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민주주의의 진화 가능성 4.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

착한왕 이상하 2015. 5. 14. 22:43

절차적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정당 민주제의 형태는 크게 자유 민주제와 사회 민주제로 나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사회 민주제라는 용어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다. 이 땅의 정치 체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나라는 자유 민주제를 표방한 미국이었다. 미국은 냉전 시대 자국의 이권을 확대시키기 위해 과거 독재 정권을 도와준 까닭에, 반미 감정도 심한 곳이 이 땅이다. 독재 정권에 항거한 민주화 기여자들 중 일부는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기도 했다. 여기에 냉전 시대의 반공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세력과의 갈등이 겹치면서 사회주의라는 용어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간색의 좌파를, 그리고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그에 대비된 파란색의 우파를 뜻하게 되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 안에서 사회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는 정당은 아예 민중의 지지를 얻기 힘들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회와 국가를 그리고 공동체에 대한 애착과 애국심을 동일시하도록 민중들의 사고방식이 길들여진 것도 한몫을 한다. 국가 권력을 대리하는 정부가 표방하는 정치 체제와 상이한 것을 무조건 반공동체적인 것으로 여기는 인식은 그렇게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에서 기인했기 때문이다.

 

이 땅의 거대 정당들은 모두 표면적으로는 자유 민주제를 내세우고 있다. 부와 권력 분배 문제를 놓고 갈등이 벌어질 때면, 사회 민주제 대 자유 민주제의 맥락 대신 좌파 대 우파의 맥락이 여론의 중심축으로 자리잡는다. 좌파와 우파의 개념적 구분은 프랑스 혁명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왕의 왼쪽 편에 농민을 대표하는 집단이, 오른쪽 편에 귀족층을 대표하는 집단이 앉았던 사건에서 유래한 것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이다. 좌파가 사회 민주제에, 그리고 우파가 자유 민주제에 대응되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그렇게 대응시키는 것은 집단 중심의 논리가 한때 좌파에, 그리고 개인 중심의 논리가 우파에 연관되었던 역사적 맥락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가급적 제한하려는 자유 민주제의 정책은 종종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기회 균등 원칙에 의해,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허용하는 사회 민주제의 정책은 시장에 국한되지 않는 사회의 다면적 질서 및 공동체의 균형 원칙에 의해 정당화되었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제 옹호 진영은 정부도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시장을 통제할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허용하는 것은 결국 개인의 선택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시회 민주제 옹호 진영은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장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 없이는 빈부 격차만 더 극심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두 입장은 18세기 말 이후 선택의 자유와 복지의 관계에 대한 낙관적 입장과 비관적 입장의 교차 과정의 연장선에 서 있다. 자유 민주제 옹호 진영과 사회 민주제 옹호 진영의 입장 차이에서 공통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개개인 각자의 자유와 권리를 직접 보호해 주는 정부의 정책이 있다는 생각은 환영이라는 것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계층들의 역동적 관계를 다루는 것이 민주주의의 정치론에서 중요해 진다. 각 개인은 실제로는 현실 공간의 계층들을 이동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계층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은 개인을 억압하는 정책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계층들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것은 개인 대 공동체 혹은 자유 민주제 대 사회 민주제를 대립적 구도로 설정하는 논쟁 속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더욱이 정부의 시장 개입 허용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그런 이론적 논쟁보다는 경제 상황에 의존적이다. 불행히도 해방 후 이 땅의 역사는 그런 이론적 논쟁이 우파 대 좌파의 대립 구도로 왜곡되도록 진행되어 왔다.

 

좌파, 우파 개념이 여전히 정치적 선동 수단으로 사용되기는 하지만, 고정된 좌파적 속성이나 우파적 속성과 같은 것은 없다. 그러한 속성을 규정하여 정치 체제를 논하는 것은 사회학이나 정치학 담론의 주류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좌우 갈등을 진단하기 위해 과거에 유행한 좌파적, 우파적 속성을 굳이 끌어 들일 필요는 없다. 또한 그러한 속성을 전제하여 진성 좌파진성 우파가 없다면서 집단적 갈등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것도 현실적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좌우 갈등이 실제적으로는 기득권층을 중심으로 한 세력권력 분배를 요구하는 세력 사이의 갈등인 경우, 더욱 그렇다.

 

정치적 권력 분배에 대한 요구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 민주제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치적 평등 보장에 대한 요구와 동일한 것이 될 수 없다. 정치적 권력 분배를 강조하는 정당 세력 중 일부가 정치적 평등 보장을 강조한다면, 이는 그의 무지를 보여주거나 세력 확장을 위한 선동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더욱이 정치적 권력 분배는 단순히 시민들의 권리들의 목차를 늘리는 것에 의해 실현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모든 권리들이 공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권리 요구가 시민권의 보장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당 민주제에서 정치적 권력 분배는 입법과 정책이 사회의 다수를 중심으로 결정되는 정도에 의해 평가된다. 그 평가 방식은 정치적 권력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들에 근거한다. 절차적 민주주의의 정당 민주제를 기반으로 한 사회에서 그러한 요인들로 경제 및 교육 수준이 자주 거론된다. 투표권 및 시민권 등이 합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적어도 형식적 차원에서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한 곳일지라도, 다음과 같은 정당 민주제의 위험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정당 민주제는 근본적으로 정치적 평등을 보장할 수 없다. 입법과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 체계를 조직할 수 있는 정치가 계층만이 정치적 권력을 직접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은 투표 행위를 통하여 정치가를 선별하고, 법적으로 시민권과 재산권 등을 보호받는다. 그러나 정치가가 당선 전 공약을 어겼다고 해도, 시민은 그를 처벌할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선거 과정은 정책 대결이 아닌 정치가들의 진정성 여부를 가려 보겠다는 선동에 좌우되는 판세로 변질될 수 있다. 더욱이 누구나 한 표를 보장받는 시민들의 교육 및 비판적 사고 능력의 편차를 고려한다면, 시민들의 투표 행위가 정치적 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효과적 수단이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위 위험성을 정당 민주제에 내재한 필연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우, 앞서 살펴본 확산 계층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를 인정하면, 정당 민주제의 선거 제도로 정치가 계층을 제어할 수 있다거나, 다수결 원칙이 실제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게 된다.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는 이러한 반론을 피해나가는 논의 방식을 뜻한다. 등고선 지도에 유비된 권력 분포 지형도를 도입하여 그러한 중산층 논리를 파악해 보자.

