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 1069

무지의 얇은 베일과 두꺼운 베일(Thin vs Thick Veil of Ignorance)

존 롤스(J. Rawls)의 정의론은 국내에서도 많이 회자되었다. 그의 정의론을 가지고 진행된 시민 대상 공개 강좌는 100개도 넘을 것 같다. 롤스의 서술 방식이 사실 매끈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해 철학자들의 온갖 추상적 개념들이 함께 난무하다 보니, 롤스에 관한 대중 강연이나 강좌는 사실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경향을 보인다. 대중은 ‘밑줄 긋기’ 방식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자신들이 롤스의 정의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그 생각은 착각이다. 또 이 나라 구체적 사안을 놓고 벌어지는 문제들에 고민할 때, 굳이 롤스와 같은 철학자를 등장시켜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롤스의 정의 개념을 쉽게 소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가장 쉬운 방법은 두 종류의 ‘무지의 베일..

DLS 사태: 있으나마나한 금감원 평가시스템과 금융사 컴플라이언스 체계

드디어 DLS 사태가 보도되기 시작하는군요. 정상적인 국가라면 사실 이 사태는 적어도 두달 전부터 보도되어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개인 투자자 원금손실로 인한 줄소송이 예측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문제가 된 DLS 파생상품이 무엇인지는 각자 찾아보세요. 많은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적으로 투자자 개인들의 잘못이다. 원칙적으로는 그렇지만, 정상적 국가라면 정부는 개인 투자자들을 보호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런 사기성, 즉 관련 국가 국채 금리 -0.7%에 이르면 원금 전부를 날리도록 설계된 부실 사기성 DLS 파생상품이 버젓이 시장에 돌게 만든 것에는 정부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각 금융사에는 파생상품 판매 적격여부를 심사하는 컴플라이언스 체계가 있습니다. 그 컴플라이언스 체계는 금..

원칙을 안지키면? 정책연구용역 90%가 수의 계약

자본주의 체제 경제를 둘러싸고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가 이념적으로 대립하곤 한다. 정부의 시장 경제 개입을 가급적 제한하자는 자유민주주의의 입장, 정부의 시장 경제 개입을 늘려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의 입장이 이론적으로 서로 대립하더라도, 현실에는 양자의 입장이 상황에 맞추어 개입되어 있게 마련이다. 정부의 시장 경제 개입 범위 및 수준을 정확히 수치적으로 결정해 주는 이론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두 입장 중 무엇을 택하든,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념적 공방과 무관하게 지켜져야 할 절차적 원칙들이 있다. 다시 말해, 이념적 해석에 앞선 원칙들이 있다. 그러한 절차적 원칙들로 금융 및 정책의 투명성, 통화 및 금리의 선제 대응 등을 들 수 있다. 불확실한 시장 경제에서 그나마 예측..

연구주제: 난징 대학살의 집단 강간과 일본제국주의 정치 엘리트들의 젠더 의식

일제 강점기 시대와 60년대 경제 발전기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일부 국외 학자들도 '위안부=성노예'라는 것은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낙성대 연구소의 이영훈, 이 자는 위안부의 유래가 조선의 기생 제도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식민지 시대의 복잡성을 운운했는데, 그 복잡성은 역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약화시킵니다. 몇몇 자료를 가지고 '모든 무엇은 이렇다'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복잡성은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자들이 반대편을 비판하는 수단이자 동시에 식민지 근대화론 자체를 위협합니다. 그 복잡성은 단선적 역사 서술 및 이에 근거한 보편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복잡성을 인정하는 경우, 지나치게 맹목적인 민족주의 노선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

조국의 사모펀드 투자: 합법=정의=진보?

