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세속화> 후기: 독단적 지성사와 거리 두기 2

착한왕 이상하 2015. 9. 9. 01:16

* 다음 글은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X는 현재 대세인 세계 이해 방식 W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는 야망을 가진 인물이다. X는 인간, 자연, 사회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W의 핵심 전제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시켜야 한다. X가 역사를 존중하는 인물이라면,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이 아니라 세계 이해들의 세계가 변화해온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그는 W와 대립 관계를 맺는 W들에 주목하게 된다. XW들에 근거해 W를 만들었을 때, W는 기존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의 일부를 재구성해 변형한 것이라는 점에서 생성된 것이다. 더욱이 모든 세계 이해 방식들은 일상 경험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들 혹은 그렇게 받아들여만 하는 믿음들 일부를, 실례로 그 어떤 대상도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걸어서 달에 갈 수 없다’, ‘이유 없이 다른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등을 설명 대상으로 삼는다. 서로 다른 전제들에 바탕을 둔 두 세계 이해 방식의 그러한 설명 방식이 유사할 수도 있다. 도덕의 궁극적 기원을 자연에 돌리거나 혹은 신에게 돌리는 두 세계 이해 방식에서 그러한 유사한 설명 방식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도덕의 출발점을 동정심이나 양심 등 특별한 감정 및 정서에 근거시키는 설명 방식이다. 단지 그러한 감정 및 정서의 궁극적 기원만 다를 뿐이다. 따라서 X가 부정하는 W의 특정 설명 방식이 그의 새로운 W에 스며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X의 경우를 받아들이면, 그의 새로운 W는 기존의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와 단절된 것이 아니며, 단순히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은 X가 역사를 존중하지 않는 경우에도 성립한다. 그 누구도 수 천 년에 걸쳐 변통의 과정을 거쳐 온 모든 세계 이해 방식들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 X가 기존의 세계 이해 방식들을 외면해도, XW와 유사한 세계 이해 방식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기존의 특정 세계 이해 방식들을 변형하고 융합한 결과로 W를 평가할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만의 언어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 이해 방식이라는 것도 없다. 그 어떤 경우에나 새로운 W는 과거와 단절된 것도, 그렇다고 과거의 연장선에 서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점은 새로운 것을 재구성을 통한 변형 과정으로 규정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새로운 세계 이해 방식의 생성을 재구성을 통한 변형 과정으로 파악할 때, 그 변형 과정은 환경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삶의 방식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그 변형 과정은 전통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그 변형 과정은 현실에 대한 적극적 반응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전통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것도 아니다. 기독교의 권위에 대항하기 위해 생성된 세계 이해 방식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내용적 측면에서 기독교적 사고방식과 유사한 부분들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부분들을 빌미로 세속화 과정을 그저 기독교의 세속화 혹은 기독교적 사고방식의 세속화로 규정하여 세속화 과정을 사소한 것 혹은 허구로 묘사하는 입장이 있다. 그러한 입장이 논쟁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생성시킨 사회적 배경 맥락, 그리고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내부의 복잡한 관계를 무시한 채, 새로운 것을 과거와 단절된 것으로 규정하는 반대 입장이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대세인 세계 이해 방식의 핵심 전제들을 부정한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것을 과거와의 단절로 규정하는 것은 마치 데카르트의 글 일부만 읽고 그의 철학이 중세와 단절된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과 마찬가지 짓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을 기독교의 세계 이해와 비교할 때, 그의 철학은 어떤 반기독교적 요소때문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개인의 합리적 능력만으로 자연 및 도덕의 법칙을 마련할 수 있다는 생각이 고전적 이원론으로 채색된 기존의 기독교 교리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요구는 교황의 정치적 권력에서 자유로워진 당시 세태를 반영한다. 과거와 단절된 것도 종속된 것도 아닌 그의 철학은 그러한 세태에 대한 지적 반응 중 하나일 뿐이다.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이 변화해온 과정 자체에 대해서도 연속 아니면 단절의 논리를 적용할 수 없다. 이 점은 이 작업의 논의에 따르면 당연한 것이지만 여기서 간략히 정리해 보자.

 

다음 도식은 외부 창조설과 사후 구원이 기독교의 핵심 전제로 자리잡게 되는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시킨 것이다.

