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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세, 종교계의 허락이 필요?(권력의 적법한 사용)

착한왕 이상하 2017. 9. 1. 16:00



권력의 적법한 사용


김 경제부총리가 각종 종교 단체를 방문해 종교세 시행에 대한 양해를 구하는 뉴스가 떴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평소에 안하던 넥타이까지 매고 말이다.


http://v.media.daum.net/v/20170831205110893


특정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원리로 기능할 수 없도록 세속화된 사회 상태가 문제 없는 사회는 결코 아니다. 현대 대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 중 하나는 정치와 종교의 결탁이 우회적인 통로를 통해 오히려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다수 계층인 무종교인 계층이 확산 계층으로 전략해 그들의 의견이 정책에서 아예 고려되지 않는 이 땅의 '무종교인의 딜레마'는 '민주주의의 딜레마'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한 딜레마의 해소 노력 없이는 이 땅의 민주주의는 진화할 수 없다. 이러한 점들은 상당히 까다로운 논의를 요구하는데, 여기서는 침묵한다. 꼬부랑 글씨면 전부인 줄, 그리고 통치자가 <명견만리> 일독을 추천하면 우르르 그 책을 사대는 군중이 다수인 현실 속에서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겠지만, 혹시 '무종교인의 딜레마'가 어떤 점에서 '민주주의의 딜레마'인지를 알고 싶은 사람은 <세속화 '저기'와 '여기'>(http://blog.daum.net/goodking/796)를 보라.


이미 절차적으로 합의된 종교세 시행을 놓고 부총리가 종교 단체들을 방문해 손을 비빈다.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대의 민주주의에서 모든 형태의 레임덕은 '권력의 적법한 사용'을 무시했을 때 발생한다. 대의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시민의 정치적 권리를 특정 정치가 집단에게 양도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제한으로 인해 대의 민주주의에는 여러 문제가 내재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쉬운 글 <대의 민주주의(http://blog.daum.net/goodking/772)>를 보라.


아무튼 대의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의견이 반영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권력의 적법한 사용'이라고 규정하자.


권력의 적법한 사용

다수가 원하는 사회상태 S가 있다. 정권은 S를 정책에 반영하지 않고서는 지지율을 유지할 수 없다. S를 실현하는 데 적합한 절차들 P가 법제화되어 마련되면, P를 시행한다.


위처럼 규정된 권력의 적법한 사용을 가지고 소위 '꼼수'와 '배반'을 쉽게 정의할 수 있다.


꼼수

A를 실현하는 데 명백한 한계를 갖고 있거나 적합하지 않는 절차들 P를 마치 적합한 것처럼 과장하는 것이다.


배반

A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것으로 법제화된 절차들 P를 유보, 상대방의 동의 등 핑계를 대어 시행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현 정권의 정책을 볼 때, 부동산 정책이 '꼼수'를 대표한다면, 종교세 정책은 '배반'을 대표한다. 부동산 안정화 없이는 출산률도 계속 저하될 것임에 다수가 동의한다. 또한 먹고 살기 바쁜 다수의 자유가 확장될 수 없음에 다수가 동의한다. 이러한 다수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서는 정권도 지지율을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나온 것이 양도세 증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정책이다. 그런데 다세대 중 소수만이 거대 부자이며, 그들 중 상당수는 두집 가격 합산이 강남 아파트 한 채에 못미친다. 이 번 부동산 정책은 현 부동산 가격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투기과열만 막겠다는 꼼수에 불과하다. 아마도 정권의 인물 다수가 여러 주택 및 상가 보유자라서 그런가 보다. 보유세를 책정하고 대외 시세에 맞추어 금리 인상하고, 차라리 양도세를 없애는 것이 오히려 시장원리에도 맞고 과세 형평성에도 맞으며, 부동산 안정화 및 점진적 가격 하락을 유인할 수 있다. 이 번 정책은 상가 건물 상승, 임대료 및 전세가 상승으로 끝을 보게 될 것이다. 결국 서민만 죽어나게 된다. 부동산 풍선 효과가 심해지면 그때 가서 시행할 강력한 방안이 주머니에 있다는 문 대통령의 말은 거짓말이다. 양도세를 높이 올린 상태에서 다시 보유세를 도입하는 게 쉬울 것이라 생각하는가? 조세 형평성 문제에 당장 걸린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종교세 시행을 자꾸 늦추는 것은 배반에 해당한다. 이것은 너무나도 명백해 아예 설명할 필요가 없다. 현 정권은 이에 대해 민주주의에서는 합의(아마도 그들은 꼬부랑 단어 '컨센서스'라는 단어를 사용할 것)가 중요하다고 항변할 것이다. 그런데 다수의 의견을 반영해 법적으로 통과된 절차 P 시행을 늦추면서 상대방과의 합의를 강조한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시행할 수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수 시민들을 배반하는 것으로서 권력의 직무유기이다. 더욱이 종교세 시행 유보에 대해서 다수 때문에 소수가 피해를 보게 되어 합의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들이댈 수도 없다. 그런 논리가 조세 정의의 원칙보다 우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부총리는 각 종교계 지도자를 만나 벌써 세무조사 얘기를 하고 있다. 종교세를 시행해도, 대형 교회나 사찰 등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실 대형 교회는 종교세보다는 세무조사에 겁을 먹고 있다. 왜 그런지는 각자 추측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김진표는 종교세를 유예해야 하는 이유로 선교활동비 블라블라를 주장했다. 한 마디 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이 나라가 똥꼬핥기를 거부하지 않는 국가들의 경우, 위험 지역 선교 활동은 정부의 허가를 맡아야 한다. 이 땅은 어떠한가? 대형 교회들은 위험 지역에 마음대로 선교단을 파견하고, 행여 납치사건이 발생하면 정부에게 '구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며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며 생떼를 쓴다.


