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민주주의의 진화 가능성 5. 확산 계층으로서의 무종교인 계층

착한왕 이상하 2015. 5. 14. 22:54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은 실험적 의미에서의 진화적 관점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민주주의의 그러한 진화적 관점을 수용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 관점의 수용 여부는 어디까지나 해당 집단이 처한 상황에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만약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가 실현된 집단에서도 확산 계층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면, 그 집단은 그러한 중산층 논리에 대한 반례라고 할 수 있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진 이후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가 완전히 실현된 현실 공간을 T라고 하자. 그 논리에 따르면, 중산층이 확대될수록 교육 및 경제를 기준으로 한 상대 계층들 사이의 간격은 다수의 의견이 입법 및 정책에 반영되는 정도의 범위내에서 안정화된다. 다시 말해, T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정당 민주제의 기능 방식에 만족할 수 있는 사회 상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정태적 관점 옹호자들의 희망일 뿐이다. T의 실질적 다수는 정당 민주제의 현재 기능 방식에 만족할 수 없는 확산 계층 s이기 때문이다. s의 구성원들은 여러 사회 영역들에 분산되어 있다. 물론 그들 각자는 특정 영역의 고유 계층, 실례로 교육자로서 교육 영역의 교육자 계층에 속하거나, 경제 및 교육 수준을 기준으로 한 상대 계층, 실례로 중산층에 속한다. 하지만 그들 각자로 구성된 다수 계층 s는 고유 계층으로도, 상대 계층으로도 분류되지 않는 확산 계층이다. 확산 계층 s가 사회의 불특정 다수를 대표하게 된다면, 다수 계층의 의견은 입법 및 정책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는 민주주의의 기능 원칙이 깨진 것이다. s가 확산 계층으로 분류된다는 것은 ‘s의 의견이 표출될 사회적 통로조차 가로 막혀 있음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 옹호자는 위 반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중산층 논리가 어느 정도 실현된 상태에서 s와 같은 확산 계층의 형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령 s와 같은 확산 계층이 형성되더라도, s의 의견을 정책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 사소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의 현실은 이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이 땅의 사회 상태는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가 실현되었다고 평가되는 상태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 확산 계층으로 분류되는 이 땅의 무종교인들의 지위가 중산층 확대와 함께 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기 힘들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현재 이 땅은 다수가 무종교인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라는 점에서 세속화된 사회이다. 하지만 무종교인들의 의견이 반영될 통로는 가로 막힌 사회이다. 사회 상태를 국민 국가 상태보다 더 넓은 것으로 인식한다면, 세속화된 상태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무종교인들의 의견은 입법 및 정책 결정 과정에서 고려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이 땅의 무종교인들은 하나의 계층을 형성한다.

 

세속화된 상태는 사회에서 종교의 긍정적 기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 상태는 단지 특정 종교의 교리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하는 상태에 대비된 것일 뿐이다. 따라서 무종교인들 모두가 종교적 전통 속에서 살아남은 미덕마저도 부정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다만 그러한 미덕이 오로지 특정 종교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도덕의 종교 기원론만을 부정할 뿐이다. 무종교인이 전통 속애서 살아남은 미덕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의 사회적 기능 방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세속화된 현재 상태는 정상적이라고 평가될 수 없다. 이 점은 의무화된 종교 교육이 재단의 자율권이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뒷받침된다. 그러한 재단은 종교 영역의 고유 계층인 종교인 집단에 속한다. 특정 고유 계층의 자율권은 다른 계층들과의 상호 제한적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결코 일부 집단이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어느 학교 재단이 종교의 자율권을 들어 의무화된 종교 교육을 옹호한다면, 이것은 해당 재단이 속한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야욕을 숨긴 것에 불과하다.

 

이 땅의 실질적 다수인 무종교인들의 의견이 표출될 통로가 가로 막힌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이 땅은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세속화된 곳이다. 무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세속화 운동과 같은 것도 없었다. 유럽의 경우, 그러한 운동이 계급 개념을 함축한 계층 간 갈등 속에서 벌어졌었다, 그 결과, 정치적 권력을 가진 세력도 무종교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무종교인들의 의견이 고대처럼 반사회적이라거나 사회적 관심사에서 이탈한 것이라는 관점도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무종교인들은 불특정 다수의 확산 계층이 아니라 보호 계층의 지위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여기서 보호 계층이란 다음을 뜻한다.

 

보호 계층

특정 확산 계층 s의 의견은 입법 및 정책 결정 과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한 의견이 사회 상태 변화에 따라 정치 영역의 고려 대상이 되는 경우, s는 더 이상 확산 계층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또한 s는 특정 영역의 고유 계층으로도, 경제 및 교육 수준 등을 기준으로 한 상대 계층으로도 분류되지 않을 수 있다. 이때 s는 보호 계층으로 간주될 수 있다. s는 특정 영역의 고유 계층에 속한 집단의 무분별한 세력 확장 시도로부터 보호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s는 다시 확산 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s가 다시 확산 계층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은 구조적으로 분화된 사회 상태의 퇴행을 뜻한다. 실례로 무종교인 계층이 확산 계층에서 보호 계층으로 인식되는 사회 상태가 도래했다고 가정해 보자. 만약 특정 종교 집단의 세력 확장 논리를 정책적으로 제어할 수 없다면, s는 다시 확산 계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계급 갈등 과정 속의 세속화 운동과 같은 것을 거치지 않고 세속화된 이 땅의 경우, 무종교인들은 여전히 확산 계층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종교 세력의 확장 과정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라는 측면에서의 평가를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한 진행 과정에서 무종교인 계층의 고유성을 존중하는 것은 정치적 미덕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이것이 무종교인들의 의견 표출 기회를 가로 막는 현실에 대한 두 번째 원인으로 거론될 수 있다.

