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자연철학 57

양자역학의 핵심 문제들

최근 거의 15년 만에 양자역학 관련 논문들을 볼 일이 있었다. 보면서 양자역학을 둘러싼 여러 해석과 문제들은 역시 ‘보른(M. Born)의 규칙’으로 귀결된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보른의 규칙이란 엄격한 방정식도 아니며, 과학적 가설이나 법칙도 아니다. 그것은 양자계와 측정의 분리 불가능성을 전제한 상태에서 측정 결과의 물리적 의미를 보장하려고 추측된 것이다. 보른은 파동함수의 진폭을 관련 입자 발견 확률과 연관지었다가, 1926년 그 확률을 파동함수 크기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규칙을 세웠다. 초기 규칙과 1926년 규칙 중 무엇이 측정 결과에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여러 시도가 있었으나, 보른의 규칙을 수식적 유도에 성공한 것으로 공인받은 논문은 아직 없다. ..

마셜 홀 반사 작용 연구의 다양한 수용 방식

* 다음은 나의 개인 원고 의 부록 중 하나로 사용할 글이다. 마셜 홀, 란셋, 왕립 학회: 홀 반사 작용 연구의 다양한 수용 방식 마셜 홀(M. Hall, 1790-1857)은 반사 작용 설명에서 생기나 동물 영혼의 불필요성을 실험적으로 밝히는 데 기여한 영국의 의사이자 생리학자이다. 하지만 그는 반사 작용의 모든 종류를 오로지 척추 신경계에 국한시켜 대뇌가 조건 반사와 같은 작용과 관련될 여지를 남기지 않았고, 그 결과 두뇌의 기능적 역할 분담 가능성을 부정했다. 다시 말해, 홀은 대뇌 자체를 정신 작용을 발생시키는 기능체가 아니라 정신 작용을 수용하는 장소로 여겼다. 이 점은 홀이 자발적 운동 및 지적 활동을 과학적 설명 범주에서 제외하려 했던 데카르트 이후의 전통에 충실했음을 보여 준다. 그러한 ..

벨-마장디 논쟁: 우선권과 방법론을 둘러싼 논쟁

생기 혹은 동물 영혼 개념이 생리학사에서 권위를 잃게 되는 과정에는 반사 작용을 이해하려는 집단적 노력이 개입되어 있다. 반사 작용을 규명하려는 그러한 집단적 노력은 뇌신경계 구조와 기능을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뇌신경계 구조와 기능이 명확하게 드러나면서, 생기론적 세계 이해 방식도 권위를 잃게 된다. 벨-마장디 논쟁은 이러한 과정의 초기 단계를 장식한다. 스코틀랜드 의사 찰스 벨(C. Bell, 1774-1842)과 프랑스 생리학자 프랑수아 마장디(F. Magendie, 1783-1855)는 신경계가 감각 작용과 운동을 담당하는 이중적 구조를 띠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기여한 인물들이다. 그러한 구조는 ‘벨-마장디 법칙(Bell-Magendie law)’으로 불린다. 글 보기 -> http..

로버트 윗의 지각 원리와 공감 개념

* 다음은 추후 수정되어 나의 개인 원고 의 부록 중 하나로 사용될 글이다. 로버트 윗의 지각 원리와 공감 개념 생리학사에 기능적 통합의 사고방식이란 유기체 내부의 고유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내부와 외부의 기제가 동일한 자연의 원리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정착하는 데 기계론적 세계 이해 방식과 생기론적 세계 이해 방식 사이의 경쟁 구도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 경쟁 구도는 크게 두 가지 논쟁 역사로 나타나는 데 그 하나는 동물 전기를 둘러싼 논쟁 역사이며, 다른 하나는 반사(reflex) 작용을 둘러싼 논쟁이다. 생기론적 세계 이해 방식은 현대 과학에서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것이 가설 생성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신을 믿지 않은 과학자가 기독교적 세..

로베르트 레마크, 재평가받아야 할 생물학자

뇌신경계 발견사에서 19세기 초반에서 중엽에 이르는 기간은 중요하다. 그 기간 동안 안과 밖의 기능적 통합뿐만 아니라 조직적 통합이 연구자들의 사고방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뇌신경계 발견사에서 조직적 통합 과정이란 뇌와 뇌가 아닌 모든 조직과 기관이 세포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고방식을 생성시키고 견고하게 만든 과정이다. 조직적 통합 과정은 미세 관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진일보한 현미경과 표본 보존 및 염색 기술의 발달 없이는 조직적 통합 과정은 불가능했다. 육안 관찰에 근거한 해부학, 17세기 현미경학이 18세기 생리학에서 위력을 떨치지 못한 이유는 간단하다. 조직 내에서 일어나는 과정적 현상을 관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진일보한 현미경과 표본 보존 및 염색 기술은 이러한 상황을 뒤바꾸었다..

