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라마르크의 자연주의 3. 무신론, 무종교인의 관점
복잡성 증가를 신의 섭리로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이것이 창조주로 가정된 신 개념과 양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의 이러한 결론은 신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배제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라마르크가 무신론을 주장했어도, 진화가 복잡성의 증가 과정이라는 그의 관점은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는다. 만약 라마르크가 힌두교를 믿는 인도인이었다면, 그 관점에 근거해 어떤 논증을 펼쳤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논증은 다음과 같다.
<라마르크 방식의 무신론 논증>
• 복잡성 증가 과정은 우주의 특정 부분들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와 관련된다.
• 복잡성 증가 과정이 전일적 우주의 역사 속에 귀속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에 따른다면, 우주의 특정 부분들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는 전일적 우주 역사 속에 귀속된다.
•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보다는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을 선호해야 한다.
• 창조주로서의 신은 없다.
지구에 국한된 자연의 역사가 복잡성 증가의 과정을 보여준다고 해서, 그 역사가 전일적 우주 역사 속에 귀속되어야 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 그렇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라마르크가 힌두교 신자였다면, 부분적인 관찰 자료에 근거해 일반화된 ‘복잡성 증가’라는 지침서 개념을 ‘전일적 우주 역사’와 연관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신에 의한 창조의 시점, 즉 태초를 가정하는 것은 힌두교를 믿는 사람에게는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을 받아들이면,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은 부정된다.
<라마르크 방식의 무신론 논증>은 라마르크가 힌두교도였다는 가정 아래에서만 성립하는 ‘가상의 논증’이다. 그 논증의 결론은 창조주로서의 신 개념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무신론을 대변한다. 이때 무신론은 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이념으로 여겨져야 한다. 무신론을 기독교 교리에 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방식은 무신론에 대한 고대적 이해 방식과는 다르다. 무신론의 핵심을 창조주로서의 신개념을 부정하는 것에 국한하는 경우, <라마르크 방식의 무신론 논증>은 무신론자가 반드시 무종교인이 될 이유는 없음을 보여준다.
• <라마르크 방식의 신 존재 논증>과 <라마르크 방식의 무신론 논증> 모두가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라마르크의 신 개념이 ‘강한 자율적 우주 창조설’과 관련되었다고 할 때 자연적 원인으로만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자연주의 입장은 그의 신 개념과 무관하게 성립한다. 이때 라마르크의 자연주의는 무신론을 논리적으로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위 질문에 대한 더욱 강한 이유는 자연주의 입장이 ‘과학적 생활양식’에 내재하는 성격이라는 데 있다.
과학적 생활양식은 특정 이념을 지향하지 않는다. 재확인 및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과 가설의 연결성 추구에 의해 제한된 실천 방식만이 과학적 생활양식에 속한다. 이때 과학적 가설, 즉 과학적 생활양식에서 허용되는 가설은 특정 측정량에 함축된 실험적 사실을 설명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가설의 발견에 과학자 개인의 세계 이해가 개입하더라도, 가설 자체에는 현재 과학의 수준에서 검증 혹은 반증 불가능한 것이 뒤섞여서는 안 된다. 과학의 자연주의는 검증 혹은 반증 불가능한 것을 가설에 개입시키지 않겠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과학적 생활양식에 의해 제한된 ‘과학자의 태도’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때 다음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 복잡성 증가 등의 지침서 개념 없이는 중요한 과학적 발견은 불가능하다. 특정 측정량에 함축된 실험적 사실을 설명해주는 과학적 가설은 그러한 사실 자체에서 추론된 결과는 아니기 때문이다. 사상사의 흐름 속에서 과학이 다른 분야와 뒤얽혀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적 발견의 대상은 발견에 개입하는 지침서 개념도, 그러한 지침서 개념을 함축한 특정 세계 이해 방식도 아니다.