교육 정책은 진짜 개판이다. 교과서 내용은 빈약하기 그지 없는데, 수능 문제는 아예 교과서와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이게 어떤 부작용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느 나라 교육 제도 모방해 수능제도만 바꾸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믿는 철부지들이 모여 교육을 논한다. 외교도 마찬가지다. 어차피 한반도에서 국지전이 발생하면 우리만 손해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쓸 카드가 별로 없다면, 차라리 북미협상안을 지지하고 가끔은 역공적인 발언도 윗 인간들은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0.3%보다 0.4%가 더 높다고 0.4%정책을 쓰는 것이야말로 외교에서는 가장 비합리적인 선택이다. 0.3%든 0.4%든 둘다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현 외교 정책은 그런 무의미한 게임을 진행하고 있어 사실 겁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권력의 적법한 사용이 '꼼수'와 '배반'에 가로막힐 때 정권은 레임덕에 빠질 수밖에 없다. 김 부총리가 종교계 지도자들을 만나 굽신거리는 것 자체가 정치와 종교의 끈끈한 유착 관계를 방증한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는 한, 문 정권 역시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그 시기는 정권 말기가 될 수도, 대외 여건에 따라서는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다.


현명한 정치는 선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선의를 갖고 있다하더라도 정책적 능력을 가진 인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정책에 필요한 전문성과 상황 판단력을 결여한 인물이며, 이 점은 그의 인선 과정, 경제, 부동산, 교육 정책 등에서 드러난다. 안타깝다. 문 대통령을 제대로 가이드해 줄 인물이 그의 주변에 없다는 사실 말이다. 하기야 <명견만리>를 읽고 뻑가 대국민 선전을 하는 사람이니, 그 수준에 그 수준의 인물들이 모여들겠지. 요새는 논문, 글 등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제대로 된 전문적 집단이나 개인들의 도움을 통해서도 비록 대중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어도 뛰어난 인물들을 얼마든지 발굴할 수 있다. 당장 국토부에 박사급 연구원이 몇 명인지 아는가? 이들 논문들과 글들을 뒤져 인물을 발탁했어도 지금의 김현미 장관보다는 몇 배 나을 것이다. 솔직히 그런 연구원들 정책안도 실제 정책에 반영된 적이 거의 없다. 최근 타계한 콜은 현 수상인 메르켈을 장관으로 선임했었다. 메르켈은 당시 정치적으로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아니었다. 유명인 좋아하다 X된다.


현 정치계에서 희망을 걸어볼 인물은 없다. 안 누구? 그냥 웃지요. 현 정치권의 모두는 세력 확장 게임에서는 감각적 정치력을 발휘하지만 전문적 정책에서는 무능하다. 이러한 정치 판세가 변하지 않고서는 이 땅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특정 색 깃발을 흔들어 권력은 차지 수 있지만, 권력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아무튼 현 정치계에 희망을 걸 수 없다면,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제대로 된 시민 포럼'을 만들고 '포럼을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세력을 생성시키는 것'이 마지막 대안이다. 자금도 필요한 일이지만, 꼰대질 훈장질 해대는 인물들 주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대로 된 시민포럼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 가능한가? 뭐 이 땅에 기여할 것이 없는 내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다만, 누군가 혹은 어느 집단이 그런 포럼 형성에 성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치 세력화에 성공한다면, 그들이 난세의 영웅인 것이다.



* 권력의 적법한 사용에 실패한 정부는 그 구성원들의 의도, 정치적 색과 무관하게 처벌 대상이다. 민주제 사회에서 이 점이 무시될 때, 정부는 과두 정부 형태를 띠게 될 수밖에 없으며, 다수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삶을 지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