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크 10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7. 다수의 행복, 정부와 시간

기억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성을 물을 수 없는 것일까? 로크처럼 이 물음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힘들다. 로크는 기억의 의미 있는 대상을 관념, 즉 명제적 판단의 의미적 구성 단위들로 간주함으로써 이미지의 역할을 사소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기억을 통해 과거를 추적할 때, 심적 이미지들은 판단의 증거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특정 판단을 촉발시키기도 한다. 특정 대상을 표상하는 이미지는 그 대상과 분리되어 있다. 머리 근처에 떠올린 사과, 나무 등의 이미지들은 사과, 나무 등과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표상한다. 그런데 이미지가 두뇌 활동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심적인 것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진, 영상, 그림, 이모티콘 등 인공 이미지들 역시 심적 이미지와 마찬가..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6. 행복의 지속성과 기억의 문제

로크에게 기억 중심의 의식은 합리적 판단 능력의 한계 설정과 사용법, 개인의 정체성, 행복의 지속성과 사후 구원, 시민의 규정 방식을 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로크의 사고방식과 홉스의 사고방식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로크와 홉스 모두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속에서 이성 혹은 합리적 판단 능력의 한계 설정에 관심을 가졌다. ‘이성’은 추리와 추상화 능력을 대표하는 합리적 판단 능력을 경험적으로 연구할 수 없었던 시절 그러한 능력의 작인으로 가정된 것이며, 그것의 궁극적 원인은 종종 신으로 여겨졌다. 이성과 합리적 판단 능력을 혼용하여 사용하는 것은 추리와 추상화 능력이 아직 경험적 연구 영역에 들어오지 않았던 고대, 중세, 근대에 국한된다. 합리적 판단 능력의 한계 설정에서 로크는 홉스..

행정의 지속성 없는 위험한 민주주의: 이 번 통계청 청창 경질 문제

* 아래는 2018년 8월 27일 다음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당시 통계청장이 합당한 이유 없이 경질되고 새로운 인물로 교체되었다. 그 새로운 ‘착한 통계’를 운운했다. 정권이 바뀐 지금 지난 정권의 통계 조작 혐의를 들여다보겠다는 발표가 나오자. 반대 세력은 정치적 탄압, 감사 조작이라며 맞서고 있다. 권력 개입의 통계 조작은 민주제 운용 자체를 뒤흔드는 것이 때문에 민주제 사회에서 절대 허용 불가한 것이다. 더욱이 권력 개입 통계 조작은 권력을 둘러싼 여론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국정농단 중에서도 최악의 국정 농단이다. ‘국정농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이유는 지금 통계 조작 혐의를 받는 세력이 그 표현을 자주 사용했기 때문이다. 통계 조작을 시도한 권력에게 ‘진보’ 또는 ‘보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것도..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4. 지식의 구분

로크에 따라 마음이 관념들을 직접 지각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우, 특정 관념을 지각한다는 것은 그 관념을 나타내는 경험 내용을 파악한다는 것을 함축한다. 그 경험 내용은 관찰한 것, 만지고 있는 것, 듣고 있는 것, 과거 경험을 기억으로 떠올리는 것, 상상하는 것 등을 망라한다. 데카르트와 달리 본유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 로크에게 관념을 지각하는 것만으로는 그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 로크에게 지식이란 관념들의 비교를 통해서만 획득 가능한 것이다. 지식을 얻는 과정, 확실한 지식과 그럴듯한 지식의 구분 방법, 확실한 지식의 분류법 등을 논하는 제 4권을 보면, 지식은 관념들의 결합 방식을 지각하는 것을 통해 습득 가능한 것이다. 로크에게 그 결합 방식은 기본적으로 두 관념의 일치 혹은 불일치에 불과..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3. 관념(Idea)

관념이란 무엇인가? ‘관념’이라는 단어는 21세기 사람들이 여전히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의 근대적 사용 방식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다. 그 사용법은 경험과 사고 작용의 내용이 발생하는 장소로서 마음을 이해하는 관점의 형성 과정에서 굳어졌다. 현상을 설명하려고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을 단순히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분하고 객관적인 것을 마음 외적인 것으로 규정할 때, 마음은 주관적인 것의 반경과 같다. 마음에 대한 이러한 근대의 특이한 이해 방식에 따를 때, 관념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이미지, 표상, 내용 등을 총칭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관념에 대한 근대 철학자들 각자의 이해 방식을 정확히 규정하는 것은 항상 논란거리를 남길 수밖에 없는 어려운 일이다. 로크의 관념을 이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2. 마음(Mind)

