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존재 사슬의 논리

점들의 간격과 위치 4.2.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2. 두 가지 신 존재 논증

착한왕 이상하 2010. 2. 6. 02:25

(4)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2. 두 가지 신 존재 논증

진화가 복잡성 증가의 과정이라는 라마르크의 주장에서 복잡성의 증가는 신의 설계도가 전개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없다. 또한 라마르크가 창조와 창조주를 동일시하는 전통에 서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복잡성 증가 개념을 ‘신의 자기 구현 과정’과 연관시킬 수 없다. 이때 다음의 논증이 성립한다.

 

•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려는 전통이 있다.

• 그 전통은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그 하나는 신에 의해 예정된 우주의 설계 방식을 신의 섭리와 연관시키는 관점이다. 다른 하나는 창조와 창조주를 동일시함으로써, 신의 섭리를 우주의 진화 목적과 연관시키는 관점이다.

• 라마르크는 두 가지 관점 모두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그는 자연에서 신을 섭리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 따라서 라마르크에게 과학적 작업은 자연에 깃든 신의 섭리를 찾아보겠다는 동기와 무관하다.

 

위 논증을 받아들이면, 라마르크의 복잡성 증가 개념은 신의 섭리와 무관하다. 그것은 자율적인 우주의 ‘자기 조직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자연적 성향일 뿐이다. 이때 신의 섭리는 우주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해준 ‘너그러움’ 혹은 ‘이기심이 완전히 결여된 사랑’으로 이해된다. 그러한 섭리는 자연의 탐구에 대한 직접적 목적이 될 수 없다.

 

라마르크의 복잡성 증가 개념은 과학적 가설도 아니었다. 그에게 복잡성 증가 개념은 관찰을 통해 발견된 사실, 실례로 지역적 격리로 인해 길어진 핀치의 부리에 근거해 일반화된 것이다. 라마르크는 이렇게 일반화된 복잡성 증가 개념을 발견을 위한 지침서 개념으로 사용했다. 그는 길어진 핀치의 부리를 설명하기 위해 ‘진화는 복잡성 증가의 과정이다’라는 가설을 세우지 않았다. 그 대신 관찰 및 측정에 근거하여 검증 혹은 반증 가능한 용불용설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복잡성 증가 과정이 부분적으로 관찰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우주의 일반적인 자연 현상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 종결되지 않았다. 현대 과학은 단지 변수들을 조작하여 복잡성 증가 현상을 가상적으로 구현해볼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따라서 우주의 질적 상태 변화가 복잡성 증가 현상을 보여준다는 주장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은 아니다. 이때 흥미로운 주장은 다음이다.

 

• 만약 라마르크가 복잡성 증가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 존재 가정을 이끌어냈다고 해보자. 이때 신 존재 가정을 이끌어낸 방식은 뉴턴이 천구의 안정성이라는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 존재 가정을 이끌어낸 방식과 어떻게 다를까?

 

뉴턴이 천구의 안정성이라는 매개 개념을 사용하여 신 존재 가정을 이끌어낸 방식의 핵심은 다음과 같이 재구성 가능하다.

 

<뉴턴 방식의 신 존재 논증>

• 중력을 가정하지 않고 완성된 역학, 즉 뉴턴의 운동 법칙들로 구성된 이론 체계를 바탕으로 중력 현상을 설명할 수는 없다.

• 운동 법칙들에 중력 법칙을 더해도, 천구가 인간을 위해 안정화된 이유는 설명되지 않는다.

• 천구의 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우연적인 것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 천구의 안정성은 신의 섭리를 반영한다.                                                    

•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뉴턴 역학이 문제 해결의 유용한 분석적 도구라는 것은 위 논증과 무관하게 성립한다. 뉴턴 역학은 특정 ‘경계 조건(boundary condition)’들, 실례로 운동 중 질량은 보존된다는 조건들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이러한 이유로 그러한 조건들은 뉴턴 역학의 설명 영역의 한계를 규정해주는 것이다.

