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세속화> 후기: 두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축의 시대 3)

착한왕 이상하 2015. 12. 23. 00:07

* 다음 글은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특정 지역을 벗어나 세계 전체의 조화로운 공존을 위한 철학 체계를 건설해 보려는 야스퍼스의 의도를 부정적으로 평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의 철학 체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iii) 축의 시대의 축성 가정에 근거해 지역 간 혹은 문명 간 상호 이해를 강조하는 것은 유치한 도덕의 종교 기원론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야스퍼스의 철학에 친숙한 사람은 (iii)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그 어떤 종교 교리에도 종속되길 거부하는 세속화된 인간임을 그 스스로 자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 초월성에 대한 종교적 신앙을 철학적 신앙(philosophical faith)’으로 대체하려는 그의 시도는 철학적 종교의 세계화로 간주될 수 있으며, (iii)을 논리적으로 배제할 수 없음을 보게 될 것이다.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세속적 삶의 모든 제한 조건들로부터의 형이상학적 단절(metaphysical separation)이 갖는 특징들을 파악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한 특징들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따라서 그것들과 연관된 초월적 세계의 구체적 모습도 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현실 초월성의 대상은 신일 수도, 플라톤의 형상과 같은 것일 수도, 현상과 분리된 칸트의 본체(noumena)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 어떤 것이 되던 간에, 전통, 주술, 권력 등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통해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을 인식하는 것철학적 신앙이다. 여기에서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대립적이거나 서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철학적으로 통합 가능한 것으로 파악하는 야스퍼스의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야스퍼스의 이성은 경험적 탐구 대상이 된 합리적 추론 및 판단 능력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추론 및 판단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마음의 작인과 같은 개념이다. 이 점에서 야스퍼스는 근대적 이성 개념을 그대로 수용한 인물이다. 그에게 이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 세계의 각종 제약을 인식하도록 하는 동시에 철학적 신앙으로 유도하는 기능을 갖는다. 철학적 신앙을 통해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을 인식하는 것은 일종의 계시이다. 그러한 계시는 이성을 통로로 하여 얻어질 수 있는 것이지만, 또한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 준다. 이러한 까닭에, 그러한 계시는 종교적 의미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러한 계시를 얻은 존재만이 현실 세계의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참다운 개인이다. 물론 현실 세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을 인식하는 것은 교리, 전통, 민족, 권력, 이성에 대한 맹신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태도를 수반하며, 그러한 거리 두기 태도에 근거한 비판적 시각은 새로운 소통의 가능성을 열어 준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스퍼스에게 지적인 무종교인 혹은 세속화된 인간이란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을 인식한 진정한 개인이다. 이 점은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으려는 나와 같은 무종교인에게는 터무니없는 것이다. 현실 초월성을 부정하는 세계 이해 방식도 다른 세계 이해 방식들과 동등하게 다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으려는 무종교인에게 요구되는 비판적 시각은 현실 초월성에 대한 인식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러한 시각은 단지 근거나 증거가 불충분한 것이라면 자신의 주장에 대해서도 의심해 볼 수 있는 열린 마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과 신앙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통합 가능하다는 관점으로부터 철학적 신앙을 가진 진정한 개인개념을 이끌어 내는 사고방식은 이 땅의 무종교인들에게는 쉽게 다가올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고방식은 저기의 사람들에게는 호소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서양 지성사에서 야스퍼스가 차지하는 위상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특정 지역의 지성사에서 어느 인물이 차지하는 위상은 해당 지역의 역사적 맥락에 의존적이다. 야스퍼스의 사고방식이 저기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은 별도의 작업을 요구한다. 그 이유는 실증주의, 신칸트학파 등을 둘러싼 논쟁을 거쳐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구조주의 계보가 출현하는 과정의 서술 속에서 명확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이 작업의 논의에 국한해 그 이유를 간략히 살펴 볼 것이다. 이를 통해 특정 사고방식이 갖는 호소력은 역사적 맥락에 의존적임을 간접적으로나마 보이고 싶다.

