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왕 이상하 19

세속화와 근대화 7. 근대화 과정의 재평가

이제 근대화 과정을 재평가하기 위해, 그 과정의 ‘산업화’,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인종주의의 쇠퇴’라는 세 성향이 이 땅에 나타난 방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A1) 식민지 팽창을 주도한 서양 국가들과 달리, 이 땅의 산업화는 자생적으로 출발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시절을 이 땅의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을 때, 일제 강점기와 경제 성장기의 관계는 ‘필연적이거나 상부 주도적 의미’가 아니라 ‘잠정적이고 민중적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A2) 서양의 경우와 달리, 이 땅의 산업화는 기술 진보와 평등 사이의 근대적 긴장감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 성장을 가속화시킨 해방 이후의 산업화 과정에서 그러한 긴장감과 유사한 현상이 나타났다. 그것은 부와 정치적..

홀로그램 거울

홀로그램 거울 너는 자신의 완전한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도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자신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없다. 물론 두 개의 전신 거울을 사용해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실제 해 보면 자신의 뒷모습 전체를 한눈에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설령 이렇게 저렇게 하여 너의 뒷모습 전체를 보게 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뒤틀린 너의 육체로 인한 감각이 거울 관찰을 방해할 것이다. 그렇게 너의 뒷모습을 보게 되더라도, 다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너 자신의 뒷모습을 보는 것은 아니다. 이제 네 앞에 ‘홀로그램 거울’이 있다고 하자. 그 거울에 투사된 너의 모습은 너무나 입체적이어서 마치 또 다른 사람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준다. 만..

생리학사: 왜 부르하베인가?

왜 부르하베인가? 생리학(physiology)의 전성기는 19세기로 거론된다. 그 기간 동안 생리학은 요하네스 뮐러(Johannes Mueller), 카를 루드비히(Carl Ludwig, 1816~1859) 등의 노력으로 해부학에서 독립해 ‘유기체 기능들의 물리․화학적 연구 분야’로 정착했다. ‘유기체의 기능들을 물리 화학적으로 규명한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의미 해석은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러한 해석 작업은 ‘살아 있는 것들의 영역과 살아 있지 않은 것들의 영역 사이의 구분을 인정하면서도 두 영역 각각에 해당하는 별도의 법칙성과 같은 것을 부정하는 입장’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해석 작업은 이 짧은 글의 주제가 될 수 없다. 이 짧은 글의 핵심 물음은 다음과 같..

세속화와 근대화 6. 인종주의의 쇠퇴

지동설은 신성의 영역으로 간주되었던 천체에 지구를 속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지동설의 출현으로 자연에서 인간의 지위도 재해석되어야만 했다. 그러한 재해석 문제를 놓고 ‘진보론’, ‘회의론’, ‘종말론’이 나타났다. 제 4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진보론’은 ‘인간 중심 사상’, ‘확실성 추구의 시대정신’, ‘자율적 인간상’이라는 특징들을 갖는 ‘인간의 천사화 계획’을 태동시킨 모태와 같다. ‘인간의 천사화 계획’의 연장선에 서 있는 계몽주의는 이성과 신앙을 분리하는 관점 속에서 회의론을 극복하고 종말론과 공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몽주의를 둘러싼 여러 상반된 입장들이 ‘우리 유럽’이라는 이념 아래 공존할 수 있도록 해준 실질적 기반은 ‘백색 도덕 제국주의’였다. 백색 도덕 제국주의를 구성하는 세 특징은 ‘인..

세속화와 근대화 5.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하는 것이 이 땅에도 있었다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논했다. 그 곳에서 기득권층을 형식적 기득권층과 실질적 기득권층으로 나누었다.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을 근대화와 맞물려 평가할 때, ‘여기’와 ‘저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의 소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이란 ‘실질적 기득권층이 동시에 형식적 기득권층으로 보장받는 집단’을 뜻한다. 실질적 기득권층과 형식적 기득권층의 규정 방식을 고려할 때,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형식적 기득권층이 먼저 붕괴되어야 한다. 하지만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의 소멸이 실질적 기득권층의 소멸까지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은 계층 간 갈등이 ..

세속화와 근대화 4.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 비판

이제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이라는 근대화의 성향을 살펴볼 차례다. 그 전에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이 갖는 문제점들을 먼저 지적하자. 이것이 이후의 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군주가 지배했던 과거 사회와 현대 사회의 차이점을 묻는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다수는 라인하르트 벤딕스(R. Bendix)의 책 제목이 암시하듯 다음에 동의할 것이다. • 친족, 혈연, 신분 중심의 소수 지배층이 지배했던 과거 사회가 민중의 정치적 참여를 허락하는 방식의 시민 사회로 변화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위에 동의할 때, 그들 다수는 ‘근대화’를 마치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필연적 과정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여기는 경우, 현대적인 것을 ..

세계시민주의 3

3. 세계시민주의의 또 다른 정의 방식은 ‘탈중심적 정의 방식’이다. 보게 되듯이, 탈중심적 정의 방식에 따른 세계시민주의의 모든 형태가 외부 확장적 정의 방식에 따른 세계시민주의와 대립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보편성에 접근하는 방식에 따라 그 두 정의 방식의 설정도 달라진다. 이 점은 세계시민주의의 탈중심적 규정 방식을 먼저 살펴보는 것보다, 특정 사례 분석을 통해 이끌어낼 때 분명해진다. 그러한 사례로 일관성 없어 보이는 볼테르의 정치적 글들을 들 수 있다. ‘볼테르’라는 이름을 들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가 죽은 후 1789년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을 머릿속에 떠올릴 것이다. 사람들은 볼테르를 혁명의 정신적 지주로 듣고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그가 시민 혁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1~2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 1. 우리말 ‘사해동포주의(四海同胞主義)’는 ‘공감을 바탕으로 인류의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함’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일상적이고 심리적 의미에서의 사해동포주의를 서양의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서양의 세계시민주의는 그 정의 방식의 다양함과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어떤 보편적 이념이나 체제를 전제하기 때문이다. 물론 최근 주목받고 있는 ‘문화적 측면의 세계시민주의’는 그러한 보편적 이념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 세계시민주의는 어떤 보편적 이념이나 체제를 전제한 ‘도덕적 측면의 세계시민주의’, ‘정치적 측면의 세계시민주의’, ‘경제적 측면의 세계시민주의’와 어울리기 힘들다. 왜냐하면 문화적 측면의 세계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