 

<뉴턴 방식의 신 존재 논증> 방식은 전통적인 지적 설계론의 세계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전통적인 지적 설계론 옹호자들은 과학적 설명 영역에 우연적인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동기를 갖고 있었다. 이는 <뉴턴 방식의 신 존재 논증>에서 ‘천구의 안정성을 설명하는 데 우연적인 것이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는 전제에 반영되어 있다. 그 전제는 전통적인 지적 설계론의 관점에 따른 것인 까닭에, <뉴턴 방식의 신 존재 논증>도 그 관점에서만 허락된다. 즉, <뉴턴 방식의 신 존재 논증>이 모든 신 개념에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다.

 

라마르크에게 복잡성 증가 현상은 신의 설계도와 같은 것의 전개가 아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것과 우연적인 것의 상호 작용에 근거한 우주의 자기 조직화 과정의 부산물일 뿐이다. 이 때문에 라마르크는 진적 설계론 옹호자들로부터 무신론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라마르크는 자신의 과학이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과 양립 가능함을 강조했다. 이때 그의 신 개념은 강한 자율적 우주 창조설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신학과 진화 생물학을 모순적 관계를 맺는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지금도 라마르크의 신 개념을 기독교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오로지 지적 설계자 개념만이 기독교적 신 개념이라고 여기지만, 이것은 그들의 역사적 무지만을 보여줄 뿐이다.

 

라마르크는 복잡성 증가 개념을 매개로 하여 신 존재 가정을 이끌어낸 적이 없다. 만약 그가 그렇게 했더라면, 그의 논증 방식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야 할까? 정말 우주가 ‘신에 의한 창조’라는 태초에서 시작했다면, 그리고 복잡성 증가가 우주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복잡성 증가 현상은 전일적 우주 역사의 성향으로 여겨질 수  있다.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

• 복잡성 증가 현상은 우주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

•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에서는 복잡성 증가 현상은 단지 우주의 특정 부분들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다. 복잡성 증가가 우주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라면, 복잡성 증가 현상은 ‘전일적 우주 역사’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은 이를 보장해준다.

• 태초의 가정은 기독교의 다양한 신 개념에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은 기독교와 양립 가능하다.                                                          

• 따라서 복잡성 증가를 자연에 깃든 신의 섭리로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창조주로 가정된 신 개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에서 첫 번째 전제는 현대 과학으로 그 진위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것이다. 첫 번째 전제를 받아들일 때 복잡성 증가 현상은 우주의 특정 부분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가 아니라 ‘전일적 우주 역사’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이유는 앞에서 다뤘다. 또한 전일적 우주 역사를 보장해주는 우주론은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임을 살펴보았다.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세 번째 전제에 등장하는 ‘양립 가능성’이다.

 

어느 입장 A를 받아들일 때 B를 반드시 부정해야 한다면, 그리고 이에 대한 역도 성립한다면, A와 B가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또 A가 B를 함축하거나, B가 A를 함축한다면, A와 B가 양립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없다. A와 B가 양립 가능하다면, A를 받아들일 때 B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A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B를 반드시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따라서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에서 세 번째 전제를 받아들이면, 태초를 가장하는 우주론을 인정한다고 해서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을 인정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복잡성 증가를 자연에 깃든 신의 섭리로 여기지 않는 것이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결론이 성립한다.

 

신 개념을 강한 자율적 우주 창조설과 연관시킬 때 과학의 한계를 가지고 초자연적인 것을 과학적 작업에 개입시킬 필연적 이유는 없다. 이는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을 받아들이는 경우 유신론자에게도 해당한다. 따라서 라마르크가 자연주의자이면서 유신론자라는 사실은 라마르크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단지 과학의 한계를 가지고 신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이들, 실례로 자연 신학 옹호자들에게만 문제가 된다. 또한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에서 그 결론을 받아들이면, 복잡성 증가 현상을 가지고 신 존재를 반드시 가정해야 할 이유도 없다. 따라서 라마르크의 자연주의는 신 존재 가정과 무관하게 성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