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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들의 오보: 스위스 기본 소득제 투표안

착한왕 이상하 2016. 6. 4. 17:20



최근 스위스 기본 소득 투표안을 놓고 국내에서도 말이 많다. 누구에게나 월 300만원 기본 소득을 보장하겠다는 투표안이다. 국내 신문 기사를 보면, 월소득 수천만원을 버는 사람도 300만원을 더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스위스 천국이네', '선진국 시민들은 역시 달라' 등 부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부러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의문이 든다.


왜 기본 소득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60%나 될까? 당장 300만원이 내 통장에 더 들오게 되는데, 왜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찬성하는 사람들보다 많을까?


뭔가 이상하다. 그래서 스위스 기본 소득 투표안을 직접 찾아 보았다. 영어로 잘 정리된 것은 다음이다.


Unconditional Basic Income

http://www.basicincome2016.org/blog/unconditional-basic-income


스위스 기본 소득 투표안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링크한 글 3번 항 'Good Job or Bad Job?'을 보라. 상대적으로 고소득자 역시 명목상 300만원을 더 받는다. 하지만 실제 월급에서는 300만원이 삭감된다. 결론은 고소득자의 월급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스위스 기본 소득 투표안이 가결되면, 실제 수혜자들은 저소득층 및 실업자들이다.


스위스는 왜 이러한 복잡한 안을 채택했을까? 그냥 저소득층 및 실업자들에 국한해 보조금을 올려주면 그만 아닌가? 기본 소득제를 보편화시키기 위해서다. 그래서 1인당 일괄적으로 300만원을 보장해 주고, 소득에 따라 월급에서 해당분을 제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스위스 기본 소득제의 실상은 다음과 같다.


월 300만원 이하의 수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정부가 나머지 부분을 채워서 300만원을 보장해 준다. 이렇게 하여 전국민 최저 300만원의 기본 소득이 보장되는 것이다.


스위스에서 300만원은 우리나라 화폐 가치에 비교해 어느 정도일까? 스위스 일인당 GDP는 약 8만 5천 달러 정도이다. 우리보다 약 4배가 높다. 따라서 300만원을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넉넉히 잡아 150만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는 우리보다 물가 및 주거비가 훨씬 비싸다는 사실만 감안해도, '300만원을 가지고 스위스에서 생활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150만원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과 비교 가능하다. 여기서 이런 반문을 던질 수 있다.


우리나라 삶을 기준으로 할 때, 스위스에서 월 150만원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실업자를 제외한 그들 중 대부분은 3D 업종, 즉 사람들이 회피하는 업종 종사자들이다. 스위스의 화장실 문화는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후하지 않다. 지금도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 공중 화장실들이 많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대부분 사람들은 외국인들이다. 스위스 인구의 21% 정도가 외국인이며, 제네바 같은 곳은 40%에 육박한다. 물론 외국인들 중 상당수는 부자들이다. 스위스는 부유층의 세금 회피처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외국인 다수는 3D 업종 종사자들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기본 소득 투표안이 국민투표를 통해 가결되더라도, 중산층 이상의 시민들은 실질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명목상 기본 소득을 받게 되지만, 그 소득은 월급에서 삭감되기 때문이다. 스위스는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다. 3D 업종 종사자들이 기본 소득 투표안에 반대할 리 만무하다. 따라서 기본 소득 투표안에 대한 60% 반대 여론의 중심축은 중상위층이라 할 수 있다.


왜 스위스 중상위층은 기본 소득제에 반대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본 소득 300만원이 보장되면, 3D 업종 종사자들의 수가 줄어들 것이고, 결국 3D 업종의 임금이 상승한다는 것이다. 실례로 빵가게 주인이 있다고 하자. 그는 중산층에 속한다. 기본 소득제가 실행되면, 청소부를 구하기 힘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결국 청소부 인건비를 대폭 올려주어야 하며, 그 만큼 소득이 줄게 될 것이다. 그래서 그는 기본 소득제에 반대하는 것이다. 심지어 유럽의 못사는 지역이나 유럽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넘어온 외국인들의 기본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이러한 사례들을 통해 스위스 시민들도 우리나라 시민들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어느나라 시민이나 자신의 소득을 최우선시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평균 교육 수준이 높은 나라도 드물다. 문제는 그 수준을 발휘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정책 및 언론이다. 정말 제대로 된 여론 공간 하나만 있어도 많이 변화할 나라가 대한민국인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누군가는 '이런 이런 사이트도 있다', 'JTBC의 손석희 사장도 있다'고 반문할 것이다. 긴 말 없이, 이러한 반문이 나오는 것 자체가 비극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눈에는 현 시민 수준에 부합하면서도 시민들의 역량을 일깨워 줄 수 있는 여론 공간은 없다.


기레기들의 오보야 그렇다 치고, 소위 신문 방송에 등장하는 자칭 전문가들 중에도 황당한 인간들이 많다. 오늘 '정관용의 시사 자키'에 등장한 전문가 역시 기레기들의 오보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정관용도 문제다. 사회자로서 알면서 묵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것은 지적했어야 마땅하다. 몰랐다면, 그도 문제다. 기본 소득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사를 고려했다면, 스스로 정보를 찾아 확인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스위스의 기본 소득 투표안이 가결되길 바라는 사람이다. 다만 기레기들의 오보와 함께 스위스는 천국, 여기는 지옥 혹은 스위스는 문명국, 여기는 야만국과 같은 개드립이 난무하는 것은 좀 그렇다. '밥'을 기준으로만 생각한다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다만 스위스 정부에 비해 우리나라 정부는 너무나 무능하다. 또 돈을 가진 사람의 경우, 스위스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물들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많다. 여기는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물들이 너무나도 없는 '천민자본주의의 대표 국가'라 할 수 있다. 그런 인물들이 있었더라면, 벌써 '제대로 된 신문사'는 있었을 것이다.



*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인물이란? 사후 자신의 잘못 및 탐욕도 '생전에 돈을 제대로 쓴 덕'에 묻혀버리게 되는 사람


* 스위스의 기본 소득 투표안이 가결되면 기본 소득제는 바로 실행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국민들의 대상으로 한 직접 투표는 '사안의 정치적 공론화 시키는 성격'을 갖고 있다. 어떤 안이 투표를 통해 가결되면,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정책적 다듬기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