 

 

 

기독교와 유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선이 궁극적 의미에서의 실체에서 기인한다는 사고방식이다. , 인간 세상의 부정적 요인을 그러한 실체에 돌리려는 동기를 차단하려는 사고방식이다. 이 점에서 그러한 동기를 허락하는 마니교의 사고방식은 기독교나 유교와 다르다. 유교에서 신적인 것의 의미는 기독교와 다르다. 기독교에서 신적인 것그 자체로 존재하는 하나 혹은 하나됨을 뜻한다. 유대교에 뿌리를 둔 이 점을 바탕으로 신의 창조 행위를 논할 때, 그 행위는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 가능함을 살펴보았다. 이 때문에, 기독교 세계 이해 방식의 변천 과정을 논할 때 우주를 서식처로 삼은 창조설, 즉 만유내재론에 함축된 창조설을 무조건 배재할 수 없다. 만유내재론은 단지 현재 대세인 기독교 교리에 부분적으로 반하는 것일 뿐이다. 만유내재설을 주장했던 인물들은 자신들의 입장이 더 신의 창조 목적 및 행위에 부합한다고 믿었다. 현재 대세인 기독교 교리의 핵심 전제 중 하나는 외부 창조설이다.

 

살펴보았듯이, 외부 창조설은 크게 우인론과 자율적 우주 창조설로 나뉜다. 우인론은 다시 동시 창조설과 연속 창조설로, 그리고 자율적 우주 창조설은 크게 본성론과 지적 설계론으로 나뉘며, 지적 설계론은 다시 자연의 역사를 허용하는 것과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 17세기 기계론의 형성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 원자론의 세계 이해 방식은 원래 기독교와 대립 관계를 맺고 있었다. 필연보다는 우연을 강조하는 원자론에서는 창조주뿐만 아니라 사후 세계마저도 부정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 공간 속에 원자들이 스스로 운동한다는 관점은 기독교적으로 변형되어 자율적 우주 창조성이 형성되는 데, 그리고 모든 현상을 원자들과 빈 공간의 상호 작용으로 환원 설명 가능하다는 관점은 변형되어 합법칙적 우주론이 형성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 합법칙적 우주론에 근거한 이신론은 인간사에 신이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때문에 기독교 교리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 이해 방식의 변화 과정을 다룰 때, 이신론도 그 변화 과정에서 사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렇게 간주하는 것은 신학의 역사를 현재 대세인 기독교 교리에 짜 맞추어 충분히 서술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대세인 기독교 세계 이해 방식의 또 다른 핵심 전제인 사후 구원 가능성은 그 구원의 매개물이 무엇인지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나뉜다. 기독교의 사후 구원의 궁극적 목적은 최후의 심판을 통해 사람들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러한 부활에 필요한 매개물, 즉 '사후 구원의 매개물'이 영혼인 경우, 의식인 경우, 그리고 육체인 경우이다. 사후 구원 대상을 영혼으로 간주하기 위한 전제 조건은 영혼이 사후에도 바로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후에도 소멸되지 않는 기독교의 영혼 개념에는 플라톤의 영향력이 배어 있다. 알렉산드리아 시절, 플라톤의 영향 아래 영혼을 합리적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나누고 그 관계를 따지는 것이 논쟁 대상이 되었다. 이후 통일된 하나의 영혼이 활동 속에 드러나는 방식들로 그러한 부분들을 규정하는 방식이 기독교 신학에 흡수되었다. 여기에는 고대 무신론을 대표한 원자론, 그리고 창조주가 아닌 세계영혼을 가정하는 스토아학파의 세계 이해 방식도 깊게 침투해 있다.

 

원자론에 따르면, 영혼도 원자들의 운동 및 형태에 기인한 것일 뿐이다. 합리적 능력과 그렇지 않은 능력이 서로 다른 두 원인에서 기인했다고 가정할 필요가 없다. 스토아학파에 따르면, 영혼은 세계영혼이라는 전체가 육체에 깃든 것이다. 연혼은 전체가 육체라는 부분들에 반영된 방식이기 때문에, 활동 방식에서 나타나는 차이가 영혼의 분할을 함축하지 않는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악을 선의 결여 정도로 평가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사후 구원론은 선의 신과 악의 신을 가정하는 마니교를 변형하여 기독교적으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다.

