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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의미 5. 전성설 (수정)

(5) 전성설 ‘어떻게’라는 질문 범주와 ‘왜’라는 질문 범주의 구분 속에서 과학을 전자에, 신학을 후자에 위치시키는 기계론 전통에서도 미묘한 입장 차이가 나타난다. 데카르트처럼 과학적 발견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진영이 있었는가 하면, 보일처럼 과학적 발견을 신의 섭리를 밝히는 수단으로 여기는 진영도 있었다. 물론 데카르트가 존재의 목적을 다루지 않는 기계론 전통의 과학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다고 여긴 것은 아니다. 또한 보일도 엄격한 과학적 설명에 신의 목적을 개입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어떻게’라는 물음의 영역에 속하는 과학적 설명을 그 자체로 완성된 것으로 보았다. 즉, ‘어떻게’라는 물음의 영역과 ‘왜’라는 물음의 영역이 서로 대등한 관계를 맺는 가운데, 세계의 완벽한 이해에 도..

소외(Alienation)

소외 1. ‘소외(alienation)’는 일반적으로 ‘공동체와 격리된 개인의 사회적 혹은 심리적 상태’ 양자를 뜻한다. 소외된 개인은 단순히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정치 체제나 이념 자체를 이질적인 것으로 여긴다. 소외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혹은 심리적 악(惡)으로 여겨졌다. 즉, 소외된 개인은 공동체의 적이라는 것이다. 소외 개념이 공동체의 현 상태 및 변화 가능성을 진단하는 데 중요하다는 인식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러한 인식이 정치철학의 특정 이론을 전제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종종 자유 민주주의의 적으로 묘사되는 마르크스(K. Marx)와 엥겔스(F. Engels)의 사상에 빚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글 보기 -> https://blog.na..

낙태 논쟁을 위한 기본 지식

낙태 논쟁 1. 인간의 수정란이 일상생활에서 ‘사람’이라 불리는 개체(individual)는 아니다. 따라서 초기 수정란을 죽이는 행위가 일반적 의미의 ‘살인’과 동일한 것으로 취급될 수는 없다. 낙태(abortion)는 단순히 수정란을 죽이는 행위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신경계가 형성되거나 형성된 상태의 수정란, 즉 태아(fetus)를 죽이는 행위를 뜻한다. 인간 수정란의 발생 과정을 살펴보면, 신경계는 임신 8주 정도 지나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신 8주 이후의 수정란을 죽이는 것도 살인 행위로 간주되어야 하는가? 이러한 문제와 관련된 낙태의 허용 여부 및 허용 정도는 윤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측면에서도 논쟁거리가 된다. 글 보기 -> https://blog.n..

세상을 버릴 줄 알아야 하는 이유

왕과 나! 이 관계는 오래 전에는 운명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왕이 될 가능성은 왕가의 자손으로 태어난 이에게만 열려 있었다.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왕이 되고자 하는 꿈조차 금기시되었다. 이러한 시절은 지나갔다. 더 이상 모든 이의 위에 군림하는 왕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왕의 상징성’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모든 이의 위에 군림하는 왕의 상징성은 여러 ‘작은 영역에서의 성공’으로 축소되었으며, 한 영역에서 크게 성공하고자 하는 이는 어떤 의미에서는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을 어렵게 정의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누구나 한 영역의 왕이 될 수 있음을 뜻한다. 위대한 과학자가 되라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권유는 과학계의 왕으로 군림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고, 훌륭한..

정점의 의미 4. 17세기 지적 설계론의 핵심 (수정)

(4) 17세기 전통의 지적 설계론 중세 본성론에서 우연에 의해 발생한 사건, 즉 기회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그 첫 번째 측면은 태초 이후 우주의 자체 유지와 맞물린 인과적 복잡성과 관련된다. 이때 인과적 복잡성은 사건 발생의 선후 관계를 따지는 관점이 아니라, 대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따지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우연에 기인한 기회는 신의 아가페적 사랑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은 신이 모든 사건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 두 번째 측면은 우연적인 것을 기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때 기적은 신의 전능함과 충만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중세 본성론에서 신이 태초 이후에 개입할 여지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점의 의미 3. 본성론 (수정)

(3) 본성론 본성론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한 알파라비(Al-Farabi), 아비세나(Avicenna) 등 이슬람 학자의 영향 아래 중세에 유행한 창조설이다. 본성론의 핵심은 우주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모든 것은 ‘그 무엇’에 속하도록, 혹은 ‘그 무엇’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해주는 본질(essence)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계의 대상들에만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우, 그러한 본질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동일시하여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기독교의 신 개념이 다른 만큼, 중세 본성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알기 위해 다음 두 문제를 차례대로 다뤄보자. • 천사는 ‘순수한 영적 존재’로 가정된다. 그러한 존재가 어떻게 가능한가? • 예수는 엄밀히 말해 인간도, 신..

정점의 의미 2. 우주 창조설의 분류 (수정)

(2) 우주 창조설의 분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 개념과 기독교의 신 개념을 관통하는 것은 둘 다 질료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둘의 주된 차이는 무엇인가? 우주의 내적 통합 원리 그 자체로 파악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작용인이 될 수 없다. 반면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으로 가정된 기독교의 신은 어떤 의미에서든 작용인이어야 한다. 이때 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주를 창조했는가라는 물음은 피할 수 없게 되고, 그 창조 방식에 따라 신의 목적도 다르게 해석된다. 기독교 신 개념의 다양성은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려는 전통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또한 그 전통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천 역사와 맞물려 있다. 신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작용인으로 파악하는 경우, 두 가지 창조 방식을 생각..

정점의 의미 1.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사슬 (수정)

정점의 의미 (1)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사슬 신이 무(無)에서 우주라는 유(有)를 창조했다면, 신 자신은 질료가 될 수는 없다. 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면, 신은 어떤 의미에서든 작용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창조와 관련된 신의 속성인 전능함은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다. 신의 전능함에 대한 해석 중 어떤 것을 택하는가에 따라 작용인으로서의 신의 의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의미는 창조의 목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에, 기독교의 다양한 신 개념을 알려면 창조의 목적에 대한 여러 관점을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존재 사슬의 구성 방식을 분석해 보자. 먼저 (A)를 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에 따르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영역인 지상계는 불완전..

수직선 (수정)

창조 과학은 두 가지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다.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 증거보다 우선시 여기면서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과학을 왜곡하는 짓이다. 또 성경 기록을 자연 탐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기독교 역사를 왜곡하는 짓이다. 이 두 가지 왜곡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빅뱅 이론도, 진화 생물학도 아닌 자연 신학이다. 창조 과학 옹호자들은 자연 신학 전통의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er)’자 개념이 자신들의 지적 뿌리라고 주장한다. 창조 과학과 정통 자연 신학이 서로 양립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밝힌다면, 창조 과학이 과학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자체를 왜곡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때 창조 과학 진영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입장인 광신적 복음주의의 한 분파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