어떤 상대 계층 r을 규정해 보면, r은 특정 영역 A를 기준으로 사회 구성원들의 수준을 평가할 때 고려되는 계층이다. 이때 r은 논리적으로 반드시 A의 고유 계층일 필요는 없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 및 교육 수준이 상대 계층들의 평가 기준이 되는 이유는 다수가 경제 및 교육 영역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상대 계층으로 간주되는 r이 과거에는 아닐 수도 있다. 실례로 현재 정책 평가에서 중요한 저소득층이 과거 사회에서도 상대 계층으로 여겨졌다고 장담할 수 없다. 특히 엄격한 신분제 아래 특정 종교 교리가 사회 통합의 원리로 작용했던 과거의 경우,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격차를 줄이는 자체가 정책의 목적은 아니었다.

 

상대 계층들을 평가할 때, ‘상대 계층들 사이의 격차를 어느 정도까지 좁힐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은 평가 기준, 정치 체제, 정당 이념 등에 의존적이다. 경제 수준을 기준으로 상대 계층들을 평가할 때, 공산 체제 옹호자는 그들 사이의 격차를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평등의 전제로 삼는 민주주의 옹호자는 최저 생계비 제도 등을 통해 계층 간 소득 격차가 심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느 정도 공평한 분배를 바탕으로 개인의 실질적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여기는 민주주의 옹호자는 기본 소득제와 같은 것을 주장할 것이다. 무국가주의의 한 정치 체제로서 조합 공동 체제를 옹호하는 사람은 최대 소득 한계선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교육 수준을 기준으로 상대 계층을 평가하는 경우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왜냐하면 교육에 대한 열망 수준의 개인차는 소득에 대한 열망 수주의 개인차보다 훨씬 맥락 의존적이며 크기 때문이다. 또한 평균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도 교육 과정 및 내용의 평준화 방식에 의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확산 계층

확산 계층은 딱히 고유 계층이나 상대 계층으로 분류되지 않지만 조화로운 사회 유지를 위해 그 구성원 다수의 의견이 표출될 수 있어야 하는 집단이다. 사회의 변동 맥락에 따라 어떤 확산 계층이 상대 계층으로, 혹은 상대 계층이 확산 계층으로 변화할 수도 있다. 실례로 경제 수준을 기준으로 한 저소득층은 과거에는 다수의 불특정 확산 계층으로 분류될 여지가 있다. 현실 공간에서 저소득층 구성원들의 분포 방식의 퍼져 있음을 고려할 때, 저소득층을 경제 영역의 특정 고유 계층으로 분류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다수의 저소득층이 경제를 기준으로 보호 대상 차원의 상대 계층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시점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확산 계층으로 여겨졌던 집단이 점차 상대 계층으로 분류되기 시작하는 상황도 찾아 볼 수 있다. 실례로 노인층은 정책 결정 과정에서 더 이상 간과될 수 없는 계층이 되었다. 현제 이 땅의 확산 계층을 대표하는 집단을 들라면, 무종교인 계층을 들 수 있다. 그 어떤 종교 교리의 진위 여부에 무관심한 무종교인들은 종교 영역의 고유 계층으로 간주될 수 없다. 무종교인 계층은 사회 각 영역에 분사되어 있고, 현재 이 땅의 실질적 다수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계층의 의견은 일단 표출되어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만약 어느 민주주의 사회의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는 계층의 의견이 표출될 통로가 막혀 있다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기능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는 힘들다.

 

확산 계층의 문제는 다음 상황을 뜻한다.

 

사회의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는 어떤 확산 계층 s가 있다고 하자.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라면, s의 의견은 사회의 표면으로 부상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의견은 다른 계층들과의 상호 제한 관계로 인해 수용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정책 결정 및 평가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하지만 s의 의견은 사회에 표출될 기회조차 없는 상황이다.

 

현재 이 땅의 무종교인 계층은 위 규정 방식에 따른 확산 계층 s를 대표한다. 이를 받아들이면,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을 무조건 옹호할 수 없다. 그 관점에 따르면,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 민주제만으로도 다수결 원칙에 따라 다수의 의견을 정책 결정 과정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진화적 관점 옹호자는 확산 계층의 문제를 들어 정태적 관점의 한계를 지적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확산 계층의 문제가 한 사회에 만연해 있는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아니라 해당 사회 상태의 분석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민주주의의 진화적 관점이 채택되어야 하는지도 한 사회의 상태 및 변동 맥락에 의해 평가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확산 계층의 문제가 고유 계층들을 보호하고 상대 계층들 간 격차를 조율하는 정책만으로도 해소시킬 수 있는 제도적 정치력이 발휘되는 곳이라면,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요구가 사회의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다. 반면에 확산 계층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이라면, 절차적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요구가 사회의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요구가 다수 시민들의 당연한 요구로 확산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시민들의 평균 교육 수준 및 사회를 바라보는 비판적 시각 등에 의해 좌우된다. 확산 계층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동시에 상대 계층들 간 격차 조율에도 실패한 사회 상태가 있다고 해 보자. 그러한 사회 상태가 과학자 및 공학자 계층 등 특정 영역의 고유 계층을 보호하는 적절한 정책마저도 마련하지 못한 경우, 민주주의의 진화에 대한 요구는 더욱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현재 이 땅의 사회 상태는 이에 대한 실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사회 상태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민주주의의 진화 가능성에 대한 부정적 평가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를 분명히 하기 위해, 경제 및 교육 수준을 기준으로 한 상대 계층들 사이의 격차를 좁히는 제도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 민주제는 다수가 만족할 정도로 기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먼저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