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의 행복 20

철학자들의 행복: 벤담 3. 블랙스톤과 벤담, 법제와 도덕적 권리의 관계

벤담이 법 이 전에 주어진 혹은 법보다 우선하는 자연법 및 도덕적 권리를 부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물음을 살펴보려면, 당시 자유와 도덕적 권리의 관계에 대한 주류 입장을 알 필요가 있다. 로크와 블랙스톤(W. Blackstone)으로 대변된 그 주류 입장에 따르면, 시민으로서 개인의 자유는 자연법을 모방한 법제에 의해 촉진 가능하다. 그 법제는 자연법에 근거한 도덕적 권리들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로크의 행복론에서 자연 상태는 법제 없이 합리적 판단 능력의 발휘만으로도 조화로운 공동체 유지가 가능한 상태이다. 소유를 법적 권리로 보장할 필요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자연을 이용해 인간에게 유용한 것을 만들고, 유용한 것들을 삶에 정착시키는 것은 로크에게는 신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유용..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7. 다수의 행복, 정부와 시간

기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성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로크처럼 이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힘들다. 로크는 기억의 의미 있는 대상을 관념, 즉 명제적 판단의 의미적 구성 단위들로 간주함으로써 이미지의 역할을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억을 통해 과거를 추적할 때, 심적 이미지들은 판단의 증거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특정 판단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특정 대상을 표상하는 이미지는 그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 머리 근처에 떠올린 사과, 나무 등의 이미지들은 사과, 나무 등과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표상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두뇌 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심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 영상, 그림, 이모티콘 등 인공 이미지들 역시 심적 이미지와 마찬가..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6. 행복의 지속성과 기억의 문제

로크에게 기억 중심의 의식은 합리적 판단 능력의 한계 설정과 사용법, 개인의 정체성, 행복의 지속성과 사후 구원, 시민의 규정 방식을 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로크의 사고방식과 홉스의 사고방식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로크와 홉스 모두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속에서 이성 혹은 합리적 판단 능력의 한계 설정에 관심을 가졌다. ‘이성’은 추리와 추상화 능력을 대표하는 합리적 판단 능력을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없었던 시절 그러한 능력의 작인으로 가정된 것이며, 그것의 궁극적 원인은 종종 신으로 여겨졌다. 이성과 합리적 판단 능력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추리와 추상화 능력이 아직 경험적 연구 영역에 들어오지 않았던 고대, 중세, 근대에 국한된다. 합리적 판단 능력의 한계 설정에서 로크는 홉스..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5. 행복과 지식

개인의 행복에 대해 로크가 구체적이고 체계적 작업을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변적 세상 속에서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불변의 정치 체제를 고안한 그의 작업은 다수의 행복 문제를 근대 정치론에 정초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개인의 행복에 대한 그의 입장은 관념을 다루고 있는 제 2부에 반영되어 있다. 특히 권력(power), 자유(liberty)를 다루고 있는 부분에 반영되어 있다. 개인의 행복에 대한 로크의 입장 첫 번째 핵심은 지식의 한계를 아는 것이 행복 추구에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개인에게 지식의 한계를 안다는 것은 합리적 판단 능력을 발휘하여 자신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로크에 따르면, 합리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직관과 예증에 통달한 사람일지라도 마음 바깥의 물질적 원인들에..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4. 지식의 구분

로크에 따라 마음이 관념들을 직접 지각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 특정 관념을 지각한다는 것은 그 관념을 나타내는 경험 내용을 파악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경험 내용은 관찰한 것, 만지고 있는 것, 듣고 있는 것, 과거 경험을 기억으로 떠올리는 것, 상상하는 것 등을 망라한다. 데카르트와 달리 본유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 로크에게 관념을 지각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 로크에게 지식이란 관념들의 비교를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것이다. 지식을 얻는 과정, 확실한 지식과 그럴듯한 지식의 구분 방법, 확실한 지식의 분류법 등을 논하는 제 4권을 보면, 지식은 관념들의 결합 방식을 지각하는 것을 통해 습득 가능한 것이다. 로크에게 그 결합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관념의 일치 혹은 불일치에 불과..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3. 관념(Idea)