 

종교가 사회 통합의 지배적 원리로 기능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여기저기의 세속화 과정에 공통된 것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의 세속화 과정은 내용적 측면에서 동질화될 수 없다. 이 땅에도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하는 것이 있었다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해 보는 경우, 그 역사 속 세속화 과정의 핵심인 유교의 변통 가능성의 실현 과정은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약화되면서 촉발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저기의 세속화 과정의 핵심은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이며, 그 붕괴 과정은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강화되면서 촉발되었음을 살펴보았다.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이 작업에서 다루어진 인간의 천사화 계획의 핵심 특징이다. ‘인간 중심 사상’,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자율적 인간상이라는 특징들로 구성된 인간의 천사화 계획이 추진되면서 과학과 종교, 종교와 철학의 관계도 재설정되었다. 그 재설정 방식들은 이성과 신앙을 분리하는 관점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는 칸트의 방식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는데, 야스퍼스는 자신의 철학이 그러한 방식이 갖는 한계를 극복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첫째, 칸트 철학의 핵심은 근대 과학을 포함한 지식 체계를 회의론으로부터 구제하는 것이다. 그에게 뉴턴 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은 불변의 확실한 지식 체계였으며, 그러한 지식 체계가 형성되는 방법에 대한 탐구는 동시에 마음에 대한 탐구이기도 하다.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인간 마음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면, 세계에 대한 불변의 확실한 지식 체계는 불가능하다. 이렇게 생각한 칸트는 오로지 인간 마음의 구성 방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뉴턴 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의 확실성을 예증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에게 이성이란 그러한 탐구 능력을 뜻하며, ‘물 자체와는 다른 마음 그 자체혹은 선험적 자아(transcendental self)’라는 실체에서 기인한 것이다. 현상에 대비된 실체의 세계를 물 자체마음 그 자체혹은 선험적 자아로 이분하는 관점에는 뉴턴 역학의 결정론과 자유 의지의 양립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칸트의 동기가 깔려 있다. 그 동기는 또한 과학과 도덕을 중재하는 동시에 철학을 과학과 대등한 확실한 지식 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둘째, 초월적 신 존재 및 사후 구원은 확실한 지식 체계에 속할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현상에 대비된 물 자체선험적 자아처럼 구체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물 자체선험적 자아를 가정하지 않고서는 경험적 현상과 의식의 통일성 등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칸트에게 이성은 물 자체와 선험적 자아와 같은 것들이 있음을 요청한다. 마찬가지로 신 존재 및 사후 구원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우주의 조화와 질서 및 도덕성은 궁극적 근원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다. 이성은 신과 사후 구원과 같은 것이 있음을 요청한다. 이성에 따른 이러한 요청은 도덕적인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인간의 실천과 판단 속에 반영되어 있다.

 

칸트 철학의 위 두 핵심은 확실한 지식 체계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신 존재 및 사후 구원 등에 대한 신앙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렇게 정리 가능한 위 두 핵심에 반영되어 있는 칸트의 진정한 개인이란 자율적 개인이다. 그에게 자율성과 타율성은 반대 관계를 맺는 것이다. 칸트는 논리적인 것과 수사적인 것, 합리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을 이분하는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에 순응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수사적인 것, 감정적인 것을 물질적 자극에 의한 충동이나 성향에 기인한 것으로, 그리고 충동이나 성향에 이끌린 판단 및 행위를 타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에게 자율적인 것은 그러한 충동 및 심리적 성향에 방해받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 근거해야 한다. , 칸트에게 자유심리적 성향, 실용적 욕구와 관련된 동기 등에서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를 뜻하며, 그러한 자유는 오로지 이성에 따르려는 의지에 근거한다. 칸트 철학에서 이성은 충동적 성향이나 감정에 단순히 대비된 것이 아니라 대립된 것이며, 합리적 판단 및 추론 능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칸트의 이성은 개별적이고 특수하며 주관적인 현상들의 배후에 깔려 있는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법칙 및 원리들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그러한 능력이 정말 인지적 한계를 갖고 있는 실제 개인에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이러한 의심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은 신뢰할만한 지식이란 집단의 시행착오 역사의 산물이라는 입장을 무조건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입장과 양립하기 힘든 칸트의 자율적 개인이란 결국 이성에 매몰된 사람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성에 따르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만이 심리적 성향 및 충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그러한 자유에 근거한 선택만이 합리적이고 도덕적이기 때문이다.

