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철학 에세이/과학, 기술, 사회 75

챌린저호 폭발 사건

이 땅의 인문학자들은 다른 분야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경향을 버리지 못한 듯싶다. 경건한 어투를 사용하는 철학과 교수 중에 그러한 인물들이 많다. 어느 발표에서 모 대학 교수가 기계론 때문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가 실제 기계론에 대해서는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또 어느 발표에서 모 대학 교수가 ‘비판적이지 못한 사람’을 ‘공학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초기 스케치를 바탕으로 도면과 플로우차트를 그리는 공학자들은 암암리에 ‘체계적 사고방식’을 체득한다. 빠율, 꽁트, 파레토 등을 비롯한 많은 사회학자나 경제학자들은 공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글을 보면 조직 체계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그리고 비판과 함께 어떻게 개선되어..

이론의 두 가지 사용법: 빅뱅 가설의 도그마화와 과학의 퇴보

* 다음 주제의 글을 작성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할 마음이 없다. 글을 가급적 간략히 하기 위해 긴 논의가 필요한 부분은 괄호 속에 정보를 암시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으면, 글이 너무나 길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땅의 과학과 기술이 발달해 공동체에 득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실현 불가능한 희망일 수 있지만 말이다. 2007년 그 잘난 대한민국 철학계에서 자발적으로 나온 이후 ‘철학 박사’라는 타이틀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글에 그 타이틀을 명시하는 이유가 있다. ‘과학이 진행하는 방식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과학자들만의 몫은 아님을 명시하기 위해서이다. 근대 과학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프란시스 베이컨은 과학자가 아니었다. ‘과학에 ..

서평 Victorian Medicine and Social Reform: Florence Nightingale among the Novelists

* 서평, Victorian Medicine and Social Reform: Florence Nightingale among the Novelists, Palgrave Macmillan Penner, L.(2010), Victorian Medicine and Social Reform: Florence Nightingale among the Novelists, Palgrave Macmillan. “간호라는 단어의 의미는 약을 투여하거나 습포를 대는 것 정도를 의미하는 것에 국한되어 왔다. (하지만) 그것은 신선한 공기, 빛, 보온, 청결, 조용함 등의 적절한 사용 및 음식물의 적절한 선택과 처리도 의미하는 것이어야 한다.” - F. 나이팅게일 - “신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통계학을 공부해야만 한다...

안락사 3. 허용 조건들과 지금에 와서야 논쟁 거리가 된 이유

과거부터 암묵적으로 행해진 안락사가 지금에 와서야 공론화되게 된 이유를 명백히 하려면, 안락사 허용 조건들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목적에 비추어 네 가지 종류의 모든 안락사가 아니라 오로지 자발적 안락사 범주의 허용 조건들 중 가장 강한 것들만 분석해 볼 것이다. 그것도 안락사에 대한 의사의 능동적, 수동적 개입 방식은 따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개입 여부를 따지지 않을 때, 자발적 안락사의 허용 조건들 중 가장 강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은 다음과 같다(Young, R.(2007), Medically Assisted Death, Cambridge University). 글 보기 ->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045756545 안락사(Euthanasia..

안락사 2. 근대 이후 규범 윤리 전통의 한계

‘안락사’를 뜻하는 ‘euthanasia’라는 용어는 19세기 역사학자 레키(W.E.H. Lecky)가 제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레키는 ‘좋은’에 해당하는 그리스 형용사 ‘eu’와 ‘죽음’에 해당하는 ‘thanatos’를 결합해 그 용어를 만들었다. 이러한 어원적 분석에만 따른다면, ‘euthanasia’는 ‘좋은 죽음’ 혹은 ‘행복한 죽음’을 뜻한다. 전통적으로 ‘고통 없는 끝’은 좋은 혹은 행복한 죽음의 필요조건으로 간주되었다. 이러한 이해 방식은 동서(東西)의 역사에 공통적인 것 같다. 옛 어른들은 ‘젊어서 뱀을 많이 먹지 말라’고 한다. 뱀을 많이 먹으면 죽을 때 숨이 빨리 끊어지지 않아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얘기의 과학적 신빙성을 논외로 한다면, 고통 없는 끝이 좋은 죽음..

