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인지와 경험 69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4. 힐베르트, 형식주의, 구조주의 그리고 질문들

직관주의 논리 체계에 근거한 구성주의의 일반적 흐름을 간략히 살펴보려면, 힐베르트(D. Hlbert)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공리 체계에 근거한 힐베르트의 형식주의(formalisms)는 종종 20세기 초 브라우버르(L.E.J. Brouwer)의 직관주의와 무조건 적대적 관계를 맺는 것으로 회자되곤한다. 하지만 그 형식주의에 담긴 힐베르트의 수학적 유한주의를 살펴보면, 그와 브라우버르 사이의 공통점도 드러난다. 둘 다 수학적 플라톤주의를 수용하지 않았고, 경험의 유한성을 인정한다. 또한 수학을 논리학의 일부로 정착시키려는 논리주의(logicism)의 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다. 하지만 힐베르트는 브라우버르와 달리 구성이 수학적 작업에 필수적이라도 그것을 수학의 본질로 파악하지 않는다. 힐베르..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3. 귀납과 임의적 확장 가능성

열거적 귀납에 대한 밀의 입장을 좀 더 분석해 보자. 열거적 귀납은 유한개의 관찰 사실들이라는 특수한 것에서 좀 더 많은 양의 특수한 것으로 계속 이행 가능하다는 점에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을 함축한다. 밀에게 ‘모든’은 그러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을 숨기는 기능을 가진다. 그러한 임의적 확장 가능성의 한계로 무한의 양을 가정할 수 있다. 밀의 시대에는 가산 무한과 불가산 무한을 구분하는 현대적 집합론이 없었기 때문에, 밀은 아마도 그러한 한계로 가정 가능한 무한을 가산 무한, 즉 자연수들의 집합과 일대일 대응 가능한 무한으로 설정했을 것이다. 인류가 멸망하는 일이 없다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인구의 수는 자연수만큼이다. 지금까지 논의에 따를 때, 무한 양의 보편적인 것에서 특수한 것으로의 추론은 불..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2. 표면적, 실질적 추론 그리고 귀납

표면적 추론은 표면적 명제와 마찬가지로 논리적 연결사의 정의 방식에만 기대어 가능한 추론이다. 반면에 실질적 추론은 논리적 연결사의 정의 방식만으로는 불가능한 추론이다. 밀은 실질적 추론에는 경험에서 직접 근거하는 경우 또는 관찰 가능한 사실들로부터의 일반화의 경우가 개입되어 있다고 본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무모순률과 배중률을 실질적 명제로 규정하는 데 밀은 열거적 귀납을 사용했다. 따라서 밀에게 무모순률과 배중률을 규정하는 방식은 실질적 추론이다. 표면적 추론과 실질적 추론의 구분은 이렇게 단순해 보여도 여러 논쟁거리를 발생시킨다. 먼저 다음 논증을 분석해 보자. 첫 번째 사탕은 달고, 두 번째 사탕도 달다. 따라서 첫 번째 사탕은 달다. 위 논증에는 다음과 같은 타당한 논증 형식, 즉 전제들을 참으..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1. 표면적 명제와 실질적 명제

추론에 관한 밀의 입장 는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을 대표하는 연구서 중 하나이다. 를 저술한 밀의 동기는 다분히 정치적이다. 밀은 아버지 제임스 밀(J. Mill), 밀 부자의 재정적 후원자이자 공리주의의 기초를 마련한 벤담(J. Bentham), 사회 개혁가 플레이스(F. Place), 파크스(J. Parkes), 역사학자 그로트(G. Grote), 정치가 로벅(J.A. Roebuck), 불러(C. Buller), 몰즈워스(W. Molesworth), 극작가 트렐로니(E.J. Trelawny) 등과 함께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영국의 급진적 개혁 운동을 이끈 인물이다. 이들 모두는 당시 휘그(Whig)와 토리(Tory) 당에 맞서 투쟁했으며, 공리주의의 원리를 도덕과 사회 개혁의 원리로..