 

논의를 단순화하기 위해 두 개의 정당만 등장하는 다음의 권력 분포 지형도를 살펴보자.

 

권력 분배를 요구하는 시민 세력 다수는 정당 A를 중심으로 모여 있다고 가정하자. A를 중심으로 한 원들은 세력 분포 방식을 나타낸다. 5층으로 구성된 원들 사이의 간격은 B를 중심으로 한 원들 사이의 간격보다 좁다. 그러한 간격이 좁을수록 해당 세력의 결속력이 강하고, 층수가 높은 지역의 정당이 상대적 다수의 지를 받아 시민들로부터 통치권을 양도 받은 정치가 집단이라고 하자. 정당 B를 중심으로 한 세력 중 일부분은 경제적 기득권층을 형성하고 있다. B를 중심으로 한 원들은 4층으로 그 간격은 상대적으로 넓다. 과연 A를 중심으로 한 집단은 정당 민주제 틀 내에서 점점 그 세력을 넓혀갈 수 있을까? 그래서 권력 분배에 대한 요구가 사회 전체로 확대될 수 있을까? 그 누구도 이 물음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긍정할 수 없다.

 

위 지형도의 현 상태에서 권력을 차지한 A 세력은 경제력의 측면에서 B보다 낮다. 하지만 정당 A를 구성하는 정치가들의 경제적 부가 B보다 현저히 낮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위 지형도에서 경제력은 단지 평균 경제력을 뜻할 뿐이며, A는 어디까지나 A 세력 범위에서 상대적 소수 집단일 뿐이다. 또한 AB 모두 정치 영역의 고유 계층인 정치가 집단을 구성한다. 그 구성원들의 관심사에 따라 AB 모두 경제적 이익을 누리기 위해 결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AB 모두 자신들의 세력 반경 범위를 넓힐 목적으로 현재 반경 주변이나 바깥 지역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AB의 실질적 정책 내용은 대동소이해질 수 있다. 결국 A의 결속력은 약해지고 B가 권력을 차지할 수 있다. 이러한 식으로 AB가 번갈아 가면서 권력을 차지하다 보면, 정치가 계층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날 수 있다. 그러한 환멸이 현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투표율이 낮아진다면, AB 모두 사회 구성원의 약 30% 정도의 지지만으로도 권력을 차지할 수도 있다. 권력 분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강한 결속력을 과시하더라도, 그 요구는 사회 전체로 확대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 정치가 계층에 대한 시민의 제어가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없게 된다. 어떤 정당이 권력을 차지하든 간에, 실질적 다수의 의견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은 약화되기 때문이다.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란 평균 교육 수준의 향상과 함께 중산층이 두터워지면 이러한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다음의 권력 분포 지형도를 살펴보자

 

 

위의 권력 분포 지형도에서 압도적 다수는 상대적으로 평균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이다. 정당 민주제 기반의 사회에서 중산층 구성원들이 입법 및 정책 결정 등 정치적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치적 로비를 벌릴만한 여유도 없는 까닭에 기득권층만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게다가 정당 중심의 정치는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정당 세력은 경제적 기득권층이나 그 계층과 공조 관계를 맺는 인물들로 구성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AB를 편의상 우측에 위치시킨 것이다. 물론 AB가 반드시 우측에 위치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각 정당의 위치는 경제 및 교육 수준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념 및 지지 세력과의 관계 등에 영향을 받는 정당의 대표성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 지형도와 두 번째 지형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두 번째 지형도에서 AB는 중산층의 중심 세력이 아니며, 더 이상 AB를 중심으로 세력이 확연히 양분되지도 않는다. 중산층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AB는 선거에서 가급적 많은 표를 얻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중산층을 고려한 입법과 정책을 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입법과 정책은 자연스럽게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된다. 이때 문제가 되는 집단은 점선으로 처리된 소수 집단들이다. 그러한 집단들이 입법 및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제외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수인 중산층 구성원들이 소수 집단을 배려할 수만 있다면, AB 어느 쪽이 권력을 잡든 입법 및 정책은 다수의 의견을 반영하면서도 소수 집단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된다. 결국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란 중산층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정치가 계층에 대한 시민의 제어도 자연스럽게 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현재 절차적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진화 논쟁은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 중산층 논리에 따라 사회 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진화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작업에서는 사회 상태를 그렇게 변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 자체가 민주주의 진화의 목적이 될 수 없다.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은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가 진화의 실질적 목적으로 설정된 진화적 관점에 대비되어 규정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