 

사후 구원의 매개물을 영혼으로 간주하는 입장은 폼포나찌 논쟁을 거치면서, 그리고 종교 개혁기에 루터와 칼뱅 등에 의해 위협받게 된다. 기독교의 신이 전지전능한 속성을 갖고 있는 것으로 가정되었기 때문에, 사후 구원의 매개물이 반드시 영혼일 필요는 논리적으로 없다. 게다가 고대 기독교 경전뿐만 아니라 신약에도 영혼이 사후 구원의 매개물임을 명시한 곳은 없다. 신이 전지전능하다면, 최후의 심판의 날에 단 한 조각의 뼈만 가지고도 사자(死者)를 부활시킬 수 있다. 또 사람들의 생전의 기억만 가지고도 부활시킬 수 있다. 육체를 구원의 매개물로 삼는 입장은 홉스에게서, 그리고 의식을 구원의 매개물로 삼는 입장은 로크에게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의 사회 계약론에 깔린 동기는 정치적이면서 종교적이다. 정치적으로는 칼뱅을 추종하는 청교도들이 교회 세력 확장하려는 시도를 억압하는 것이었다. 종교적으로는 사후 구원의 의미를 고대 기독교 및 유대교 경전에 근거해 재설정하는 것이었다.

 

홉스의 철학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것은 유물론이 기독교 교리에 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말로(C. Marlow), 오버톤(R. Overton), 밀턴(. Milton) 등에게서도 엿 볼 수 있다. 이들은 기독교 현세주의(Christian Mortalism)’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또한 이들 모두는 사후에도 남게 되는 영혼 개념을 부정하기 위해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에 관심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 이해를 돕기 위한 몇 가지 언급들

 

<에피쿠로스의 원자론>

에피쿠로스의 원래 원자론에 따르면, 무게를 가진 모든 원자는 가라앉는 본성을 가진 것으로 가정되었다. 모든 원자는 등속 낙하 운동을 한다. 이때 그 운동 궤도에서 약간 벗어난 원자로 인해 원자들 사이에 충돌이 발생한다. 또 무거운 원자들의 충돌로 인해 가벼운 원자는 위로 올라가는 힘을 얻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와 에피쿠로스를 추종한 루크레티우스의 원자론에 따르면, 이 세계는 무게의 본성에 따른 원자의 낙하 운동과 충돌이라는 우연적인 사건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결론만으로는 물체의 성질이나 감각 작용을 쉽게 설명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고대 원자론자들은 원자의 크기와 형태에 근거해 그러한 성질이나 작용을 설명하려고 시도했다.

 

<알렉산드리아 시대 영혼의 전체와 부분의 관계가 논쟁 거리가 된 이유 중 하나>

중기 플라톤 철학을 대표하는 <파이돈>에서는 영혼은 통일된 하나로 규정된다. 하지만 <국가>에서 영혼은 세 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물론 합리적 능력을 담당하는 부분에 다른 부분들이 순응하는 경우가 최선이며, 여기에는 그의 이상적인 국가 개념이 반영되어 있다.

 

<원자론과 스토아학파가 기독교의 영혼 개념에 미친 영향력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해 주는 연구서> 

Blosser, B.(2012), Becoming Like the Angels: Origen’s Doctrine of the Soul, The Catholic University of America Press.

Gill, C.(2006), The Structured Self in Hellenistic and Roman Thoughts, Oxford University.

 

<17세기 영국 기독교 현세주의 관련 언급>

루터에게 교회는 교인들의 공동체 활동의 장소와 같은 것이다. 반면에 칼뱅은 교회 중심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규정했다. 이 때문에, 교회의 세력 확장 시도에 대항한 17세기 영국 지식인들을 세속화 과정을 촉발시킨 무신론자처럼 취급하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입장은 역사적 증거를 결여한 것이다. 역사적 증거를 결여한 그러한 입장이 반영된 책으로 다음을 들 수 있다. Israel, J.(2000), Radical Enlightenment: Philosophy and the Making of Modernity, 1650~1750, Oxford University. 교회 세력 확장에 대항한 17세기 영국 지식인들 대다수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이다. 여기에서 홉스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Thomson, A.(2008), Bodies of Thought: Science, Religion, and the Soul in the Early Enlightenment, Oxford University. 종교 개혁기 영국의 청교도 세력의 형성 과정, 그리고 청교도와 장로교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윤종훈(2008), <잉글랜드 청교도 장로교주의 기원에 관한 고찰>, 영국 연구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