번스타인의 정밀어와 한정어 3. 교육적 가치와 시민 교육

한정어와 정밀어의 구분 방식이 갖는 교육적 가치와 맞물린 ‘탄력적 소통 교육의 목적’은 다음과 같이 규정된다. • 탄력적 소통 교육은 이념보다는 문제의 공유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계층 및 계층 간 관계에 대한 이해를 우선시한다. 다시 말해, 각 계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탄력적 소통 교육에서는 일단 유보된다. 탄력적 소통 능력의 발휘가 그러한 도덕적 판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특정 계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단순히 해당 계층 구성원들이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그 평가는 어떤 계층을 보호 대상으로 삼을지, 약화 대상으로 삼을지, 강화 대상으로 삼을지에 대한 판단을 요구한다. 특정 계층에 대한 도덕적 평가는 개인의 선보다는 공동체의 조화로운 유지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특정 계층을 사회..

번스타인의 정밀어와 한정어 2. 논쟁

번스타인의 연구는 1960년대 말에 진행되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정보의 계층 간 이동이 원활하지 못했다. 노동자 계층의 상당 부분은 빈곤층, 흑인 및 소수 인종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한 사람들은 교육에서 상대적 약자 계층을 형성했으며, 지역적으로도 격리되어 있었다. 반면에 중산층 사람들의 정보 활용 방식은 지리적, 문화적, 사회적 측면에서 그 분포 범위가 넓고 활동적이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중산층 아이들은 탄력적 소통, 즉 상황에 따라 정밀어와 한정어 표현을 혼용하여 소통하는 방식에서 더욱 탁월한 능력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점은 과거의 사실일 뿐이다. 그것을 정보의 공유가 손쉬워진 지금의 상황에 직접 적용하기는 힘들다. 공교육의 경우, 과거보다 다양한 계층이 뒤섞여 있다. ..

번스타인의 정밀어와 한정어 1. 기본적 이해

번스타인의 정밀어와 한정어 - 맥락 전달 및 변형 훈련의 교육적 가치 - 바실 번스타인(B. Bernstein)은 1924년에 태어나 2000년에 생을 마감한 영국 유대계 언어 사회학자이다. 계층과 언어 사용법 사이의 관계에 관심을 가진 번스타인은 교육 사회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와 함께 따라다니는 것은 ‘정밀어(elaborated code)’와 ‘한정어(restricted code)’이다. 정밀어와 한정어 개념은 그의 1971년 저서 • 여러 부류의 아이들에게 특정 만화 장면을 보여 주고 그 장면을 설명하도록 한 결과, 다음의 두 가지 결과가 나왔다. “그들이 축구를 하는데, 그가 그걸 찼어. 그런데 그게 날아가 창문을 깬 거야. 그들은 그걸 보았어. 그리고 그가 나와 소리를 질렀어. 그들이 그걸 ..

적응 기관으로서의 마음: 환경과 합리성

인터넷 검색하다 글 하나를 발견했는데, 보니까 내가 13년 전에 썼던 글이다. 마음이 안 드는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내용은 정체기 늪에 빠진 요새 인지심리학이나 과학의 상황을 고려할 때 여전히 참신한 면이 있다. 그래서 해당 사이트에서 이 글을 복사해 옮겨 읽기 좀 더 편하게 글만 수정했다. 내용은 뭐 그대로이다. 이 글의 원본은 2004년 한국철학자대회에서 발표된 글로 당시 대회보 2에 수록되었다. 올리는 것은 수정을 거쳤기 때문에 원본보다 낫다. 이 글을 보관해온 분께 감사 ... 적응 기관으로서의 마음 - 환경과 합리성 - 이 글의 목적은 마음을 적응 기관에 유비시켜 환경 구조가 감정에서 사고에 이르기까지 합리성의 중요한 측면임을 보이는 것이다. 시작부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적응은 무엇인..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과 지능의 관계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과 지능의 관계 On the Relation between Complex Problem Solving and Intellectual Abilities 1. 당신이 혼란스러운 도시의 시장으로 선출되었다고 하자. 당신은 시의 기업들, 인적 자원 및 기반 시설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다고 가정하자. 혼란스러운 도시를 재정비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시민들은 당신에게 그러한 절대 권력을 위임한 것이다. 당신은 ‘사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하는 ‘진정성을 갖춘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목표는 신민들이 편히 잘 살 수 있는 시를 만드는 것이다.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077823480 복잡한 문제 해결 능력과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