 

심리적 성향에 방해받지 않은 마음의 순수한 상태를 가정하고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개별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 타율적인 것과 자율적인 것을 이분하는 칸트의 관점을 받아들이면, 심리적 성향은 자율적 개인이 되려는 사람에게는 병적인 것이 되고 만다. 칸트의 자율적 개인 개념은 일상적 관점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다. 일상적 관점에서 자율적 개인이란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다수의 의견, 생활 방식 등에 동화되길 거부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정도로 이해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태도에 의해 평가되는 실제적 혹은 일상적 의미의 자율성은 정도의 차이를 보이게 마련이다. 따라서 어떤 철학적 개념을 기준으로 타율성 대 자율성을 이분하는 것은 일상 경험에 적용될 수 없다. 더욱이 일상적 의미의 자율적 개인 개념은 개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으려는 개인에게 요구되는 비판적 시각은 자신을 확신하기 위한 투쟁적 삶의 총체적 방식과 맞물린 것이며, 그 방식은 심리적인 것을 배제한 채 동질화될 수 없다. 따라서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으려는 비판적 시각은 결코 심리적 성향을 완전히 배제한 마음의 순수한 상태에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인간의 인지 과정은 선천적 혹은 유전적 요인들과 맞물린 능력들에 의존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능력들을 경험 이전의 마음의 구조와 같은 것으로 고정시키는 것은 증거를 결여한 지적 독단에 불과하다. 그러한 능력들을 바탕으로 자아가 환경 속에서 발달하고 구성된다고 할 때, ‘마음이라는 것은 결코 고정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반면 칸트의 경험 이전의 마음은 고정된 것이며, 심리적 성향 등은 순수한 마음을 왜곡시키는 기능만 갖는 것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규정을 바탕으로 칸트의 이성은 심리적인 것과 상호 의존적 관계가 아니라 대립적 관계를 맺는 것이 되고, 이성에 따른 자율적 개인들은 동질적이며 역사적 제한에서 자유로운 존재이다, , 그들은 개성도, 문화적 차이도 보이지 않는 존재이다.

 

이성과 신앙을 철학적으로 통합하려는 야스퍼스의 동기는 그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에 기인한 것이다. 그 사건들은 칸트 방식의 자율적 개인진정한 개인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도록 만든 것들이다. 칸트가 불변의 확실한 지식 체계로 간주한 뉴턴 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은 상대성 이론, 양자 역학,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연, 불확실성 등을 고려하는 과학의 분야들도 형성되었다. 과학의 목적은 불변의 확실한 지식 체계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신뢰할만한 지식’, 불확실성 속에서 반복 사용 가능한 지식을 얻는 것이 되었다. 합리적 판단 및 추론이 경험적 탐구 영역에 들어오면서 이성이라는 개념도 과학에서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인류사적으로는 인종주의의 확장, 식민지주의의 팽창,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에 비추어 이성만에 근거해 도덕 및 자연의 확실한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는 식의 낙관론은 더 이상 통용되기 힘든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야스퍼스는 이성의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칸트가 이성의 한계를 언급할 때, 그것은 불변의 확실한 지식 체계의 경계를 정초시키는 것이며, 이성 자체가 그 경계를 결정짓는다. 그러한 언급 속에는 이성에 대한 칸트의 맹목적인 확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이성에 대한 칸트의 확신과 같은 것은 야스퍼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다. 하지만 야스퍼스가 이성의 한계를 지적했다고 해서, 그의 철학이 일상 경험을 존중한 것은 아니며,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도 아니다. 단지 이상화된 자율적 개인을 또 다른 방식으로 이상화된 진정한 개인으로 대체했을 뿐이다. 그 진정한 개인은 앞서 살펴본 철학적 신앙으로 무장한 개인이다. 또한 철학적 신앙은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에 대흔 인식을 전제하므로, 야스퍼스의 진정한 개인은 그러한 실재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다.

 

누구나 현실 초월적인 것들을 가정하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로부터 야스퍼스가 요구하는 현실 초월성에 대한 인식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야스퍼스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현실 초월성에 대한 인식에 바탕을 둔 철학적 신앙을 가질 때, 전통과 권력, 너를 둘러싼 상황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이성의 독단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반응에 함축된 비판적 시각은 맹목적인 믿음이 도덕적 타락으로 번지는 것을 막는 데 효과적일 수 있으나, 현실 속에서 구체적 문제를 찾고 진단하는 데에는 무기력하다. 자신뿐만 아니라 집단의 조화로운 유지에 필요한 현실 문제를 찾고 해결하려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비판적 시각은 이념보다는 문제를 공유하겠다는 태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철학적 신앙과 같은 것을 전제하지 않는다. ‘도덕적 타락을 막겠다는 것 역시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이나 칸트의 이성의 자율성과 같은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실천맥락 속에서 규정되고 의미를 갖는 것이다.

