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자연철학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1. 논의의 전체 윤곽

착한왕 이상하 2015. 3. 17. 19:22

* 다음 글은 추후에 수정되어 나의 원고 <추리와 추론의 패턴들: 일상적 합리성과 이상화된 합리성의 관계>의 부록 중 하나로 사용될 것임을 밝혀 둔다.

 

 

파르메니데스의 제 3의 사람 논증

-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3의 아름다움 논증과 같은 것 대신 3의 사람 논증이라는 용어를 택했을까? -

 

 

1.

파르메니데스는 변화의 실재성을 부정하고 불변하는 하나됨이 세계의 본 모습이라고 주장한다(Owen에 의해 널리 퍼진 이러한 해석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러한 해석이 거의 통념처럼 굳어져 여기서는 그냥 차용함을 밝혀 둔다).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의 역설들은 불변하는 것들을 가정하여 양적 변화 및 질적 변화 모두를 설명하려는 시도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젊은 소크라테스는 제논의 책을 읽고 그의 역설들을 비판한 후 파르메니데스와 대화를 나눈다. 그 비판은 젊은 소크라테스가 생각한 형상론(theory of forms)에 근거하고 있다. 파르메니데스는 소크라테스의 형상론에 대한 여러 반론들을 펼친다. 젊은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반론들에 응수해 파르메니데스를 설득하려 했으나 실패한다.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Parmenides)>는 이러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3의 사람 논증(the third man argument)’<파르메니데스>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파르메니데스가 소크라테스의 형상론을 반박하기 위해 펼친 논증 중 하나를 일컫는다. 그 논증은 특정 사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에 대응하는 형상이 유일하다는 가정이 무한 후퇴(infinite regress)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름답다고 여기지는 사물들에 대해 단 하나의 아름다움 그 자체라는 형상을 대응시키는 사고방식은 결국 그것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 그 자체1’, ‘아름다움 그 자체1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 그 자체2등을 계속 만들어낸 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 사물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에 대해 단 하나의 형상이 대응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증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증을 플라톤 자신은 3의 사람 논증이라 명명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명명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경험 가능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가정된 플라톤의 형상 개념을 반박하기 위해 그 논증을 다룬 것이다.

 

이 짧은 글에서는 제 3의 사람 논증에 대한 현재 대세인 구성 방식과 블라스토스(G. Vlastos)의 구성 방식을 서로 대비시켜 볼 것이다. 이렇게 대비시켜 보는 작업 자체가 많은 논리학자들에게는 일종의 넌센스(non-sense)’일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대세인 제 3의 사람 논증 구성 방식은 적어도 블라스토스에 대한 셀라스(W. Sellars)의 비판 이후 그들에게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논증의 내용이 논증 구성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현재 대세인 제 3의 사람 논증의 구성 방식과 블라스토스의 구성 방식을 비교해 보는 작업을 무의미한 것으로 몰아세울 수 없다.

 

이 글의 목적은 주목적은 다음과 같다.

 

제 3의 사람 논증에 대한 현재 대세인 구성 방식과 블라스토스의 구성 방식을 비교해 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실제 논증의 내용이 순서적 구성 방식에 영향을 받는다라는 사실을 보여 주는 데 있다.

 

3의 사람 논증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들, 그리고 그러한 방식들과 관련해 플라톤의 형상론을 다루는 것은 논외로 한다. 더욱이 그러한 것을 다루는 것은 나의 관심사가 아닐뿐더러 나의 지식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의 사람 논증에 대한 현재 대세인 구성 방식과 블라스의 구성 방식을 비교해 보는 것은 플라톤의 지적 발달 과정을 추적하는 데 두 가지 접근법이 가능함을 분명히 해준다. 그 하나는 플라톤이 정합적인 형상론을 완성시켰다고 가정하고 그의 저술들을 분석해 나가는 접근법이며, 다른 하나는 플라톤도 여느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지적 혼란 혹은 혼선에 빠질 수 있다고 가정하고 그의 저술들을 분석해 나가는 접근법이다.

 

마지막으로 그 자체와 관계맺는 술어(predicates pros heauto) 해석’과 다른 것과 관계맺는 술어(predicates pros ta alla) 해석’의 구분에 근거해 제 3의 사람 논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메인월드(C. Meinwald)의 입장을 간략히 소개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해결 방식은 다음 문제를 더욱 의미있게 만들지만 제 3의 사람 논증에 대해 ‘goodbye’를 선언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음을 주장할 것이다.

 

3자 논증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는 사람이다(... is a man)’라는 술어 대신에 ‘...는 크다(... is large)’와 같은 술어가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논증에 대해 3의 큼 논증혹은 3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3의 사람 논증이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현재 대세인 제 3의 사람 논증의 구성 방식을 살펴보는 것으로 논의를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