중세 셀 독트린(Cell Doctrine)

* 다음 글은 나중에 수정 확장되어 나의 개인 원고 의 한 편으로 사용될 글이다. 이 글을 정확히 이해하면 '프네우마 세계 이해 방식의 두 갈래', '영혼을 바라보는 두 가지 세계 이해 방식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글과 이후에 올려질 를 본다면, 안과 밖의 기능적 통합, 뇌와 뇌 아닌 것의 통합, 전과 후의 구조적 통합이라는 생리학사에 고유한 세 가지 사고방식이 어렴풋이나 드러날 것이다. 중세 셀 독트린 로마 제국의 붕괴와 함께 동로마 제국이 비잔티움을 중심으로 그 유산을 계승했다. 그리스 문화와 갈레노스의 의학 체계는 무슬림 학자들을 경유해 13세기부터 다시 서쪽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뇌신경계 발견사 역사에서 이 시기에 주목할 만한 것은 ‘셀 독트린(cell doctrine)’..

할러와 윗의 논쟁: 기계론 대 생기론

알브레히트 폰 할러(Albrecht von Haller)는 근육 운동에서 신경계의 역할을 되살린 18세기 스위스 생리학자이다. 그는 기계론에 충실했다. 기계론에 충실했다는 것은 이성과 신앙의 분리 관점 아래 자연의 목적을 과학적 설명 영역에서 추방하고 접촉 인과설로 생리 현상을 설명하겠다는 것을 뜻한다. 기관은 특정 기능에 적합한 구조를 보이기 때문에, 어떤 목적성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구조 형성 역사를 탐구할 수 없었던 시절, 기능에 적합한 기관의 구조는 신의 섭리 영역으로 돌려버렸다. 또한 합리적 판단 능력을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없었던 시절, 그 능력의 원천으로 이성을 가정하고 이성의 원천을 신으로 돌리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 이해 방식 속에서 할러는 당시 남아 있던 생기(vital for..

헬름홀츠의 곡선: 잃어버린 시간

정말 이 세상을 창조한 신과 같은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그 신은 어느 종교에서 떠드는 것과 달리 그렇게 전지전능하지 않다고 가정하자. 그 종교에서도 신이 어느 정도 전지전능한지는 실제로는 논쟁거리였는데, 그 종교의 대다수 신도들은 이러한 사실에 무지하다. 그래서 그들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논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 자체를 이단시 한다. 신 존재 개념의 다양성을 인정할 때 그들의 신만을 기준으로 우리의 상상력을 억제할 필요는 없다. 신이 우주를 자신의 서식지로 삼아 창조했을 때 그곳에 인간과 같은 존재가 생겨나리라고는 알지 못했다. 이렇게 가정된 신은 인간의 존재를 모른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등의 정보들 일부를 직접 인지할 수 있다. 우리가 흡수하거나 만들어 내는 모든 정..

슈밤메르담의 개구리와 근육 수축설

생리학 및 뇌신경학 역사에서 개구리 뒷다리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인물은 갈바니, 볼타, 헬름홀츠 등이다. 그런데 개구리를 생리학사에서 철처하게 파헤친 인물은 이들보다 앞선 시기의 얀 슈밤메르담(Jan Swammerdam, 1637-1680)이다. 얀 슈밤메르담 이전에 말피기가 개구리 폐조식을 해부해 조사했다. 하지만 여러 목적 아래 개구리의 발생과 해부학적 구조를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탐구한 인물은 얀 슈밤메르담이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073746799 슈밤메르담의 개구리와 근육 수축설 생리학 및 뇌신경학 역사에서 개구리 뒷다리 하면 떠올리게 되는 인물은 갈바니, 볼타, 헬름홀츠 등이다. ... blog.naver.com

시간 철학: 페레키데스

* 개인 원고 을 2/3 가량 끝낸 상태에서 새로운 개인 원고 를 시작한다. 블로그에는 원고의 본문을 올리지 않는다. 원고는 철학자들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본문과 두 개의 부록 A, B로 구성된다. 블로그에는 '부록 B. 시간 철학'에서 다루어질 철학자들의 시간 개념을 연대순으로 올린다. 첫 번째 인물은 페레키데스이다. 블로그에 올리지 않는 개인 원고 의 본문 내용을 추측해 보고 싶은 사람은 다음 블로그 용 서문을 참조하라. 시간과 경험: 서문(블로그 용) http://blog.daum.net/goodking/966 페레키데스 소크라테스(Socrates) 이 전의 고대 그리스 철학의 흐름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 Laertius)의 ,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의 여러 문헌 등에서 엿볼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