관념이란 무엇인가? ‘관념’이라는 단어는 21세기 사람들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근대적 사용 방식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 사용법은 경험과 사고 작용의 내용이 발생하는 장소로서 마음을 이해하는 관점의 형성 과정에서 굳어졌다. 현상을 설명하려고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단순히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분하고 객관적인 것을 마음 외적인 것으로 규정할 때, 마음은 주관적인 것의 반경과 같다. 마음에 대한 이러한 근대의 특이한 이해 방식에 따를 때, 관념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이미지, 표상, 내용 등을 총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념에 대한 근대 철학자들 각자의 이해 방식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항상 논란거리를 남길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이다. 로크의 관념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2. 마음(Mind)

마음이라는 개념은 서양 사상사에서 중세까지는 영혼과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혼은 행위, 선택, 생각, 상상, 성장 등 다양한 능력들의 작인(agent)으로 가정된 개념이다. 합리적 판단 능력과 관련된 영혼의 부분을 육체와 분리 가능한 것으로 여긴 관점이 있었는가 하면, 그러한 부분 역시 육체적 성향으로 간주하는 전통도 있었다. 능력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각 능력을 영혼의 특정 부분과 연관시키거나 영혼의 한 측면으로 규정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경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성장의 생리적 작용, 감각 기관의 기능 등이 근대에 접어들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특정 능력을 영혼의 특정 부분과 연관시키거나 영혼의 한 측면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은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근대에 접어들어 마음은 경..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1. 시작부

로크 홉스의 신학적 입장을 배제한 채 자기 보존과 공포심에만 근거하여 그의 정치 철학을 해석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로크의 철학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로크하면 타고나면서 비어 있는 마음 상태, 경험론 등을 떠올리게 된다. 버클리(G. Berkeley), 흄(D. Hume)의 비판을 통해 정설로 회자되는 로크 철학의 그러한 해석 역시 무조건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홉스와 로크의 사고방식에서 본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중세 부정 신학, 유명론 및 르네상스 종교적 인본주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 모두 근대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정착에 일조했다.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에 따르면, 상황에 종속적이지 않은 보편적 원리들에 근거한 예증적 지식 체계만이 학문적 ..

철학자들의 행복: 홉스 5.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관계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공조 가능성 혹은 연속성을 부정하는 홉스의 관점은 H2~H4에 반영되어 있다. 홉스 정치 철학의 핵심 논제 H2~H4는 욕구와 행복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그 관점이 어떻게 H2~H4에 반영되어 있는지를 알려면 욕구와 행복의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홉스는 제 6장에서 행복을 쾌락 등 특정 심적 상태나 신적인 것과 연관시키는 사고방식을 비판한다. 그리고 행복을 ‘욕구의 지속적 충족’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홉스에게 행복은 특정 심적 상태로서의 욕구가 아니다. 제 11장과 12장을 주의 깊게 분석해 보면, 홉스가 ‘욕구’를 적어도 네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

철학자들의 행복: 홉스 4. 인간과 동물의 관계

H1에는 인간과 동물을 엄격히 이분하는 홉스의 관점이 깔려 있으며, 그 구분 기준은 합리적 판단 능력이다. 홉스에게 동물은 합리적 판단 능력을 결여한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종류의 차이에 해당한다. 홉스의 철학을 ‘이 세상의 실체는 오로지 물질뿐이라는 유물론’으로 규정할 때 주의할 것이 있다. 19세기 유행한 유물론이나 현대적 물리주의와 달리, 홉스의 유물론은 신 존재를 전제한 것이다. 홉스의 유물론은 종교적 갈등을 극복하려고 고안된 ‘새로운 신학’의 이론적 토대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홉스의 사고방식에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진화적 연결 가능성과 같은 것을 찾아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 사고방식에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간주하는 기독교적 신념이 전제되어 있다. 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