 

무종교인 계층처럼 확산 계층으로 분류 가능한 집단들의 의견을 고려하는 정치적 미덕이 이 땅에 자리잡지 못한 채, 직업 정치가들로 구성된 정치 영역의 세력들과 종교 세력들 사이의 끈끈한 유착 관계는 철옹성처럼 굳어 졌다. 따라서 이 땅은 세속화된 사회에서 그러한 유착이 오히려 쉽게 일어날 수도 있음을 보여 주는 곳이다. 이러한 사실에 심적으로 동요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동요는 세속화에 대한 잘못된 규정 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한 잘못된 규정 방식으로 세속화 과정은 어떤 목적, 실례로 종교성의 사장이나 종교성에 대비된 합리성을 향해 달리는 발달 과정으로 이해하는 방식을 들 수 있다. 그러한 이해 방식은 실제 세속화 과정을 왜곡한 것일 뿐이다. 사회가 세속화되는 방식은 일률적일 수 없으며, 세속화된 사회의 약점은 일부 정치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의 탈도덕화도 아니다. 그것은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복잡한 계층 간 관계가 오히려 정치 세력과 특정 계층의 유착을 강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정당 민주제 사회에서 강한 결속력을 과시하는 특정 종교 계층은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동안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가 집단에게는 유혹적이다. 반면에 현재 확산 계층으로 분류되는 무종교인 계층은 그렇게 유혹적이지 않다. 무종교인 계층이 사회의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더라도, 무종교인들의 일상생활은 다양한 영역의 고유 계층이나 상대 계층들을 넘나드는 방식이다.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무종교인들의 의견과 불만이 공적으로 표출될 기회가 없다면, 무종교인들은 마치 군중 속의 투명 인간에 비유 가능한 존재들이다.

 

무종교인 계층이 확산 계층으로 분류되는 경우, ‘사회의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면서도 의견 표출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상황의 무종교인의 딜레마는 확산 계층의 문제이기도 하다.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라면,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는 계층의 의견은 적어도 입법, 정책 결정 및 평가 과정에 반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계층이 확산 계층일지라도 말이다. 사회의 실적 다수 계층의 의견이 다른 계층과의 상호 제한 관계로 인해 적극적으로 수용되지 않더라도, 그 의견은 적어도 정치 영역의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사회의 실질적 다수를 차지하는 확산 계층의 의견이 공적으로 표출될 기회조차 없는 상황을 확산 계층의 문제로 규정했었다. 정당 민주제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사회라면, 다수 계층의 의견은 최소한 정치 영역의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무종교인의 딜레마가 확산 계층의 문제로 간주되는 한, 무종교인의 딜레마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무종교인의 딜레마는 민주주의의 딜레마로 여겨져야 한다. 이러한 결론은 모든 지역이 아니라 이 땅에 국한된 것이다. 이 땅의 경우, 무종교인 계층은 여전히 확산 계층의 지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특히 정치적 권력과 종교 세력 사이의 강한 유착 관계를 고려한다면, 평균 교육 수준의 향상과 함께 중산층이 확대되더라도 무종교인의 딜레마가 여전히 남을 것이라는 추측은 결코 부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땅의 무종교인 계층이 확산 계층으로 분류되는 상황에 대한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 옹호자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무종교인 계층의 반응은 정당 민주제 기반의 사회를 유지하는 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중산층 논리에서 확산 계층의 형성 가능성은 아예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산층 확대에 필요한 평균 교육 수준의 향상이 반드시 시민들로 하여금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도록 해주는 시각을 자극해 준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시각은 오로지 경제 영역에만 집중될 수 있다. 사회가 경제 영역만을 중심으로 유지될 수 없음을 인정할 때, 정태적 관점의 중산층 논리 옹호자의 반응은 수용하기 힘들다. 더욱이 그 반응은 정치적 권력과 특정 종교 집단 사이의 유착 관계를 사소하게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종교 집단 구성원들이 종교 영역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회의 다른 영역들에도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정치적 권력과 특정 종교 집단의 유착 관계의 고착화사회에 별도의 기득권층을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는 단순히 사회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경제 영역의 불평등을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기능하는 기득권층을 허용한다는 점에서 반민주적이다. 그러한 기득권층은 상위 계급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 땅의 현재 실질적 다수는 무종교인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의견이 공적으로 표출될 기회는 가로 막혀 있다. 이러한 무종교인의 딜레마는 확산 계층의 문제이기도 하다. 확산 계층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다수결 의사결정 원칙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않는 상황을 함축하기 때문에, 이 땅의 무종교인의 딜레마는 해결되어야 하는 민주주의의 딜레마로 간주된다. 이때에도 우리가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과 진화적 관점 중 무엇을 택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열린 문제로 남는다. 하지만 확산 계층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한 이 땅의 무종교인들의 상황은 민주주의의 정태적 관점이 실험적 의미에서의 진화적 관점을 배제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특히 다양한 계층들의 역동적 관계를 수평적 관점에서 사회 심리학 및 통계학 등과 연계시켜 다루는 것은 민주주의를 진화적 관점에서 논할 때 중요한 주제로 여겨져야 한다. 정치적 권력의 평등한 분배를 민주주의의 실질적 목적으로 삼는 진화적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다룰 때, ‘사회 전체에 걸친 기득권층의 형성을 가로 막는 방법론은 빼먹을 수 없는 연구 주제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