마음이라는 개념은 서양 사상사에서 중세까지는 영혼과 구분 없이 사용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영혼은 행위, 선택, 생각, 상상, 성장 등 다양한 능력들의 작인(agent)으로 가정된 개념이다. 합리적 판단 능력과 관련된 영혼의 부분을 육체와 분리 가능한 것으로 여긴 관점이 있었는가 하면, 그러한 부분 역시 육체적 성향으로 간주하는 전통도 있었다. 능력의 종류가 다양한 만큼, 각 능력을 영혼의 특정 부분과 연관시키거나 영혼의 한 측면으로 규정하는 두 가지 사고방식이 경쟁 관계를 맺고 있었다. 성장의 생리적 작용, 감각 기관의 기능 등이 근대에 접어들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특정 능력을 영혼의 특정 부분과 연관시키거나 영혼의 한 측면으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은 권위를 잃어버리게 된다. 근대에 접어들어 마음은 경..

철학자들의 행복: 로크 1. 시작부

로크 홉스의 신학적 입장을 배제한 채 자기 보존과 공포심에만 근거하여 그의 정치 철학을 해석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로크의 철학도 이와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로크하면 타고나면서 비어 있는 마음 상태, 경험론 등을 떠올리게 된다. 버클리(G. Berkeley), 흄(D. Hume)의 비판을 통해 정설로 회자되는 로크 철학의 그러한 해석 역시 무조건 통용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홉스와 로크의 사고방식에서 본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중세 부정 신학, 유명론 및 르네상스 종교적 인본주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두 사람 모두 근대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정착에 일조했다.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에 따르면, 상황에 종속적이지 않은 보편적 원리들에 근거한 예증적 지식 체계만이 학문적 ..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관계

7월에 출간 예정인 을 수정 중에 있는데, 내용이 완전히 바뀐 부분들이 많다. 그러한 부분들은 새롭게 쓴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관계' 부분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보통 철학 입문서로 자유주의를 접근하게 되면, 자유주의의 형성 과정에 기독교 전통이 깊숙히 개입외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개인주의. 경제적 합리성 등의 개념만으로 자유주의를 파악하고 있다가, 로크 등의 정치 철학을 보게 되면 혼란이 발생한다. 17세기 서양 철학에서는 정치와 신학의 분리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와 기독교 전통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고 자유주의를 접근할 필요성은 여러 연구서들을 접해 보면 당연한 것으로 드러난다. 그런데 자유주의를 그렇게 접근할 때, 자유주의의 여러 입장들을 깨..

사후 구원의 논리: 기독교편 3 잠든 영혼, 의식, 육체

사후 구원의 매개물로 영혼을 간주하는 것에 대한 개신교 세력의 비판 동기는 주로 정치적이다. 육체와 분리 가능한 영혼 개념은 지속적으로 위협을 받아 왔다. 특히 감각 작용의 생리적 기능이 점차 밝혀지면서, 충동 및 지각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간과할 수 없게 되었다. 가톨릭 세력은 이러한 도전에 맞서 ‘철학에 대한 신앙의 우위성’을 강조했다. ‘실체적 영혼’은 합리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철학은 이에 대한 반박 성격을 갖는다. 데카르트는 실체적 영혼을 ‘생각하는 실체(thinking substance)’로 규정했다. 여기서 ‘생각한다’는 것은 ‘합리적 판단 능력’과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 능력’을 총칭하는 은유이다. 영혼의 기능은 지적 능력 및 의지에 국한되기 때..

<세속화> 후기: 독단적 지성사와 거리 두기 2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X는 현재 대세인 세계 이해 방식 W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는 야망을 가진 인물이다. X는 인간, 자연, 사회 그리고 그것들의 관계를 규정하는 W의 핵심 전제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시켜야 한다. X가 역사를 존중하는 인물이라면, 특정 세계 이해 방식이 아니라 ‘세계 이해들의 세계’가 변화해온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이때 그는 W와 대립 관계를 맺는 W′들에 주목하게 된다. X가 W′들에 근거해 W″를 만들었을 때, W″는 기존 ‘세계 이해 방식들의 세계’의 일부를 재구성해 변형한 것이라는 점에서 ‘생성된 것’이다. 더욱이 모든 세계 이해 방식들은 일상 경험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