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세속화> 후기: 독단적 지성사와 거리 두기 3

착한왕 이상하 2015. 9. 24. 02:48

특정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했던 시절, 해당 종교의 교리는 일종의 인간 사육 체계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은 종교적 교리와 자연 혹은 사회의 관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때 그러한 종교적 교리에 부합하는 삶의 방식만이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식의 차원에서 세속화된 시각이란 그러한 종교적 교리가 더 이상 지식에 대한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세속화된 시각이 사회적 저항 없이 통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종교성의 사장이 아니다. 단지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유지인 것이다.

 

특정 지역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획일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은 유럽 역사에 국한해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는 경우에도 성립한다.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도 다른 세계 이해 방식과 마찬가지로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것의 핵심 전제들이 유지되더라도, 그 내용은 재구성을 통한 변형 과정을 겪게 된다. 그러한 변형 과정은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에 대한 분석을 요구한다. 그러한 분석에서 순수한 기독교적 세계 이해 방식혹은 순수한 무신론적 세계 이해 방식이란 없다. 살펴보았듯이, 무신론을 대표했던 원자론의 사고방식이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에 내용적으로 침투할 수 있고, 이에 대한 역도 성립한다. 이러한 상호 침투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들에 대해 논할 때, 빼먹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사회 구조의 변동 맥락이다. 그러한 사회 구조의 변동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왜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의 변화 과정이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을까?’를 묻는 것은 무의하다. 그러한 사회 구조 변동 맥락이 갖는 우연성을 고려할 때, 내용적 측면에만 국한해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을 분석하는 것도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이 변화하도록 만드는 압력은 많은 경우 급격히 달라진 외부 환경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기의 유럽 상황을 고려해 보자. 가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은 더 이상 왕에게 신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당시 지식인들에게 대해서는 그렇다. 그들 중 일부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 계몽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의 세계 이해 방식은 고대 원자론 및 근대 기계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에 결코 과거와 단절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고대 원자론과 기계론은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과 양립 가능하도록 해석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이 극단적 계몽주의자들만의 점유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래의 이상적인 세계를 가정하여 현실을 부정적으로 진단하고 혁명을 정당화하는 그들의 목적론적 진보 사상은 기독교의 사후 심판 개념과 내용적으로 닮아 있다. 따라서 사후 심판을 혁명에 유비시키는 경우, 기독교적 사고방식이 그들의 의식에 침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다수 계몽주의자들은 칸트처럼 자신들의 철학과 기독교의 세계 이해 방식이 서로 양립 가능함을 보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또한 프랑스 혁명 여파에 두려움을 느낀 보수 진영이나 교회 세력의 동향 모두를 세속화 과정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 그러한 동향의 일부 측면은 변화한 사회 구조 맥락에 부합하도록 기존의 입장을 수정 변형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분석할 때, 계몽주의만을 중심으로 한 분석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특히 기독교 세계 이해 방식의 핵심 전제들만 가지고 혁명의 특성을 극단적 계몽주의의 틀속에 가두어 버리려고 시도하는 경우, 극단적 계몽주의는 과거의 그 어떤 세계 이해 방식들과 아무런 유사성도 갖지 않는 완전한 새로운 것처럼 과장되고 만다. 그 결과, 프랑스 혁명도 유신론 대 무신론 논쟁의 맥락 속에 갇혀 버리고 만다. 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극단적 계몽주의 역시 재구성을 통한 변형 과정의 맥락에서 완전히 일탈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극단적 계몽주의자들의 사고방식에도 기독교적인 것이 침투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를 포함한 다른 세계 이해 방식들도 당시 변화한 세태, 즉 고전적 이원론의 두 관점인 지상계와 천상계의 이분법’, ‘인간적인 것과 신성적인 것의 이분법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된 세태에 적응하기 위한 변형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다. 사실 프랑스 혁명을 촉발시킨 원인 중 하나는 당시 프랑스의 사회 구조가 상대적으로 그러한 세태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의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접근하는 경우, 혁명의 의미 및 새롭게 구성된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의 고유성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와의 단절이라는 칼을 역사에 손댈 필요가 없다. 그러한 의미 및 고유성은 과거에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던 사회 구조의 특징들만으로도 그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이 새로운 세태 변화에 부합하도록 내용을 재구성할 수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러한 변화에 맞추어 변형될 여지를 갖고 있다. 과거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새로운 것사회 구조의 변동 맥락 속에서 생성된 것이며, 그러한 생성 과정은 핵심 전제들의 측면에서 대립된 두 이해 방식의 단순한 비교를 통해 서술될 수 없는 복잡성을 지닌다. 앞서 살펴본 역사의 비동질성에 의해 뒷받침 가능한 이 점은 여전히 독단적 지성사에 의해 가려져 있다. 그 결과, ‘새로운 것과거와의 단절 논리속에서 파악하거나, 아니면 과거와의 연속 논리속에서 과거에서 발달한 것또는 새롭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는 사고방식들이 여전히 역사 읽기와 서술 방식을 뒤덮고 있다.

 

독단적 지성사란 무엇인가?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이 그러한 독단적 지성사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작업의 전체 논의를 바탕으로 위 두 물음에 대해 간략히 답해 보자.

 

 

덧글

프랑스 혁명의 여파로 형성된 신칼뱅주의를 단순히 혁명에 대한 반작용처럼 묘사하는 것은 역사적 근거를 결여한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교회 세력 일부가 새로운 세태 변화에 적응하려는 시도의 결과로 간주되어야 한다. 특정 입장을 중심으로 하거나, 아니면 서로 대립된 두 입장을 설정하여 혁명을 분석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 그렇게 대립된 두 입장을 설정하는 것 자체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그 두 입장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서술 방식도 일방적으로 통용될 수 없다. 네덜란드에서 신칼뱅주의가 형성되는 과정은 이 점을 잘 보여 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Boer, H.(2014), “Another Revolution: Towards a New Explanation of the Rise of Neo-Calvinism” in Eglington, J. & Harnick, G.(Eds.), Neo-Calvinism and the French Revolution, Bloomsbu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