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진보의 시작 100

무지의 얇은 베일과 두꺼운 베일(Thin vs Thick Veil of Ignorance)

존 롤스(J. Rawls)의 정의론은 국내에서도 많이 회자되었다. 그의 정의론을 가지고 진행된 시민 대상 공개 강좌는 100개도 넘을 것 같다. 롤스의 서술 방식이 사실 매끈하다고 할 수는 없다. 여기에 더해 철학자들의 온갖 추상적 개념들이 함께 난무하다 보니, 롤스에 관한 대중 강연이나 강좌는 사실상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경향을 보인다. 대중은 ‘밑줄 긋기’ 방식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자신들이 롤스의 정의론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미안하지만 나에게는 그 생각은 착각이다. 또 이 나라 구체적 사안을 놓고 벌어지는 문제들에 고민할 때, 굳이 롤스와 같은 철학자를 등장시켜야 하는 이유도 모르겠다. 롤스의 정의 개념을 쉽게 소개하는 것은 어렵다. 그럼에도 가장 쉬운 방법은 두 종류의 ‘무지의 베일..

연구주제: 난징 대학살의 집단 강간과 일본제국주의 정치 엘리트들의 젠더 의식

일제 강점기 시대와 60년대 경제 발전기의 연속성을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옹호하는 일부 국외 학자들도 '위안부=성노예'라는 것은 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낙성대 연구소의 이영훈, 이 자는 위안부의 유래가 조선의 기생 제도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식민지 시대의 복잡성을 운운했는데, 그 복잡성은 역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약화시킵니다. 몇몇 자료를 가지고 '모든 무엇은 이렇다'라고 주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식민지 시대의 복잡성은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자들이 반대편을 비판하는 수단이자 동시에 식민지 근대화론 자체를 위협합니다. 그 복잡성은 단선적 역사 서술 및 이에 근거한 보편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복잡성을 인정하는 경우, 지나치게 맹목적인 민족주의 노선 역사학자들의 주장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

‘박정희 30=박정희 60?’, 진보 세력의 딜레마 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덫

세태에 적응적이지 못한 시스템을 방치하고 더욱 고착화시키는 세력에게 ‘진보’, ‘보수’라는 명칭을 붙일 수 없다. 그러한 시스템이 더욱 고착화되어 간다고 판단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이 땅에는 진보, 보수가 없다. 다만, 진보, 보수로 치장한 정치사기꾼들만 있을 뿐이다. 이 글에서 진보, 보수는 그냥 이 땅의 신문방송에서 회자는 특정 정치 세력들을 뜻할 뿐이다. ‘박정희 30=박정희 60?’, 진보 세력의 딜레마 또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덫 요새는 인터넷 기사를 많이 본다. 일본의 경제 보복을 둘러싼 반응들이 너무나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순신의 배 12척’, ‘임진왜란에 끌려간 도공’, ‘아베에게 사죄드립니다’ 등으로 대표되는 코미디가 진보와 보수 세력에서 튀어나오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양심 있는 독일..

내부고발을 둘러싼 다섯 가지 오해

* 다음은 404-413쪽 내용이다. 아예 새로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특히 (4)와 (5)의 분량을 늘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시간을 내기 귀찮아 그냥 원문 그대로 올린다. 일부 문장만 약간 고쳤다. 이 글을 올린 동기는 최근 신재민 기재부 전 사무관 사건과 관련된다. 해당 사건에 대한 나의 개인적 입장을 알고 싶은 사람은 댓글을 참조하라. 내부고발을 둘러싼 다섯 가지 오해 피고용자가 고용자에게 호루라기를 분다는 어원적 의미를 갖고 있는 ‘내부고발’은 조직체계 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나타나는 의견 차이와 무관할 수 없다. 하나의 조직체계는 더 이상 단일 직업군으로 구성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의견 차이는 직업적 판단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여러 직업적 가치체계들에 의해 규정되..

건강식과 아동 교육

* 성장기 아이들에게는 학습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식이다. 건강식은 21세기에 들어와 아동 교육의 중요한 주제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국내 교육 학술지를 뒤져보면, 건강식을 교과 과정과 맞물려 다룬 논문은 거의 없다. 한국 저질 교육 학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일정 부분 개인의 잘못된 식생활에서 비롯된 고도 비만 수술비도 의료보험으로 처리해 주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취학 전 취학 후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건강식 교육 프로그램을 교과 과정으로 정착시키는 것이 나을까? 이 나라 사회를 개선시켜 보고 싶은 사람은 이러한 물음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한다. 아동 교육에서 건강식의 중요성을 다룬 논문조차 거의 없다는 사실이 한심하여 이 글을 작성했다. 부모들도 신문 방송, 대중서의 ‘꾼’들의 세..

양심적 병역거부 논쟁에서 뭔가를 얻고자 한다면

* 대만은 2000년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을 놓고 찬반론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이 번에 합헌 판결이 하나 나왔다. 대만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 번 합헌 판결을 놓고 온나라가 부글부글 끓는 중이다. 양심적 병역거부 합헌 판결을 놓고 대만과 한국을 비교할 때,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 이 물음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면, 책 한 권 분량의 논의가 필요하다. 여기서는 최소한의 논의만 전문적 주해 및 주석 없이 전개한다. 양심적 병역거부(conscientious objection)를 합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와 이를 둘러싼 논쟁으로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자칭 진보를 대표한다는 경향 신문은 많은 사람들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반발하는 이유로 '양심'에 대한..

커리큘럼이란 2. 영국의 국가 교육과정, 5세 이하 아동교육 문제점

커리큘럼의 포괄적 이해 방식 자체는 구체화되지 않은 형태이다. 그것은 학교, 지역, 국가 차원의 혹은 국가 커리큘럼 NC(national curriculum)를 짤 때 가이드라인으로 기능한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반영되는가는 해당 결정 집단의 몫이다. 특히 학제, 수업 기간 등을 규정하는 국가 커리큘럼 NC는 모든 구성원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그 파장력이 매우 크다. NC의 구성에서 절대적 역할은 정부가 담당하기 때문에, 커리큘럼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종종 다른 집단의 의견과 마찰하기도 한다. 커리큘럼의 포괄적 이해 방식이 생성되는 과정은 NC에 대한 정치적 입장 변화 과정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NC에 대한 정치적 입장 변화 과정은 지역마다 차이를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로 구성된..

커리큘럼이란 1. 포괄적 이해 방식

제대로 된 교육 정책의 부재 속에서 툭하면 교과 과정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바뀌는 현상은 세계 도처에서 나타난다. 그 현상이 유독 심한 곳은 우리나라이다. 그래서 누구나 신문 기사 및 방송 등을 통해 ‘교과 과정’이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하지만 교과 과정의 의미 변천사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그 변천사를 아는 것은 교과 과정을 둘러싼 국내 각종 논쟁(실제로는 잡음에 불과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에세이에서 국내 교과 과정 정책 비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단지 교과 과정 의미 변천사에 대한 일반적 이해 방식만 소개할 것이다. ‘교육 과정’ 대신 ‘커리큘럼(curriculum)’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앞에 붙는 수식어에 따라 커리큘럼은 학과 과정, 졸업 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