• 재확인 및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과 과학적 가설의 연결은 특정 조건 아래에서만 성립하는 까닭에, 그러한 가설에 근거한 설명 영역은 한계를 갖게 마련이다. 과학은 다양한 하부 분과들에 속한 가설들의 거래 관계를 통해 그 설명 영역을 확장시킬 수 있었다.
진화가 복잡성 증가를 따른다는 라마르크의 관점은 용불용설이라는 가설을 세우는 과정에 개입되어 있다. 하지만 용불용설 자체에는 그러한 관점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용불용설은 ‘부드러운 유전 물질 가설’과 함께 ‘길어진 핀치의 부리’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준다. ‘부드러운 유전 물질 가설’이 부정되면서, 용불용설도 부정되었다. 하지만 환경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생물계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라마르크의 입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복잡성 증가 개념이 창조주로 가정된 신 개념과 양립 가능함을 라마르크가 주장했어도, 그의 발견 목적은 재확인 및 재생산 가능한 측정량과 연결 가능한 가설을 얻는 것이었다. 즉, 특정 측정량에 함축된 사실을 규명해주고 설명해주는 가설을 얻는 것이었다.
복잡성 증가 현상이 우주의 특정 부분에 국한된 자연 역사의 성향인지, 아니면 전일적 우주 역사의 성향인지는 라마르크의 진화론으로는 대답될 수 없는 것이다. 즉, 그 두 성향 중 무엇이 맞는 것인지를 묻는 것은 그의 진화론이 갖는 한계를 드러내준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가 라마르크의 자연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복잡성 증가 현상을 우주의 특정 부분에 국한된 자연 역사의 성향으로 간주하는 경우, 무신론자로서의 라마르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복잡성 증가 현상을 전일적 우주 역서의 성향으로 간주하는 경우, 유신론자로서의 라마르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어떤 경우에나 과학적 생활양식의 고유성은 유지되기 된다. 따라서 과학적 생활방식의 성격인 자연주의는 ‘무신론자로서의 라마르크’, ‘유신론자로서의 라마르크’와 무관하게 성립한다. 이때 라마르크의 자연주의는 ‘무종교인의 관점’에 비유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무종교인은 종교의 사회적 기능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특정 종교 교리의 진위 여부에 무관심한 사람이며, 무종교인의 관점은 특정 종교 교리의 진위 여부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과학의 이론도 설명 영역에서 한계를 갖게 마련이다. 그래서 과학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세계 이해의 특정 방식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은 그 사회적 기능과 맞물려 평가되어야 한다. 따라서 ‘유일하게 올바른 세계 이해’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과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완벽한 세계 이해를 위해 특정 철학적 이론 체계가 요청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즉, 과학의 한계가 특정 철학적 이론 체계를 정당화해주는 수단이 될 수 있을까? 학문의 위계질서를 가정하고 과학을 신학의 하부에 위치시켰던 보일이 이러한 질문에 대해 긍정했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산 존재를 가정한 어떤 형이상학적 체계에 근거해 자연법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여긴 데카르트가 이러한 질문에 긍정했다는 것 역시 이해할만 하다. 그들은 17세기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 특정 종교의 세계 이해 방식에서 해방된 지금, 과학의 한계를 빙자해 특정 철학적 이론 체계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짓은 과학과 다른 분야, 실례로 철학 사이의 소통을 가로막을 뿐이다.
철학자들로 대표되는 인문학자들 일부는 여전히 완벽한 세계 이해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과학의 한계를 빙자해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우기 바쁘다. 또 과학자들 중에도 그러한 인문학자들을 모방하는 이들이 있다. 자연 선택을 중심으로 한 진화론을 생물학의 통합 이념으로 과대 포장하는 이들과 현대적 지적 설계 옹호론자들은 서로 대립 관계를 맺지만 사실은 한 통속임을 보게 될 것이다. 이에 더해 자연 신학 전통을 자신들의 지적 뿌리라고 주장하는 창조 과학 진영은 기독교 역사에 무자할뿐더러, 기독교의 건전한 사회적 기능을 가로막는 장본인들임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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