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와 민주주의 (봉인 해제)/세속화와 민주주의 57

가상의 역사 13. 세속화 과정과 동양적 자유 개념 5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분류 방식)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의 분류 방식을 도식화해 보면 다음과 같다. 개인의 삶이 위 분류 방식 중 어느 하나에 종속된 경우는 없다.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은 개인이 처한 상황과 원하는 것뿐만 아니라 개인의 능력에도 의존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 실현되는 과정은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방식이 소극적 의미에서 적극적 의미로 이행하는 과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려 할 때, 개인이 원하는 것마저도 ‘개인이 추구하는 세계의 그림’으로 국한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유교에 함축된 가치 체계는 개인의 삶을 유도하는 일종의 지도와 같은 것으로서의 세계의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때 위 도식의 각 경우는 다음과 같이 해석 가능하다. • 현실에 대한 긍정..

가상의 역사 12. 세속화 과정과 동양적 자유 개념 4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 구조)

‘현실 수긍 여부에 따른 자발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방식을 분석하기 위한 단순한 방법 중 하나는 ‘현실 수긍 여부에 대한 상황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현실’은 일반적으로 ‘개인이 처한 상황 인식의 대상’을 뜻한다. 이러한 현실의 의미를 폭 넓게 해석하는 경우, ‘현실’은 ‘개인이 처한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와 다르지 않다. 현실에 대한 평가 방식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근거한다. 그 첫 번째 요인은 개인이 처한 구체적 상황 그 자체이다. 그 두 번째 요인은 그러한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로서의 현실에 자신이 원하는 것을 비추어 보는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처한 구체적 상황을 포함한 사회 상태를 명확히 규정하기 힘들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단순히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상황이 아니다. 그것..

가상의 역사 11. 세속화 과정과 동양적 자유 개념 3 (백이와 숙제 이야기)

‘사회 분리된 개인’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 배어 있는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에 근거하여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게 이상화된 개인 개념은 서양에서는 인간 중심 사상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그 형성 과정은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과 밀접히 맞물려 있다. ‘사회와 분리된 개인’이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면,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을 이분하고 선택의 자유를 사적 영역에 우선적으로 허용한 서양 근대 초기의 사고방식도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 서양의 오랜 세속화 과정에 대응되는 과정이 이 땅에 있었다는 가정 아래 가상의 역사를 구성하는 경우에도, ‘사회와 분리된 개인’은 그러한 가상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 자연스럽다. 이 땅의..

가상의 역사 10. 세속화 과정과 동양의 자유 개념 2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구성하는 세 관점 중 그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다. 그 관점의 근간을 유지한 채 우열 구분의 관점과 엄격한 신분 구분의 관점을 허락하지 않는 방식으로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을 수정할 수 있다. 이를 ‘유교의 변통 가능성’이라 명명했다. 유교의 변통 가능성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과 우열 구분의 관점이 내용적으로 분리 가능하다는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한 내용적 분리 가능성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약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과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강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으로 나뉜다.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대한 약한 의미의 내용적 분리 가능성’은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이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을 전제한..

가상의 역사 9. 세속화 과정과 동양의 자유 개념 1

현대적인 특징들로 대표되는 ‘개인주의의 확대’, ‘이성의 강조’, ‘가치체계의 다원화’, ‘세계화’에 대응하는 실제적 양상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혹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관점’, ‘감정과는 구분되는 추론 및 추상화 과정이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기여했다는 것’,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국가 간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자유’를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혹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양상과 연관지어 논하는 경우, 동양과 서양 역사 모두에 공통된 특징으로 ‘신분제의 붕괴를 수반한 사회 구조 변동’을 거론할 수 있다. 그런데 신분제가 붕괴되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서양의 경우, 신분제의 붕괴는 서양..