 

칸트와 관련하여 어떻게 이성이 신이나 사후 구원의 가능성을 요청하는지를 나의 능력으로서는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야스퍼스와 관련하여 어떻게 철학적 신앙이 가능한지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나에게 분명한 것은 있다. 칸트는 자신만의 세계 이해 방식을 보편화하려 했다면, 야스퍼스는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을 함축한 세계 이해 방식들만을 올바른 것으로, 즉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했다. 두 사람 모두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의 역동성, 즉 그 중 하나가 다른 것들과의 상호 작용 속에서 특정 지역에 정착하는 방식이나, 그 중 허용되지 말아야 하는 것을 걸러 내는 집단 지성의 가능성 등에 대해서는 심각히 고민하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민중 위에 군림했던 교회 세력에, 그리고 경험적 근거를 무시하는 맹목적 신앙에 비판적이었다는 것이다. 이성 자체가 불확실한 것이라면, 이성의 발휘 속에서도 그 한계를 보완해 줄 것이 필요하다고 야스퍼스는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철학적 신앙이라는 것을 만들어낸 것이다.

 

종교에 대한 야스퍼스의 이해 폭은 분명히 칸트보다 넓다. 현실 초월적인 것은 반드시 창조주로서의 신이나 사후 구원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종교라는 것은 야스퍼스에게는 세계 이해의 특정 방식일 뿐이다. 그럼에도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에 대한 철학적 신앙을 함축한 세계 이해 방식들만이 인류사에 허용되어야 한다는 그의 입장은 이 작업에서 부정된 도덕의 종교 기원론을 배제할 수 없다.

 

야스퍼스가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에 대한 철학적 신앙을 강조할 때, 그것은 전통, 권력, 상황적 제약에 종속되지 않도록 해주는 비판적 시각으로 연결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에게 그것은 인류의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철학적 신앙 없이는 진정한 공존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누가 특정 종교를 믿든 말든, 공존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철학적 신앙을 가져야 한다. 이 점에서 야스퍼스의 철학적 신앙은 일종의 새로운 종교로 여겨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물음은 다음이다.

 

기존 종교의 교리들은 철학적 신앙을 배제하는가?

 

야스퍼스는 그 어떤 종교적 교리의 진위여부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는 교회를 포함한 종교 조직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그 자신이 기독교 교리 자체를 비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앞서 살펴본 축의 시대논의를 받아들이면, 축의 시대와 그 이후에 탄생한 대부분의 종교는 주술성에서 벗어나 현실 초월성을 함축한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 점은 야스퍼스 자신의 입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기독교, 불교, 회교 등의 창시자들도 현실 초월성의 실재성에 대한 철학적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현실 초월성에 대한 철학적 신앙이 축의 시대와 그 이후에 나타난 종교들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이 작업에서 유치한 것으로 규정된 도덕의 종교 기원론은 야스퍼스의 사고방식에서 배제될 수 없다. 그러한 철학적 신앙은 그에게 진정한 개인이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인 동시에 인류의 도덕적 타락을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칸트 철학에 대한 세 가지 부가 언급들>

 

(1)

근대 서양 철학의 마음(mind)’이란 고대 및 중세의 영혼(soul)’ 개념, 즉 능력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에 기인한 것이다. 근대 이후 마음경험이 발생하는 장소적 개념으로 굳어지기 시작했다. 일상 경험에 비추어 납득하기 힘든 이러한 마음 개념은 칸트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그가 마음의 구조혹은 마음의 구성 방식을 언급할 때, 그것은 경험 이전의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감각성(sensibility)’, ‘이해력(understanding)’, ‘이성(reason)’의 측면을 띤다.

 

