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세속화> 후기 2. 세속화 담론의 성격 2(수정)

착한왕 이상하 2015. 8. 27. 22:37

* 다음 글은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이 작업에서 펼쳐진 세속화 담론의 성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두 번째 물음은 다음이다.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하지만 과거는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역사적 서술이란 그저 자의적 해석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역사적 담론을 일종의 소설처럼 취급하는 입장은 두 가지가 있다. 약한 의미에서의 입장은 과거의 실재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 서술은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 및 사실들에 대한 기록과 증거들은 남아 있다. 그러한 증거들의 진위 여부에 대해 무조건 의심하려 든다면, 역사학은 불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물론 사건 및 사실들을 연결하는 방식은 해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증거들에 바탕을 둔 어떤 역사적 서술은 단순한 참 거짓 사실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이로부터 그 서술을 정확도나 왜곡 정도를 따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역사적 담론을 소설처럼 취급하는 입장을 강한 의미에서 해석한 경우는 사회 역사적 과정 자체가 해석의 역사라는 것이다. 그러한 해석의 역사에서 정확도나 왜곡 정도를 따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 입장은 주류 역사학자들 보다는 해석과 대상을 일치시키려는 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대상 인지 및 규정을 포함한 경험의 모든 측면을 마음과 연관시킨 칸트 이후, 해석에 대상 자체를 포섭시키려는 노력은 현대 철학사의 한 장을 차지한다. 더욱이 사회 역사적 과정 자체가 해석의 역사라는 입장은 개인들의 참여 없는 사회 역사적 과정이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는 듯하다. 그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면, 인간의 경험과 무관한 역사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로부터 서술자 관점에서 파악되는 대상들의 일상적 실재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실재성은 개인들이 참여 하는 사회 역사적 과정의 토대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지금 내 앞에 검은 마우스가 있다. 마우스는 인류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우스는 인류 역사의 산물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마우스가 머릿속이나 마음속에 있다고 믿지 않으며, 그렇게 믿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려 들지 않는다. 서술자 관점에서의 일상적 실재론을 개념적 해석과 무관하게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들이 있다는 것으로 규정할 때, 그러한 일상적 실재론은 삶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삶의 바탕으로 색, 모양 등 특징들을 가진 마우스는 마우스의 판단에 대한 객관적 증거가 된다. 물론 그러한 특징들은 지각하는 동물 및 환경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마우스와 그러한 특징들이 분리되어 지각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분리는 단지 개념적 영역에서만 가능할 뿐이다. , 마우스가 개념적 해석과 독립적으로 외부에 존재한다면, 그것의 특징들도 마찬가지다. 마우스에 의식하는 것은 동시에 그 특징들에 대해서도 의식하는 것이다. ‘대상 의식 이전에 주어진 마음이라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 정말 올바른 것인가라는 문제는 제쳐 두자. ‘이러이러한 특징을 가진 마우스를 특정 판단의 증거로 삼는 것을 주관적이라고 할 사람은 없다. 이 점에서 일상적 대상들은 서술자 관점에서 객관적 증거가 된다.

 

물론 역사 서술에서 관심을 갖게 되는 사실은 연암 박지원이 양반전을 썼다는 것보다는 연암 박지원이 이러이러한 동기로 양반전을 썼다는 것이다. 그러한 동기는 연암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 개인들이 뒤섞인 시대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암 역시 자신의 동기를 자극한 사건 및 사람들을 머릿속에 들어 있다고 여기지 않았다. 서술자 관점의 일상적 실재론은 사회 역사적 과정을 다룰 때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배재하고 사회 역사적 과정을 그저 해석의 역사로 규정하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인 것이다. 연암의 동기를 자극한 것들은 기록, 유물 등을 통해 남아 있다. 그러한 것들은 서술자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파악된다. 이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증거로 한 추측이나 평가는 결코 자의적 해석으로 간주될 수 없다.

 

지금까지의 논의에 따른 두 번째 물음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

 

역사적 서술에 대한 증거들, 실례로 기록, 유물, 화석 연대 측정과 같은 과학적 조사 결과 등에는 서술자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파악되는 사건 및 사실들이 반영되어 있다. 역사적 서술이 그러한 증거들에 의해 강하게 제한되어 있으면 있을수록, 그 서술은 자의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