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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점의 의미 4. 17세기 지적 설계론의 핵심 (수정)

(4) 17세기 전통의 지적 설계론 중세 본성론에서 우연에 의해 발생한 사건, 즉 기회는 두 가지 측면을 갖는다. 그 첫 번째 측면은 태초 이후 우주의 자체 유지와 맞물린 인과적 복잡성과 관련된다. 이때 인과적 복잡성은 사건 발생의 선후 관계를 따지는 관점이 아니라, 대상이 존재하게 된 이유를 따지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한 우연에 기인한 기회는 신의 아가페적 사랑이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여기서 ‘이기적이지 않다는 것’은 신이 모든 사건에 일일이 개입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 두 번째 측면은 우연적인 것을 기적으로 해석하는 것과 관련된다. 이때 기적은 신의 전능함과 충만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중세 본성론에서 신이 태초 이후에 개입할 여지는 논리적으로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점의 의미 3. 본성론 (수정)

(3) 본성론 본성론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연구한 알파라비(Al-Farabi), 아비세나(Avicenna) 등 이슬람 학자의 영향 아래 중세에 유행한 창조설이다. 본성론의 핵심은 우주에 존재하는 개별적인 모든 것은 ‘그 무엇’에 속하도록, 혹은 ‘그 무엇’으로 불릴 수 있도록 해주는 본질(essence)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계의 대상들에만 국한하여 생각하는 경우, 그러한 본질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과 동일시하여도 무방하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 기독교의 신 개념이 다른 만큼, 중세 본성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를 알기 위해 다음 두 문제를 차례대로 다뤄보자. • 천사는 ‘순수한 영적 존재’로 가정된다. 그러한 존재가 어떻게 가능한가? • 예수는 엄밀히 말해 인간도, 신..

정점의 의미 2. 우주 창조설의 분류 (수정)

(2) 우주 창조설의 분류 아리스토텔레스의 신 개념과 기독교의 신 개념을 관통하는 것은 둘 다 질료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둘의 주된 차이는 무엇인가? 우주의 내적 통합 원리 그 자체로 파악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작용인이 될 수 없다. 반면에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으로 가정된 기독교의 신은 어떤 의미에서든 작용인이어야 한다. 이때 신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주를 창조했는가라는 물음은 피할 수 없게 되고, 그 창조 방식에 따라 신의 목적도 다르게 해석된다. 기독교 신 개념의 다양성은 자연에서 신의 섭리를 찾아보려는 전통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또한 그 전통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천 역사와 맞물려 있다. 신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작용인으로 파악하는 경우, 두 가지 창조 방식을 생각..

정점의 의미 1.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사슬 (수정)

정점의 의미 (1)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 사슬 신이 무(無)에서 우주라는 유(有)를 창조했다면, 신 자신은 질료가 될 수는 없다. 신이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는 가정을 받아들이면, 신은 어떤 의미에서든 작용인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창조와 관련된 신의 속성인 전능함은 다양하게 해석 가능하다. 신의 전능함에 대한 해석 중 어떤 것을 택하는가에 따라 작용인으로서의 신의 의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 의미는 창조의 목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까닭에, 기독교의 다양한 신 개념을 알려면 창조의 목적에 대한 여러 관점을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존재 사슬의 구성 방식을 분석해 보자. 먼저 (A)를 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문학에 따르면, 지구에서 달까지의 영역인 지상계는 불완전..

수직선 (수정)

창조 과학은 두 가지 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이다.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 증거보다 우선시 여기면서도 ‘과학’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것 자체가 과학을 왜곡하는 짓이다. 또 성경 기록을 자연 탐구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기독교 역사를 왜곡하는 짓이다. 이 두 가지 왜곡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는 빅뱅 이론도, 진화 생물학도 아닌 자연 신학이다. 창조 과학 옹호자들은 자연 신학 전통의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er)’자 개념이 자신들의 지적 뿌리라고 주장한다. 창조 과학과 정통 자연 신학이 서로 양립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밝힌다면, 창조 과학이 과학뿐만 아니라 기독교 역사 자체를 왜곡한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이때 창조 과학 진영은 기독교 근본주의의 입장인 광신적 복음주의의 한 분파에 ..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2.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 (수정)

(2)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 태초를 가정하는 우주론만이 과학적 증거에 근거한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더욱이 자연의 역사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래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그러한 우주론이 기독교의 신 개념과 모순된다는 생각은 어리석다. 여기서는 다음 물음과 관련하여 그 이유를 밝히고, 이어지는 글에서 태초를 가정하지 않는 우주론을 살펴볼 것이다. • 자연의 역사를 수직선에 비유할 때 그 수직선의 출발점을 가정할 수 있는가? 그러한 출발점은 우주의 태초로 귀결되어야 하는가? 자연의 본모습을 부분들의 끊임없는 생성과 소멸의 반복으로 가정하는 경우, 자연의 역사들은 그러한 반복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 우주의 국소적 현상들이다. 따라서 태초를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것인가? 태양계가 사라진다면, 생명체가 안식처로..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1. 열린 체계로서의 과학 (수정)

자연의 역사와 우주론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직선상에 촘촘히 배열한다고 생각해 보자. 현대 과학에 익숙한 이는 죽은 물질계(物質界)에서 출발하여 원시생물을 거쳐 인간에 이르는 과정을 연대순으로 배열할 것이다. 그는 질적 상태 변화의 비순환적 과정, 즉 자연의 역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의 수직선은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방향성을 갖게 된다. 그러한 방향성을 갖는 수직선을 ‘자연의 역사선(nature's history line)’이라 부르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수직선상에 촘촘히 배열한다고 할 때 우주 전체가 위계질서를 가진 하나의 사회에 비유될 수 있다. 이러한 비유에 근거한 것이 바로 ‘존재 사슬’이다. 존재 사슬이 기독교의 다양한 신 개념과 맞물려 논의될 수 있다. 또한 그..

‘스타 트렉, 비기닝’, 스타 트렉의 새로운 시작 또는 종말

‘스타 트렉, 비기닝’(Star Trek, the Beginning), 스타 트렉의 새로운 시작 또는 종말 ‘스타 트렉(Star Trek)’, 이 TV 시리즈의 팬이든 아니든 그 이름은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것이다. 런던 대영 박물관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는 장소로 스타 트렉 박물관이 회자될 정도이다. 스타 트렉에 열광적인 팬, 곧 ‘트렉키’들이 정말 많다. 하지만 이 점은 티브이 시리즈가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 흥행에는 단점으로 작용했다. 티브이 시리즈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강한 만큼, 그 이미지를 한 편의 영화로 녹여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개봉된 ‘스타 트렉, 비기닝’은 영화로 상영된 스타 트렉 시리즈로서는 흥행에 성공했다. 그러나 ‘스타 트렉, 비기닝’은 ‘스타 트렉의 새로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