감각성의 조건 혹은 형식인 시공간을 통해 우리는 대상을 직관한다. 칸트에게 시공간이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을 가능하도록 해주는 마음의 조건으로 가정된 것이며, 직관이란 감각 경험뿐만 아니라 내성(introspection)까지도 포괄하는 것이다. 칸트에게 이해력이란 대상들을 양, , 관계 양상 등의 범주로 분류하고 해석하는 형식들이며, 이성이란 구체적이고 개별적 현상들 배후에 깔린 보편적 법칙 혹은 원리들을 이끌어내는 기능을 한다. 감각성, 이해력, 이성이 어떻게 하나의 정합적 체계를 이루는지는 제아무리 칸트의 문헌을 뒤져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퍼즐과 같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험 이전의 마음의 구조를 가정하는 칸트 철학이 온갖 대립항들을 함축한다는 점이다. 실례로 현상계 대 실체의 세계, 결정론 대 자유 의지, 주관적 혹은 개별적 원리 대 객관적 혹은 보편적 원리, 준칙(maxim) 대 보편적 도덕률, 동기 대 이성에 따른 권고, 이성의 기능을 방해하는 병적인 흥미 대 실천적 혹은 도덕적 관심, 물질적 자극에 의한 충동 및 성향 대 이성, 가언 명령(hypothetical imperative) 대 정언 명령(categorical imperative), 그리고 타율성(heteronomy) 대 자율성(autonomy)의 대립항들을 들 수 있다. 그러한 대립항들에서 자유에 대한 칸트의 집착을 엿볼 수 있다. 그 자유란 그 자신이 결정론적으로 파악한 물리계 및 심리 체계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 상태의 속성이다. 칸트는 결정론적으로 가정된 세계로부터 자유를 구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었으며,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결정론을 함축하는 뉴턴 역학을 불변의 확실한 지식 체계로 전제했던 것이다.

 

칸트 철학이 발생시키는 온갖 대립항들은 일상 경험에서 일반화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추상적 수준의 사변을 통해 확립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것들은 일상 경험에 잘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어려움은 강단 철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칸트의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일 뿐이다. 언급한 10개의 대립항들은 경험 이전의 순수한 마음이라는 전제에 바탕을 둔 것이며, 그의 철학이 보여주는 세밀함과 체계성은 그러한 대립항들에 적합하도록 짜 맞추어진 것이다. ‘경험이 발생하는 장소적 개념으로 마음을 파악하는 관점의 비상식적 측면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상하(1999), <시각 경험에 바탕을 둔 당연한 믿음들과 증거들>, http://blog.daum.net/goodking/666. 이상하(2003), <시각 경험의 시공간적 실재성에 관하여>, 철학연구 63, 철학연구회.

 

(2)

만약 칸트가 새로운 과학과 기하학을 목격했더라도 뉴턴 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바꿀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다. 아마도 그는 뉴턴 역학과 유클리드 기하학만이 우리가 경험하는 현상들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특히 대부분 사람들이 일상 경험은 유클리드적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일상 경험과 유클리드 기하학을 연관시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통념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일상 경험을 유클리드적이라고 단언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실제 증거들은 없다. 고대인들의 공간 표상 방식들을 살펴보면, 그것들은 그들이 갖고 있던 세계 이해 방식에 의존적이다. 유클리드 기하학보다는 다른 기하학으로 설명하기 더 적합한 현상들도 많다. 실례로 아지랑이, 소용돌이 현상 등을 들 수 있다. 행위를 제한하는 일상 경험의 공간성은 거리, 위치 등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허락한다. 더욱이 그러한 공간성이 마음의 조건 혹은 형식이라는 칸트의 주장은 경험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 일상 경험이 유클리드적이라는 믿음은 일부 철학자와 과학자들의 말에 현혹당한 결과일 뿐이다.

 

   (3)

칸트가 성장한 지역은 루터파의 경건주의(pietism)가 득세한 곳이었다. 칸트가 강한 친화력을 나타낸 어머니는 독실한 경건주의자였다. 칸트는 어머니의 영향 아래 경건주의가 지배한 교회와 학교를 다녔다. 경건주의는 교리 해석보다는 개인적 실천을 강조한다. 교리에 반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허용된다는 점에서 개인의 선택을 중시한다. 교리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누구나 신을 향한 경건한 심리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 , 개인적 실천만으로도 마음의 정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건주의는 독일 계몽주의의 문화적 토대이기도 하다. 칸트는 경건주의자들의 맹목적 신앙을 비판의 도마에 올리곤 했다. 하지만 칸트와 경건주의의 관계를 적대적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심리적 성향으로부터 자유로운 마음의 상태를 가정하는 칸트의 사고방식은 경건주의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경건주의의 정화 개념을 합리적인 것으로 대체한 것이 칸트의 윤리학이라는 입장도 있다. 그러한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최근 연구서로는 다음을 들 수 있다. Sullivan, R.J.(1989), Immanuel Kant’s Moral Theory, Cambridge University. Wood, A.(1991), Kant’s Ethical Thought, Cambridge Univers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