* 합법은 정의인가? 현행 금융법에 따르면, 각종 기업 정보를 가진 기재부 공무원이 갑자기 그만두고 사모펀드 이사로 취임해도 합법이다. 풀어야 할 규제는 계속 나두고, 필요한 규제는 없애는 금융마피아의 이런 작품을 이용해 자산을 늘리려고 했던, 늘리려고 하는 자들이 이 나라 여야 정치사기꾼들이다. 다수 개인의 행복 추구를 방해하는 법을 고치는 데 게의리하는 자가 스스로를 진보라고 주장한다면, 그는 '위장 진보'이며, 조국은 '위장 진보'를 대표하는 자이다. 이번 사건이 터져도, 각종 기업 및 정책 정보를 가진 고위 공직자가 블라인드 사모펀드에 투자해 편익을 취하는 것을 허용하는 금융법을 개선하자는 여야 정치인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왜내하면 그런 금융법에 기생해 이득을 추구하는 자들이 이 나라 여야 정치..

마드무아젤, 디드로, 복수와 처벌적 정의 1-2. 응보론, 억제론, 재활론

이 글은 수정되어 개인 원고 의 부록들 중 하나로 사용될 것이다. 그 부록에서는 이 글의 영화에 관한 언급은 디데로의 기획 소설 의 서사구조로 대체될 것이다. 이 글은 부록을 만들기 위한 연습작에 해당한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당연히 영화 '마드무아젤'을 보면서 생겨났다. 또 다른 동기는 개인 원고 제 4부 '순환 고리들' 벤담편과 관련된다. 밀, 지드위크 등 철학자들을 통해 벤담을 접하게 되는 경우, 마치 벤담이 공리주의의 원리를 만들고 그 원리에 따라 여러 사회 문제를 분석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인상은 착각이다. 벤담의 많은 저술들을 문제별로 나누어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경우, 그의 공리주의 아이디어는 꽤나 복잡하고 험난한 과정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또 다수의 행복과 관련하여 그..

문정인 사건. 반미, 친미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야

최근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대통령 특보의 미국 대사 사건으로 말이 많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2&aid=0002956601 이를 두고 친여권 성향의 일부 정치꾼은 미국의 국정농단, 미국의 내정간섭 운운했는데, 이러한 운운은 공론화 불가능한 것이다. 강대국 미국의 횡포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이지만, 미국 대사 임명은 비엔나 협역에 따라 미국에 사전 동의를 구해야 한다. 이러한 사전 동의는 미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에 해당한다. 대사를 파견하려는 국가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막말로 극한 반한 발언을 서슴치 않는 특정인을 일본이 한국 대사로 지명하는 경우, 우리나..

‘박정희 30=박정희 60?’, 진보 세력의 딜레마 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덫

세태에 적응적이지 못한 시스템을 방치하고 더욱 고착화시키는 세력에게 ‘진보’, ‘보수’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 그러한 시스템이 더욱 고착화되어 간다고 판단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땅에는 진보, 보수가 없다. 다만, 진보, 보수로 치장한 정치사기꾼들만 있을 뿐이다. 이 글에서 진보, 보수는 그냥 이 땅의 신문방송에서 회자는 특정 정치 세력들을 뜻할 뿐이다. ‘박정희 30=박정희 60?’, 진보 세력의 딜레마 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덫 요새는 인터넷 기사를 많이 본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둘러싼 반응들이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배 12척’, ‘임진왜란에 끌려간 도공’, ‘아베에게 사죄드립니다’ 등으로 대표되는 코미디가 진보와 보수 세력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양심 있는 독일..

지방대와 중소기업의 서러움, 이번 일본 경제 보복에 대한 정치쇼를 보면서

일본의 도가 넘은 경제 보복을 가지고 마치 100년 전 일제 강점기 시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정치꾼들이 쇼를 합니다. 아마도 내년 총선 대비용이겠죠. 사실 이 번 아베의 결정에는 미국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며, 이렇게 되기까지의 무능한 외교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이 번 일본의 경제 보복은 정확하게는 15년 전 상황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IMF 터지고 김대중 정권이 일본과 교류를 활성화하면서 한국 화이트국가 지정의 발판을 마련했고, 노무현 정권 때 한국 화이트국가 지정이 결정된 것입니다. 이 번 사태로 그 결정이 무효화된 것입니다. 몇 년 전부터 게시글 댓글을 이용해 한국 소재 기술 강화시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국내 대기업들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등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