가상의 역사 8. 자유 2: 세속화 과정과 서양의 자유 개념

현대적인 특징들로 거론되는 ‘개인주의의 확대’, ‘이성의 강조’, ‘가치 체계의 다원화’, ‘세계화’의 실제적 양상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혹은 누구나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의 확대’, ‘감정과는 구분되는 추론 및 추상화 과정이 과학과 기술의 결합에 기여했다는 것’,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수 있다는 것’, ‘국가 간 경계가 느슨해졌다는 것’이다. 세속화 과정을 언급하지 않고서는 그러한 양상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과정을 논할 수 없다. 특히 개인주의의 확대 과정은 ‘자유’라는 개념에 대한 고찰이 정치 철학이나 사회학의 중요한 담론으로 떠오르는 과정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우리 모두 몇 백 년 전에 태어났다고 해보자. 그 당시와 현재에 공통된 점은 ..

가상의 역사 7. 자유 1

서양의 세속화 과정을 한 나무에 비유할 때, 고전적 이원론의 붕괴 과정은 그 나무의 뿌리와 같다. 고전적 이원론의 근간인 ‘지상계와 천상계를 이분하는 관점’이 위협을 받게 되면서,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이 나타났다. 이러한 인간 중심 사상은 중세 이후의 새로운 변화에 적합하도록 기존의 세계 이해 방식을 수정하는 가운데 형성되었다. 이러한 인간 중심 사상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르면서 ‘합리적 개인’ 개념이 탄생했다. 인간은 더 이상 신성이 깃든 곳으로 여겨진 천상을 바라보며 신을 찬양해야 하는 지상의 괴물이 아니다. 이렇게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가 높게 평가되면서, 개인은 ‘신으로부터 부여 받은 이성이라는 능력으로 자연 및 도덕의 보편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입장이 정착했다. 그러한 입장에 함축된 개..

가상의 역사 6. 인간 중심 사상

인간 중심 사상의 핵심은 인간과는 다른 동물이나 사물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과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 모두에 공통된 것으로 여겨진다. 동양적 인간 중심 사상은 중심과 주변의 구분 맥락에 핵심인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일 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의 도덕성을 정당화하기 위해 인간 존재를 천지(天地)를 매개하는 우주의 중심이라고 관계 중심의 인간 관점을 해석하는 경우, 인간은 ‘다른 동물이나 사물보다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서양적 인간 중심 사상에 따르면, 인간은 ‘신에게 부여받은 합리적 능력을 바탕으로 도덕 및 자연의 법칙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겨진다. 따라서 인간과는 다른 동물이나 사물보다 인간에게 더 높은 가..

가상의 역사 5. 소중화 사상 2

외지에서 들어와 특정 지역의 일부가 된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도 해당 지역의 상황에 맞추어 토착화된 것이다. 그러한 토착화 과정에서 외지 세력의 사상이나 종교는 집단 간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그러한 갈등이 사회 전체에 걸친 대립 양상으로 나타나는 경우를 ‘문화 전쟁’으로 규정했었다. 유교는 그러한 문화 전쟁을 거쳐 이 땅에 정착했다. 반면에 기독교는 그러한 문화 전쟁을 크게 거치지 않고 이 땅에 정착했다. 기독교는 이 땅에 정착한 이후에야 문화 전쟁의 조짐을 보이는 종교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당분간 잊기로 하자.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음 문제이기 때문이다. • 소중화 사상을 ‘유교의 자기화’ 혹은 ‘유교의 우리화’라는 것으로 보는..

가상의 역사 4. 소중화 사상 1

「허생전」에는 「양반전」과 마찬가지로 당시 양반 계급을 비판하려는 연암의 의도가 깔려 있다. 하지만 「허생전」은 양반전과 달리 당시 변화한 주변 정세에 맞추어 조선을 변통시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허생전」은 난세를 극복하기 위해 양반이 행해야 할 실천이 무엇인지를 다루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한 연암은 인재가 있어도 등용되지 않는 당시 세태를 극복하기 힘든 난세로 간주했다. 이는 허생이 변통의 뜻을 실현할 수 없음을 알고 세상을 버리는 「허생전」의 마지막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당시 사대부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던 ‘소중화(小中華) 사상’에 대한 연암의 비판적 시각이다. 그런데 연암의 글에서 소중화 사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