안락사 1. 히포크라테스 선서

모든 사람이 늙어 가지만 절대 자연사하지 않는 가상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늙어 거동도 힘든데 내부 기관의 이상으로 인한 통증은 누구에게나 공포로 다가 온다. 하지만 그 누구도 자연사할 수 없다. 이러한 가상의 세계에서 ‘인공적인 죽음’은 집단 유지를 위한 필수의 발명품일 수 있다. 자식의 도움을 받아 쇠한 몸을 이끌고 소각장으로 향하는 노인들의 행렬을 상상해 보는 것은 그럴듯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누군가 고통 없이 죽게 만드는 약을 발명한다면, 그는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글 보기 ->https://blog.naver.com/goodking_ct/222045756545 안락사(Euthanasia) * 2013년 12월 6일에서 27일 사이 작성된 글을 수정한 것이다. 1...

가문과 자식 교육: 이래즈머스 다윈과 찰스 다윈

가문이란 교육, 부, 권력 등이 세대로 이어져 하나의 전통을 형성한 특정 집안을 일컫는다. 영국처럼 입헌 군주제를 유지하는 국가가 아닌 경우, 현대 민주제 사회의 대부분 국가는 가문의 지위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문이라는 것은 관습적으로 남아 있으며, 자식 교육이 가문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찰스 다윈(Ch. Darwin)으로 대표되는 다윈 가문은 18세기 영국 상류층에 속하지만, 유서 깊은 귀족 가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귀촉층을 부와 권력을 이용해 사람들의 생각과 행위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는 특정 계층으로 폭넓게 규정하는 경우, 다윈 가문은 18세기 이후 영국의 산업 발달과 함께 형성된 신흥 귀족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글 보기 ..

‘해부용 살인’을 뜻하는 ‘Burking’의 유래

‘해부용 살인’을 뜻하는 ‘Burking’의 유래 ‘버킹(burking)’은 ‘해부용 살인’을 뜻하는 영국 속어이다. 이러한 단어가 유독 영국에서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는 과정을 통해 ‘시의 적절한 의료 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1. 인체 해부는 고대에 흔하지는 않았지만 행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인체 해부’는 ‘사체 해부’를 뜻한다. 로마 제국이 쇠퇴하고 기독교가 유럽에 정착하면서 인체 해부는 금지되었다. 중세를 거치면서 14세기 초 이탈리아 볼로나 대학을 거점으로 다시 인체 해부가 허용되었다. 해부를 위해 사체를 도굴한 최초의 범죄 사건은 1319년에 발생했다. 네 명의 의학 전공 학생들이 묘지에서 사체를 도굴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15세기에 이르러 이탈리아..

이탈리아 지질학자 재판에 대한 젠킨스 옹호 논증 비판

이탈리아 지질학자 재판에 대한 젠킨스 옹호 논증 비판 최근 2009년 지진 발생으로 대규모 참사가 발생한 사건을 놓고 이탈리아 지질학자들이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6년 형을 받았다. 이를 두고 전 세계 과학계가 일종의 ‘마녀 사냥’이라면서 이탈리아 판사들에 대항해 들고 일어났다. 이 와중에 지질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판결을 옹호하는 용감한 사람이 나타났으니, 그는 젠킨스라는 인물로 전통 깊은 가디언지에 자신의 의견을 밝힌 글을 썼다. 그의 글이 나오자마자 영국 과학자 스티븐 커리가 반박 글을 썼다. 그는 요리사와 기술자들에게 요구되는 책임과 불확실한 사건을 예측하는 지질학자의 책임은 다르다고 강조한다. 물론 그 둘의 책임은 다르다. 커리의 글 결론에는 동의하나, 그의 책임 구분론은 마음에 들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