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세속화> 후기: 세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계몽주의)

착한왕 이상하 2016. 2. 15. 22:22

* 다음 글은 <세속화 '저기'와 '여기': 무종교인의 관점>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베버의 궁극적 관점>에 대한 비판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세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는 특정 지역의 역사를 보편화하는 것이다.

 

특정 지역의 사회 상태 및 변화가 실현 가능하도록 해준 고유의 가치 체계, 문화, 사고방식 등이 있다고 전제한다. 여기서 전제한다는 것그러한 고유한 것들이 특정 사회 상태 및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고유한 것들이 없으면 특정 사회 상태 및 변화가 불가능함을 뜻한다. 특정 지역 X의 사회 상태 및 변화가 다른 지역 Y에서도 실현 가능하려면, YX의 그러한 사회 상태 및 변화가 가능하도록 해준 고유한 것들을 모방 수용해야 한다.

 

세 번째 종류의 독단적 지성사에 대한 또 다른 사례는 계몽주의를 세속화라는 기차의 기관처럼 서술하는 방식이다. 그러한 서술 방식에 따르면, 계몽주의는 사회의 세속화에 대한 필연적 단계처럼 규정된다. 하지만 유럽 전역에 걸쳐 적용 가능한 계몽주의의 정의는 불가능하다.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한 영국 계몽 시대, 프랑스 혁명과 관련된 계몽 시대, 북부 개신교 세력을 중심으로 한 독일 계몽 시대 등의 차이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계몽주의를 그저 계몽 시대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반적 사고방식으로 인식할 때, 그 사고방식을 기준으로 유럽의 17, 18세기 각 지역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망각하고 계몽주의를 다룬 특정 인물의 입장에 매달려 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매달리는 경우, 그러한 입장의 정당화에 역사가 수단으로 전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망각한 채 계몽주의를 오해하게 된다. 그렇게 매달리는 경우, 계몽주의에 대한 착각들이 발생할 수 있다. 계몽주의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를 사소하게 여기는 사고방식이라는 착각, 보편적 인류애를 전제한 사고방식이라는 착각, 그리고 반종교적인 사고방식이라는 착각들이다.

 

계몽주의를 둘러싼 첫 번째 착각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를 완전히 대립된 것으로 이해하는 착각으로, 두 번째 착각은 현대적 인권 개념이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착각으로, 그리고 세 번째 착각은 계몽주의 운동이 종교성울 사장시키는 과정이라는 착각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착각 속에 빠진 사람들 중 일부는 계몽주의를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은 계몽주의 사고방식의 한 측면을 합리적인 것’, 심지어 그 근거가 애매모호한 과학적 이성등으로 보편화시키고, 이 땅의 현실을 진단하려 든다.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 역시 계몽주의 사고방식의 한 측면을 반종교적인 것혹은 인간의 속물화등으로 보편화 시키고, 이 땅의 현실을 진단하려 든다. 이들 모두는 계몽주의를 사회의 세속화에 대한 필연적 단계처럼 여긴다. 그리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계몽주의의 한 측면을 보편화시켜 세속적인 것이라는 용어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의미부여 방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들 모두는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현실을 문제 해결의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사고방식에 가두려는 자들이다.

 

계몽주의를 사회의 세속화에 대한 필연적 단계처럼 규정하는 역사 읽기 방식에 따르는 경우, 사회의 세속화 과정은 점차 종교성이 사장되는 과정으로 서술되곤 한다. 그러한 서술 방식 속에서 계몽주의를 반종교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을 읽어낼 수 있다. 그렇게 여길 수 있는 경우는 계몽주의를 프랑스 혁명과 연관시키는 경우에 국한된다. 프랑스 계몽 시대의 무신론은 반종교적인 것을 대표했기 때문에, 그렇게 연관시키는 것은 프랑스 계몽주의자들 다수가 무신론자들이거나 무신론에 영향을 받은 인물이라는 가정 하에 성립한다. 프랑스 혁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계몽주의자들 다수가 무신론자였다는 역사적 증거는 없다. 계몽주의를 사회의 세속화에 대한 필연적 단계처럼 규정하는 역사 읽기 방식은 특정 지역 계몽 시대를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편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한 역사 읽기 방식은 계몽 시대의 지역별 차이를 고려하는 것만으로도 저기에 적용할 수 없다. 서양과는 다른 역사적 경로를 따라온 여기에는 당연히 적용될 수 없다. 유럽 역사에 국한하는 경우에도 19세기 세속화 운동이 계몽 시대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이러한 결론은 이 작업 전체의 논의를 따를 때 당연한 것이다.

 

저기여기를 세속화된 사회 상태들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는 세속화로 불릴만한 성향들, 실례로 종교의 사회적 권위가 약화되는 성향, 종교적 교리에 근거한 신분제가 붕괴되는 성향, 사회 설계 참여에 무신론자나 무종교인을 배제시킬 수 없게 된 성향 등이 현실 속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결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종교가 사장된 상태를 뜻한다면,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종교성이 사장된 사회 상태를 세속화된 것으로 규정하고 현실을 진단하는 경우, 종교적인 것은 제거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만다. 문제 해결 공간에서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을 배제시킨다면, 조화로운 사회 상태를 꾀할 수 없다. 이념적 무신론이 세속화의 관점이 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념적 무신론이 마치 세속화의 관점을 대표하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은 특정 지역의 역사를 보편화시키는 독단적 지성사의 산물이다. ‘저기에서 생성된 그러한 독단적 지성사는 저기에도 해당하지 않으며, 현실 문제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