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21

<세속화> 후기: 독단적 지성사와 거리 두기 3

특정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했던 시절, 해당 종교의 교리는 일종의 ‘인간 사육 체계’로 간주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지식은 ‘종교적 교리와 자연 혹은 사회’의 관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때 그러한 종교적 교리에 부합하는 삶의 방식만이 건전한 것으로 평가된다. 지식의 차원에서 ‘세속화된 시각’이란 그러한 종교적 교리가 더 이상 지식에 대한 절대적 평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시각이다. 세속화된 시각이 사회적 저항 없이 통용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종교성의 사장’이 아니다. 단지 종교가 사회의 지배적 통합 원리로 기능할 수 없게 된 ‘세속화된 사회 상태의 유지’인 것이다. 특정 지역이 세속화된 사회 상태에 이르는 과정을 획일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점은 유럽 역사에 국한해 기..

<세속화> 후기: 독단적 지성사와 거리 두기 1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인간, 자연, 사회, 그리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세계 이해 방식의 변천 과정을 다루는 것을 지성사라고 할 때, 여기서 펼쳐진 세속화 담론은 새로운 세계 이해 방식을 제시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그것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무종교인의 관점에서 세속화 과정을 서술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현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종교인이 종교적 교리들의 진위에 무관심하다고 할 때, 그는 그러한 교리들 속에 반영된 그 어떤 세계 이해 방식에도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그가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에게 세계 이해 방식..

<세속화> 후기 2. 세속화 담론의 성격 3(수정)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살펴볼 세 번째 물음은 다음과 같다. • 사회 역사적 과정들은 현시점의 특정 관점에서만 추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역사적 담론은 현실 문제 진단까지 다루기 때문에 역사적 서술보다 폭이 넓다. 제아무리 역사적 증거들을 바탕으로 한 담론일지라도 현시점의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역사적 담론은 현시점의 특정 관점에 부합하는 과거 사례들만 추려 내어 각색한 일종의 허구적 이야기가 아닐까? 역사적 서술에 바탕을 둔 담론은 현실 문제 진단과 무관할 수 없다. 그러한 진단에는 현시점의 관점이 개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사적 담론은 판단 주체의 경험에 의존적이다. 이 점에서 역사..

<세속화> 후기 2. 세속화 담론의 성격 2(수정)

* 다음 글은 의 후기에 해당한다. 650여 쪽의 본문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다음 글을 충분히 이해하기는 힘듦을 밝혀 둔다. 이 작업에서 펼쳐진 세속화 담론의 성격을 명확하게 하기 위한 두 번째 물음은 다음이다. • 과거 없는 현재는 없다. 하지만 과거는 더 이상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역사적 서술이란 그저 자의적 해석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역사적 담론을 일종의 소설처럼 취급하는 입장은 두 가지가 있다. 약한 의미에서의 입장은 과거의 실재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과거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역사적 서술은 자의적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 및 사실들에 대한 기록과 증거들은 남아 있다. 그러한 증거들의 진위 여부에 ..

<세속화: '저기'와 '여기'> 후기 2. 세속화 담론의 성격 1

* 이 글은 원고 의 후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체 원고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살펴볼 첫 번째 물음은 다음이다. • 사회 설계 참여의 자유가 사회 속에 확대되기를 바라는 무종교인들은 가상의 역사로 남은 ‘유교의 변통 가능성’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 위 물음에 대한 나의 답은 부정적이다. 이에 대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인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것 혹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감정과는 구분되는 추론 및 추상화 과정 등의 합리적 능력이 과학과 기술의 결합을 촉진시켰다는 것’,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 ‘나라 간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 등이 나타..

<세속화: '저기'와 '여기'> 후기 1. 역사적 과정들의 비동질성

* 이 글은 원고 의 후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전체 원고 내용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글의 성격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전에 올린 것에는 오류가 있어 수정한 것을 다시 올린다. 이 작업의 성격은 ‘세속화에 대한 담론을 생성하는 것’으로 규정될 수 있다. 그 세속화 담론의 성격은 한 편으로는 역사적이며, 또 한 편으로는 개인적이다. 이러한 세속화 담론의 성격은 다음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 (i)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사회 역사는 개인들의 거래 관계 및 범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의 ‘구조적 연결 방식’이 변화하고 생성되는 과정들이다. 그러한 구조적 연결 방식을 구성하는 요인들로는 ‘세계를 이해하는 특정 방식’, ‘관습 및 제도’, ‘인공물들을 바탕으로 한 물질적 기반’, ‘계층들 간 관계’, 등을 들 수..

문제를 공유하는 사회(무종교인의 관점에서)

* 다음 글은 '봉인 시킨 '에 근거한 것이다. 따라서 가 봉인된 상태에서 다음 글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닐 수 없음을 밝혀둔다. 신앙심이 없는 무종교인은 고대에는 사회에 반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여러 종교들의 세력 분포 방식에 기반을 둔 고대 사회에서 각 종교의 교리나 제의는 사회 유지에 필요한 덕목 및 관습들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세속화된 사회에서 무종교인은 더 이상 사회에 반하거나 무관심한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 땅의 무종교인들은 여전히 확산 계층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무종교인들의 의견이 사회에 표출되어 공론화될 기회는 차단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종교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논의로만은 위 물음에 대해 직접적으로 ..

세속화와 근대화 5.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하는 것이 이 땅에도 있었다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논했다. 그 곳에서 기득권층을 형식적 기득권층과 실질적 기득권층으로 나누었다.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 방식을 근대화와 맞물려 평가할 때, ‘여기’와 ‘저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은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의 소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이란 ‘실질적 기득권층이 동시에 형식적 기득권층으로 보장받는 집단’을 뜻한다. 실질적 기득권층과 형식적 기득권층의 규정 방식을 고려할 때,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이 소멸되기 위해서는 형식적 기득권층이 먼저 붕괴되어야 한다. 하지만 절대적 의미의 기득권층의 소멸이 실질적 기득권층의 소멸까지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분명히 하는 것은 계층 간 갈등이 ..

세속화와 근대화 4.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 비판

이제 계층 분화에 따른 권력 이동이라는 근대화의 성향을 살펴볼 차례다. 그 전에 ‘고전적 사회학 전통의 역사 읽기 방식’이 갖는 문제점들을 먼저 지적하자. 이것이 이후의 논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군주가 지배했던 과거 사회와 현대 사회의 차이점을 묻는다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 다수는 라인하르트 벤딕스(R. Bendix)의 책 제목이 암시하듯 다음에 동의할 것이다. • 친족, 혈연, 신분 중심의 소수 지배층이 지배했던 과거 사회가 민중의 정치적 참여를 허락하는 방식의 시민 사회로 변화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위에 동의할 때, 그들 다수는 ‘근대화’를 마치 과거와 현대를 이어주는 필연적 과정처럼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여기는 경우, 현대적인 것을 ..

세속화와 근대화 2

현대적인 것을 대표하는 특징들을 논할 때 세속화 과정은 빼먹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점은 어디에나 해당하는 것이지만, 이 땅은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직접 대응시킬 수 있는 과정 없이도 세속화된 곳이다. 물론 지적으로 성숙한 무종교인을 ‘그 어떤 이념에도 종속되기를 거부하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경우, 그러한 무종교인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는 아직 없다. 이 땅도 이에 대한 예외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 땅은 어느 정도 세속화된 곳일까?’라는 물음이 여전히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물음에 답하는 것은 일단 뒤로 미루자. 여기서는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근거해 이 땅의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명백한 한계를 갖는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만으로 족하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과 같은 것을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